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우리 회사가 망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시도한 사업은 바로 흥부놀부 이야기를 흉내내서 박씨를 심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듣고 나는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재미가 없었다. 우리 회사의 유일한 장점은 농담이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사장이 이야기 하더라도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웃지도 않았다.

“정말 그런 거라도 해야 될까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어 보였다. 그런데 사장인 선배는 내 한숨에 호응하지 않았다.

“그런 거라도 해야 될 거 같으니까, 정말 한 번 해 보자니까.”

그녀는 그리고 나를 쳐다 보았다. 말은 하지 않고 눈웃음을 한 번 지어 보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내 대답을 기다리던 그 때의 표정이었다. 밝고, 여유 있고, 사람 좋아 보이고, 성실해 보이면서도 자신감이 넘치고, 같이 가서 뭘 하면 잘 되든 못 되든 하여튼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내가 대학 시절이 즐겁다고 생각한 것은 절반 이상이 바로 선배 때문이었다. 선배는 밝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까불대고 촐싹거리면서 밝은 사람은 아니었다. 수다스러운 편도 아니었고,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데도 선배와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웃을 일이 많아졌고 별 일 하지 않고 한나절을 보내도 저녁이 되면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세상의 풍경을 같이 보고 있을 때조차도 그 우스운 모양이 재미는 있어 보였다.

칙칙하게 길을 나서서 학교에 가도, 선배를 만나면 점차 나까지 밝아졌다. 칭얼칭얼 내 신세 한탄을 하고 싶을 때 선배가 그것을 잘 들어 준다는 것과도 달랐다. 그런 이야기는 여태껏 한 번도 한 적 없다. 오히려 선배를 만나면 그런 많은 걱정거리도 이상하게 작게 느끼게 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째 남 일처럼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고 좀 더 냉정하게 원인과 대처방법을 궁리하면서 여유와 용기를 갖고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도 같았다. 그런저런 일로, 선배는 나를 도와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냥 선배와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 그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인생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선배가 사업을 해 보자고 제안을 했으니, 나는 역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벌여서 성공한 사람은 굉장한 열정으로 주변을 감화시키는 사람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미국 실리콘밸리나 중국의 신생 갑부들이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한푼 재산도 없는 사람들이 온 세계를 바꾸겠다며 주변을 설득했다는 전설들이 생각났다. 나는 선배야말로 바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선배는 그럭저럭 시작은 해 볼 만한 창업 자금을 구해왔고, 나는 취직하는 대신에 새로 시작하는 회사에 합류했다.

그런데 일을 벌여 놓고 보니, 선배에게 그렇게 깊게 설득될 수 있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나와 선배는 온종일 만든 자료로 한없이 많은 곳에 설명을 하고 다녔고, 밤새 만든 시제품을 더 많은 곳에 보여 주고 다녔다. 하지만, 투자자를 설득할 수도 없었고, 시장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끌지도 못했다. 선배는 그래도 더 돌아다녀 보자고 했고, 나는 동의하고 더 따라 다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선배가 자신감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보니 왜인지 굉장히 가슴 아프게 애틋한 마음이 되어서, 오히려 내가 선배를 응원해 주겠다는 결심으로 더 열심히 일했다. 혹시 빌딩이 가득 늘어선 도심 거리를 보면서, 저렇게 커다란 빌딩이 저렇게나 많이 있는데 도대체 저 많은 사무실이 다 뭐하는 곳일까, 궁금해 해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 많은 사무실들이 다 우리가 돈 벌러 한 번씩 찾아가 본 곳이라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자금이 바닥나 더 이상 회사를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몇 달씩 회사를 유지해나갈 시간을 늘릴 기회가 한두 번은 있었다. 무슨 퇴역 군인 단체에서 자기들이 모아 놓은 기금을 투자한다면서 가능성 있는 회사들을 모집한다는 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집 공고는 그 단체가 입주한 건물 화장실에 A4 용지로 붙여 놓은 것이 전부였다. 제안서 양식이나 요구 사항을 써 놓은 내용도 없었다. 제안서 제출도 새벽 4시에서 아침 9시 사이에 직접 찾아 와서 내라는 식이었다.

“이런 게 뭐 말이 되는 거겠어요?”

나는 화장실에서 떼어 온 모집 공고 종이를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아니야. 냄새가 나. 감 좋아. 이거 우리 하자.”

“냄새가 나긴요. 화장실에서 떼 온 종이니까, 화장실 냄새나 나겠죠.”

나는 보나마나 이번에도 실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선배말대로 이번에는 제안이 채택되어 적은 금액이지만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성의 없게 쓴 제안서인데도 오히려 성공한 것이다.

“그거 아마, 그 기금 관리하는 단체 회장이 자기 동생 같은 사람한테 그냥 그 돈 다 몰아 주려고 벌인 일일 거라고. 그런데, 아무 절차도 없이 그냥 동생한테 돈 다 주면 너무 사기 같잖아. 그래서, 괜찮은 사업을 한다고 공지를 해서, 적당히 2등, 3등도 뽑은 다음에 1등은 동생한테 주고, 2등, 3등한테도 그래도 조금씩 구색 맞추기 금액 만큼은 투자를 해 주고 뭐 그런 걸 거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모집 공고를 눈에 안 뜨이게 내요?”

“공고가 너무 눈에 뜨여서 정말 좋은 제안이 들어 오면 동생을 1등으로 못 뽑잖아. 제안이 한 4개 정도 들어 오면, 하나는 떨어 뜨리고 둘은 2등, 3등으로 주고 자기 동생은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정말 괜찮아서 1등으로 했다, 그러면 그럴 듯 하잖아.”

“그런 걸 그럴 듯 하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도 하여튼 이제 우리도 투자를 받았잖아. 이게 어디야. 이제 어디 가서 우리도 투자 받고 있는 잘 되고 있는 회사인 척 할 수 있지.”
 


선배는 그리고 또 그 눈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 무슨 퇴역 군인 단체에서라도 투자를 유치했다고 떠들어 대니까, 관심은 더 많이 끌 수 있었다. 우리를 문전박대하는 곳은 조금 더 줄었고, 우리에게 추가 자료를 달라고, 더 검토해 보겠다고 하는 곳은 조금 더 늘어났다. 지방선거에, 국회의원 선거가 지나면서 그저 “지역 기업에 지원을 늘렸다”고 말하기 위해 아무렇게 뿌려 버리는 돈이 우리에게도 조금이나마 굴러 들어온 것도 그런 덕택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버텨나갈 돈을 좀 구한 것일 뿐, 회사를 더 키울 수는 없었다. 인천에 갔을 때 50층짜리 빌딩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른 회사 사무실 여덟 군데를 들르고, 줄줄이 연속 퇴짜를 맞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기운이 빠져서 그랬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장사가 안될까요?”

“갑자기 산림보호법이 또 바뀌어서 그래.”

선배는 빌딩 사이에 있는 공원 연못을 보고 있었다. 선배가 보는 쪽을 보니, 연못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 옆에서 청둥오리가 놀고 있었다. 선배는 그 오리가 하늘 어느 쪽에서 날아 오는지, 또 어느 쪽으로 날아가는 것인지 멍하니 보고있었다.

우리 제품은 아파트 베란다 옆에 장치할 수 있는 잘 설계된 새집이었다. 설계가 좋아서, 견고하게 장착할 수 있었고, 새들을 잘 찾아 오게 할 수가 있었다. 값싸게 만들 수 있었고, 아파트를 지으면서 붙박이로 설치하기도 좋았다. 게다가 색상과 입구 형태를 조금씩 바꾸어서 새들 중 내는 소리가 좋고 빛깔이 좋은 것만 골라서 오게 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노리는 것은 아파트 지을 공간이 부족해지면, 점점 숲과 산을 파고 들어 가서 아파트를 짓게 된다는 점이었다. 원래 산림보호법은 숲을 없애고 아파트를 지을 때에는 그만큼 생태계 보호 비용을 정부에 내도록 되어 있었다. 이때, 아파트를 시공하면서 자발적으로 숲의 생물을 유지할 수 있는 조치를 어느 정도 하면 생태계 보호 비용을 깎아 주는 제도가 있었다. 그러니, 바로 우리 회사의 새집 같은 것을 사서 아파트에 장착해두면 아파트 주인들은 생태계 보호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원래 선배의 꿈은 그보다도 더 멋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든 새집은 파란 이끼를 붙여두는 구조였다. 필요하다면 아파트 주민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다른 식물을 같이 키울 수도 있었다. 선배는 아파트 베란다쪽 벽면 전체가 파란 식물로 뒤덮여 있고, 거기에 갖가지 산새들이 살고 있는 광경을 상상했다. 산을 갈아 엎어 짓는 아파트이기는 했지만, 건물 한 채 한 채가 100m짜리 거대한 나무 역할을 하는 진짜 숲같은 아파트를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새집을 달아도 생태계 보호비는 안 깎아 준대요? 세금 더 걷어야 되니까?”

“그거는 작년까지 이야기고.”

그래서 우리는 작년까지 아파트 시공사에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보호 사업을 하는 정부기관이나 공공단체에 판매하는 쪽으로 열심히 영업을 했다. 나는 선배에게 다시 물었다.

“작년 다르고 올해는 또 달라졌어요?”

“올해는 부동산 시장이 붕괴된다, 경제가 어렵다, 그러잖아.

그래서 아파트 짓기 편하게 한다고 반대로 생태계 보호비 내는 조항 자체를 없앤다는 거야.”

오리가 물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는 것을 우리는 같이 보았다. 한숨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청둥오리가 우리 한숨에 실려서 물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이 보였다. 하늘로 높이높이 날아가는 그 모습을 보니까, 사업 시작하던 초기에 선배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 났다. 건물 벽면에 생태계를 만드는 이 기술을 더 개발하면, 우주 저편 화성이나 달에 만든 인간 기지에 숲 대신 우리 제품을 쓰면 될 거라고. 허황된 이야기라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정말 그녀와 함께 같이 달나라에 가는 상상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더 허황된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뭐든 황당한 사업 제안을 해서 황당하면 황당할수록 꽤 거액을 투자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은 정 대리였다. 정 대리는 일전에 우리에게 투자를 해 주었던 그 퇴역 군인 단체에서 행정 일을 보는 직원이었다. 정 대리는 퇴역 군인 단체에서 우리가 낸 제안서를 받아준 담당자였는데, 아무리 괴상한 일을 맡기던간에 마음을 비우고 서류 처리를 할 수 있는 완성된 영혼의 소유자였다. 오백 원 짜리 접착테이프를 이십만 원을 주고 사오라거나, A4 용지 200상자를 사들인 뒤에 바로 다음날 다 파쇄해서 폐기하라는 일 따위의 알 수 없는 지시를 받았을때에도, 정 대리는 마치 십 년간 벽만 보고 수행한 사람처럼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더 멋들어진 점은 그런 일을 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정부 통합 불공정 불합리 신고 사이트’에 꼬박꼬박 한 줄씩 신고도 했고, 그 신고에 아무 반응도 없는 것을 매번 보면서도 그와 같이 평온했다는 점이었다.

제안서를 내면서 정 대리를 알게 된 후, 몇 번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이에 나는 일하는 시간 외에는 또 정 대리가 대단히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점심도 몇 번 같이 먹었고 야근하는 날 저녁을 같이 먹다 흥이 올라 야근은 접어 버리고 밤늦도록 같이 맥주를 들이킨 적도 있었다. 그렇게 친해졌기 때문에 정 대리는 그와 같은 사람만이 접할 수 있는 기막힌 사연이나 놀라운 정보를 즐겁게 들려 주었다.

 

“정부에서 벤처 기업에 돈을 지원해 주는데 너무 안전한 곳, 너무나 잘될 게 뻔한 곳만 지원하는 게 문제라고 요즘 비판을 많이 받잖아요. 그렇게 안전하게 잘될 게 뻔한 곳은 꼭 정부가 지원 안 해줘도 잘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그렇게 굳이 정부에서 지원해 줄 필요가 없는 뻔하게 잘될 것 같은 데 말고, 좀 더 불확실한 곳 더 도전적인 곳에 지원을 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

뭐 그런 식으로 막 공격을 받았대요. 그래서 올해 창의성 발전센터 사업은 다 그런 공격적이고 가능성 희박한 곳 쪽으로만 지원을 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정 대리에게 들은 말을 선배에게 전해 주었을 때, 선배는 처음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선배는 창의성 발전 센터라는 정부 기관을 미덥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해 준다면서 창의성 발전 센터에서 돈을 퍼주는 것을 ‘퀀텀 립 코리아 프로젝트’라고 했는데, 그게 도대체 얼마나 우리 일에 진짜 도움이 될지 의심스러워했다. 게다가, 도대체 어떤 사업에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해 준다는 것인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딱 알 수가 있네. 가능성이 낮은 도전적인 사업일수록 지원을 해 주겠다잖아.”

선배는 이번에 새로 나온 규정을 살펴 보다가 갑자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새 규정에 따르면, 너무나 터무니없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사업을 제안하면 제안할수록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망하면 망할 것 같을수록, 얼른 이 돈 써 없애고 망하라고 나라에서 돈을 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사업 계획서에 뭐라고 쓸 건데요?”

“제비를 오게 해서, 처마 밑에 제비집을 짓게 해. 그리고 제비가 혹시 다치면 우리가 제비를 치료해 줘. 그리고 그 제비가 그 다음 해에 다시 돌아올 때 박씨를 물고 오면 그 박씨를 심어. 그 박씨에서 박이 자라나서 열리면, 그 박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우리 수익이 되는 거지.”

“그러면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버는 건데요.”

“대충 제비집 지을 공간을 1년간 확보하는 데 500만 원이 든다고 보고, 인건비나 부대 비용으로 또 한 500만 원쯤 든다고 보면 투자액수는 1000만 원이고. 제비가 집 지을 확률은 1000분의 1, 다칠 확률은 500분의 1로 잡고, 돌아올 확률은 십분의 일, 박씨를 물고 올 확률은 20만분의 1, 박씨가 잘 자라나서 열릴 확률은 5분의 1로 보면, 다 곱해서 대강 10조분의 1.”

“그렇게 해서 박을 열면 그 안에 뭐가 있는데요?”

나는 그 안에서 쌀이나 돈이 나온다고 정말 생각하고 있는 건가 잠깐 생각했다.

“박 열면 박 나물이 있겠지. 한 2000원치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계산해 보면 1000만 원을 투자해서, 50억분의 1원을 수익으로 기대할 수 있는 거네요.”

“그렇게 되겠지.”

“그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래도 뭔가 막 우리 회사 고유의 첨단 기술을 사용해서 중간 중간에 이렇게 저렇게 막 복잡하게 한다고 하면 사업처럼 보일 거라니까.”

선배는 그렇게 말하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선배는 웃으면서 내 어깨를 한 대 툭 치더니, 모든 것이 다 상쾌해졌다는 것처럼 기지개를 한 번 켜고 퇴근했다.

혼자 남은 나는 선배의 웃음을 생각하면서 뒤늦게 따라 웃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모든 것이 그냥 기왕에 망할 일만 남은 회사, 마지막으로 장난이나 한 번 쳐 보자는 커다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배는 마감일 전에 제안서를 꾸며 왔고, 나는 그 제안서를 다듬어서 제출했다.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심사위원들은 정말로 우리 사업에 돈을 투자하겠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확실히 성공 확률이 너무너무 낮으니까 일단 도전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 같아 보이기는 했나봐. 그리고 이게 흥부놀부전 이야기에 나오는 거잖아. 그러니까, 무슨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활용하고 현대화하여 첨단기술에 접목시키는 사업이라고 해서 어디 가서 보여 주기가 좋다는거지. 그게 높은 점수를 받은 거 같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제비 다리 고쳐 주고 박씨 심어서 돈 벌겠다는 사업에 돈을 투자해주겠다는 데가 어디있어요?”

“제안서에서 우리가 판소리 흥보가를 예로 들면서 판소리라는 우리 고전 예술, 고전 문학의 인문학적 요소와 생태 공학의 첨단 기술을 접목시킨 융합 기술이라고 했거든. 그래서 우리 사업이 모든 제안 중에서 융합성 점수를 제일 많이 받았대.”

“융합 기술이 이런 거에요?”

“이런 건지, 뭔지 누가 알아?”

“그래도 그렇죠.”

“융합 기술이라는 게 두 가지, 세 가지 분야 기술을 섞어 놓은 거니까 되게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잖아. 그런데, 우리는 흥부놀부 이야기에 나오는 거랑 엮어서 해 놓은 거니까,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일단 심사위원들 한테 대충 친숙하게 꼭 이해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준 거 같아.”

나중에 정 대리에게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정 대리는 이렇게 논평했다.

“그런 게 정말 좋죠. 정확히 무슨 말인 줄은 모르고 막 어려운 말 많고 그런데 그래도 대충 어렴풋이 내가 좀 이해하고 알아 먹은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은 좀 줄 수 있는 거. 그런 게 먹혀요.”

먹혀도 아주 배가 빵빵하게 부르게 먹혔는지, 우리는 이 사업을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받았던 모든 투자 금액보다 열 배가 넘는 돈을 받게 되었고,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정말로 제비집을 짓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참조했던 정창업판 흥보가 내용에 따라서 흥보의 거주지역으로 되어 있는 전라 지역과 경상 지역의 경계 일대를 조사해 보았다. 우리는 그 일대에서 제비과 철새가 가장 잘 올 수 있을 만한 곳을 선택했다. 철새 도래지를 분석하고 예상하는 일은 내가 꽤 잘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 가장 제비가 잘 올 것 같은 곳, 다섯 군데를 골랐다.

그 다섯 군데 중에서 선배는 부동산 침체로 짓다가 망한 아파트가 있는 공사장 한 곳을 찾아 냈다. 시멘트로 지은 틀은 다 완성되어 있었는데, 완공하기 전에 시공사가 망하면서 덩그러니 방치된 곳이었다. 우리는 싼 값에 그 곳을 통째로 빌렸고, 선배는 그곳에 제비가 둥지를 틀기 좋은 터가 되도록 우리 제품을 개조해서 설치하자고 했다.

“몇 개나요?”

“2만 2000개”

“2만 2000개요. 이거 정말 이렇게 저질러도 되나요?”

“저질러. 저질러.”

나는 일을 이렇게 점점 커지는 것이 점점 겁이 났는데, 선배는 그저 즐겁고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 제품을 대량 생산해서 망한 미완성 아파트 단지에 죄다 발라 버렸다.

봄이 되자, 제비들이 모여 들었다. 처음에는 열 몇 마리, 스무 마리가 모이더니, 곧 백 마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만 마리의 제비가 아파트 단지에 가득 차게 되었다. 우리가 계산한 숫자대로였다. 제비들은 아파트 단지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는 제비집의 재료가 되는 지푸라기와 진흙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단지 곳곳에 뿌려 두었고 끊임없이 제비들의 먹이를 공급 했고, 제비가 알을 잘 낳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 영양제도 섞어 주었다.

우리는 아파트의 층마다 센서를 설치해서 혹시 그 제비 새끼들 중에 부상을 입는 것이 없는지 24시간 감시하고 관찰했다. 어미새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떨어지는 새끼를 구분하기 위해 센서는 그곳을 지나는 물체의 속도, 방향, 무게를 추정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한편으로 감시카메라들이 24시간 촬영한 수만 개의 영상을 인공지능 영상판독 프로그램으로 매일 분석해서, 그 중에 혹시 다친 제비새끼의 모양이 인식되는 것이 있는지 찾아 내려고 하기도 했다.

“2만 마리의 제비가 제비 새끼를 셋 씩만 낳아도 6만 마리 잖아. 6만 마리가 한 군데에서 사는 거지. 우리 확률 대로라면 일상생활 중에 부상을 당하는 새끼가 120마리는 나올 거거든.”

실제로 한 해가 지나는 사이에 제비 새끼 중에 118마리는 이런저런 사고로 부상을 당했다. 인공지능 영상 판독 프로그램이 부상 당해서 정상과 다른 패턴을 보이는 제비 새끼의 움직임을 인식하면, 우리는 그 영상을 눈으로 살펴 보았다. 직접 살펴 보고 부상인 것이 확실하면 우리는 대기 중인 수의사 팀을 출동시켰다. 그러면 수의사팀은 다친 제비 새끼를 재빨리 치료해 주는 것이다.

118마리의 제비 새끼 중 다리를 다친 것은 35 마리였다. 다친 제비 다리를 고쳐 놓은 모습은 동화책 삽화에서 보던 모습과 정말 비슷했다. 창의성 발전 센터의 심사위원들에게 사업중간 보고회에 진척 상황이라며 보여 주기에도 매우 좋았다. 35 마리의 제비 다리를 고쳐 주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자, 흥부놀부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는 심사위원들은 왜인지 벌써 사업이 완전한 성공으로 끝났다는 듯이 기분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35마리 제비들이 다음 해 봄에 돌아오면 알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아 두었다. 가을이 되자, 제비들은 우리 아파트 단지를 떠났다. 위치 추적 장치를 보니, 제비들은 대체로 건강하게 이동했다. 몇 마리가 바다를 건너던 중에 추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제비들이 대체로 중국 복건성 일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경향은 분명히 보였다. 중국의 ‘강남’ 지역으로 간 것이다.
 

다음 해 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던 그 순간이 우리 사업에서 순수하게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 3000마리 이상의 제비가 한꺼번에 우리 아파트 단지로 돌아 오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제비가 그렇게 좁은 공간으로 몰려드는 모습은 자연적으로는 결코 볼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선배와 나의 지도교수였던 이동성 생물계 공학 교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그 모습을 보며 감격해 눈물을 흘리실 정도였다.

다리를 다쳤던 35마리의 제비 중에서도 4마리가 돌아 왔다. 돌아 온 제비들은 다시 제비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제비집의 재료들을 역시 단지 근처에 놓아 두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때를 노리고 근처 위치에 박 밭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제비들이 제비집을 지으러 이런 저런 재료를 물어갈 때, 밭에서 박 줄기나 박 꽃을 물어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중에 한 마리는 박씨를 물어가는 것도 있으리라 예측하고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그때가 가장 답답하고 지루하고 초조하고 신경 쓰이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리를 다쳤을 때 우리가 고쳐 준 4마리의 제비 중에 어느 한 마리가 혹시 박씨를 물고 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선배에게 제비가 물고 가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 박씨에 제비를 유인할 수 있는 물질을 발라 놓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는 반대했다.

“그건 좀 안될 거 같아. 약간 반칙 같잖아.”

“반칙이요?”

“좀, 놀부스럽다고.”

“아, 선배. 이 마당에 뭐가 반칙이고 뭐가 반칙이 아닌데요?”

“아니야. 그래도 딱 이야기가 흘러가는 감이라는 게 있잖아. 미끼로 유도하는 거는 딱 놀부 감이 온다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막연히 우연과 확률에 모든 것을 걸고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거의 모든 제비들의 제비집이 완성 되어 갈 무렵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일련번호 4-26으로 표시해 두었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갔다는 것을 찾아 냈다. 우리는 그 제비가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제비는 박씨가 달려 있는 박 줄기를 입에 물고 자기 둥지를 오락가락했다. 그리고 움직이는 중에 박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배는 허공에 손을 뻗어 날렵하게 그 박씨를 잡아 챘다.

“박씨!”

“박씨! 박씨!”

“박씨!”

우리는 박씨를 들고 그렇게 소리치며 같이 부둥켜 안고 기뻐 춤을 추었다.

선배는 조심스럽게 박씨를 심었다. 원전의 내용 대로라면 박씨는 자라나서 건물의 지붕 위에 박이 열려야 했다. 수십층 높이 아파트의 옥상에 박이 열리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벽면에 설치한 장치에서 식물을 기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선배는 도전했고, 박은 자라났다. 우리는 현대 식물학과 농학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그 박이 잘 자라도록 물과 비료를 주었고, 냉난방 장치와 채광 장치를 해서 박이 자라는 데 가장 적합한 완벽한 온도와 빛을 맞춰 주었다.

그러나 씨앗 하나에서 박을 키운다는 것이 단번에 쉽게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역시 고층 벽면에서 박을 재배하는 환경 자체의 한계도 있었다. 커다란 박이 주렁주렁 그림 같이 많이 열리게 할 수는 없었다. 앵두나 살구만 한 작은 박이 몇몇 맺히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개수도 많지 않아서 의미 있을 정도로 크게 자랄 만한 것은 둘밖에 되지 않아보였다.

“이거 하나는 따 내버려야겠는데요.”

오래간만에 우리가 심은 박을 보러 온 정 대리는 그대로 두고 키우면 둘 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조그마한 크기로 그냥 시들 것 같다고 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해 하나는 살리고 하나는 떼어 내야만 살린 하나가 톱질을 할 정도의 큰 크기로 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도 그럴 법 한데요?”

“그렇지?”

선배와 나는 박의 생태와 재배 기술에 대해서 좀 더 검토해 본 뒤에, 과연 둘 중 하나는 솎아 내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세세한 사항이 발표된 적이 없는 우리들만 아는 이야기다. 나는 지금 이 날까지도 여기에 대해서 강한 미련을 갖고 있고, 우리가 그때 관찰한 것이 이렇게 묻혀서는 결코 안 되는 중대한 발견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선배는 세상에 이 짓 하면서 살다 보면 어디 이런 일이 한 두 가지냐며 그냥 넘어 가자고 했고, 이 일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조사되는 대신에, 아무도 보지 않는 국가 중점 추진 사업 결과 보고서의 한 구석에 두어 줄 실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일단, 그렇다고는 해도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 회사로서는 괜찮은 최후였다는 점은 미리 밝혀 두고 싶다.

보고서에는 “초기 단계 연구로서 가능성을 밝히고 기반을 구축하는 데 의미가 있으며, 보다 구체성 있는 후속 연구를 통해 더 현실 적용 가능한 결과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단군 이래 계속되어 온 수없이 많은 국가사업에서 계절의 순환처럼 반복되던 글귀가 또 적혔고, 그리고 그 많은 사업들이 하나 같이 그랬듯이 역시 아무런 후속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 수집한 모든 표본과 자료는 창의성 발전 센터 성과 전시관으로 제출하라고 했기에 전시관 구석에 쌓여 있다가 그냥 썩어 없어졌다. 다만, 제비가 날아 왔고, 제비 다리를 고쳐 줬고, 박씨를 심었다는 내용까지는 모든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들 이게 무슨 짓인지는 뭐라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성과가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 불만은 없었다. 게다가 마침 반짝 다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아파트 단지의 공사는 다시 계속 되는 바람에, 그때 우리는 제비집 해체 사업으로 몇 푼 더 돈을 벌었다. 덕택에 나쁘지 않은 상황으로 회사를 폐업시킬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가장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자료는, 그때 두 박 중에서 어떤 박을 떼어낼까 결정하기 위해서 찍었던 X선 사진이다. 우리는 두 박 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자라날 가능성이 있는 박을 선택하기 위해 크기와 색상을 측정했고, 세포 표본을 떼어 내어 분석했고, X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X선 사진에서 전혀 기대 못했던 것이 나타났다. 박 속에서 단순히 박의 과육 이외에 선명히 구분되는 다른 인위적인 구조물이 보였던 것이다. 아직 박이 커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려웠지만, 박이라는 식물과는 완전히 다른 엉뚱한 물체가 박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정말 박 속에 돈도 들어 있고, 쌀도 들어 있는 거야?”

우리는 사진 판독이 잘못 되었나 싶어 몇 번이나 다시 검토해 보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관찰한 이상한 현상은 사실이었다. 박 속에는 정말로 무엇인가가 들어 있었다. 그 후로 이 분야의 연구를 전혀 하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제비가 황해를 지나갈 때 잠깐 위치 추적이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황해 상에서 제비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굉장한 기술을 가진 이들에게 포획되었던 것 아닌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외계인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바다 속에서 사는 생명체가 굉장한 기술을 갖고 있어서, 제비에게 박 속에 특수한 물질을 생겨 나게 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한 것이 아닐까? 공간이동 기술을 이용해서, 박 속에 어떤 물건을 전송시킬 수 있는 그런 고도의 기술 문명이 있고, 박이라는 식물과 제비라는 동물, 그리고 인간의 문화라는 지적 생명체를 통해서 그 기술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우리 사업 자체보다도 훨씬 더 어마어마한 문제였다. 옛날 이야기가 아닌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 박은 가난한 동생 한 명을 부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체 세포 속에 물질을 집어 넣는 나노 기술, 순간 이동 기술에 관한 문제였다. 불치병을 치료하거나 항성 간 우주 여행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에 관한 일이었다.

“그럴 리야 있겠어. 바다 깊이 숨어 있는 해저 문명이 왜 그런 이상한 장난을 치는데?”

선배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선배 역시 박 속의 이상한 물질에 놀라고 있었고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우리는 고민 끝에 두 박 중에 금속 성분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더 많이 들어 있는 박을 살리기로 했다. 금속 성분이 많은 박에서 금은이나 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어차피 수익이 낮은 헛짓이기 때문에 따낸 사업이기는 했지만, 기왕에 박을 타는 마당에야 박에서 어마어마한 돈이 쏟아지면 그 또한 기가 막힌 일이 될 듯 싶었다.

박은 점점 제 모양을 갖추며 자라 났다. 이 모든 뻥튀기질의 상징이라도 되려는 것처럼 박은 아주 크게 잘 자라났다. 한국 농수산진흥청 표준 수확 시기 기준표에 맞을 정도로 박이 자라났을 때, 우리는 박을 타기로 했다. 선배와 나는 박을 타는 톱을 같이 들었다. 박 안에서 쇳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정말 돈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톱이 움직이면서 박에 들어갈수록 우리는 점점 흥분했다. 막대한 돈. 어마어마한 이익. 대박일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박 타는 노래까지 같이 부르고 있었다. 선배의 얼굴을 보니, 선배도 나처럼 흥분된 것 같았다.

“흥분돼요.”

“흥부? 뭐 흥부인 게 어쨌는데?”

“아니오. 흥분된다고요.”

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무의미한 말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박 속에서 돈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는 한 방에 부자가 될 것이다. 박이 열리기 직전에, 선배가 물었다.

“흥보가 내용에 보면 박 안에서 돈이 얼마나 나온다고 되어 있지?”

“정창업판 판소리 가사로 보면, ‘쌀이 일만 구만 석이요, 돈이 일만 구만 냥이라’라고 되어 있죠.”

“구만 냥이면 얼마야?”

톱이 박을 가르고 들어가며, 한번 왔다갔다 할 때마다 나는 자료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 보았다.

“조선시대 상평통보 9만 냥이면, 대한제국 돈으로 90만전이고, 대한제국 돈 10전이 일제시대 조선엔으로 1엔이니까, 9만 조선엔이고요.”

“그리고?”

“그리고, 광복 될 때 100 조선엔을 1환으로 했으니까 900환이고, 그리고 1962년에 화폐개혁으로 환이 다시 지금 우리가 쓰는 원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러니까….”

마침내 박이 열렸다. 박 속에는 90원이 들어 있었다.

50원짜리 하나와 10원짜리 네 개였다.


- 2016년, 선릉에서
 

 

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곽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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