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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고향 갈라파고스는 전쟁 중

희귀동물 위협하는 침입종 소탕작전 한창

갈라파고스 제도를 돌아보는 동안 내내 “오우, 오우!”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탄산음료를 많이 마시고 나서 크게 트림하는 소리 같다. 바다사자 수컷들이“나 여기 있어!”“여긴 내 영역이야!”“상어가 가까이 오니 조심해!”라고 외치는 거란다.
 

꼬박 스물여섯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드디어 발트라 공항에 내렸다. 커다란 야자수와 동물들로 가득한 곳일 거라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는데, 웬걸,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저 황량한 황무지다. 발트라섬의 공항은 동태평양에 떠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관문이다. 배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산타크루즈섬의 아요라 항구에 내렸다. 이곳은 아기자기한 집과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총 19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현재 4개의 섬에 2만명 가량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관광이며, 가축을 기르거나 어업을 하기도 한다. 이곳의 여행사들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을 배에 태우고 제도 내의 여러 섬들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에콰도르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 본토인조차 마음대로 들어가 살지 못한다. 갈라파고스에서 살려면 부모가 갈라파고스 주민이고, 본인이 갈라파고스에서 태어나야 하는 등 엄격한 제한이 있어 사실상 새로운 인구의 유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에콰도르 정부가 갈라파고스의 환경과 생물을 보존하기 위해 1998년 제정한 인구제한 특별법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보다 더 강력한 법인 셈. 누구든 이곳에 들어가려면 마치 한 나라에 입국하는 것처럼 심사를 받고 100달러나 되는 입장료까지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갈라파고스 제도의 자연환경은 몸살을 앓고 있다. 공항이 있는 발트라섬에도 과거에는 이구아나가 많이 살았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구애할 때 목과 가슴을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리는 군함새. 이구아나 새끼를 잡아먹는다.


육지와 격리된 채 나 홀로 진화

이른 아침 여러 나라 관광객들과 함께 산타페 2호에 올랐다. 배는 우리를 산타크루즈 동쪽의 작은 섬 플라자로 안내한다.

“동물을 만지지 마시고, 정해진 이동경로를 벗어나지 마세요.”
영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전문 가이드가 신신당부한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1000km 떨어져 있다. 제도 윗부분으로 적도가 관통한다. 수백만년 동안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격리된 채 살았기 때문에 갈라파고스의 생물들은 독자적으로 진화해왔다. 그래서 희귀종이 많다.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순한 초식동물인 이구아나가 대표적이다. 바다이구아나는 몸 색깔이 어둡고, 육지이구아나는 화려하다.

바다이구아나는 해조류를, 육지이구아나는 선인장을 먹는다. 플라자섬에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바다이구아나와 육지이구아나끼리 교배해 태어난 잡종 이구아나가 있다. 바다와 육지이구아나의 서식지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잡종의 몸과 꼬리는 육지이구아나를, 머리는 바다이구아나를 닮았다. 육지에 살며 선인장을 먹는다. 하지만 잡종을 쉽게 볼 수는 없다. 단 2마리뿐인 데다가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 쉽게 몸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

이구아나 이외에도 코끼리거북, 갈라파고스펭귄, 다윈방울새(핀치) 등은 오직 갈라파고스에서만 볼 수 있는 이곳 고유종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1535년 파나마 주교가 스페인 선원들과 함께 남아메리카로 항해하던 길에 처음 발견했다. 이곳에 거북이 많이 살고 있다는 뜻에서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이 붙었다(스페인어로 거북을 ‘갈라파고’라고 한다). 당시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들은 대부분 무인도로 알려져 있었다. 1832년 에콰도르의 한 장군이 수백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산타마리아섬을 개척하면서 갈라파고스 제도는 에콰도르의 영토가 됐다.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22세 때인 1831년부터 5년 간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항해했다. 1835년 갈라파고스에 5주 동안 머물면서 다윈은 방울새의 부리 모양이 먹이인 씨앗의 크기나 강도에 따라 다르고, 코끼리거북의 등껍질 모양도 각 섬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동물이 섬마다 다른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바로 이 생각이 1859년 출판된 ‘종의 기원’의 모태가 된 것이다.

다윈 이후 여러 과학자들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마치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활하면서 생물들을 연구·보호해왔다.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데프니메이저섬의 수많은 핀치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가며 20년 넘게 세밀하게 관찰했다. 진화가 수백만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고 생각했던 다윈과 달리 그들은 갈라파고스의 핀치들이 홍수와 가뭄 같은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 빠른 속도로 환경에 적응해 진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라파고스의 몇몇 고유종은 위기를 맞고 있다. 사냥이나 인간 활동에 의해 들어온 침입종 때문에 갈라파고스펭귄과 코끼리거북의 수가 실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엘니뇨현상도 갈라파고스 고유종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떠올랐다.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흐르는 찬 페루해류에 갑자기 따뜻한 해류가 유입되면서 펭귄이나 새들의 먹이인 어류가 이동하거나 바다이구아나의 먹이인 해조류가 번식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화산폭발과 해양판 이동이 빚어낸 19개 섬

산티아고섬 바로 동쪽에 있는 바르똘로메섬까지는 산타크루즈섬의 이타바카 항구에서 배로 꼬박 3시간 거리. 바르똘로메에는 갈라파고스펭귄, 파란 발 부비새, 바다사자, 펠리컨 등이 살고 있다.

이 섬에는 현재 활동을 쉬고 있는 화산이 있다. 18개 분화구 주위에는 화산암이 널려 있다. 오렌지색 또는 붉은색을 띠는 이곳의 화산암은 어른 머리만한 크기를 한손으로 가뿐히 들 수 있을 만큼 가볍다. 섬의 군데군데에는 마그마가 흘러내렸던 흔적이 마치 작은 동굴처럼 남아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나스카 해양판이 떠받치고 있는데, 이 판은 1년에 약 1cm씩 남동쪽으로 움직인다. 나스카판 동쪽에 맞닿아 있는 남아메리카 대륙판은 반대로 서쪽으로 이동한다. 두 판이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의 지하에서 충돌하면서 해양판은 대륙판 밑으로 가라앉는다.

300만~400만년 전 나스카판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대규모로 폭발해 화산섬이 생겼다. 나스카판이 남동쪽으로 움직이면서 이 화산섬도 덩달아 이동했다. 마그마가 다시 폭발해 또다른 화산섬이 생겼고 이 섬도 나스카판과 함께 남동쪽으로 이동했다. 연달아 화산폭발이 일어나면서 생긴 화산섬들이 옆으로 이동하면서 다음 생길 화산섬에게 자리를 내준 셈. 갈라파고스 제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섬 곳곳에서 발견되는 산호 조각은 이곳이 먼 옛날 바다 속에 잠겨있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쪽에 있는 섬일수록 나이가 많다. 가장 동쪽에 있는 산크리스토발섬이 맏형. 하지만 19개 섬 각각의 나이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제주도 면적의 3배가 넘는 갈라파고스 최대 섬인 이사벨라에는 5개의 화산이 있는데, 아직도 활동 중이다. 1995년에는 이사벨라섬 서쪽에 있는 페르난디나섬에서 실제로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근처 해변에 배를 정박해두고 관광객들은 스노클링과 수영을 즐겼다. 바다 속에서는 천연 색상의 각종 물고기와 문어, 심지어 백색 상어까지 볼 수 있다. 우리 배가 해변에 머문 약 2시간 동안에도 다른 배로 온 관광객들이 두 팀이나 들어왔다. 이곳 상어가 지금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지만 이렇게 가다간 언제 관광객이 상어의 먹잇감이 될지 모를 일이다.

12월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우기가 시작되는 시기다. 그래서인지 이날 밤 아요라 항구마을에는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다. 건기는 4~5월경 시작된다.


다윈연구소의 본관
 

침입종에 맞서 갈라파고스 지키는 찰스다윈연구소

‘도대체 연구소는 어디 있는 거지?’

지도상으로 보면 분명히 아요라 항구마을 해안가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찰스다윈연구소가 있어야 한다. 길안내 표지판을 따라왔건만 주변엔 온통 풀과 나무, 자그마한 집들뿐이다.

“실례합니다. 찰스다윈연구소를 찾고 있는데요.”

반소매, 반바지 차림의 구레나룻 덥수룩한 아저씨에게 물었다. 자신도 연구소로 간다며 따라오란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바로 다윈연구소에서 일하는 칠레 출신 해양생물학자였다! 그리고 조금 전에 지나쳐온 자그마한 집들이 모두 연구실이었던 것! 우리나라 연구소처럼 여러 층의 커다란 건물을 상상했던 게 낭패였다. 과학자들 모두 여름휴가 온 듯한 옷차림에 샌들을 신었다. 긴 여정 탓에 정장차림으로 오지 못해서 걱정했던 게 우스울 지경.

1964년 갈라파고스 제도의 산타크루즈섬에 설립된 찰스다윈연구소는 이곳의 생물을 연구∙보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1959년 출범한 국제연구교육기구인 찰스다윈재단이 이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홍보담당자인 로슬린 카메론씨에 따르면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칠레, 미국, 영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총 158명의 과학자가 현재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소 뒤편으로 돌아가보니 거북을 인공 부화시켜 기르는 곳이 있다. 그 근처에 의외로 태양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에스파뇰라섬에 거북이 수컷 1마리, 암컷 7마리밖에 남지 않았던 적이있어요. 염소가 들어와서 거북의 먹이인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기 때문이죠. 염소를 박멸한 다음 거북의 멸종을 막기 위해 암컷과 수컷의 수를 조절해야 했습니다. 거북은 부화할 때 온도가 성별을 결정해요. 수컷이 좀더 높은 온도에서 부화하죠. 태양전지에서 전기를 생산해 거북을 부화시킬 때 온도를 조절합니다. 이렇게 부화시킨 거북을 다시 섬에 풀어놓는 거에요.”

의사로 일하다가 10년 전부터 갈라파고스에 들어와 동물을 연구하고 있다는 에콰도르 출신 호세 마추카 박사의 설명이다. 그를 비롯한 다윈연구소 과학자들의 요즘 최대 이슈는 인간 활동에 의해 들어온 외래종을 어떻게 박멸시킬 것인가다. 이들이 고유종의 생활터전인 자연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켜 고유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적한 벤치에서 다윈연구소의 외래종 박멸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영국 출신 생태학자이자 동물학자인 질리언 키 박사를 만났다. 그는 1992년 관광객으로 처음 갈라파고스에 온 후 이곳의 매력에 푹빠져 다음해 바로 다윈연구소에 합류했다고.

- 모든 외래종이 박멸 대상인가.

외래종 중 농장이나 국립공원에 해를 입히는 모든 종을 침입종이라고 정의한다. 당근, 양파, 감자처럼 고유종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외래종은 박멸 대상이 아니다. 블랙베리나 구아바 같은 외래종은 증식 속도가 매우 빨라 고유종 식물들이 살아갈 땅을 잠식하기 때문에 침입종으로 분류한다. 개, 당나귀, 쥐, 소, 염소, 돼지 같은 동물도 고유종 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을 먹어치우거나 땅을 황폐화시키는 대표적인 침입종이다.

- 어떤 방법으로 침입종을 찾아내는가.

섬에 어떤 종이 침입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농부들이다. 농부들에게 이 프로젝트에 관한 교육을 시킨 다음 보고하게 한다. 고유종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섬의 곳곳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모니터링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 침입종을 어떻게 박멸하나.

2003년에는 산티아고섬에서 염소를 박멸하는데 사냥개와 헬리콥터를 동원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염소를 제거하기 위해 수컷에게 수신기를 달아 풀어놓았다. 그 주위로 암컷들이 모여들면 그때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6만마리를 박멸했다. 이 방법은 현재 이사벨라섬까지 확장돼‘이사벨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천적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때 산타크루즈섬과 발트라섬의 나무들이 호주산 벚나무깍지 벌레(Icerya purchasi)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었다. 연구소는 이들의 천적이 호주산 무당벌레(Rodolia cardinalis)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2002년초 무당벌레를 풀어놓아 벚나무깍지벌레를 먹어치우게 했다.

- 가장 박멸하기 어려운 침입종은 무엇인가.

쥐다. 섬의 모든 지역에 퍼져있는 데다가 그 수도 어마어마하다. 구석구석마다 쥐약을 뿌리기에는 예산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대처할지 지금도 연구가 한창이다. 식물의 경우 한번 뿌리를 내리면 10년 동안 3개월마다 꽃과 열매를 맺어대는 블랙베리가 현재 가장 골칫거리다.

- 인간 활동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들어오는 침입종은 없나.

태평양에 고립돼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외래종이 들어오기는 어렵다.
이곳 생태계는 그야말로‘순수’하다. 소수 침입종의 영향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고유종은 얼마나 많은가.

식물이 500종, 곤충이나 무척추동물이 2000종, 척추동물이 120종 정도다. 에콰도르 본토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자연적인 천적이 없기 때문에 동물들이 무척 순한 것도 특징이다.

- 생태계 보존과 관광사업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가.

관광객들은 제도 전체에서 제한된 55개 지역에만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에서 교육 받은 전문 가이드를 항상 동반해야 한다. 현재 활동 중인 가이드만 300명에 달한다. 갈라파고스 관광 프로그램은 과학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성공적인 과학대중화의 모델이다. 최근에는 한 관광회사가 갈라파고스 환경보존 펀드를 조성해 주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한다고 해서 연구소와 협의 중이다.

키 박사는 “관광객들이 오가는 플라자섬도 20년 전과 비교해 거의 변함이 없다”며“보존은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플라자섬과 사람이 사는 산타크루즈섬은 사정이 다르다. 관광객으로 인한 외래종 침입 말고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동아시아 상인들이 갈라파고스로 들어와 해삼과 상어를 마구 잡아대고 있는 것.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까지도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불법 어류 채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백만년 동안 독자적으로 진화한 갈라파고스의 생물들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관광과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주민들,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환경과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곳 생물들이 과연 어떻게 진화할지 주목된다.

200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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