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오후 6시47분(현지시간) 미국 캔자스주 설라이너 공항에서 기묘하게 생긴 흰색 비행기 한 대가 이륙했다. 양 날개가 매우 긴 이 비행기의 날개 중간에는 동체의 두세 배 크기인 커다란 연료통이 달려 있었다. 이 비행기는 중간 급유 없이 지구를 한바퀴 돌기 위해 이처럼 엄청나게 큰 연료통을 준비했다. 미국의 억만장자 스티브 포셋(60)은 이날 ‘글로벌 플라이어’라는 이름의 비행기를 타고 무착륙 세계일주 기록 도전에 나섰다. 이전 기록은 1986년 두 명의 비행사가 ‘보이저’라는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세운 9일이다. 포셋은 이 기록을 80시간 이내로 단축할 계획이었다.
홀로 떠난 비행기 세계일주
이날부터 67시간이 지난 3월 3일 오후 1시 50분. 설라이너 공항의 하늘에 멀리 한 점이 보였다. 점은 점점 커지더니 점차 비행기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포셋이 탄 글로벌 플라이어였다. 마침내 비행기 꼬리에서 낙하산이 펴지고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정확한 기록은 67시간 2분 38초였다.
포셋은 비행기에서 내려 걸으면서 발을 절룩거렸다. 그는 67시간 동안 비행기 조종석 안에만 앉아 있었다. 식사는 물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러나 포셋은자신을 마중나온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이번 여행은 내가 겪은 가장 어려웠던 일의 하나지만 나는 지금 오랜 꿈을 달성해 매우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착륙이나 중간 급유 없이 세계일주에 성공한 것은 포셋이 세계 최초다.
글로벌 플라이어가 비행한 거리는 모두 4만234km다. 이 거리를 67시간 만에 날았으니 평균 시속 600km로 난 셈이다. 비행기는 평균 고도 1만4000m로 하늘을 날았다.
포셋은 이번 세계일주에서 미국 캔자스주 설라이너 공항을 떠나 몬트리올을 거쳐 대서양을 통과했다. 당초 유럽의 런던과 파리, 로마를 차례로 지나 이집트 카이로 상공을 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출발직전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모로코와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하늘을 거쳐 중동의 바레인, 인도의 캘커타, 중국의 상하이와 일본 도쿄를 지나갔다. 이어 태평양을 통과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다시 캔자스주 설라이너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비행에서 최대 위기는 이륙 몇 시간 만에 연료 일부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이때 전체 연료의 13%인 1200kg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지상에 남아 있는 관제팀은 연료통이 새거나 연료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기화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포셋은 일본이나 하와이 상공에서 비행을 중단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결국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순풍이 계속 불었다.
결과적으로 포셋은 순풍 덕분에 비행 시간을 당초 예상했던 80시간에서 13시간이나 줄일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폴 무어는 “스티브는 바람의 축복 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착륙후 연료통을 조사해 보자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연료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제로는 연료가 아니라 계기판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포셋씨는 착륙직후 “이번 비행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잠과 두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밀크셰이크만으로 끼니를 때웠다. 잠은 비행 중간중간 1,2분 정도 자동비행장치를 이용해 잠깐 눈을 붙이는 것에 그쳤다. 포셋의 초인적인 체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탄소섬유로 만든 초경량 비행기
글로벌 플라이어는 세계 일주를 위해 특수하게 만들어진 비행기다. 몸체가 가볍고 연료를 최대한 많이 실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비행기는 벌집 모양으로 된 아라미드 섬유와 가벼운 탄소섬유로 만들어졌다. 가벼운 대신 기상에 영향을 받기 쉬워 포셋은 몇 달동안 비행에 가장 좋은 날을 기다려야 했다.
두 날개는 폭이 좁고 매우 길다. 최대한 적은 연료로 오래 날 수 있도록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됐다. 비행기의 동체 길이는 13m지만 양 날개 끝 사이는 34m나 된다. 꼬리날개도 날개 중간에 달려 있는 연료통 끝에 붙어 있다.
제트 엔진이 달린 글로벌 플라이러는 모두 13개의 연료탱크를 갖고 있다. 전체 비행기 질량인 9979kg 중 83%가 연료다. 비행을 마치면 비행기 무게가 5분의 1로 줄어든다. 미국 워싱턴 항공우주박물관의 항공기 큐레이터인 반 린든은 “글로벌 플라이어는 날아다니는 연료 탱크”라고 말했다. 글로벌 플라이어는 연료 없이도 320km를 글라이더처럼 날 수 있다. 이 비행기는 최초의 민간우주선 ‘스페이스십원’을 제작한 버트 런던이 설계했다. 이 같은 첨단 기술과 소재, 강한 의지와 강철 같은 체력을 통해 포셋은 단독 비행기 세계 일주에 성공한 것이다.
그의 이력도 이채롭다. 그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시카고에서 금융업으로 큰 돈을 번 뒤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각종 모험을 즐기고 있다. 이번에 세계일주 기록을 세우기 전에도 지난 1985년 런던 해엽을 22시간만에 헤엄쳐 건넜으며, 2002년 세계 최초로 열기구를 타고 무착륙 단독 세계일주비행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58일 동안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 기록을 세웠다. 그는 하늘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세계 일주와 모험을 즐기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포셋에 대해 “5개 분야에서 100개 이상의 기록을 세웠으며 이중 60개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험을 즐기는 만큼 위험도 많아 1997년 열기구로 세계 일주에 도전했을 때는 러시아에 불시착했고 이듬해 도전에서는 폭풍을 만나 호주 해안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런 위험에도 포셋은 “모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옆에는 늘 첨단과학이 든든한 도우미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