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문의 귀결점은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함께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는 여정을 시작합시다.”
아직 쌀쌀함이 느껴지는 4월초, 기자는 ‘인류의 진화·한민족의 기원전’ 이 열리고 있는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을 찾았다. 3일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인데다 아직 오전이라서 그런지 과학관은 한산했다. 울산에서 온 교사 10여명과 기자를 반갑게 맞는 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의 정동찬 실장은 관람에 대해 이처럼 자못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며 안내를 시작했다.
3백50만년 전 인류의 발자국 화석
몇걸음 걸어가자 발자국 화석과 함께 옛사람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외모가 유인원에 가깝고 키도 작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갑자기 정 실장이 비틀즈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아저씨가 왜 이러시나….’다들 어리둥절하다. “이 여자가 바로 그 유명한 ‘루시’ 를 재현한 모습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획기적인 전기가 된 화석이지요.”
1974년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서 발견된 루시 화석은 3백만년 전 것으로 밝혀졌는데 발굴된 뼈의 해부학적 구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이미 두발로 걸었음을 보여줬다. 당시 발굴단원이었던 20대의 젊은 고고학자 도날드 요한슨은 오랫동안의 작업에도 결과가 없자 의기소침해 있었다. 어느날 발굴지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뼈 화석을 집어 살펴본 그는 자신이 역사적인 순간에 있다는 사실을 즉각 깨달았다. 이때 숙소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바로 비틀즈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란 복잡한 학명을 지어준 요한슨은 이날의 감동을 잊지 못해 ‘루시’ 라는 애칭도 붙여줬다.
“4년 뒤인 1978년 탄자니아 라이톨리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입니다. 3백6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으로, 이들이 두발로 걸었음을 최종적으로 증명한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정 실장은 루시와 발자국 화석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어떤 화석에는 호모(Homo)라는 속(屬)명을 쓰고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ecus)라는 속명을 쓸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원숭사람’ 이란 뜻입니다. 두발로 서서 걸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외모나 뇌용적이 인간보다는 침팬지에 더 가깝죠. 하지만 그뒤 나타난 호모속의 인류는 겉모습까지 인간에 훨씬 가까운 상태죠. 호모라니까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선 ‘인간’ 이란 뜻입니다. 오해마세요.”
선생님들을 한바탕 웃긴 정 실장은 여러 인류의 두개골 화석을 일일이 가리키며 설명해준다. 2백50만년 전 나타난 최초의 호모속 인류는 본격적으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뇌용량의 팽창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즉 ‘도구를 제작하는 사람’ 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한참을 해골만 보다가 눈을 들어보니 전신의 뼈가 거의 온전히 보전된 화석이 서있다. 거무튀튀한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보존이 잘 됐을까.
“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1백60만년 전 호모 에르가스터(Homo ergaster) 소년입니다. 1984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발굴됐죠.”
구석기인의 맥가이버칼, 주먹도끼
1백90만년 전 등장한 호모 에르가스터, 즉 ‘노동하는 사람’ 은 호모 하빌리스에 비해 현생인류의 모습에 한층 가깝다. 우선 다리가 길어져 키가 훨씬 커진 반면 팔 길이는 오히려 짧아졌다. 또 턱이 축소되고 뇌용적이 커져 두개골 형태도 점차 현생인류에 가까워지고 있다. 석기제작도 한층 정교해졌다. 호모 하빌리스가 대체로 한면을 가공한 둔하고 불규칙적인 석기를 만든 반면 이들은 훗날 석기 주위를 돌아가며 양면으로 가공한 주먹도끼를 만들기 시작했다.
“2백50만년 전 석기공작을 올도완 석기문화라고 부르고 1백50만년 전에 등장한 새로운 기법을 아슐리안 석기공작이라고 합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요즘의 맥가이버칼이에요. 가죽벗기는 것부터 나무 자르기까지 못하는게 없지요.”
보기와는 달리 주먹도끼를 손에 쥐어보면 착 달라붙는 느낌이 대단히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며 전시된 석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포스트모던한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것들도 눈에 띄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드디어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도 인류의 무대가 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북경인과 자바인으로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에 속한다. 아직 화석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반도에 가장 먼저 살았던 인류도 호모 에렉투스였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약 1백60만년 전 호모 에르가스터로부터 갈라져 나온 종으로 생각되는데 연구결과 오히려 현생인류와는 더 멀어지는 쪽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현생인류의 직접적 조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는 석기기술을 더욱 정교화했으며 인류 최초로 불을 사용한 종으로 생각된다.
호모 에렉투스는 가장 오랫동안 번창한 인류로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불과 5만년 전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결국 호모 에렉투스의 마지막 후손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당시 아시아에 막 도착한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와 한동안 공존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자신들보다 훨씬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쫓겨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생인류의 조상은 누구인가.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고(古, archaic) 호모 사피엔스’ 로 불리는 종이 호모 에르가스터에서 갈라져 나와 현생인류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정 실장의 설명이다. 약 80만년 전에 등장한 이들은 뇌용량은 현생인류과 비슷하면서도 몸의 골격은 현생인류와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함께 보여준다. 최근에는 이들을 최초로 발견한 장소인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를 기념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됐는데 약 13만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최신 분자생물학 기법을 동원해 전세계의 사람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현대인의 공통조상은 약 20만년 전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즉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서 고립돼 살던 고 호모 사피엔스 일족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뒤 수만년에 걸쳐 전대륙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오늘날의 다양한 인종은 열대 사바나를 떠난 호모 사피엔스가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생인류가 먼저 정착해 살고 있던 다른 종의 인류를 멸종시켰는지 아니면 피가 섞였는지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최근 분자생물학 연구 결과는 혼혈이 되지 않았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이 아직까지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에 설명을 듣던 선생님들도 새삼 놀라는 눈치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최근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반도 현생인류화석, 북한에 많아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된 석기는 북한 상원 검은모루 유적에서 나왔는데 북한에서는 1백만년 전으로 주장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으로 35만-7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쉽게도 인골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사람들은 현생인류가 아닌 호모 에렉투스로 추정된다. 즉 오늘날 우리의 선조들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 한반도에 도착했을까?
“평양 부근의 석회암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인골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만달인과 승리산인이 대표적인데 약 4만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어떠세요. 친밀감이 느껴집니까?”
정 실장은 두개골을 토대로 재구성한 만달인 얼굴을 가리켰다. 전체적인 인상이 오늘날 우리들과 큰 차이는 없다. 이들 한반도 토착민들은 이후 시베리아에서 이주한 집단과 섞이면서 점차 오늘날 한국인의 정체성을 만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농경이 시작돼 인구가 급증했다. (한국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과학동아 2000년 1월호 특집 ‘첫 한국인은 누구인가’ 참조)
3천5백여년 전에 시작된 청동기 문화 역시 시베리아 등지에서 들어온 집단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충북 제천 황석리 13호 고인돌에서 출토된 인골의 경우 키 1백74cm의 남성으로 보존상태가 완벽했다.
정 실장은 “당시 남자들 평균키가 1백60cm도 안됐으므로 이 남자는 오늘날로 치면 1백90cm 정도인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 라며 “청동검도 함께 출토된 것으로 보아 당시 지배계급이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후 철기문화가 시작되는 기원 전후 무렵에는 오늘날 한국인의 체질적 특징이 뚜렷이 형성됐을 것이다.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광주 신창동 유적은 최대 80cm에 이르는 두터운 벼껍질층과 괭이를 비롯한 각종 농기구들이 대량으로 출토돼 당시 농경문화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전시 코스의 막바지에서 다소 지친 사람들의 눈길을 끈 흥미로운 전시물이 나타났다. 4-7세기의 가야시대에 형성된 김해 예안리 유적에서 출토된 편두인골이 그것이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위지동이전’ 를 보면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하기 때문에 지금도 진한 사람은 모두 편두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만일 이런 사실을 모른채 편두인골을 보면 다른 종의 인류라고 오해할 만 하다.
정 실장은 “가야의 편두풍습은 당시 지배층의 신분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보인다” 며 “고고학자들은 이처럼 역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물을 찾을 때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고 덧붙였다.
전시장 출구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이 모자이크된 호모 사피엔스 인골사진이 걸려있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한 어머니의 후손’ 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인류의 고된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와 이권을 둘러싼 피비린내나는 동족(호모 사피엔스)상잔의 비극이 어서 끝나기를 기원해 본다. 3월 15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5월 30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