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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다살이' 낸 강원대 권오길 교수

저절로 쓰여지는 것은 없더라

“소나무 하나도 그냥 지나쳐볼 일이 아니다. 자연에 흐드러지게 숨어 있는 비밀이 곧 자연 법칙인 것이니 하는 말이다. … 늘 푸름을 자랑하는 만취(晩翠)의 소나무에는 영양소와 함께 우리의 넋이 들어 있고, 조상의 혼백이 스며 있다.”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p.205­208)

문학가의 작품처럼 유려한 문체를 지닌 이 글은 달팽이 박사로 유명한 권오길 교수가 쓴 ‘사람과 소나무’의 일부다. 과학자의 글이 국어교과서에 실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사실 권 교수는 과학수필가로 불릴 만큼 소문난 글쟁이다.


강원대 권오길 교수


난 글을 쓰지 않으면 아픈 사람

‘사람과 소나무’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소나무의 관계를 잘 엮은 글로서, 생활 속에서 과학적 소재를 끌어내는 그의 솜씨가 돋보인다. 생물에세이 ‘사람과 소나무’가 실린 책 ‘생물의 다살이’ 개정판이 최근에 나왔다.

생활 속의 어떤 일이든 과학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고, 그래서 한가지 주제를 잡으면 책 한권은 거뜬하게 엮어낼 수 있는 사람. 강의실에 들어서면 입담 좋은 이야기꾼 마냥 학생들이 잠깐도 한눈을 팔 수 없도록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 사람. 권 교수가 가진 말과 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늦가을 낙엽이 질 무렵 찾아간 그의 연구실 책상에는 뜻밖에 문학, 역사 책들로 가득했다. 막 도착한 주문도서도 ‘마담 보바리’인 것을 보니 과연 예사롭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습니다. 가리지 않고 읽지요. 과학은요 생활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입고 하는 곳에 과학이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들어있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과학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과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굳이 과학대중화라고 할 것도 없이,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는 과학적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만약 과학을 특별한 주제로 한정시켜 생각했다면 지난 10여년 동안 4백50회가 넘게 강원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생물이야기’ 칼럼 같은 것은 당초 불가능했을 일이다.

권 교수는 글을 쓰는 것은 아픈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글을 쓰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글쓰기를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지독한 문자 중독증이지 뭐야!

‘눈을 끄는 단어 & 문장’은 그가 만든 아주 특별한 스크랩북이다. 권 교수가 평소 여기저기서 읽은 글에서 좋은 단어와 문장을 옮겨 적거나, 책을 읽다가 베껴 쓰거나, 신문과 잡지에 실린 내용을 오려 붙인 것이다.

권 교수는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노트를 보여준다고 한다. 좋아하고 가치있는 것을 모으고 정리하는데 인색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는 가르침이다.

마치 문자에 중독된 사람처럼 글을 탐하던 권 교수는 결국 두눈에 이상이 생겨 얼마전 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이 다시 두눈을 멀쩡하게 돌려놓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찾은 사람들이 게시판에 남긴 글에 직접 일일이 답글을 단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새로 발견한 달팽이의 이름을 묻는 초등학생의 질문에서부터 대학원 진학과 졸업 후의 진로를 상담하는 재학생의 글까지 하루에도 수십개의 글들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올라온다. 그렇게 주고받은 게시판의 글만도 1만여개에 이른다.

사실 생물학은 많은 학생들이 망설이는 전공 중 하나다. 생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라도 막상 전공을 선택하는 시기가 오면 여간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생물학이 자연과학의 기초로서 다른 분야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생물학 연구란 하나의 생명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는 과정이니, 이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이 또 있겠냐고 자랑한다.

과학을 노래하는 시인이고 싶어

권 교수는 류시화의 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 나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시를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을 이 대목에서 권 교수는 무릎을 쳤다. 물고기의 형태를 설명할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비목(比目)은 광어, 도다리 등 가자미목에 속하는 물고기를 말한다. 물고기의 눈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것을 외눈박이 물고기라고 표현한 것이다.

시, 소설, 수필…. 권 교수는 생물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것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생활 속에서 나온 글일 뿐 아니라, 가르치면서 저절로 우러나온 글이라는 점에서 과학지식의 전달만을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꿈꾸는 달팽이’‘생물의 죽살이’‘생물의 다살이’‘생물의 애옥살이’ 등 그가 쓴 책이 한결 같이 사랑을 받는 이유도 바로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자연스러움과 친근함 때문일 것이다. 권 교수는 원래 물고기 연구로 생물학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달팽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재미있다.

어느날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이라는 잡지를 보는데, 그곳에 나온 달팽이 사진이 너무 예뻐 보이더라는 것이다. 달팽이집의 고유한 띠가 달팽이가 살아온 세월을 머금고 있는 아름다움에 그만 홀딱 반해버린 것이다. 그 이유 하나로 달팽이 연구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해서 달팽이의 형태와 식생 연구에 한평생을 바쳤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펴낸 ‘한국동식물도감 연체동물편’은 지금도 이 분야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권 교수는 1년반 남짓 후에 정년을 맞게 되면 시와 소설을 쓸 생각이다. 과학성이 있는 문학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달팽이처럼 천천히그러나 뚜렷하게 자신의 족적을 남겨온 권오길 교수. 생물학과 더불어 산 그의 일생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될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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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일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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