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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움에도 때가 있다

신경세포 연결부위 변화가 기억력 좌우

직장인 안기억씨는 새봄을 맞아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얼마 후 있을 승진시험에 대비도 하고 외국인 바이어를 만날 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서다. 그런데 웬걸. 단어시험 결과 절반도 맞추지 못했다. 학창시절에는 한두번 보면 기억하던 영어단어를 이젠 아무리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실을 기억하는 능력은 조금씩 떨어진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이 같은 기억력의 변화를 신경전달이 일어나는 장소인 ‘시냅스’의 변화로 설명하고 있다. 시냅스는 신경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접점으로 상황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한다. 약 1㎛에 불과한 미세 공간 시냅스가 어떻게 기억력을 조절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단추와 가시 모양 독특한 구조

신경세포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유전물질을 보관하며 단백질 생산을 조절하는 세포체, 세포체로부터 나뭇가지처럼 뻗어나와 신경신호를 받아들이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수상돌기,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다른 신경세포에 신호를 전달해주는 축색돌기가 그것이다.

축색돌기는 신경세포의 종류에 따라 상당히 길 수도 있는데 경우에 따라 1m를 넘는 것도 있다. 신경세포는 우리 몸에서 단연 가장 긴 세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긴 세포가 한번 태어나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포분열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다. 신경세포가 손상되지 않도록 미리 잘 보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경전달은 축색돌기의 신경말단에서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 맞은편에 위치한 시냅스후 신경전달물질 수용체를 자극해 일어난다. 신경세포 하나당 평균 1만개 정도의 시냅스를 갖고 있으니 신경세포는 다양한 신호를 받아들이고, 종합하고,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해주는 살아있는 컴퓨터라 할 수 있다.

시냅스는 그 중요성에 걸맞게 대단히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신경말단은 축색돌기의 끝부분과 중간의 여러 곳에 분포해 있다. 신경말단에는 신경전달물질이 담긴 주머니들과 다른 많은 단백질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주위보다 훨씬 불룩하게 부풀어 보인다. 옛날 신경과학자들은 이것을 단추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시냅스 버튼’이라고 불렀다.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가 있는 수상돌기 표면에는 가시모양의 ‘스파인’이라는 구조물(지름 약 1㎛)이 무수히 솟아있다. 스파인은 마치 사람 머리처럼 생겼는데, 액틴이라는 세포골격 단백질이 스파인의 생성이나 모양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파인 머리의 한쪽 구석은 보통 신경말단과 접촉해 시냅스를 만들고 있다. 이곳 역시 수용체와 기타 많은 단백질들이 서로 그물 모양으로 얽혀있다. 전자현미경으로도 거뭇거뭇하게 보일 정도로 단백질들이 많이 모여 있으며, ‘시냅스후 복합단백체’(PSD, PostSynaptic Density)라고 불린다. 이 구조물의 지름은 약 1㎛이며 적어도 10만개의 단백질을 수용할 수 있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찬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다.

축구장에서는 관중이 두 편으로 나뉘어 응원전을 펼친다. 시냅스후 복합단백체 안에 있는 단백질도 신경전달을 촉진하는 일련의 단백질들과 반대로 억제하는 단백질들로 나뉘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신경전달이 과도하게 또는 부족하게 일어나면 정상적인 뇌기능에 지장이 있음은 물론이고 간질, 우울증, 자폐증 같은 다양한 뇌질환이 발생한다. 따라서 신경전달은 적절한 선에서 잘 조절돼야 한다. 즉 신경전달을 촉진하는 인자들과 억제하는 인자들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신경세포 사이의 신경전달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들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시냅스 자체의 절대적인 숫자로 상황에 따라 시냅스가 새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각 시냅스의 신경전달 효율인데, 상황에 따라 효율이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이런 변화는 유전적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나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신경자극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림 그리기나 창의성 계발 등의 뇌기능에 시냅스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어릴 때일수록 시냅스가 왕성하게 만들어진다.


역동적 시냅스

이처럼 구조 측면에서 시냅스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 기능 측면에서 신경전달 효율이 변하는 것을 통칭해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최근 과학전문저널 ‘사이언스’의 표지 제목 ‘역동적 시냅스’는 이같은 시냅스 가소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고로 손을 잃은 경우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을 만졌을 때 마치 손이 만져지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전에 손의 촉감을 담당하던 뇌 부위가 더이상 할 일이 없어지면서 얼굴의 촉감 신호와 연결됐기 때문이다. 즉 손과 얼굴 촉감 담당 부위 사이에 수많은 시냅스가 생성됐을 것이다.

시냅스는 여러 단계를 거쳐 생성된다. 마치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우선 두 신경세포가 먼 여행을 통해 한 장소에서 만나야 한다. 같은 장소에 있다고 무조건 시냅스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신경세포들이 작은 가지들을 내뻗어 서로 접촉하며 탐색전을 벌인다. 탐색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이상형이 아닌 엉뚱한 배우자를 만날 수도 있다. 서로 접촉한 부위에 무조건 시냅스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양쪽이 시냅스를 만들 만한 적절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한 신경세포가 자물쇠라면 그에 맞는 열쇠에 해당하는 신경세포가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처음 만들어진 시냅스는 오래된 안정적인 시냅스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며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심지어 오래된 시냅스조차도 상황이 열악해지면 영구히 소멸되는 비운을 맞기도 한다. 시냅스가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되려면 연결된 두 신경세포가 계속해서 상대에게 서로 긍정적 영향을 끼쳐야 한다.

시냅스에서 신경전달 효율 변화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신경말단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 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냅스 반대편에서 수용체의 반응이 변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수용체 관련 메커니즘이 많이 연구됐다.

수용체 단백질들은 신경세포 내부에 있을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시냅스를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막의 표면으로 올라가면 신경전달물질과 반응해 활성화된다. 활성화된 수용체는 구조가 변해 무기이온이 지나가는 이온통로가 되거나 세포내 신호전달을 유도하는 신호단백질이 된다. 최근 수용체가 인산화되면 수용체를 통과하는 이온의 양이 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수용체가 신경세포막 표면으로 이동하는 것도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조절된다. 실제로 최근 ‘사이언스’에는 소리신호와 전기충격을 연결시키는 공포 기억 훈련을 받은 쥐의 뇌에서 수용체가 신경세포막으로 더 많이 올라간다는 내용이 실렸다. 즉 시냅스 가소성을 위해 수용체의 효율이나 수가 조절되는 것이다.
 

대뇌 신피질(위) 소뇌(아래)의 신경세포에서 활동전위가 정방향(오른쪽)과 역방향(왼쪽)으로 전달되는 모습.


나이 들면 어학공부 어려운 이유

시냅스 가소성은 결국 뇌기능 전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거나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등의 간단한 뇌기능에서부터, 기억하고 있거나 새로 받아들인 여러 정보를 통합 분석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고차원적 뇌기능에 이르기까지 시냅스의 가소성이 관여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다.

캐나다의 유명한 뇌신경과학자 도널드 헤브 박사는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면 하나의 회로가 만들어지는데, 이 회로가 바로 기억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시냅스의 생성이나 효율을 좌우하는 시냅스 가소성이 당연히 기억력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억력에는 개인차가 있는데, 이 역시 개인별 시냅스 가소성의 차이에 근거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학습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언어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 또한 시냅스 가소성과 깊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냅스가 형성되려면 서로 다른 신경세포들이 잔가지들을 뻗으면서 탐색전을 벌여야 한다. 탐색전은 신경세포의 일생동안 늘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비교적 어린 나이의 ‘특정 시기’(critical period) 동안에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 쥐를 포함한 설치류의 경우 생후 2∼3주의 경험이 시냅스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시냅스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신경세포의 잔가지들이 빠르게 사라지며 이미 만들어진 시냅스 중 부실한 것들은 추려내고 쓸만한 것들만 더욱 안정화시키는 일만 남는다. 더 시간이 지나 이런 상황이 상당히 진행됐을 때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에 대응해서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내용을 기억하고 학습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의 뇌 역시 학습의 종류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충분히 탄력적이며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시냅스 형성이 왕성히 일어나는 특정 시기는 질병 치료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사시 등의 원인으로 인해 어린이 뇌가 제대로 정보를 받지 못하면 각막이나 수정체 같은 눈 자체의 기능은 정상이더라도 시각피질의 뇌신경회로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해 시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어린 시절에 교정해주면 시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지만, 특정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시력을 완전히 회복하기 어렵다. 시각 관련 시냅스가 활발히 생성되는 특정 시기, 즉 시냅스 가소성이 가장 왕성한 바로 그 시기에 들어온 시각정보에 대한 기억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추측된다.

각막이상으로 시력을 상실한 환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각막이상이 아주 어린 시절에 발생했다면 이미 시각피질 회로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중에 온전한 각막을 이식받는다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 프로그램 중 각막이식수술로 환자의 시력을 회복시켜주는 코너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의사는 “환자가 예전에 스스로 볼 수 있었던 적이 있는지”를 묻는다. 뇌가 당시의 시각회로를 기억하고 있어야 각막 이식 후 시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간질 치료를 위해 뇌의 좌반구를 절제한 소년의 경우 원래 왼쪽 뇌에 있던 언어영역이 오른쪽 뇌로 이동하면서 언어기능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뇌혈관 파괴로 언어기능을 상실한 노인의 경우에는 회복이 상당히 느리다. 어릴수록 시냅스 가소성이 활발해 기억하고 있던 언어기능을 다른 뇌 영역에서 빨리 되살려낸 것이다.
 

뇌 속의 수많은 신경세포는 마치 복잡한 회로처럼 연결돼 있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시냅스다. 시냅스의 수나 효율이 증가하면 학습능력이나 기억력이 향상되지만 시냅스가 잘못되면 학습장애나 정신지체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신경전달 효율 늘면 기억력 향상

시냅스 가소성에 관여하는 시냅스 수와 효율이 기억력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면, 가소성을 조절해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유전자 조작 생쥐를 통한 실험결과들이 이에 대한 좋은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 첸 박사는 신경전달에 관여하는 수용체 수를 유전자 조작으로 증가시켰을 때 생쥐의 지능이 높아진다고 보고했다.

스위스공대 만스이 박사는 신경전달 억제단백질 생성을 억제한 유전자 조작 생쥐를 만들어 지능 상승을 관찰했다. 국내에서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가 최근 신경전달의 주요 조절자인 칼슘 농도를 변화시킨 똑똑한 유전자 조작 생쥐를 생산했다. 이 결과들은 신경전달 효율의 증가가 기억력 향상의 주요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도네가와 박사는 최근 시냅스 수가 줄어든 유전자 조작 생쥐에서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시냅스 수 유지에 중요한 단백질이 결손된 사람의 경우 언어장애나 정신지체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여러 건 보고됐다. 결국 시냅스 가소성을 조절하는 모든 인자들이 기억력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기능을 향상시키려면 운전대나 문을 새것으로 교체하기보다는 연료밸브나 엔진을 교체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현재의 시냅스 관련 신경과학 연구는 마치 자동차 내부 각 부분의 기능을 이해하듯 가소성 관련 인자들의 기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다. 각 부분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이들을 선별적으로 활성화시키거나 억제해 궁극적으로 기억력 향상이나 치매 같은 질병 치료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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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은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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