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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영화의 완성도, 과학자가 책임진다

스토리 전개 위해 과학적 사실 희생하기도

 

세계적 과학전문지가 최근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주목했다.


세계적 과학전문지가 최근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주목했다. ‘네이처’가 지난 2월 19일자에 ‘니모를 찾아서’의 자문과학자 아담 서머스 박사에 대한 특별인터뷰를 실은 것이다.

니모를 찾아서는 올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픽사와 디즈니가 3억4천만달러(약 3천8백억원)를 들여 함께 만든 블록버스터로 지난해 전세계에 열풍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니모를 찾아서뿐 아니라 ‘쥬라기 공원’ ‘딥 임팩트’ ‘아마겟돈’ ‘콘택트’ ‘체인 리액션’ 등의 영화에서도 자문과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다양한 영화에서 활약한 자문과학자들을 만나보자.

어류학자의 자문 돋보인 니모
 

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과학자문을 맡은 동물학자 아담 서머스 박사.


특히 니모를 찾아서는 많은 해양생물학자들도 높이 평가할 정도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제작됐다. 이처럼 호평을 받게 된 데는 자문과학자 아담 서머스 박사의 공로가 컸다. 현재 미국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대 조교수인 그는 니모를 찾아서를 자문하기 전까지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2000년 초 서머스 박사가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어류 생체역학 분야에서 박사후 과정(postdoc)을 밟기 시작했을 때였다. 대학 근처에서 셋방을 구했는데, 우연히도 집주인이 에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아트디렉터였던 것이다.

당시 픽사는 물고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나리오를 막 승인했고 감독과 제작자는 다급하게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어했다. 서머스 박사는 집주인의 소개로 픽사 스튜디오에 갔다. 감독겸 작가인 앤드류 스탠턴을 비롯한 영화 제작팀에게 어류의 이동방법, 습성, 생리, 색깔에 대해 강의했다.

특히 제작팀은 깊은 바다에 사는 아귀(anglerfish)의 생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는 어둡기 때문에 어류의 시각이 큰 도움이 못된다. 아귀의 조그만 수컷은 커다란 암컷이 분비하는 물질인 페로몬의 냄새를 쫓다가 암컷에 들러붙어 기생한다. 이 내용은 실제 니모를 찾아서에 등장한다.

이후 서머스 박사는 픽사로부터 본격적인 자문 요청을 받았다. 어류의 유영역학에서부터 사회적 습성에 걸친 대략 20개의 강의를 계획했고 몇군데에 임시 실험실도 마련했다. 영화제작팀은 서머스 박사의 도움으로 물고기 비늘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색깔을 내는지, 물고기 턱이 어디까지 움직이는지 실험해봤다.

물론 모든 자문을 서머스 박사가 혼자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전문지식을 벗어나는 분야에서는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었다. 고래, 파동역학, 해파리 이동방법, 분류학 등에 대해서는 관련 과학자들이 강의했다.

니모를 찾아서에는 물고기를 삼킨 고래 내부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제작팀 가운데 로빈 쿠퍼가 서머스 박사와 함께 노력한 덕분이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가로 밀려와 죽은 회색고래의 입과 숨구멍 속으로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밀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쿠퍼는 고래가 뿜어낸 고약한 냄새를 뒤집어쓰기도 했다고 한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도 자문과학자가 어쩔 수 없이 허용한 ‘옥의 티’가 있다. 가장 큰 것은 고래 입으로 들어갔던 물고기가 숨구멍으로 나오는 설정이다. 사실 고래의 입과 숨구멍은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머스 박사도 이런 설정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물고기 부자(父子)의 극적인 상봉을 위해 그대로 밀고 나갔다.

영화처럼 살다간 자문과학자
 

지구와 혜성의 충돌을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 ‘딥 임팩트’의 한 장면.


지난 1월 13일에는 ‘2004AS1’이라는 소행성이 처음 발견된 순간 36시간 내에 북반구를 강타할 가능성이 25%로 추정되는,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히 발견 9시간 후 추가 관측이 이어지자 이 추정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소행성은 1천2백만㎞나 지구를 비껴갔다고 한다.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소행성이나 혜성의 지구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다. 1998년에는 이같은 가능성을 소재로 한 SF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가 나란히 전세계를 휩쓸었다. 이 두 영화 역시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 아래 제작된 작품이다.

딥 임팩트는 유진 슈메이커를 비롯한 많은 혜성 전문가들의 자문 덕분에 혜성의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유진 슈메이커 박사는 1994년 목성과 충돌했던 ‘슈메이커-레비9’ 혜성을 발견함으로써 혜성이나 소행성이 행성과 충돌하는 현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 장본인이다. 슈메이커-레비9 혜성은 반지름 10km 정도의 조각 21개로 부서진 후 목성에 충돌하면서 목성 대기에 지구보다 2배나 큰 구멍을 만들었다.

슈메이커 박사의 이력은 ‘극적인’ 충돌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의 박사논문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미티어 크레이터’(Meteor Crater, 운석공)가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에 의해 생겼다는 연구였다. 그는 달의 크레이터도 소행성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달에 가서 지질 탐사를 하고 싶어했다. 슈메이커 박사는 아내인 캐롤린 슈메이커와 함께 슈메이커-레비9 혜성을 비롯한 30여개의 혜성과 8백여개의 소행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슈메이커 박사는 영화 딥 임팩트가 개봉되기도 전인 1997년 7월 호주에서 충돌 크레이터를 조사하던 중에 자동차사고로 죽었다. 그의 유해는 화장된 뒤 미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선 ‘루나 프로스펙터’에 실렸다. 1999년 루나 프로스펙터가 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달 남극 근처의 한 크레이터에 충돌하면서 그의 유해는 인류 최초로 달 크레이터 속에 묻히게 됐다.

슈메이커 박사가 지름 11km짜리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고 설정한 영화 딥 임팩트를 자문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마겟돈 역시 NASA 출신 연구원들이 자문했다. 하지만 아마겟돈의 소행성 묘사는 딥 임팩트의 혜성 묘사보다 엉성한 점들이 많다. 지름이 9백km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소행성이 불과 18일 전에야 발견된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 지구 근처에서 발견되는 이 정도 크기의 소행성은 ‘세레스’가 유일하다. 물론 세레스는 항상 추적의 대상이다.

아마겟돈에서는 소행성에서의 중력 묘사도 일관성이 없다. 우주비행사들의 움직임은 지구에서와 비슷한 반면, 우주자동차 ‘아르마딜로’는 중력이 작다면서 천천히 떠다닌다. 소행성마다 중력이 다르긴 하겠지만, 하나의 소행성에서 중력이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소행성이나 혜성의 묘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딥 임팩트가 아마겟돈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SF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국의 칼 세이건 박사 원작의 영화 콘택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세이건 박사는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이자 과학저술가였다. 그는 생전에 외계 생명체를 찾는데 열정을 받쳤고 원작소설 콘택트에도 전파를 통해 외계 문명과 교신하려는 노력을 담아냈다. 소설이 나온지 10년 만에 영화화됐고 세이건 박사는 영화의 자문을 맡았다.

칼 세이건의 꿈 담은 영화 ‘콘택트’
 

영화 ‘콘택트’의 원작자로 자문도 맡은 칼 세이건 박사.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이자 과학저술가였다.


사실 원작소설 콘택트도 다른 과학자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세이건 박사는 미국 코넬대 교수 시절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여주인공이 먼 별로부터 탐지한 이상한 전파신호의 내용이 우주공간을 통해 먼 별로 여행하게 해주는 ‘기계’에 대한 설명이라는 설정이 나온다. 세이건 박사는 이 기계를 우주에 벌레구멍처럼 뚫린 웜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과학적으로 타당한지를 확인받기 위해 친구이자 관련 전문가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킵 손 교수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손 교수는 이를 계기로 웜홀이 먼 우주로 여행하는 통로나 타임머신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그 해결책을 찾아냈다. 어느 정도 소설 콘택트의 설정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원작이 탄탄한 과학적 배경을 가진 콘택트의 경우도 영화에서는 몇가지 허점이 발견된다. 대표적 예가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헤드폰으로 우주전파를 듣는 장면이다. 우주전파는 가청주파수가 아니기 때문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설정이다. 물론 세이건 박사는 이런 설정에 반대했지만, 이 장면은 외계신호에 귀기울이는 과학자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삽입됐다는 후문이다.

한편 첨단 물리학이론을 비중있게 다룬 영화도 있다. 바로 키아누 리브스와 모건 프리만이 출연한 블록버스터 체인 리액션이다. 이 영화는 음파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바꾸는 현상인 ‘음파발광’(sonoluminescence)을 소재로 했다. 물론 제작진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았고, 영화 촬영도 사실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1995년에 미국 시카고 부근 아르곤국립연구소에서 진행됐다.

음파발광은 지금도 핫이슈다. 지난 3월 3일 ‘뉴욕타임스’는 물리학전문지 ‘피지컬 리뷰’에 곧 실릴 예정인 음파발광 관련 최신 실험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렌셀러공대의 리처드 라헤이 박사와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루시 테일야칸 박사가 머그잔 크기의 시험관에 초음파를 쏘자 작은 기체방울이 생겼다가 터지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다는 내용이다.연구팀은 이를 핵융합반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화 체인 리액션의 설정은 다소 과장돼 있다. 영화에서는 음파발광을 이용해 막대한 에너지를 얻는다고 설정이 돼 있지만, 사실 이 현상으로는 엄청난 음파 에너지를 쓰더라도 나오는 에너지는 고작 커피 한잔을 데울 수 있는 정도라는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영화의 이야기 전개 때문에 불가피하게 과장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과학자 일방주장 반영하기도
 

쥬라기 공원 2편과 3편을 자문한 고생물학자 존 호너 교수. 호너 교수는 티라노사우르스를 무시무시한 공격수가 아닌 시체 사냥꾼으로 보고 있는데, 영화에도 그의 이같은 견해가 반영돼 있다.


자문과학자의 역할이 컸던 영화 가운데 쥬라기 공원 시리즈도 빠뜨릴 수 없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대중을 위한 ‘공룡학술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최신의 공룡연구결과를 담아 왔다.

특히 2편과 3편을 자문한 핵심과학자는 미국 몬타나주립대의 고생물학자인 존 호너 교수다. 호너 교수는 1970년대 말 ‘마이아사우라’라는 초식공룡이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모습의 화석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쥬라기 공원에서는 공룡이 자식사랑으로 가득한 동물로 그려진다. 2편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새끼를 찾아 섬 전체를 뒤지고 3편에서 벨로시랩터가 알을 찾아 인간을 뒤쫓는 설정은 그의 자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편을 기획하던 당시에는 실제 티라노사우루스 부모가 새끼 2마리와 함께 있는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호너 교수의 자문 덕에 일반인에게 낯선 장면도 등장한다. 3편에서 독특한 입모양에 반달형 등판을 한 공룡 스피노사우루스가 등장해 티라노사우루스를 처참하게 무찌르는 설정은 다소 과장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티라노사우루스는 최강의 육식공룡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호너 교수는 티라노사우루스를 한낱 ‘시체 사냥꾼’이라고 보는 학자다. 그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가 초식공룡을 사냥해 잡아먹은 것이 아니라 시체를 뜯어먹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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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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