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에게 시간은 항상 그 어떤 신비의 대상이 돼 왔다. 한번 지나간 것은 되찾을 수 없으며, 미래는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어떻게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을 수없을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시원스럽게 내다볼 수는 없을까. 도대체 이 시간이라고 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이것은 인간이 지닌 오랜 염원이었고, 풀려고 애써 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여기에도 한가닥 희망이 보이는 때가 있었다. 뉴턴의 고전역학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투명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됐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뒤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러한 생각은 지나친 기대임이 밝혀졌다.
부분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종래에 가졌던 과거와 미래의 개념에 수정이 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타임머신'을 만들어 타고 과거와 미래로 우리가 임의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이것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내용은 결국 현대과학,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 그리고 열역학을 통해 찾아볼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이들은 시간의 신비를 풀어주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신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먼저 상대성이론이 말해주는 내용부터 살펴보자.
지금 우리에게 상대론적 시공간은 하나의 상식이 됐다. "운동하고 있는 시계의 시간은 정지한 시계의 시간보다 더 천천히 간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아무리 빨리 움직이면서 봐도 여전히 광속으로 움직인다", "물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광속보다 빠를 수 없다"고 하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시공간에 대한 종래의 비상대론적인 관념을 청산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에 속한다. 설혹 상대성이론을 공부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론적 시공간 개념을 비상대론적 개념과 명료히 대비시켜 통찰하지 않고는 이들 개념간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통찰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공간에 대한 4차원적 성격을 파악하는 일이다. 사실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각함수를 포함한 약간의 초보적 수식이 요청될 뿐이다.
반면에 이러한 수식을 회피하고 이 개념을 이해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최소한의 수식을 도입해 상대성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4차원 구조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상대론적 시공 개념이 어떤 것인가를 소개하기로 한다.
4차원 시공간의 의미
공간이 3차원 구조를 이룬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공간내의 한 위치를 지정하기 위해서는 (x, y, z)의 세 수치가 필요하며, 이 세 변수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공간이 4차원을 구성한다는 것은 시간변수 t에 어떤 특정의 상수 k(속도의 단위를 지님)를 곱해 얻은 새로운 변수 τ(〓kt, 거리의 단위를 가짐)를 도입할 때, τ가 나머지 세 공간변수 x, y, z 각각과 기본적으로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언제, 어디서' 라는 어떤 사건의 시공간 좌표는 대등한 4변수의 묶음(τ, x, y, z)으로 표시되며, 이 값들은 공간좌표가 그러하듯이 좌표계를 바꿈에 따라 일정한 방식으로 서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가장 간단한 1차원 등속운동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때 공간상의 변화는 좌표성분 x만으로 표시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4차원 시공간은 실질적으로 2차원 평면(τ, x)로 환원된다.
그리고 속도 u로 달리는 자동차 A가 서울을 떠나 시간 τ이후에 거리 x만큼 떨어진 부산에 도착하며, 속도 v로 달리는 자동차 B가 역시 같은 시각에 서울을 떠나 같은 시간에 거리 x0만큼 떨어진 대전에 도착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서울을 떠나는 사건을 원점 O로, 부산과 대전에 각각 도착하는 사건을 좌표상의 위치 a와 b로 나타내면 (그림1)과 같다. 이러한 서술은 암묵적으로 지표면 상에 정지한 관측자, 즉 시간 및 공간 좌표축 OT와 OX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또 하나의 관측자, 즉 속도 v로 달리는 자동차 B 내의 관측자에게 이 사건들이 어떻게 서술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만일 종래의 비상대론적 관점을 취한다면 자동차 A는 시간 τ동안 x-x0 거리만큼 가고, 자동차 B는 역시 같은 시간에 거리 0을 간 셈이 되므로, 사건 a와 b는 각각 (τ, x-x'), (τ, 0)로 표현될 것이다. 즉 경과한 시간 τ에는 아무 변화가 없고, 자동차들이 이동한 거리만 각각 x와 x0에서 x-x0와 0으로 달라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만일 시공간이 4차원(이 경우 2차원) 구조를 지닌다고 하면, 자동차 B의 운동을 나타내는 축 OT'이 새로운 시간축(위치 변화는 없이 시간만 흐르는 축)이 되므로 시간 공간의 좌표축을 각각 OT'와 OX'로 회전시킨 결과가 된다. 따라서 새 좌표계를 기준으로 (τ', x')과 (τ0', 0)로 나타내게 될 사건 a와 b의 좌표값들은 (그림2)에 나타낸 관계에 따라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
τ'〓τcosθ+ x sinθ, x'〓 x cosθ - τsinθ … (1)
τ0'〓 τcosθ+ x0 sinθ, 0〓 x0 cosθ - τsinθ … (2)
여기서 각 θ는 이 두 좌표계 사이의 회전각인데, (2)의 둘째식을 cosθ로 나누면 tanθ〓x0/τ〓x0/(kt)〓(x0/t)/k〓v/k 즉 자동차 B의 속도 v를 상수 k로 나눈 값에 해당한다. 즉 2차원 (τ, x) 평면에서 좌표축을 회전시킨다고 하는 것은 한 좌표계를 그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좌표계로 전환시킴을 의미한다.
tanθ의 값이 이렇게 되므로 위의 cosθ와 sinθ는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 각각 cosθ〓k/(k2+v2)1/2〓1/(1+v2/k2)1/2, sinθ〓v/(k2+v2)1/2〓(v/k)/(1+v2/k2)1/2 으로 표시된다. 이 관계들과 τ'〓kt', τ〓kt 의 관계를 (1)식과 (2)식에 대입해 두 관측자에게 나타나는 실제 시간 t와 t' 사이의 관계를 적어보면
t'〓(t+vx/k2)/(1+v2/k2)1/2
t0'〓(t+vx0/k2)/(1+v2/k2)1/2 이 된다.
여기서 t'과 t0'은 처음 좌표계에서 동시로 인정됐던 시각 t에 해당하는 값들인데, 속도 v로 움직이는 좌표계에서는 그 위치 x, x0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인정된다. 이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발생하는 두 사건의 동시성이 좌표계에 따라 달라짐을 말해준다. 그리고 만일 앞 식에 x〓0 를 넣으면
t'〓t/(1+v2/k2)1/2 … (3)
의 관계를 얻는데, 이는 정지된 좌표계의 원점에서 발생한 두 사건 사이의 시간 t를 움직이는 좌표에서 관측하면 그 값이 1/(1+v2/k2)1/2배 만큼 달라짐을 의미한다. 움직이는 관측자에 대해 시간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합해 4차원(이 경우 2차원 평면)을 이룬다면 시간은 마치 XY 좌표계의 x좌표에 해당하고, 이 값이 좌표계를 취하는 방향에 따라 달라짐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이는 마치 한 막대기의 그림자 길이가 막대기에 빛을 쪼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짐과 같다).
이러한 가정 아래서는 오히려 시간이 관측자의 운동, 즉 시공 평면상의 방향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흐를 것으로 보는 기존의 관념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기존의 관념이란 결국 시간과 공간이 합해 2차원 평면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공간과 무관하게 독자적 차원을 이룬다고 하는 또 하나의 가설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같은 논의를 속도에 대해서도 해 볼 수 있다. 기존의 관점에 따르면 자동차 B에서 본 자동차 A의 속도는 시간이 τ만큼 흐를 때 거리가 x-x0 만큼 이동했다고 보므로, B가 본 A의 속도 u'은 (x-x0)/τ〓x/τ-x0/τ의 관계에 따라 u'〓u-v 가 되며 이 점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러나 4차원의 관점에 따르면 이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위의 (1)식에서 x'과 τ'의 비를 취하면 x'/τ'〓(x cosθ-τsinθ)/(τcosθ+ x sinθ)〓(x/τ-tanθ)/[1+(x/τ)tanθ] 이 되고 여기에 x/τ〓u/k, x'/τ'〓u'/k, tanθ〓v/k 등의 관계를 대입하면
u'〓(u-v)/(1+uv/k2) … (4)의 관계가 도출된다.
시공간이 4차원구조를 가진 까닭
지금까지 물리적 시간 t에 어떤 상수 k(속도의 단위)를 곱한 새 변수 τ가 공간변수들과 합해 4차원 구조를 이룬다는 가정 아래 이것이 지닐 일반적 관계들을 생각해 봤다.
그런데 여기서 도입한 상수 k가 오직 속도의 단위를 지니는 것이기만 하면 그 수치에 무관하게 위와 같은 관계들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실제의 시공간에서 이 상수 k가 취하는 값은 얼마인가? 이는 결국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경험적 사실들에 맞게 결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험적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이 상수의 값은 k2〓-c2 (여기서 c는 광속도)의 관계를 만족하고 있다.(위에 도출된 중요한 결과들은 모두 k값 자체보다는 k2의 값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k값을 굳이 표현하자면 허수단위 i를 도입해 k〓ic라고 해야 한다.) 이제 이 값을 위의 (3)식에 대입하면 t'〓t/(1-v2/c2)1/2을 얻게 된다. 이는 한 좌표계에 정지한 두 사건 사이의 시간간격을, 이에 대해 속도 v로 움직이는 좌표에서 관측하면 그 값이 1/(1-v2/c2)1/2배 만큼 길어지는 효과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위의 k값을 (4)식에 넣어 보면 u'〓(u--v)/(1-uv/c2)의 결과를 얻는데, 이것 또한 기존의 상식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사실들을 말해준다. 즉 이 식에 u〓c를 넣으면 관측자의 속도 v값에 무관하게 u'〓c가 되는데, 이는 한 좌표계에 대해 광속도로 움직이는 대상은 어떠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측자에게든 여전히 광속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이 식에 만일 u〓0.9c, v〓-0.9c를 넣으면 u'〓0.9945c을 얻는다. 이는 광속의 90% 속력으로 달려오는 우주선을 반대 방향으로 광속의 90% 속력으로 달리는 우주선에서 관찰할 경우, 종래의 관점에 따르면 1.8c 즉 광속의 1백80%로 달려야 하나, 상대론적 관점에 따르면 광속의 99.45%로 여전히 광속보다 작은 값이 된다.
우리는 위에서 상대론적 시간이란 k2〓-c2를 만족하는 상수 k에 대해 새로운 시간변수 τ(〓kt)를 도입할 경우 이것이 나머지 세 공간변수들과 대등한 성격을 가진다고하는 가정에 입각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시공간이 왜 하필 이러한 4차원적 구조를 이루게 되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모든 의문에 해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상대론적 효과라고 하는 많은 현상들은 이 가정 하나로써 설명이 되지만, 이 가정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설명이 없다.
우리에게 보다 시급한 것은 시간이 이 가정이말해주듯이 이렇게도 오묘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이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는 일이다.
우리가 상대론적 시간이 지닌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지닌 제약 역시 함께 인정해야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 관측자에게 동시로 보인 사건들이 다른 관측자에게는 동시가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으며, 한 관측자에게 보인 시간의 선후가 다른 관측자에게는 바뀌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선후가 바뀌는 두 사건은 인과적 효과가 광속으로 진행하더라도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건들 사이에만 나타난다.
그런데 실제로 모든 물리적 영향은 광속 이상 빨리 전달될 수 없으므로 아무리 상대론적 시간이라 하더라도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예컨대 총을 쏘아 새를 잡는 경우, 그 어느 좌표계를 취하다라도 새가 먼저 떨어지고 총알이 나중에 발사되는 경우는 관측되지 않는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으로 시간에 관한 신비가 모두 풀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일 시간좌표에서 좌측을 과거로 잡고 우측을 미래로 잡는다면 현재라는 시점은 항상 좌측에서 우측으로만 진행할 뿐 그 반대 방향으로는 진행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공간 상의 어느 위치로든 몸을 옮길 수 있지만, 시간 상의 위치로는 생각만이 옮겨다닐 수 있을 뿐 몸 자체가 임의롭게 옮겨갈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시간은 공간의 차원들과 달리 좌우대칭을 지니지 않는 듯이 보인다. 즉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하는 현상의 모습이 그 역 순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접시의 물이 쏟아져 옷을 적시는 일은 있으나 옷을 적시고 있던 물이 접시로 되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일들은 물리학에서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 한다. 이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아무런 구분을 주지 않는 동역학의 기본법칙들, 예컨대 고전역학의 뉴턴 운동방정식이나 양자역학의 슈레딩거 방정식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어서 의혹을 사고 있다.
우리는 한때 공간의 상하방향이 비대칭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특히 고대 동양사람들은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공간 자체의 특성, 즉 상하방향의 기본적 비대칭성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이들에게 가장 큰 수수께끼로 나타난 것은 "왜 이 무거운 지구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가"하는 문제였다. 이는 결국 공간 자체가 비대칭성인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 놓인 물체(지구)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의 비대칭성도 시간 자체가 비대칭성인 것이 아니라 시간 안에 놓인 그 무엇이 작용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가?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이때 '그 무엇'으로 지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확률'이라는 현상이다.
확률이라 불리는 이 기묘한 현상은 열역학적 현상들의 원인이 되고 있음은 물론 양자역학의 해석에서도 필수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확률이 작용하는 한 과거와 미래 사이의 비대칭성은 피할 수 없으며, 이것 또한 자연의 기본속성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이 확률이라는 것이 시간의 본성 속에 들어 있어 시간 자체의 대칭성을 깨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은 본질적으로 대칭성을 가지나 이것이 그 안에 부가적으로 놓여 비가역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인지는 좀더 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어쨌든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과거와 미래는 한때 고전역학이 주장했던 바와 같이 투명할 수 없으며, 이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 혹은 우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