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새들에게 세상의 경계는 없다

최고의 다큐멘터리 위대한비상 나오기까지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나도 따라가고 싶어∼”

가수 변진섭의 노래 ‘새들처럼’의 가사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땅이라는 2차원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새들은 3차원 공간을 비상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특히 어느 순간 찾아왔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는 철새는 일상적 삶에 부대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돼 왔다. 철새를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 봤겠지만 이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페랭은 철새와 함께 나는 상상 속의 모습을 필름에 실현해보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01년, 그는 철새와의 여정을 담은 영화 ‘위대한 비상’을 세상에 내놓았다.

 

큰고니가 어릴 때 어미로 '각인'된 사람 유모에게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2만4000km 이동하는 극제비갈매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새의 90%는 철새다.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좀더 적합한 환경을 찾아 나서는 능동적인 적응방식이다. 그러나 수천∼수만㎞를 이동하는 여정에서 희생도 만만치 않다. 이들 중 40%가 이동 과정에서 죽기 때문이다.

자크 페랭은 “새들에게 가장 매료되는 점은 떼를 지어 다니며 매순간 천적이나 악천후와의 싸움을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매년 북극에서 남극까지 1만2000㎞를 왕복하는, 즉 2만4000㎞를 나는 극제비갈매기. 공장지대의 매연을 견디며 통과하는 기러기. 히말리야산맥을 넘다가 폭설을 만나 눈덮인 산중턱에 내려앉은 인도기러기. 45℃를 오르내리는 리비아의 사막을 횡단하는 황새.

꼬박 3년을 철새와 함께 지구 곳곳을 날아다닌 제작진에게 철새는 생명의 경이와 숭고함을 깨닫게 해줬다.

각인 효과로 훈련 가능

“아니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거야?”

화면에는 이런 의문이 들게 하는 장면이 계속된다. 카메라 바로 옆에서 새가 날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카메라 앵글이 아래로 비스듬히 향할 때면 날갯짓하는 새의 배경이 하늘이 아니라 육지가 되기도 한다. 이런 화면이 가능한 것은 실제로 촬영자가 철새들과 나란히 비행했기 때문.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자크 페랭 감독은 어느날 캐나다의 조각가이자 자연주의자인 빌 리쉬먼이 만든 다큐멘터리 ‘울트라 기러기’를 보게 됐다. 사람이 기러기를 기른 뒤 경비행기를 타고 기러기와 함께 수백km를 이동한다는 스토리이다. 자크 페랭이 이 작품을 보고 ‘위대한 비상’의 영감을 얻었으므로 철새와 함께 비행하며 촬영하는 아이디어의 원조는 빌 리쉬먼인 셈이다. 새들이 경비행기를 보고 도망치지 않고 함께 날 수 있었던 것은 알에서 깨면서부터 사람의 손에 길러졌기 때문. 알에서 막 부화한 새들은 처음 눈에 들어온 대상을 어미로 인식해 따라다닌다. 이런 현상은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처음 발견했는데 그는 이 과정을 ‘각인’(imprint)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하며 새끼들과 호숫가에서 수영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자크 페랭은 빌 리쉬만이 성공한 방법을 수십종의 철새에 적용해 이들의 이동현장을 담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후 조류학자, 철새이동 전문가, 생물학자, 촬영전문가 등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이렇게 1년간 준비한 결과 처음엔 다소 황당해 보였던 그의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져 1998년 마침내 영화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제작자들은 조류학자의 조언에 따라 27종의 철새를 선택한 뒤 탐험가들을 세계 각지로 보냈다. 이렇게 얻어진 1000여개의 알은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베이스 캠프로 집결했다. 알은 종별로 최적 부화조건에서 인공부화됐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자신들의 ‘유모’에게 맡겨졌다. 주로 수의학을 전공한 학생들로 이뤄진 40여명의 유모는 새끼들을 돌봐주면서 훗날 비행의 동반자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새들은 알에서부터 엔진 소리,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 스태프의 대화 소리에 노출돼 영화 제작과정에서 당황하지 않고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1998년 7월 북유럽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첫 촬영이 시작됐고, 2001년 6월 미국 몬태나에서의 촬영을 끝으로 3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 기간동안 노르망디에서 훈련시킨 27종을 비롯해 총 35종의 새들을 영상에 담았고 프랑스, 러시아, 한국 등 36개국 175개 지역에서 촬영했다. 17명의 조종사가 촬영을 위해서 특수 제작된 2인승 초경량 비행기로 300회가 넘는 비행을 하면서 철새의 모습을 생생히 담았다.

V자 대오를 유지하며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기러기의 힘찬 날갯짓, 아름다운 호숫가를 미끌어져 가듯 저공비행하는 고니의 우아한 자태, 사랑의 본능이 솟구쳐 암수가 서로를 유혹하며 춤을 추는 두루미의 관능적인 교태는 보는 사람들의 감탄케 한다. 그러나 매사가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새들의 무리가 어디론가 사라져 며칠씩 찾아 헤매기도 하고 물을 먹기 위해 공장지대에 내린 새들이 폐수가 흐르는 땅위를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도 했다. 고향인 아프리카 세네갈로 운송된 펠리컨은 한동안 먹이를 먹지 않아 제작진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스케치가 연출됐을 때의 기쁨

제작자들은 각 촬영지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한 멋진 장면을 담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그때그때 스케치로 남겼다. 예를 들어 뉴욕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을 가로지르며 비행하는 캐나다기러기를 스케치한 장면. 9.11 테러로 지금은 사라진 쌍둥이 빌딩을 배경으로 날고 있는 기러기의 모습은 실현됐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파괴를 일삼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스케치가 실현돼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중국에서 큰고니를 촬영하던 제작자들은 길을 지나가는 달구지를 보고, 논 위를 비행하는 큰고니를 배경으로 달구지 위에 새가 내려앉는 장면을 스케치했다. 그런데 때마침 등장한 따오기가 정말 달구지위에 내려앉는 게 아닌가.

그러나 늘 이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장면을 찍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덕목은 ‘인내’다. 뉴욕의 장면을 찍기 위해 촬영허가를 받고 제작하는데 거의 1년을 소비했다. 기러기가 만리장성을 지나는 장면을 찍는데 6개월이 지나갔다. 베트남에서는 구경꾼들이 너무 몰려 새가 접근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지만 이들이 만들어준 임시 이동식 촬영설비가 큰 도움이 됐다.

총 8개의 촬영팀 중 6팀이 각국에 흩어져 촬영했는데 1분이 안되는 장면을 위해 약 2달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계산됐다. 이들이 소모한 필름은 일반 영화의 10배인 220시간 분량으로 늘어뜨리면 450㎞에 달한다. 이를 98분짜리 영화로 편집하는데 꼬박 10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 ‘위대한 비상’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인 2002년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에 올라 화제가 됐다.

한편 한국에 소개된 DVD에는 ‘새박사’ 윤무부 교수의 음성해설이 실려있다. 명쾌한 설명에 적절한 비유와 유머를 곁들인 윤 교수의 해설은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윤 교수는 “새들은 현기증을 느끼지 않는다”며 “새들이 V자로 이동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앞의 새들이 내놓는 배설물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의 눈에는 늘 하늘 멀리의 존재였던 철새. 이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동안 우리는 ‘철새되기’를 통해 철새의 눈으로 바라본 대자연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좀더 좋은 앵글에서 대서양 퍼핀을 찍기 위해 제작진은 절벽에 매달리는 위험도 기꺼이 감수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