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사는 여러 생물 중에서 정서적, 의식적으로 인간과 교감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개는 대단히 특별한 동물이다.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개만이 가진 이 독특한 능력은 과연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개의 조상은 늑대다. 1만여년 전부터 인간이 늑대를 가축으로 키우면서 점차 개로 진화돼 왔다. 개가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이 인간과 같이 생활하면서 얻게된 획득 능력인지, 아니면 우두머리 늑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던 사회적 동물인 늑대의 본능이 개에게 유전돼 지금까지 내려온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개의 능력에 대한 흥미 있는 연구결과는 지난 몇년 간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늑대, 개, 침팬지 중 단연 개가 모든 힌트를 가장 잘 알아들었다. 높은 지능과 정교한 사회적 의사 전달 능력이 있는 영장류인 침팬지보다 개의 눈치가 더 빠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선천적으로 눈치 빠른 애완견
2002년 11월 22일자 ‘사이언스’에는 늑대와 강아지를 비교한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미 하버드대 인류학과 브라이언 해어 교수 연구팀은 사람이 기른 늑대와 태어난지 불과 몇달 지나지 않은 강아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음식물을 숨겨놓고 눈짓, 손짓, 살짝 건드리기 등의 힌트를 줬다. 그 결과 사람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강아지가 사람이 기른 늑대보다 오히려 사람의 말을 더 잘 알아들었다. 즉 가축화의 긴 여정을 통해 사람의 말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개체들이 선발됐으며, 이런 탁월한 능력이 개의 유전자에 남게 된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렇다면 개들끼리의 대화는 어떻게 이뤄질까. 개에게는 냄새 맡기가 개의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람의 경우에도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성들의 월경 주기가 같아지는 현상이 페로몬 때문이며, 남녀 간 민감한 끌림의 배후에는 잘 의식하지 못하는 냄새 성분의 화학작용이 있다는 학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후각이 사람 간 의사소통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쓰인 예는 별로 없다.
낯선 개들이 야외에서 만나면 일차적으로 원거리 탐색을 한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일단 가까이 다가서면 상대방 항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이는 사람의 악수와 같은 행위다. 사람들이 악수를 하면서 손가락의 굵기나 결혼 반지의 유무, 손아귀 힘의 강도로 성격이나 기혼여부를 짐작하듯이, 개들도 항문의 냄새를 맡아 상대방의 건강 상태, 정서적 안정도, 성적인 성숙도 같은 정보를 단번에 읽는 것이다.
항문 탐색이 끝나면 몸의 다른 부위의 냄새도 맡아본다. 타액이나 대소변, 생식기, 꼬리에서도 페로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특히 소변의 페로몬으로는 상대방이 암컷인 경우 수태중인지,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 촌수인지를 알아낸다. 또 수컷인 경우 조직 내 서열, 힘, 번식력, 나이를 알아낸다. 수캐는 영역 표시를 위해 주변에 자기 냄새를 소변으로 흩뿌리는데 몰두한다. 또 암캐는 발정기에 소변을 자주 보며 수컷을 유인한다. 눈먼 개들도 사람이나 다른 개들을 냄새로 알아보고 서로 간에 영역을 지키며 어려움 없이 번식한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비록 무의식적이지만 후각이 개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인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의 경우 엄마가 되면 아기의 우는 소리가 배고픔 때문인지 아니면 아프기 때문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개도 마찬가지다. 한번에 새끼를 여러마리 낳은 개도 울음소리로 강아지들을 구별한다. 젖 달라고 낑낑거리는 소리가 어미의 유선을 자극해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젖이 나오게 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사람에게만 낑낑거리는 까닭
개가 내는 소리는 컹컹 짖는 소리(bark), 긴 울음소리(howl), 날카롭게 짖는 소리(yelp), 좋아서 낑낑거리는 소리(moan), 구슬프게 끙끙대는 소리(whine)로 구분할 수 있다. 아프리카 피그미족이 사냥개로 데리고 다녔다는 짖지 않는 개 바센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개는 늑대에 비해 대단히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사람들이 가축으로 기를 때 집 잘 지키는 개를 선호했기 때문에 잘 짖는 개가 선택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잘 짖는 개도 인간이 만들어낸 셈이다.
정서에 따라 음색과 음정의 높낮이도 다르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외침, 내 영토라는 주장, 이리 오라는 요청, 집에 들여보내 달라는 부탁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긴 울음소리는 늑대가 야생에서 사냥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원거리 통신수단이다. 외로움의 표시, 사냥을 위해 무리를 모을 때, 다른 무리에 대한 경고, 사냥에 성공한 뒤 자축할 때 등 여러 경우에 내는 긴 울음소리의 음의 높낮이가 모두 다르다. 현재 허스키, 마라뮤터, 하운드, 도벨만과 같은 품종에 이런 울음소리가 일부 남아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개에서는 가축화되는 과정 중에 사라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반해 좋아서 낑낑거리는 소리는 인간에 의해 길러지면서 만들어진 소리다. 강아지 때 낑낑거리던 소리가 자란 뒤에도 남아있는 것이다. 개끼리는 낑낑거리지 않고 오직 사람을 대할 때만 이런 소리를 내는데, 애정이나 음식을 바라는 의미로 판단된다. 오랜 기간 동안 가축화되면서 강아지처럼 낑낑거릴 때 보상이 있거나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내 기분을 알아줘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경우 감정 변화가 얼굴 표정에 나타나는 것처럼 개도 마찬가지다. 털이나 꼬리, 또는 몸 전체의 자세를 바꿔 자신의 정서 상태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르는 애완견이 어떤 기분인지를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표정이나 자세의 변화가 거의 없는 품종도 있다. 독일의 로트바일러는 무표정한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공격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경비견으로 활약한다.
개가 사람을 볼 때 처음에는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눈을 마주본다는 것은 권위를 가진 교감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사람의 표정 변화에 따라 굴종의 자세를 취하거나, 장난스런 표정으로 변하면서 눈길을 피해 놀거나 한다. 개들끼리도 서열이 높은 개가 서열이 낮은 개의 눈을 응시하면 서열이 낮은 개는 눈을 피하고 목을 아래로 떨구면서 굴종의 자세를 취한다. 한편 셰퍼드처럼 훈련받은 개는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자세로 바꾼다. 이는 마치 사냥할 때 신분이 낮은 늑대가 자신의 위치를 지정해줄 것을 기다리면서 우두머리 늑대를 응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집에서 기르는 개들의 경우 위계질서에서 사람을 높은 서열에 두며, 한집안 식구라도 등급을 정해놓고 대한다. 집안의 가장과 꼬마들을 구별할 줄 알고, 손님도 사회적 신분에 따라 경계해야 할 사람과 만만하게 마구 짖어도 되는 사람, 반겨야 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구별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인 늑대의 혈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개는 본능적으로 위계질서를 인식하는 천부적인 능력이 발달해 있는 듯하다.
개의 선조 늑대는 중국에 살았다?
야생 늑대가 언제부터 가축화돼 개로 진화됐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자에 따라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인다. 고고학적 유물연구에 따르면 1만2천-1만4천년 전으로 추정되나 DNA 염기서열 연구에 따르면 1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한다.
어느 지역 늑대가 가장 오래된 개의 선조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에는 소아시아 지역의 소형 아라비아 늑대가 사람들에게 길러진 후 전세계로 퍼졌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와 늑대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 비교연구에 따라 중국 늑대가 개의 선조라는 설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 서식 범위가 넓은 늑대가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었을 당시 각 지역 늑대들이 사람에 의해 길들여져 다양한 개의 조상이 됐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개로 가축화되면서 많은 변화가 수반됐다는 것이다. 형태 변화가 그 중 두드러진다. 뇌의 용량이 20-30% 정도 감소했고 주둥이가 짧아졌으며 꼬리가 들리거나 말리게 됐고 귀가 커졌다. 전반적으로 유아기 때의 모습이 성장해서도 남아 있는 현상을 보인다. 성품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나타나 강아지 때 까불고 노는 습성이 어른이 된 뒤에도 남는다. 즉 덩치 큰 개의 성품이 어린 늑대 강아지와 비슷하다.
이런 변화들과 병행해 개는 사람을 대할 때 겁이 없어지고 사람과의 쌍방향 의사소통이 좀더 자유로워졌다. 덕분에 개는 사람들의 생활에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즉 인간이 여러가지 목적에 따라 개의 능력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현재의 개는 결국 인간이 그들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동물인 셈이다.
사냥개만 봐도 냄새로 사냥감을 추적하는 냄새 사냥개인 브러드 하운드, 사냥감을 보면서 따라잡는 시각 사냥개인 그레이하운드, 풀숲에 숨은 새를 찾아내 몸동작으로 지시하는 포인터, 물에 떨어진 사냥감을 회수하는 수영 전문가 레트리버, 여우 굴속에까지 들어가는 여우 사냥의 명수 닥스하운드 등 수없이 많은 이름을 나열할 수 있다.
사람을 돕는 개들도 있다. 일생동안 시각 장애인의 눈이 돼주는 맹도견, 청각 장애인을 위해 위급할 때 대신 듣고 알려주는 청도견, 마약이나 폭발물을 탐지해서 알려주는 탐지견 등이다. 이처럼 특수한 용도의 개가 되기 위해서는 강아지 때 엄선돼 특별한 훈련 과정을 거친다. 맹도견은 어떤 상황에서도 시각 장애인을 위급한 상황에 혼자 남겨놓고 독자적으로 활동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상당한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 때때로 셰퍼드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사람과의 친화력이 뛰어나면서 점잖은 레트리버가 주로 맹도견이 된다.
인간이 기르는 동물 중 소는 그 용도가 우유와 고기생산 뿐이며, 돼지는 고기, 닭은 고기와 계란 생산이 사육이유의 거의 전부인 것을 감안하면 개는 인간 생활과 정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나 말, 돼지로 대표되는 경제동물과 달리 개가 반려동물로 대우받게된 주된 이유는 개와 사람 사이에 가능하게 된 쌍방향 의사소통이 그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