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7일 오전 9시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위성관제실.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예정 궤도선을 따라 금성 탐사선 ‘아카쓰키(曉·새벽)’의 실제 속도가 조금씩 덧그려졌다. 탐사선은 금성에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금성의 중력에 잡혀 적도면 근처를 공전하는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다. 5년 전 주엔진이 작동 불능 상태가 된 탓에, 연구팀은 위성의 자세 제어용 보조엔진을 분사해 힘겹게 속도를 낮춰갔다. 보조엔진을 분사하는 시간은 20분. 필자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숨죽여 아카쓰키를 지켜봤다. 지구로부터 8분 19초의 광차(천체에서 어떤 현상이 실제로 일어난 시각과 관측한 시각의 차이)가 나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잘못된다고 해서 당장 손쓸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10분 동안 정말 1초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0, 9, 8, 7…3, 2, 1, 보조엔진 분사 종료.” “…… 성공했다!”
오전 9시 20분, 숨막히던 적막이 환호로 바뀌었다. 아카쓰키가 5년 만에 금성 궤도 진입에 재도전해 결국 성공한 것이다. 함께 있던 아카쓰키 팀원들은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걱정 뒤에 오는 안도였다. 관제실 안팎은 부산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카메라 두 대가 조용히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내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일본 최초의 행성탐사선 궤도 진입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면 의외였다.
5년 전의 실패에서 ‘재수’ 성공까지
아카쓰키의 첫 시도, 쓰라린 실패는 정확히 5년 전인 2010년 12월 7일에 있었다. 금성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서서히 속도를 낮추고 있는데, 이때 사용하던 주엔진이 점화된 지 3분 만에 꺼져버렸다. 아카쓰키는 금성과 점점 멀어졌고 급기야는 관측망에서 벗어났다. 금성의 뒤편을 지나며 궤도에 진입할 예정이었는데, 기다리던 궤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동료의 말에 따르면 이 순간은 일본 열도 전체에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었는데, 방송 기자들과 방송을 보던 전국민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일본의 첫 행성탐사선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던 연구원들의 실망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1998년에 발사됐던 화성탐사선 ‘노조미(Nozomi, 소망이라는 뜻)’의 실패(전기장비 이상으로 화성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를 금성탐사선이 만회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카쓰키는 우주개발에 있어 ‘첫 도전’을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필자는 당시 유럽우주국(ESA)의 금성탐사선 ‘비너스익스프레스(Venus Express)’ 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너스익스프레스는 이미 2006년부터 금성의 극 궤도를 돌며 금성을 관측하고 있었고, 아카쓰키는 2010년부터 금성의 적도 궤도에서 함께 금성을 관측할 예정이었다. 아카쓰키는 금성 연구를 위한 더 없는 파트너였으며, 유럽과 일본이 협력해 연구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카쓰키가 실패하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혹시라도 비너스익스프레스가 활동하는 동안 아카쓰키가 금성궤도에 다시 진입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비너스익스프레스가 2014년 공식 퇴임하기까지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아카쓰키 연구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탐사선이 금성궤도 대신 태양궤도를 돌며 기다리는 동안 ‘다음 기회’를 만들어냈다. 첫 시도에서 주엔진이 3분밖에 점화되지 않은 원인이 주엔진 연료밸브의 문제라고 분석하고, 보조엔진을 이용해 궤도에 진입할 방법과 진입 가능한 금성궤도를 계산했다. 궤도 선택이 쉽지는 않았다. 진입에 성공할 가능성과 최적의 관측조건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그러는 중에도 연구진은 탐사선의 상태를 매주 한 번씩 주기적으로 관리했다. 태양 근접 지점을 지날 때마다 탐사선의 온도가 상승해 관측기기가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도 컸다.
그러던 12월 7일,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고 아카쓰키는 멋지게 잡아냈다. 비너스익스프레스와의 공동관측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바통을 이어받아 후속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아카쓰키가 진입한 궤도는 5년 전 계획했던 것보다 금성으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져 있다. 원래 계획된 궤도라면 금성으로부터 가깝게는 300km, 멀게는 8만km 떨어진 거리에서 30시간에 한 바퀴씩 돌았겠지만, 현재(2016년 1월)는 가장 가까울 때 1만km, 멀 때는 약 37만km까지 떨어진 거리에서 10일 14시간에 한 바퀴씩 돈다(궤도는 아직 수정 중이다). 즉, 금성을 고해상도로 관측할 수 없다. 연료가 넉넉하지 않아 관측할 수 있는 시간도 2년 남짓으로 제한돼 있다.
기묘한 금성 대기와 황산의 정체, 아카쓰키가 풀까
앞서 간 비너스익스프레스가 9년 동안 성공적으로 금성을 관측하면서 참고할 만한 자료를 여럿 넘긴 덕분에 2년이 짧은 시간만은 아니다. 이 시간 동안 아카쓰키에 탑재된 5대의 카메라와 한 대의 전파관측기기를 이용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측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아카쓰키에 탑재된 5대의 카메라는 자외선부터 적외선까지 다양한 파장대역을 관측하는데, 이를 이용해 바람의 속도와 미량기체를 측정하고, 지표와 대기의 온도나 번개를 관측할 수 있다. 특히 기대가 큰 것은 금성의 초고속 바람을 고도별로 관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성은 하루가 약 240일일 정도로 느리게 자전하는 행성인데, 초속 100m가 넘는 바람이 분다. 행성 대기역학 측면에서 대단한 미스터리다. 아카쓰키의 관측 자료를 분석하면 이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아카쓰키의 또 다른 임무는 금성의 화산활동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이다. 금성에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이 1000곳이 넘게 있다. 비너스익스프레스는 금성에서 지표의 연령이 최소 250만 년 이하인 ‘젊은’ 지역과, 화산활동으로 추정되는 고열점(hot spot)을 발견했다. 학계에서는 금성의 두꺼운 황산 구름이 이런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활화산은 관측된 적이 없다. 아카쓰키가 대기 중 황 화합물의 농도 변화와 지면의 온도를 관측해낸다면, 활화산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황이 대기 중에서 어떻게 이동해 황산 구름을 만들어내는지를 파악해 황 순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은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는 금성의 번개도 있다. 번개는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금성의 구름 형성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한 연구과제다. 번개 관측도 아카쓰키에게 기대하고 있다.
금성은 크기와 밀도가 지구와 매우 비슷해서 지구의 ‘쌍둥이 행성’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금성이 어떤 이유에서 지구와 전혀 다른 기후로 발달했을까(금성의 표면 온도는 465℃까지 올라가고, 대기가 극도로 두꺼워 지표 부근 기압이 지구 대기압의 92배에 이른다!). 그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면, 지구가 태양계 내에서 유일하게 물과 생명을 가진 행성이 될 수 있었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우리 태양계 밖에서 지구형 외계행성을 찾아내는 데 근거가 될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 2년 동안 아카쓰키는 인류의 유일한 금성탐사선으로써 이런 중요한 자료를 전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미국은 벌써부터 아카쓰키 관측 자료 분석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유럽, 미국, 러시아는 아카쓰키의 뒤를 이을 차세대 금성 탐사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