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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S 네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기자라는 직업을 잃어버리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이 콩트는 88서울올림픽 기간을 미리 상정하여, 86아시안게임에서 운영된INS의 결과와 그과를 토대로 새로이 개발된 첨단의 통신기술 올림픽종합정보망인 WINS의 활용을 가상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올림픽 기간 중 국내외기자단 및 선수단에게 제공될 올림픽종합정보망(WINS)은 한국데이타통신이 개발했다.

신나라 백화점에 집안 식구들과 애인을 위한 쇼핑에 정신이 없던 K국의 스포츠기자M은 허리춤의 삐삐가 소리를 내자, 무슨 호출인가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급히 올림픽 종합정보망 WINS의 단말기가 설치된 인근 호텔로 달려간 M은 올림픽 기록을 찾아보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에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프런트에 명함을 주고 사정을 설명하고, 줄 선 사람들에게 일일히 양해를 구한 뒤, 겨우 단말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전자사서함을 호출하여 자신의 메일 박스를 열어보고, M은 우선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이내 시계를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단말기의 화면에는

"삐어르치 양이 금메달을 땄어! 어디 처박혀 뭐하는 거야?"하는 국장의 메시지가 나타나 있었다.

당황스러운 금메달

M은 K국의 A신문사 스포츠 기자로서 88서울 올림픽을 취재하기 위해 스포츠담당 국장과 함께 파견되었다. 처음 올림픽에 파견될 때만 해도 상당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K국은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했고, 최소한 5개의 메달을 기대하며 서울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유망주들이 차례로 메달권에서 벗어남에 따라 실망의 크기도 커져만 갔다. 급기야는 경비도 절감할 겸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내일이라도 귀국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라고는 예선 통과도 기대하지 않았던 3천m여자의 삐어르치 양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과거 기록이나 예선 기록으로 보아 기대 대상도 아니었으므로, 오늘의 경기 참관도 팽기치고 내일 출발을 위해 급히 쇼핑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금메달이라니 그야말로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시계를 확인하니 본사 원고 마감이 3시간 밖에 남지 않아 암담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기대라도 했으면 원고라도 미리 초안을 잡아 놓았을 것이고, 아니 경기도 참관을 했을 터인데 워낙 기대밖이라 기초적인 인적사항조차 파악해 놓은 것이 없었다.

위기를 넘기고

M이 허겁지겁 프레스 센터를 들어섰을 때, 프레스 센터의 중앙 홀에 있는 WINS터미널들의 앞에는 많은 외신기자들이 원고작성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M은 자신들의 전용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돈을 들여 전용 부스를 빌렸다가 거의 활용할 일이 없어 본전 타령을 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일단 경기 기록이 자동프린트되도록 되어 있는 프린터를 확인했다. 있었다.

"3,000m여자 달리기 결승, 1위k국 삐어르치양, 세계신기록" 게다가 세계신기록이었다. 급히 WINS 단말기를 켜고, 과거의 기록을 보니 이전 세계 기록을 0.1초 단축한 것이었다.

우선 급히 WINS의 전자사서함을 불러 본사에 보낼 메시지를 타이핑했다. 3,000m여자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신문 지면을 비워놓으라는 내용이었다. 타이핑을 끝내고 송신하라는 키를 누르자 본사의 텔렉스에서 그 내용이 타이핑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일단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동시에 분명히 쇼핑을 나갔었는데 지금은 빈손이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쳐갔다. 호텔에서 터미널 옆에 두고 그냥 뛰어나온것이 기억났다. '참, 운수가 억세게 뒤틀리는군.' 하지만 지금은 당장 일이 급한 판국이었다.

이놈의 국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투덜거리며, 그는 우선 가능한 정보의 수집을 위해 WINS의 메뉴들을 뒤져나갔다.

오늘의 기록과 과거의 기록, 삐어르치양의 간단한 신상명세도 찾을 수 있었다. 예선전 때의 기록과 예상 메달리스트와 결과, 그리고 SLOOC(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고지된 오늘의 날씨와 진행에 관한 일반 사항들, 기타 등등, 일단 기사를 작성할 골격이 되는 정보들은 대부분 수집이 되었다. 다만 삐어르치양과의 인터뷰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빠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삐어르치양을 수소문해서 찾아 다닌다는 것도 원고마감 시간 때문에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WINS에 있는 정보들로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것으로 우선 초판 인쇄는 넘어가고, 인터뷰 내용이 확보되는 대로 이를 추가하면 되겠지 하는 배짱에서 였다.
워드프로세서 기능을 이용하여 기사 작성을 마치고 다시 WINS의 전자사서함 기능을 호출했다. 본사에 원고를 송고하기 위해. 그런데 편지가 와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사서함을 열어보니 2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하나는 국장으로부터의 편지였고, 또 하나는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국장으로부터의 편지를 급히 열었다. 그속에는 장황한 욕설로부터 시작되어 제대로 기사가 송고되지 않으면, 둘다 사표를 써야 된다는 협박과 함께 삐어르치양과의 간단한 인터뷰 기사가 들어 있었다.

"만세, 국장님. 역시 다르다니까!"

다음은 유령 편지였다. 꺼내보니 아까의 호텔에서 온 편지였다. 짐을 잘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메시지였다.

"만세! KOREA! 참 친절한 나라"
 

(그림 1)WINS네트워크 구성도


귀여운 WINS

인터뷰 기사를 정리하여 원고에 덧붙이고, 본사 편집장의 단말기 앞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마감시간 5분전이었다. 팔다리의 힘이 죽 풀리는 가운데 눈앞에 있는 WINS단말기가 참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M은 84년 LA올림픽 때도 파견되어 올림픽 종합정보망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었다. 서울올림픽의 종합정보망이 LA때의 시스팀보다 성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사태에 아무런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국장이 보낸 최초의 메시지가 자신의 삐삐를 울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WINS단말기가 공중정보통신망을 통해 본사 편집국장의 단말기와 연결되지 않았더라면 일은 상당히 복잡해졌을 것이다.

M은 내일이라도 시간을 내어 WINS 시스팀에 대해 자세히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WINS는 필요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성한 메뉴 선택방식이어서 컴퓨터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는 M도 쉽게 경기결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국어인 스페인어로도 정보가 제공되어 영어와 불어 서비스만 제공되었던 LA때의 고생스런 번역작업이 필요없었다. WINS를 통해, 여기서는 '삐삐'라고 부른다는 '페이저'(pager)와의 연결도 인상적이었고, 해외의 텔렉스망 및 공중정보통신망과 쉽게 연결된다는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도 돋보였다. 한편 쇼핑 장소, 관광명소, 한국에 대한 일반 정보도 충실해 취재 뿐만 아니라 일반 활동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국장이 부스안으로 들어왔다.

"어찌 되었나?"

M은 WINS 단말기를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국장의 만족스런 웃음소리가 프레스 센터 안을 크게 메아리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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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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