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이 공포의 과목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칠판 위에서 수없이 그려지는 동그라미의 기억을 지우고 밤하늘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숨쉬는 추억을 만들어보자.
기초 천문학은 중고등학교에서 교육되고 있지만, 많은 내용을 짧은 시간에 가르쳐야 하는 과학과목의 성격상 교사들이 천문학만을 붙들고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까다로운 입학시험까지 맞물려 재미있는 천문학이 일부 교사들까지도 두려워하는 '공포의 과목'으로 둔갑해 있는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 천문학 교육이 무언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은 중고등학교 과학실에 있는 값비싼 천체 망원경들이 조립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자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로부터 쉽게 확신할 수 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KAAS, the Korean Amateur Astronomical Society)를 운영해 나가면서 지구과학교사교육연구회, 한국우주소년단 지도교사협회 소속 교사들과 많은 의견을 교환하여 온 덕분에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모색하게 됐다. 이에 '중고등학교 천문학 학습의 바른 길'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하려 한다.
생활과 거리가 먼 학문
먼저 중고등학교에서 천문학이 실생활과 거리가 멀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천문학 성적이 썩 좋은 학생들도 다음과같은 글에서 천문학적으로 틀린 곳 다섯 군데를 모두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자정이 막 지난 초여름밤, 창백한 초승달 옆에는 금성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오리온 자리에 빛나는 저 밝고 붉은 별은 아마도 목성이리라······
중고등학교 천문학 수업을 제대로 마친 학생이라면 위의 예에서 틀린 곳을 적어도 네군데는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교과서나 참고서에 해답이 분명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경이 되는 시각이 깊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는 초저녁달인 초승달이 걸려 있는 장면이 TV 드라마에 나온다면 이는 누구의 잘못인가.
"아저씨, 오늘 저녁 달이 9시에 뜬다면 내일은 몇 시에 떠요?"라고 물어 오는 꼬마의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칠판 천문학의 허상
또 한가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중고등학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천문학이 필요 이상으로 정도가 깊고 어렵다는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점에 관한 한 필자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어떤 교사들은 "실제 천체 관측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장 어려운 입학시험에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하고 반문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반문만큼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도 '관측을 통한' 천문학 학습 방법이 결국 '입학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행성의 최대이각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수성과 금성의 공전 궤도는 상대적으로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두 행성은 언제나 태양근처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수성과 금성은 태양으로부터 어떤 각거리 이상 멀어질 수 없는데, 바로 이 한계가 되는 각거리를 우리는 최대이각이라고 부른다.
최대이각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림1)과 같은 저녁 하늘을 한번 보여주는 것 이상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림1)은 금성이 태양의 동편에 있어서 태양보다 나중에 지게돼 서녘 하늘에 저녁별로 남아 있는 경우를 촬영한 사진이다. 이 날 아침에는 금성이 물론 태양보다 나중에 뜨게 돼 이미 밝아진 하늘에서 우리는 금성을 볼 수 없다. (그림1)과 같은 경우를 매일 관측하면 금성이 태양으로부터 (그림2)와 같이 최대 48˚정도의 각거리까지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각 48˚가 바로 금성의 최대이각이다. (그림1)과 같은 하늘을 관측한 경우 부수적으로 초승달은 저녁달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금성은 꾸준히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태양의 서편으로 오게된다. 이때 금성은 새벽에 보이는 '샛별'이 되는 것이다.
최대이각은 중고등학교 천문학 수업에서 흔히 (그림3)과 같이 칠판에서만 설명된다. 이렇게만 배우면 최대이각의 개념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그림3)에서는 왜 내행성이 동방최대이각일 때 저녁에 보여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모든 내용을 (그림3)식으로만 배운 학생은 틀림없이 선생님이 천문학 시간에 칠판에 동그라미만 잔뜩 그렸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게 된다.
암기과목이 돼
마지막으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천문학이 중고등학교에서 점차 '암기 과목화'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자연과학이 다 그렇듯이 천문학도 무조건 나열된 지식을 암기하는 식으로 학습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시험 전날 외워서 시험시간에 쓰고 다음날 잊어버리는 식의 학습 방법은 천문학에서 절대로 통할 수 없고 또한 통해서도 안된다. 철저한 개념의 이해만이 천문학 학습의 바른 방법인 것이다.
필자가 물리과목을 맡아 고등학교 교단에 잠깐 섰던 대학원 시절, (그림4)와 같은 직교좌표계에 y=sin x 그래프를 그려보라고 담당 학생 모두에게 시킨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단 한 학생도 그리지 못했다. π값이 약 3.14라는 사실도 뻔히 아는 학생들이 (그림5)와 같이 그리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수학 시간에 늘 y=sin x 그래프를 (그림6)과 같이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6)과 같이 '예쁘게' 생긴 사인 곡선은 원점에서 45˚ 경사를 갖는 직선 y=x와 3점에서 만난다. 따라서 실제로는 근이 없는 방정식 x=sin x(x≠0)의 해가 마치 두개나 있는 것처럼 그릇된 개념을 심어주게 된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은 호도법을 도입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의 하나-삼각함수를 다른 함수들과 똑같이 (그림4)와 같은 직교 좌표계에 나타낼 수 있다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sin 4가 양수인가 음수인가"하고 물으면 틀림없이 "sin 4가 도대체 뭐냐"하고 되물을 것이다. 혹시 4 다음에 π가 빠졌거나4˚를 4라고 한 것이 아닌가 묻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간단하게 수학의 한 예를 들었지만, 근본적으로 천문학에서도 학습 원리는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에서 천문학을 배운 학생이 "형, 화성은 정말 붉어?"하고 묻는 동생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그 학생은 (그림6)과 같은 방법으로 천문학을 배우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지적한 실생활과 거리가 먼 천문학, 칠판에서만 하는 천문학, '암기 과목화'되고 있는 천문학을 벗어나려면 학생들에게 직접 천체 관측을 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여건으로 미루어 볼 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관측하고 싶은 천체들이 아무 때나 보이지도 않거니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밤에 다시 모이도록 만들기도 힘든 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중고등학교 천문학 학습의 바른 길에서 가능한 한 많이 KAAS 회원들이 찍은 천체 사진들을 인용해 비록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관측에 기반을 둔 중고등학교 천문학'을 써보려 한다. 비단 천문학분야 뿐아니라 천문학과 관계가 밀접한 물리학 분야, 즉 뉴턴(Newton)의 운동법칙, 중력 등도 이 시리즈에서 같이 다룰 예정임을 밝혀둔다. 매월 각 시리즈 끝에는 여러 가지 연습문제를 달아서 독자들이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러한 관측에 기반을 둔 중고등학교 천문학은 이미 그 중요성이 충분히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전국 각지의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에 재직하는 천문학자들은 학생 지도과정에서 천체관측에 점점 더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고, 교과서도 그러한 방향으로 개편돼 가고 있다. 이는 실험실습에 기반을 둔 과학 교육이 강조되는 현 시류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는 입시 문제에서도 역시 '관측에 기반을 둔 천문학'문제의 출제 빈도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글에서 해결책이 언급되지 않은 문제, 중고등학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천문학이 필요 이상으로 정도가 깊고 어렵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중지를 모아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마지막으로 KAAS에는 이성주 교육간사(현 백석중 교사)를 중심으로 한 천문학 교육 지원팀이 구성돼 있음을 밝혀둔다. 그동안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지원 요청이 있었고, 그때마다 KAAS회원들은 직접 학교를 방문해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의 애로 사항 해결을 적극 도왔다. 문의전화 (02)764-4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