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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어떻게 통증을 느낄까

통각신경은 인체의 파수꾼

“앗, 뜨거워!” 펄펄 끓는 찌게가 담긴 냄비 뚜껑을 무심코 열다가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로 저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불빛이 너무 강하면 눈을 찡그리고, 공사현장을 지나다가 소음이 심하면 귀를 막는다. 자칫 잘못해서 무거운 물건이 발등에 떨어지면 아파서 급히 발을 빼낸다.

피부의 주 기능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안의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다. 통각은 피부의 보호 기능을 돕는다. 모든 자극은 강도가 강하면 아프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감각이 자극을 선별해 받아들이는 ‘정보적 감각’ 반면, 아픔을 느끼는 감각인 통각은 ‘방어적 감각’이다. 선천적으로 통각신경이 없는 환자들이 해로운 자극을 피하지 못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면 통각이 얼마나 중요한 감각인지 알 수 있다.

인체가 통증을 어떻게 감지하고 조절하는지 알아보자.

통각과 촉각의 상부상조

통증은 통각신경에 의해 뇌로 전달된다. 통각을 전달하는 신경은 촉각이나 압각을 전달하는 신경에 비해 가늘다. 지름이 좁은 관일수록 저항이 큰 것처럼 가는 신경이 굵은 신경에 비해 저항이 크다. 저항이 크면 정보를 전달하는 속도가 느려진다. 촉각이나 압각이 초속 70m 정도의 속도로 뇌나 척수에 전달되는데 비해 통각은 초속 0.5-30m로 늦게 전달되는 이유다. 그런데 통각이 다른 감각들보다 느리게 전달되면 인체 방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못에 찔렸을 때 아프다는 정보가 뇌에 뒤늦게 전달되면 재빨리 피하지 못해 더 많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조물주가 생명체를 만들 때 통각 전달 부분을 잘못 만들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몸길이가 60m 정도 돼 ‘정글의 기린’이라고 불리는 공룡인 사이스모사우루스가 꼬리 끝을 다쳤다고 가정해보자. 통각신경의 전달속도가 초속 0.5-30m이므로 꼬리 끝의 통증이 뇌까지 전달되는데 2-1백20초가 걸릴 것이다. 위험한 자극으로부터 벗어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지금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사이스모사우르스의 몸에는 상처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몸길이가 2m 정도인 인간도 불리하기는 마찬가지다. 눈앞으로 날아오는 공은 쉽게 피할 수 있지만, 발밑에 있는 압정을 미처 보지 못한 경우에는 압정이 발바닥에 깊이 들어간 후에야 겨우 아프다고 느낀다.

통각이 느리게 전달될 수밖에 없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아픔을 느끼게 하는 자극은 피부에 분포하는 통각수용체가 감지해 통각신경으로 전달한다. 통각수용체가 피부에 빈틈없이 분포돼 있을수록 미세한 자극도 감지하게 돼 피부를 더 확실히 방어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피부에는 촉각수용체가 1cm2 당 25개 정도인 반면, 통각수용체는 2백개 정도로 상당히 촘촘하게 분포해있다.

촉각신경은 통각신경보다 1백배 정도 굵다. 통각신경의 전달 속도를 촉각신경처럼 빠르게 하기 위해 통각신경을 굵게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넓적다리에 있는 연필 굵기 정도의 좌골신경다발은 넓적다리만큼 굵어질 것이고, 넓적다리는 코끼리 다리보다 굵어질 것이다. 그러면 피부가 넓어져 필요한 신경의 수가 더 늘어나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아마 조물주도 이런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가느다란 통각신경을 촘촘하게 배열할 것이냐, 굵은 통각신경을 듬성듬성하게 배열할 것이냐,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가는 신경을 촘촘히 배열하면 자극을 좀더 확실히 감지할 수 있으나 아픔을 느끼는 속도가 늦어진다. 반면 굵은 신경을 성기게 배열하면 통각신경의 전달속도가 증가해 아픔을 빨리 느낄 수는 있지만 피부에 아픔을 아예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진다.

조물주는 첫번째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빨리 전달되는 촉각신경이 늦게 전달되는 통각신경을 보완해주도록 했다. 피부에 가해진 자극은 항상 통각보다 촉각신경이 먼저 감지한다. 그 자극이 아픔을 느낄 정도가 아니면 촉각신경으로만 뇌로 전달되고, 아픔을 느낄 정도라면 통각신경이 이를 감지하게 된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등을 건드렸을 때 돌아보는 이유는 촉각수용체가 먼저 감지한 자극이 통각으로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리 방어하는 것이다. 즉 느린 속도의 통각이 빠른 속도의 촉각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셈이다.

불에 데면 살짝 만져도 아픈 이유
 

피부에 있는 감각수용체^피부에는 통각수용체가 촉각수용체보다 8배 정도 많다. 통각신경이 가늘고 촘촘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통증이 전달되는 속도는 느리지만 미세한 자극도 감지해 피부를 확실히 방어한다. 대신 통각신경의 느린 속도는 촉각신경이 보완한다. 촉각수용체가 자극을 먼저 감지해 아픔을 느낄 정도로 판단되면 통각신경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통각을 느끼는 메커니즘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1965년 캐나다 로널드 멜자크 박사와 영국 패트릭 D. 월 박사가 발표한 ‘문 조절 이론’(gate control theory)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이론의 핵심은 굵은 촉각신경이 가느다란 통각신경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즉 촉각과 통각정보 모두 뇌로 향하는데, 자극을 먼저 감지한 촉각신경이 통각신경을 방해한다. 마치 통증을 전달하기 위해 통각신경이 뇌로 통하는 문을 열려고 하는 반면, 촉각신경은 통각신경이 못 지나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 이론대로라면 통증을 느끼는 정도는 문을 여는 통각신경과 닫는 촉각신경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촉각이 세지면 통각신경을 더 많이 방해하므로 통증을 덜 느끼게 된다.

문 조절 이론은 현재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임상에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경피성 전기 신경 자극’(TENS) 방법이 한 예다. 굵은 촉각신경에 전기자극을 주면 활성화돼 통각신경을 억제하기 때문에 통증을 덜 느끼는 것이다. 이 방법을 진통제 복용과 병행하면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

그러나 화상을 입은 피부의 경우는 다르다. 문 조절 이론에 따르면 촉각이 세지면 통증이 완화돼야 하는데, 불에 데어 벌겋게 부어오른 부위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견딜 수 없이 아프다. 통각신경이 몹시 예민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경우 촉각자극으로는 통증을 느낄 수 없다. 외부에서 자극이 가해졌을 때 일정한 강도, 즉 ‘문턱값’을 넘어서야 비로소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 촉각신경의 문턱값을 1이라고 하면, 통각신경은 10 정도다. 3-4 정도의 자극을 줘도 촉각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에 덴 피부는 통각신경의 문턱값이 뚝 떨어진다. 따라서 평소와 달리 약한 자극에도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통각과민’이라고 한다.

신경이 손상됐거나 뇌와 척수 같은 중추신경계에 질병이 생긴 경우에도 통각과민이 되는데, 바로 이것이 신경병증성 통증이다. 신경병증성 통증은 화상과 같은 말초적인 통각과민보다 훨씬 복잡하고 심한 양상을 보인다. 인간이 느끼는 통증 중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진 신경병증성 통증은 대부분 10년 이상 지속되며 강력한 진통제인 모르핀도 잘 듣질 않는다. 심한 경우 환자가 자살을 시도할 정도다.

통각과민과는 반대로 통각신경의 문턱값이 높아지면 아픔을 덜 느낀다. 운동을 한 후 몸은 피곤해도 나른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바로 운동에 의해 분비되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통각신경의 문턱값을 높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많이 하고 나서 꼬집히면 보통 때보다 덜 아픈 것, 훈련으로 다져진 차력사가 아픔을 덜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른 일에 집중하거나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전쟁 중 다리가 잘린 병사가 병원에 온 뒤에야 아프다고 느끼는 이유는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병원에 오기 전까지 통증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폐암과 간암 조기발견 어려운 까닭

통증은 크게 피부나 관절에 나타나는 체성통, 심장이나 위 같은 장기에 나타나는 내장통으로 나뉜다. 두 통증은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즉 피부는 어디를 찔러도 다 아프지만 장기 중에는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허파, 간, 콩팥 같은 장기에는 통각신경이 없다. 따라서 암이 생겨도 아프지 않으므로 초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내장통은 아픈 곳을 정확히 짚을 수 없다는 특징도 있다. 피부가 핀에 찔렸을 때는 어디가 아픈지 확실히 느낄 수 있으나 배가 아프면 아픈 곳이 정확히 어딘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는 내장에 분포해 있는 통각신경이 피부의 5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각을 느끼려면 상당수의 통각신경이 동시에 흥분해야 한다. 통각수용체가 듬성듬성 분포하는 장기의 경우에는 넓은 부위에 자극이 가해져야 비로소 통증이 느껴지므로 아픈 부위를 정확히 짚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내장통을 유발시킬 수 있는 자극은 체성통과 다르다. 소화기관의 경우 많은 양의 음식물이나 위산 과다, 내시경 검사 등으로 넓은 부위가 자극을 받으면 통각을 느끼게 되지만, 바늘로 찌르거나 가위로 자르는 등의 국소적인 자극에는 통각을 느끼지 않는다. 장기 입장에서 보면 좀더 일어날 가능성이 큰 자극에만 통각을 느끼는 것이다.

인체의 조직이 손상되면 칼륨이온, 세로토닌, 브래디키닌, 히스타민 같은 통각유발물질이 만들어진다. 손가락이 칼에 찔렸을 때 가만히 있어도 욱신욱신 아프거나, 평소 같으면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짝 만져도 아프게 느껴지는 통각과민 현상도 바로 이 물질들 때문이다. 대부분의 통각유발물질은 통증을 일으키는 동시에 혈관을 이완시킨다. 때문에 상처가 나면 상처 주위가 빨갛게 붓고 열이 나는 염증반응이 생긴다. 통증을 치료할 때 항생제와 함께 소염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반응을 없애기 위해서다.

환자들이 의사를 찾는 원인은 아프기 때문이며, 의사는 이를 분석해 병을 진단한다. 따라서 통증은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정보다. 모든 통증은 그 나름대로의 목적을 갖고 생긴다. 소화불량일 때 배가 아프면서 밥맛이 없는 이유는 소화기관이 쉬려는 것이며, 다리를 다쳤을 때 아픈 이유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 다친 부위를 치료하려는 것이다. 아프면 습관적으로 진통제를 찾던 사람도 통증의 이런 속셈을 알게 되면 진통제를 복용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2002년 한해 동안 세계적으로 1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진통제 구입에 쓰였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만성통증이 기존의 진통제로 치료되지 않고 있다. 통증 연구가 국제 의학계의 중대한 관심사 중 하나인 이유다. 미국의 경우 의회가 2001년부터 10년 동안을 ‘통증 조절과 연구 기간’으로 정하고 통증 연구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새로운 진통제나 진통 방법이 개발된다면 수많은 만성통증 환자의 치료는 물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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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나흥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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