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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프랙틱 식물인간이 깨어난다

죽어가는 뇌세포 손으로 자극

1994년 이탈리아의 유능한 패션 디자이너 마리아가 심장병으로 쓰러져 혼수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발병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호흡마저 어려워졌다. 그래서 기관을 절개하고 인공심폐기를 부착해 겨우 생명을 유지했다. 의식을 잃고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안되는 상태, 즉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프랑스의 전 부통령 메트르는 오랫동안 고혈압에 시달리던 중 뇌졸중에 걸려 오른쪽 소뇌와 대뇌가 손상됐다. 그 결과 26개월 동안 식물인간인 상태로 지냈다. 마리아처럼 먹고 숨쉬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담당의사들은 이들이 더이상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현대 의학으로 식물인간을 깨어나게 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9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마리아는 현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메트르는 (비록 기관지 감염이 악화된 탓에 수개월 후 타계했지만) 수개월 동안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긴 잠에서 깨어나게 했을까.

치료를 맡은 사람은 미국 카이로프랙틱 신경학회의 권위자인 캐릭 박사(46)다. 현재 캐릭은 전세계를 돌며 카이로프랙틱을 이용해 식물인간을 비롯한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은 1백여년 전 미국의 팔머가 창시한 의학의 한 분야다(과학동아 97년 7월호 특별기획 ‘자연요법’ 참조). ‘카이로’(chiro)는 ‘손’을, 그리고 ‘프랙틱’(practic)은 ‘치료’를 뜻한다. 말 그대로 약물이나 수술에 의존하지 않고 주로 손을 이용해 치료를 마치는 것이 특징이다.

초창기 카이로프랙틱의 이론은 비뚤어진 척추나 관절을 바로 잡아주면 나빠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경생리학이 발달함에 따라 뇌에 대한 많은 비밀이 밝혀지면서 카이로프랙틱도 큰 변화를 겪었다. 예전의 치료 사례가 요통, 디스크, 두통 등에 국한된데 비해 최근에는 두뇌나 내장의 질환에도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첨단 장비로도 고통을 덜어줄 수 없거나 아픈 이유를 알 수 없는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혼수상태에 빠졌던 마리아와 메트르는 어떻게 깨어날 수 있었을까. 캐릭 박사에 따르면, 뇌에서 기능이 떨어진 신경 세포나 그 주변의 신경 세포, 그리고 손상된 부위가 행하던 것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다른 곳에 적절한 외부 자극을 가해줌으로써 병을 낫게 한다는 것이다. 캐릭 박사는 최근까지 2백여명의 식물인간을 치료해 왔는데, 최대 9년 간이나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환자까지 회복시킨 예가 있다.

어떤 자극을 환자에게 가한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환자 개개인의 진단 결과에 따라 적절한 시각, 후각, 청각, 그리고 기계적인 자극(촉감)을 주어서 기능이 떨어진 세포의 기능을 현재보다 나은 방향으로 향상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의 눈 앞에 손을 들이대며 시선을 유도하거나 귀에 찬물을 흘려 보내 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어떻게 식물인간을 깨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세포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이해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인간은 뇌기능이 손상돼 의식을 잃고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안되는 환자다. 눈을 뜨고 있어도 머리는 잠들어 있다.


기능 떨어진 세포에 연료 공급

세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연료와 자극이다.

먼저 연료에 대해 살펴보자. 세포의 생존에 필요한 연료는 크게 산소와 포도당으로 구분된다. 산소는 숨을 들이쉴 때 폐로 들어온 후 혈액을 통해 온몸의 세포로 전달된다. 포도당은 음식을 먹었을 때 장에서 흡수돼 혈액을 통해 세포로 이동한다.

연료의 전반적인 공급을 책임지는 담당자는 자율신경계, 즉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신경계다. 산소와 포도당의 흡수와 운반을 담당하는 심폐기관과 내장기관은 사람의 의지대로 작동될 수 없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환자가 ‘폐와 내장은 병든 세포에 연료를 공급하라’고 간단히 명령을 내림으로써 병에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율신경계를 움직일 것인가. 세포의 생존을 위한 두번째 요소인 자극이 해결의 열쇠다.

자율신경계의 작용은 뇌의 특정 부위에 의해 통제받는다. 이 특정 부위는 빛, 소리, 냄새, 촉감과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해 기능이 활성화된다. 만일 환자에게 적절한 외부 자극을 가하면 뇌를 통해 자율신경계의 작용이 활발해질 것이고, 그 결과 손상된 부위의 세포에 충분한 연료, 즉 산소와 포도당이 제공돼 세포의 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인간의 눈에 빛을 쪼이고 귀에 찬물을 흘리는 일이 결코 ‘사소한’ 행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식물인간에게 똑같은 처방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신경계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경계는 몸 전체 신경계의 60% 정도다. 누구나 일상적인 동작, 예를 들어 걷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이 신경계 덕분이다.

하지만 나머지 40%가 다른 탓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소질을 갖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탈 줄 알고, 어떤 사람은 남보다 높이뛰기를 월등하게 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식물인간을 치료할 때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처방이 내려진다.

식물인간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뇌에 대한 각종 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핵자기공명장치나 단층촬영장치, 그리고 뇌파측정기와 같은 첨단 장비가 동원된다. 또 외부 자극에 따라 눈동자의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숨을 정상적으로 쉬는지와 같은 생리 기능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자료들을 통해 뇌의 어떤 부위가 기능이 떨어진 것인지, 또는 뇌기능과 관련된 신체의 다른 부위에 병이 나서 뇌기능이 억제된 것인지 판단하고, 이에 따라 어떤 자극을 어느 부위에 줄지 결정한다.
 

(그림)카이로프랙틱 치료 원리^세포의 생존에 필요한 요소는 연료(산소, 포도당)와 자극(빛, 소리, 냄새, 촉감 등)이다. 연료 공급을 담당하는 폐와 장은 자율신경계의 지배를 받는다. 카이로프랙틱은 사람에게 적절한 자극을 가해 자율신경계를 통제하는 뇌의 특징 부위를 활성화시켜 폐와 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만든다.


난치병 치료에 기대

물론 카이로프랙틱이 식물인간을 깨어나게 할 수 있는 특효약이라고 말하기에는 보다 많은 연구와 임상사례가 필요하다. 특히 뇌기능이 부분적으로 떨어진 경우가 아니라 뇌조직이 완전히 손상된 경우 그것을 복원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현대 의학이 손을 든 식물인간을 치료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카이로프랙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경우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소개가 의료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은 거의 최근의 일이다. 얼마 전까지는 지압사, 운동이나 활법(活法)을 하는 사람들이 정확한 의학적 지식없이 사람들을 치료해온 탓에 카이로프랙틱이 많은 의료인과 일반인에게 좋지 않은 눈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카이로프랙틱대학은 이미 일반 의과대학과 유사한 교육과정을 갖추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캐릭 박사처럼 과학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난치병에 도전하는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들의 노력에 대해 많은 이해와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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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승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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