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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말 핵무기 개발하려 했나?

농축우라늄 0.2g으로는 도저히 못 만들어

“2000년 한국에서 농축우라늄 0.2g을 분리하는 비밀실험이 있었다.”

지난 9월 2일 외신은 한국이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함으로써 정부 주도로 핵폭탄을 제조하려던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분명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9월 13일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정기이사회에서 이번 한국의 핵실험에 대해 발표하면서 “심각한 우려”라는 강한 표현을 썼다. 그렇다면 2000년 핵실험은 정말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불가능한 얘기다. 과학기술부는 2일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소수 과학자들이 2000년 1-2월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 국산화 차원에서 연구과제를 수행하던 중 우라늄(U)을 분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당초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은 ‘우라늄’ 이 아니라 ‘가돌리늄’ (Gd)이라는 원소였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장인순 소장은 “가돌리늄은 핵반응을 일으키는 중성자를 잘 흡수해 반응속도를 늦춰 원전의 안정성을 높여줄 수 있다”면서 “가돌리늄의 분리가 가능하면 원전을 매우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당시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원전 핵연료에는 우라늄과 함께 핵반응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중성자 흡수제로 붕소가 섞여있다. 가돌리늄은 자연에서 원자량이 152에서 160까지 여러 동위원소가 있다. 이 가운데에서 원자량 155와 157은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데, 157은 붕소보다 무려 3백배나 중성자를 더 잘 흡수한다. 과학자들은 이 2가지 가돌리늄을 천연상태에서 분리해 좋은 핵연료를 개발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나면서 중단됐다. 장 소장은 “원자력 강국인 프랑스 역시 오랫동안 가돌리늄 연구를 수행했으나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그만뒀다”면서 “우리 연구소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때 가돌리늄을 분리하던 장치를 폐쇄하기 전 일부 과학자들이 호기심에서 우라늄을 분리해봤다고 한다.

당시 가돌리늄을 분리하는데 레이저를 사용했다. 레이저의 파장을 조절함으로써 질량이 약간씩 차이나는 여러 가돌리늄 가운데 특정 동위원소를 가려낼 수 있다. 이 방법은 우라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천연상태에서 우라늄은 2가지 동위원소로 존재한다. 99.3%를 차지하는 우라늄-238과 0.7%의 우라늄-235가 그것이다. 핵연료나 핵무기로 쓰이는 것은 우라늄-235. 우라늄-235가 중성자와 만나면 2개의 작은 원소로 분열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핵연료나 핵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천연 우라늄에서 우라늄-235를 농축시켜야 한다. 2000년 원자력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가돌리늄에 썼던 레이저 동위원소 분리법으로 농축우라늄을 제조했다는 것이다.

 


1년에 1백번해도 5만년 걸려
 

원전에 쓰이는 핵연료는 우라늄-235의 함유량이 3% 이상이어야 한다. 반면 핵폭탄 제조에는 90%가 넘어야 한다. 2000년 한국에서 분리한 농축우라늄은 약 10%라고 한다.


당시 과학자들의 의도가 단지 호기심 차원이었을까?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장 소장은 “이번 우라늄 분리 실험은 핵무기 개발과 관련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실험의 핵무기 관련성은 마치 줄기세포 연구를 갖고 인간복제를 한다는 얘기와 같다”고 덧붙였다.

우라늄농축에 쓰였던 레이저 동위원소 장치로는 핵무기에 쓰일만한 우라늄을 얻을 수 없다. 핵무기로 쓰이려면 우라늄-235가 90%를 차지하는 농축우라늄이 15-20kg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험에서 얻은 것은 턱없이 모자란 0.2g. 게다가 우라늄-235는 겨우 10%였다는 것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는 “이 실험을 1년에 1백번을 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니 5만년이 걸려야 핵무기를 만들 수 있더라”면서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방법이어서 정부가 나서서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이런 방법으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레이저 동위원소 장치는 실험이 끝난 후 곧바로 폐쇄됐다.

잠잠해질 것 같은 핵의혹은 한국에서 1982년 플루토늄(Pu)을 추출한 적이 있었다는 새로운 소식이 9일 외신에서 불거져 나오면서 다시 증폭됐다. 그러자 과기부는 이 역시 “소수 과학자들이 플루토늄의 화학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한 호기심 차원의 실험”이라면서 “추출량도 수mg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플루토늄은 우라늄과 달리 농축할 필요없이 핵무기에 쓰일 수 있다. 플루토늄은 자연계에는 없고 원자로에서 우라늄-238이 중성자와 충돌해 만들어지는 인공원소여서 사용후 핵연료에서 추출할 수 있다. 1982년의 플루토늄은 서울 공릉동에 있는 옛 원자력연구소의 연구용 원자로에서 썼던 핵연료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과기부는 “이 실험은 IAEA가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의 일일뿐 핵무기 개발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장 소장은 “플루토늄을 추출한 연구용 원자로로는 1년간 운전해도 얻을 수 있는 플루토늄이 6g 정도밖에 안돼 1백년을 운전해야 1개의 플루토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이 원자로는 수명을 다해 현재 해체중이다. 1982년 플루토늄 추출사건을 현재 핵무기 개발과 연관짓기는 어렵다. 국내 전문가들은 다 지나간 끝난 일일뿐이라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국제사회의 의혹을 풀고자 12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우라늄 분리실험과 플루토늄 추출실험에 대해 외신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의혹을 제기한데 유감스럽다”면서 재차 “일부 과학자들의 실험이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13일에는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 “2건 외에 추가로 의혹을 살만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14일 금속우라늄, 수그러들지 않는 의문
 

프랑스 원자력연구소에서 레이저를 이용해 우라늄을 농축하는 모습. 최근 레이저우라늄농축법이 작은 규모라는 장점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사용한 레이저 기기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우라늄농축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의 국제적 파장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13일 개막된 IAEA 정기이사회에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이 2건 외에 과거 핵실험 내용을 추가로 공개한 것이다. 그 내용은 1982년 ‘금속우라늄’ 1백50kg을 생산했고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농축우라늄에 플루토늄, 이어서 금속우라늄? 이건 또 뭔가 하며 국내외적으로 혼란이 일었다.

그러자 과기부는 13일 금속우라늄에 대한 설명자료를 발표했다. 금속우라늄은 핵연료 국산화 차원에서 수입한 인광석으로부터 우라늄을 얻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인광석은 인산비료를 만드는 원료인데, 여기에는 0.02%의 우라늄이 불순물로 들어 있다. 과기부는 1970년대 천연우라늄의 값이 비싸 핵연료 국산화 차원에서 인광석으로부터 천연우라늄을 추출하는 연구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때 얻은 천연우라늄은 UO₂상태다.

당시 인광석에서 생산한 이 천연우라늄은 월성 원전(중수로형)용 핵연료로 대부분 사용됐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이런 방식으로 우라늄을 생산하지 않았다. 1979년 3월 미국에서 사상 최악의 드리마일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천연우라늄의 국제시가가 폭락했기 때문이었다.

장 소장은 1982년 남은 천연우라늄을 연구소로 가져와 UO₂상태에서 금속우라늄으로 변환했다고 밝혔다. 연구소 과학자들은 이 금속우라늄 1백50kg을 조금씩 떼어가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금속우라늄은 방사선 동위원소를 운반하는데 필요한 차폐체로 좋은 재료다. 일반적으로 차폐 재료로 납을 쓰는데 금속우라늄은 납보다 무거워 더 좋다. 그때 과학자들은 금속우라늄이 차폐체로 사용가능한지 조사해봤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금속우라늄의 합금성 연구 등이 이뤄지면서 16kg이 사용됐다.

이 금속우라늄은 2000년 농축우라늄과 관련이 있다. 이 16kg 가운데 3.5kg으로 농축우라늄 0.2g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2000년 농축우라늄 제조에 쓰였던 천연우라늄의 출처가 밝혀진 것이다.

농축우라늄 0.2g과 플루토늄 수mg에 비한다면 금속우라늄 1백50kg은 상당한 양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정도로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균렬 교수는 “금속우라늄 역시 천연우라늄이어서 우라늄-235은 0.7% 포함돼 있다”면서 “1백50kg은 핵폭탄은커녕 핵연료로도 쓰일 수 없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핵연료용으로 쓰인다해도 톤단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야 지나간 핵실험들이 논란을 빚게 된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가 올 2월 IAEA 안전조치 추가의정서를 비준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추가의정서에 따라 우리나라는 그전까지 IAEA에 신고대상이 아니었던 순수 원자력 연구활동과 관련 장비에 대해 비준 후 1백80일 내로 보고하도록 돼 있었다. 그래서 8월 17일 과기부는 IAEA에 이를 신고했고, 지금까지 얘기된 핵실험이 여기에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보고할 필요없던 과거의 연구활동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한 셈인데 왜 IAEA에서는 “심각한 우려”라는 강한 표현을 썼을까.

문제는 과거의 연구활동이 아니다. 그 결과로부터 나온 핵물질인 것이다. 김영식 원자력안전심의관은 “농축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금속우라늄은 핵물질로, 추출하거나 이동시 IAEA에 신고해야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추가의정서 비준 전에도 신고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IAEA가 문제삼은 것이 바로 이것.

하지만 워낙 양이 적다보니 과학자들이 신고할 생각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심의관은 “농축우라늄 0.2g이라고 해봐야 깨알의 수십분의 1 정도밖에 안되고 금속우라늄 1백50kg도 주먹만한 크기”라면서 “많이 추출할 거 같았으면 신고를 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원칙은 신고하는 것이지만 이 정도로 작은 양의 핵물질이 규정 위반인지 아닌지는 IAEA가 판단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장 소장은 “IAEA와 외신들이 이토록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원전 19기를 가동하는 세계 6위의 원자력 강국이다. 이런 연구활동이 큰 문제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만 하더라도 우라늄 농축시설과 핵재처리시설, 그리고 플루토늄 38t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국제사회가 핵무기 개발로 의심하진 않고 있다.

 


원자력 세계 6위, 연구자율권은 바닥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소규모 실험에 대해선 IAEA와 국제사회가 이처럼 강한 의혹을 보인 것일까?

 

IAEA는 “한국의 핵실험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문제는 투명성에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이 문제다. 과거의 일이 족쇄가 돼 앞으로 우리나라의 핵관련 연구가 심한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우리나라 핵 과학자들은 옴짝달싹 못하는 실정이었다. 1992년 남북 비핵화공동선언을 체결하면서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핵연료로부터 얻어지는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수 없고 원전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만들 수도 없다. 현재 원전의 핵연료는 농축우라늄을 해외에서 전량 수입해 이를 가공한 것이다.

핵관련 연구자들은 남북 비핵화공동선언에 불만이 많았다. 평화적인 핵개발조차도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에는 이미 우라늄농축시설이 있다.

18일 정부는 ‘평화적 핵이용에 관한 4원칙’ 을 발표했다. 핵무기 개발·보유 의사 없음, 핵 투명성 원칙의 확고한 유지, 핵비확산에 관한 국제규범의 준수, 국제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적 핵이용의 확대가 바로 그것.

이 자리에서 오명 장관은 “절차를 밟아서 투명하게만 하면 되는 만큼 과학자의 연구를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제4세대 원자로 문제 등 미래지향적 연구를 훨씬 더 활발히 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현재 세계적으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4세대 원자로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제4세대 원자로는 기존 원자로보다 경제적이면서도 안전하다. 더군다나 골칫덩어리인 핵폐기물이 확 줄게 된다. 여기에선 우라늄 대신 플루토늄을 쓰는 것이 좋다. 일본이 보유한 38t의 플루토늄은 제4세대 원자로에 쓰여질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4세대 원자로 개발에 어려움이 많다. 핵재처리시설도 없고 우라늄농축시설도 없는데다 작은 핵실험조차 맘껏 할 수 없다. 전력생산의 40%를 차지할 만큼 원자력의 의존도가 높아 어떻게든 미래에너지를 확보하려면 핵관련 연구활동의 폭이 넓어져야 할 판이다. 신재인 전 원자력연구소 소장(현 한국핵융합협의회 회장)은 “이번 일을 기회역전으로 삼아 우리의 핵관련 연구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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