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예전에 비하면 따뜻한 겨울이라지만 매서운 한파가 몰아칠 때면 집밖을 나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고혈압 환자처럼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하의 날씨는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겨울철 건강관리법에 단골로 도마에 오르는 항목이 지방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지방의 섭취를 억제해 비만을 줄이고 체내 콜레스테롤 함량을 낮추라는 얘기다. 사실 지방이 비만이나 심혈관계 질환뿐 아니라 각종 성인병의 원흉으로 지목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현대인들이 직면한 건강의 위기가 지방 탓일까?
최근 연구결과,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오히려 지방은 현대인의 건강유지에 필수적인 영양소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지방을 균형있게 적당량 섭취하는게 중요하다. 우리가 지방에 대한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몇가지 오해들을 풀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지방은 비만의 주범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굳이 지방의 섭취를 피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지방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방을 섭취하면 살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이 1g당 9kcal의 열량을 내는 반면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4kcal의 열량을 내므로 지나치게 먹는다면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체중 증가의 원인은 지방 섭취 자체가 아니라 섭취한 총열량에 있다. 같은 양의 열량을 갖는다면 식품 속의 지방 비율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고지방식단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체중을 감소시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체는 지방을 먹지 않아도 과잉의 열량을 섭취하면 탄수화물로부터 지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체지방을 줄이려고 무턱대고 지방을 피하는 것은 성과가 없는 다이어트법이다.
물론 지방 성분 중에서도 살찌게 하는 것이 있다. 포화지방산이나 트랜스지방산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세포가 지방을 소모하기보다는 저장하게 하기 때문에 체중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포화지방산, 특히 오메가-3 지방산은 세포내의 지방산 합성을 억제하고 분해를 촉진함으로써 체중 증가를 막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55년 미국인들은 열량의 40%를 지방에서 얻었는데 당시 인구의 25%가 비만이었다. 비만을 막기 위해 저지방식 운동을 펼친 결과 1995년에 열량 중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35%로 줄었지만 비만인구는 오히려 40%로 크게 늘었다. 결국 사람들은 지방을 줄인 대신 인스턴트식품과 청량음료 등 단순당류의 고탄수화물 식품에 지나치게 탐닉함으로써 칼로리 섭취량을 늘린 것이다.
최근 서구에서는 지방의 섭취량 감소보다는 단순당류 탄수화물의 양을 적게 먹는 ‘저탄수화물 식단’이 체중조절과 성인병예방을 위한 건강법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살이 찌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는데 있다.
심장질환 예방에는 저지방 식단이 좋다?
심장병에 안 걸리려면 지방을 피하라는 조언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처럼 들린다. 실제로 열량의 38%를 지방에서 얻는 핀란드 동부지역 사람들의 경우 10년에 걸쳐 1만명당 발생하는 관상동맥 심장질환이 3천건에 달한다. 이는 열량의 10%만을 지방에서 취하는 일본인의 5백건보다 6배나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지방섭취량과 심장질환 발생률은 비례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리스 크레타섬의 전통 식단은 지방이 40%로 일본의 4배다. 그러나 심장질환은 2백건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핀란드의 15분의 1이고 일본과 비교해도 절반을 밑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연구자들은 그 해답을 섭취하는 지방의 종류에서 찾았다. 핀란드인들은 주로 육류와 유제품에서 지방을 섭취한다. 즉 포화지방산이 대부분이다. 반면 크레타섬 사람들의 요리에는 올리브 기름과 생선이 많이 쓰인다. 올리브 기름에는 단일불포화지방산이, 생선에는 다중불포화지방산이 듬뿍 들어있다. 날생선을 많이 먹는 에스키모인들 역시 심혈관계 질환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연구결과 포화지방산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반면 단일불포화지방산이나 다중불포화지방산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흥미롭게도 포화지방산을 탄수화물로 대체하더라도 심장질환의 위험성은 별로 감소하지 않았다. 실제로 에너지 섭취량 중 탄수화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우리 한국인의 경우 혈중 중성지질이 올라가는 고지혈증이 많이 발생한다. 탄수화물이 체내에서 포화지방산으로 바뀌기 때문으로 이는 심혈관계 질환의 중요한 위험요인이 된다. 결국 심장질환을 막으려면 지방을 무작정 줄일 것이 아니라 섭취하는 종류를 바꿔야 한다.
동물성 지방은 나쁘고 식물성 지방은 좋다?
수년 전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공업용 우지(牛脂) 파동을 기억할 것이다. 라면을 튀길 때 공업용(식품 가공용) 쇠기름을 쓴 사실이 밝혀지면서 라면 업계는 몰염치한 집단으로 몰리며 큰 타격을 입었다. 그 뒤 이들 중 상당수가 팜유같은 ‘순식물성 기름’을 쓰기로 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전을 폈다. 그렇다면 과연 팜유가 쇠기름보다 몸에 좋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팜유에는 다량의 포화지방산이 들어있으므로, 같은 식물성인 콩기름보다는 쇠기름의 조성에 훨씬 가깝다. 따라서 우지대신 팜유를 쓴다고 해서 건강에 더 도움이 될 것은 없다.
다수의 식물성 지방은 콩기름이나 참기름처럼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실온에서 액체다. 반면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지방은 포화지방산이 많아 고기를 굽고 난 후 허옇게 굳어 있는 굳기름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성 지방이 그런 것은 아니다. 생선은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육류보다는 오히려 식물성 기름에 가깝다.
특히 등푸른 생선에는 오메가-3 지방산에 속하는 DHA(도코사헥사엔산)가 많이 들어있다. 수년 전부터 DHA를 첨가한 식품이 속속 등장함에 따라 익숙한 이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DHA가 고도로 불포화된 지방산의 하나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뇌와 신경조직은 지질의 함량이 매우 높고 DHA가 세포막의 주성분을 이루고 있다. 또 우유와 달리 모유에는 상당량의 DHA가 포함돼 있는데 아기의 뇌와 신경발달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지방이 동물성이냐 식물성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방산 조성이 얼마나 균형있는가가 평가 기준이 돼야한다.
포화지방산이 가장 해롭다?
포화지방산이 과도한 식품을 섭취할 경우 비만과 심혈관계 질환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포화지방산은 효율적인 에너지원일 뿐 아니라 세포막이나 지방조직을 만드는데 쓰이므로 적당량일 경우 필수적인 요소다. 다만 현대인은 식단에 포화지방산이 지나치게 많을 뿐 아니라 여분의 탄수화물이 몸 안에서 포화지방산으로 바뀌어 저장되므로 대부분 과잉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영양학자들은 하루에 20g 이상 먹지 말라고 권장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포화지방산과 비슷한 트랜스지방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트랜스지방산은 액체인 식물성 기름을 버터처럼 만들기 위해 수소를 첨가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이렇게 만든 대표적인 식품이 마가린과 쇼트닝이다. 트랜스지방산은 포화지방산과 모양이 비슷해 체내 작용도 유사하다.
최근 연구결과 트랜스지방산이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줄이고 해로운 콜레스테롤(LDL)은 늘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HDL과 LDL을 모두 증가시키는 포화지방산보다 더 해로운 성분인 셈이다. 식물성 마가린이 동물성 버터보다 나을게 없다는 얘기다. 쇼트닝을 쓰는 감자튀김이나 통닭, 스낵류, 쿠키에도 당연히 트랜스지방산이 많이 들어있다. 지난해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식품 중 트랜스지방산의 성분표시를 2006년부터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불포화지방산은 많이 먹을수록 좋다?
지방이 고열량 에너지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몸이 필요로 하는 필수지방산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필수지방산은 몸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체내 여러 대사과정을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성분이다. 하지만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꼭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필수지방산은 다중불포화지방산으로 2종이 있다. 오메가-6 계열인 리놀레산(LA)과 오메가-3 계열인 알파-리놀렌산(LNA)이 그것이다. 이들이 부족하면 습진성 피부염, 성장발육과 생식기능 장애, 지방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옥수수유처럼 리놀레산이 풍부한 식물성 기름이 요리에 널리 쓰여왔다.
그러나 최근 오메가-6 계열과 오메가-3 계열의 지방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경우 역시 몸에 해롭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옥수수, 콩기름 등 흔히 쓰이는 식용유에는 오메가-6 지방산이 훨씬 많이 들어있다. 전형적인 미국식 식단의 경우 육류와 식용유 섭취가 지나쳐 오메가-6 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의 섭취 비율이 20:1에 이른다. 그 결과 각종 염증성 질환과 성인병을 부추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비율이 4:1일 때 우리 몸이 가장 효율적으로 기능한다고 한다.
오메가-3 지방산은 주로 생선에 풍부하게 들어있다. 따라서 생선, 특히 고등어처럼 등푸른 생선을 자주 식탁에 올려 필수지방산 섭취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식물성 기름 중에서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종류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있는 캡슐이 건강보조식품으로 인기다.
그런데 우리가 예전부터 먹어왔던 들기름에는 오메가-3 지방산인 알파-리놀렌산이 전체 지방산의 60%나 된다. 물론 기름진 생선류인 고등어, 꽁치, 청어, 참치 등에서 DHA같이 중요한 오메가-3 지방산을 직접 얻으면 좋지만, 알파-리놀렌산을 섭취해도 인체가 DHA를 만들 수 있다. 들기름은 식용유로서 무침, 볶음 등의 요리에 사용하거나 샐러드 드레싱 또는 소스 등에 다양하게 응용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또한 들깨 잎, 들깨 가루 등 식품 그 자체의 형태로 이용하면 독특한 향과 함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리그난을 비롯한 여러가지 화합물의 효과도 볼 수 있다.
결국 체내에서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는 지방을 적당량, 그리고 지방산의 조성이 균형있게 섭취되도록 한다면 최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포화지방산? 불포화지방산?
지방의 구성성분인 지방산은 크게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으로 나눈다. 지방산은 탄소원자가 사슬처럼 길게 연결된 끝부분에 카르복실산이라는 산이 붙어있는 분자다. 마치 성냥개비와 같은 모양이다. 포화란 말은 탄소 사슬에 수소가 최대한 붙어있는 상태, 즉 수소로 포화됐다는 뜻이다. 따라서 포화지방산은 안정한 분자이며 차곡차곡 잘 쌓이기 때문에 실온에서 고체다.
반면 불포화지방산은 중간의 탄소 사슬이 이중결합을 하고 있어 수소가 적게 붙어있는 상태다. 그 부분에서 꺾이기 때문에 모양이 중간이 꺾인 성냥개비 같다. 그 결과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지 않아 실온에서 액체상태로 존재한다. 수소가 부족한 부분의 개수가 하나일 때는 단일불포화지방산, 둘 이상일 때는 다중불포화지방산이라고 한다. 한편 불포화지방산은 탄소 사슬의 끝부분을 시작으로 세번째 탄소에 첫 이중결합이 있으면 오메가-3, 여섯번째일 때는 오메가-6, 아홉번째일 때는 오메가-9 지방산으로 분류한다.
불포화된 위치가 많을수록 꺾이는 부분이 많아지므로 더 유동적이 된다. 인체에서 발견되는 지방산 중 불포화도가 가장 큰 지방산은 DHA로, 탄소 22개로 이뤄진 사슬에서 6곳이 수소가 부족한 이중결합을 이루고 있다. 한편 불포화도가 클수록 더 불안정해 쉽게 변질돼 냄새가 난다. 생선이 냉장고에서 하루나 이틀 지나면 왜 비린내가 나는지 궁금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생선 속에 많이 함유된 불포화지방산이 산화돼 나는 냄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