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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X 긱블] 동물의 숲 주파수 연주기

모터 소리 시끄럽자나 비보벳따우♪♬

◇안 어려워요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
- ‘모여봐요 동물의 숲’ 캐치프레이즈

 

연일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일본 게임회사 닌텐도의 ‘동물의 숲’ 시리즈는 정말이지 이상한 게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게임이라면 기본적으로 임무 달성이라는 시스템이 깔려 있습니다. 적과 싸워 승리하든가, 큰 이득을 취하든가, 하다못해 어디에 빨리 도달하기라도 해야 하죠. 단시간에 임무를 달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게임에 계속 빠져들게 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01년에 출시된 동물의 숲 시리즈는 ‘휴식하는 게임’이라는 기획자의 의도대로 임무 시스템을 싹 없앴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게임은 계속 진행되고, 모든 임무를 달성했을 때 나오는 게임 엔딩신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됨이 일상에,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안식의 공간으로 자리했죠.


이런 동물의 숲과 함께 유명해진 노래, 어쩌면 동물의 숲을 더 유명하게 만든 노래 ‘나비보벳따우’ 역시 한 유저(사용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우연히 발견한 노래입니다. 유튜버인 그 유저는 게임 내 클럽에 24시간 동안 자신의 캐릭터를 방치(?)했는데, 중간에 이 노래가 짧게 흘러나왔고, 한 시청자가 댓글을 통해 이 구간이 듣기 좋다고 평하며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발굴된 ‘나비보벳따우’. 하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시죠? 긱블입니다.

 

스텝 모터 회전 속도가 음높이 조절

 

 

메이커인 민바크 님은 ‘나비보벳따우를 스텝 모터의 주파수로 연주하면 재밌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이걸 이과가 또…). 


스텝 모터는 사용자가 원하는 각도 만큼 회전시킬 수 있는 모터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회로를 구성하기도 간단해서 정밀한 제어가 필요한 가전제품이나 산업기기, 자동차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텝 모터는 펄스(pulse)라는 전기신호에 따라 구동합니다. 펄스가 맥박이라는 뜻을 가지듯이, 물리학에서 펄스는 전압이 들어왔다 안 들어왔다, 즉 온(ON)과 오프(OFF)를 반복하는 전기신호입니다. 그리고 이 ON/OFF의 횟수나 주기는 스텝 모터가 어떻게 돌아갈지를 결정합니다.


ON/OFF 횟수가 많을수록 스텝 모터의 회전하는 각도는 커지고, ON/OFF 주기가 짧을수록 회전하는 속도가 빨라지죠.


여기서 이번 나비보벳따우와 직접 연관되는 건 모터가 회전하는 속도입니다. 모터의 회전 속도는 초당 진동 횟수인 주파수(Hz)로 나타내는데, 이 주파수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모든 소리 역시 음파의 진동수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집니다. 소리가 공기나 물 등의 매질을 타고 우리의 귀까지 전달되는 파동인 건 모두 알고 있죠? 소리가 만들어내는 파동인 음파는 초당 진동 횟수가 많을 땐 높은음이, 적을 땐 낮은음이 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스텝 모터의 회전하는 속도가 빠르면 높은음이, 느리면 낮은음이 만들어지고, 이는 곧 스텝 모터에 흐르는 전압을 얼마나 빠른 주기로 켰다 껐다(ON/OFF) 조절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두 번째 옥타브 ‘도’는 모터 진동 1만5385Hz

 

민바크 님은 나비보벳따우의 멜로디를 세 개의 트랙으로 나눠 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 개의 스텝 모터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나비보벳따우의 미디(MIDI) 파일도 준비했습니다. MIDI 파일은 전자악기로 연주한 것을 컴퓨터나 통신기기가 인식할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든 파일입니다. 일종의 악보 데이터라고 할 수 있죠.


MIDI 파일에 기록된 각각의 음을 표현하기 위해 스텝 모터의 진동수를 어떻게 설정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는 이미 공개돼 있습니다. 가령 두 번째 옥타브의 도(C2)를 내고 싶으면 스텝 모터가 1초에 1만5385회 진동하도록, 즉 진동수를 1만5385Hz로 맞추면 됩니다.


자, 이제 MIDI 데이터를 진동수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스텝 모터에 전송하는 회로를 만들 겁니다. 납땜의 멋짐을 아는 쾌남 민바크 님의 주 종목입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스텝 모터에는 회로 구성을 간단히 할 수 있는 아두이노 보드를 연결합니다. 

 


다만 악보 데이터인 MIDI 파일을 아두이노 보드가 바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MIDI 파일을 변환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회로가 필요하죠. 일종의 번역기를 돌려서 MIDI 파일을 아두이노 보드가 인식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주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회로를 완성하고 마음을 편안히 한 뒤 나비보벳따우를 재생해봅니다.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나는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작습니다. 사실 모터에서 나는 소리는 소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비보벳따우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이를 역행해서 소음을 억지로 키워야겠네요.


얇은 플라스틱판에도 올려놔 보고, 두꺼운 책상에도 올려놔 보고…. 이곳저곳에 모터를 올려서 테스트해본 결과, 울림통이 있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에서 줄을 튕기는 작은 소리가 울림통을 통해 증폭되듯 말이죠.


MDF(중밀도 섬유판)를 사용해 직육면체 상자를 만들고 전면에 구멍을 네 개 뚫어 소리가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무 상자 위에 금속 모터 세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미술에 조예가 깊은 메이커 찬스 님이 치장을 위해 나섰습니다. 


석고 가루와 물을 섞어 상자 위에 바르고, 잔디가루, 잎, 나무를 사용해 동물의 숲 배경을 만들어냈습니다. 또 다른 메이커 잭키 님까지 합세해 3D 프린터로 나비보벳따우를 부른 강아지 ‘K.K.’를 뚝딱 만들어 올려놓으니 영락없는 동물의 숲 야외무대가 됐습니다.


긱블은 유튜브에 메이킹 영상과 더불어 스텝 모터가 차분히 나비보벳따우를 재생하는 뮤직비디오도 따로 올렸는데, 가사를 무려 원소 기호로 나타냈습니다. 화학 과목 인강인줄…. 어떤 가사인지는 유튜브 긱블 채널에서 확인해 보시죠.


이번 긱블 연재 기사는 다른 편에 비해 매우 차분했습니다. 왜냐면 지금 6시간째 나비보벳따우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립이 나오려는 순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자제됩니다. 자, 이제 다 썼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러 가볼까나 비보벳따우♪♬.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 사진 및 도움

    긱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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