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는 흥미 느끼는 분야로
현-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사회는 어김없이 대학입시라는 홍역을 앓게 됩니다. 자신의 일생이 이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된다고 믿고 있는 학생 개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학부모들과 교사도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로 지원할까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요. 그런데 특히 이공계의 경우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 학과에 흥미를 못느끼거나 적성이 맞지 않아 실패를 맛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아마도 자신의 진로를 지나치게 점수위주로 결정하는데 따른 폐단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는 학생 개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로서도 큰 손실이지요. 따라서 이들에게 올바른 진학 지도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진로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아는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적성을 안다는 것이 쉽게 이야기되지만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적성은 마치 타고나는 것처럼 생각 하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 널리 펴져있는 것같아요. 사실은 적성은 교육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됩니다. 굳이 에디슨의 예를 들 것도 없겠지요. 적성은 성적과 달라 영어를 잘 한다고 영문과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노력여하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적성계발이 대학교로 미루어지고 있는 형편이지요.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학생 상당수가 과를 바꾸려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인문사회계열 보다 이공계열에서 이런 실패가 많다고 합니다.
한편 자신의 전공분야를 바꾼 사람중에 성공한 예가 많다는 지적도 있읍니다. 그만큼 자신의 적성이 맞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간 셈이지요. 이웃집에 살던 학생의 예입니다. 영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3년동안 줄곧 수석을 치자하던 이 학생은 졸업후 미국 코넬대학의 수학과에 진학했읍니다. 그런데 나중에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더군요. 자신의 적성이 수리경제학, 그중에서도 경영학과 관련된 분야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던 겁니다. 이것은 스스로 적성을 무한한 가능성을 계발한 사례라고 봅니다. 학생들은 갖고 있으며 스스로 그것을 찾아가는 거지요. 따라서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적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겠지만, 성적보다는 우선 자신에게 흥미있는 분야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인생의 승부처 아니다
박-요즘 가장 좋은 점수를 가진 학생들이 서울대 물리학과를 지원하는 모양입니다. 그 문제의 학과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충고가 있읍니다. 물리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다 아인슈타인쯤 되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1학년 1학기때 벌써 그렇게 못될 것을 알아차렸읍니다만, 결과적으로 볼 때 대학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던 사람이 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더란 이야깁니다.
물리학과의 동기생 가운데 6명이 현재 교수가 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중 1명만 물리학과에 남았고 나머지는 건축 행정 역사 천문 공학 등으로 진출했다는 것입니다. 각자 나중에 자신의 적성을 찾은 셈이지요. 아뭏든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인기학과를 따지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우수한 인력이 몇 군데로만 몰린다면 손실이 초래될 것입니다. 따라서 너무 인기학과에 집착하지 말고 남이 안하는 분야를 공략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남이 무어라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자세도 필요할 것입니다. "Science for its own sake"란 말도 있지만 요즈음은 '과학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직업을 위한 과학'이 돼버렸다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고등학교 대학교 할 것 없이 학교 자체에 유연성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구조적 문제점이라 생각됩니다.
한-우리나라에선 대학을 인생을 결정짓는 승부처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같아요. 선진국에선 반대로 대학을 교양과정 위주로 개편해가는 추세입니다. 대학은 인생의 미래를 다지는 곳이란 인식에서이지요.
이렇게 볼 때 진로를 선택할 때는 여유를 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적성도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변화의 여지가 없는 응용분야를 택하는 것보다는 넓은 가능성이 있는 기초분야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는 지질학과 대학원생을 모집할 때 지질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자격을 준 일이 있었읍니다. 물리나 화학 전공자가 지질학 전공자보다 더 유용하게 쓰일 것이란 생각에서 였지요.
미국뿐 아니라 영국도 다학문적 경험을 우대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나라 일본은 이런 면에서 너무 폐쇄적이지 않은가 합니다. 과를 옮기는 것을 무슨 큰 죄나 짓는 것처럼 바라보거든요.
기초분야에서 얼마전 화학의 진출분야를 조사해 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시장이 넓다는 사실을 알아냈읍니다. 예컨대 병원의 요리사나 빵가게로부터 쓰레기처리장에서도 화학 전공자를 요구하고 있더군요. 요즘은 수학분야도 의외로 넓은 응용분야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전자공학과의 함정
박-한박사님이 말씀하신 적성이란게 특별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나아가 저는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것조차 무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나디. 차라리 대학에 가서 구분하는 것이 좋겠지요. 재미있는 것은 저 자신이 이과에서 출발해 문과로 가서 그런지 자식들에게는 문과를 시키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명 모두에게 이과를 하라고 권합니다. 수학 등을 잘하기 때문이죠. 편견인지 모르지만 이과공부를 잘하는 게 결국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과공부를 하다가 문과로 옮기는 것은 가능하고 오히려 더 잘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는 어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기초과학분야가 응용번위가 넓다는 것은 명확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요즘의 학문은 세분화와 전문화의 길로 치닫고 있읍니다. 전자공학은 그 대표적 예라고 하겠지요. 전자공학이 앞으로 매우 유망하리라는데는 이의가 없지만 두가지 정도의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학문적으로 뚜렷한 공을 세워 학자로서 성공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전자공학에 모두 모여든다면 일종의 낭비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오히려 중간정도의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많이 지원해 전자산업의 일군으로 기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한가지는 과학과 공학의 일반적인 차이겠지만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공학 일수록 응용분야가 좁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일단 전자공학에 갔다가는 다른 분야로 빠지기 어려운 위험이 있읍니다. 물론 전자공학이 단기적인 전망이 좋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20년후 지금의 고등학생이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할때 어떠허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겠지요. 학문, 특히 자연과학은 시대에 따라 급변해온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꼭 우리나라만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소위 인기학과라는 것이 시대적 상황과 함께 변천해 왔읍니다. 한때 석유 화학공업의 대두와 함께 화학공학과가 각광을 받았고, 중동건설붐은 토목공학과를, 그리고 조선입국의 기치와 함께 조선공학과가 인기를 누렸지요. 최근에는 첨단과학의 붐에 따라 유전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관련 학과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있읍니다.
그런 '인기'가 전에는 '유행'에 그쳐버린 경우도 있었읍니다. 처음 조선공학과가 각광을 받았을 때도 졸업할 때에는 일자리가 없어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던가 대개는 중학교 수학선생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읍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의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을 보더라도 전자 기계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가장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측하는 것을 보면 커트라인이 높고 경쟁이 심한 인기학과가 일단 잠재성이 있다고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보입니다. 단지 현재의 입시생들은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21세기의 사회적 요구와 학문의 발달을 내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초과학하면 밥굶는다?
한-그런 예측이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만 당장 학과와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몇가지 기본적인 지침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제 생각으론 우선 정말 학문을 하고 싶다는 학생이라면 기초과학쪽을 택해 꾸준히 연구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기초를 다져 놓으면 나중에 응용과학이나 공학분야로 옮기기도 수월하지요. 반면에 단순히 직업을 택하거나 빠른 사회진출을 원한다면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전자공학 유전공학 기계공학 등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기서 기초 과학을 택할지 응용과학을 택할지는 각자의 사정에 달려있겠지만 학교 성적도 좋은 판단자료가 됩니다. 예컨대 수학이나 과학 등 기초과학 쪽이 우수하고 흥미가 았다면 기초분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현-과학기술처가 입안한 장기계획에서도 2001년까지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15만명 양성하겠다고 밝혀놓고 있는데, 현재 4만 6천여명이 확보돼 있죠. 따라서 공급이 상당히 달리고 있는 셈인데 그만큼 전망이 밝다는 얘기도 되겠지요.
한-저희 연구소 앞에 럭키금성연구소가 생겼는데, 그곳 책임자가 하는 말이 지금 기초연구를 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기초과학을 한 사람은 기본적인 사고가 돼 있어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거지요. 지금으로선 대학쪽에 기초연구인력을 뺏기고 있는 형편이지만 앞으로는 기초과학 연구원을 많이 채용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현선생님께서 2001년까지 양성해야 할 고급 과학기술인력 중 현재 4만6천명 정도가 확보돼 있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조사한 바로는 현재 석사학위자 이상의 인력을 매년 1만5천명 정도밖에 양성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게다가 그중 상당수가 해외유학으로 빠져나가고 있지요. 따라서 15만명을 충당하자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과기처도 이런 인력수급의 문제가 고민거리인 모양인데, 얼마전 대학원의 정원을 늘리자는 의견을 내 제가 반대한 적이 있읍니다. 물리학과의 경우 전국 평균을 내보면 교수 1인당 1백27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어서 많은 강사가 동원되는 형편인데 대학원생이 늘어나면 그 수자가 2백, 3백명이 될 위험성이 있다는 거지요. 아뭏든 기초과학분야의 시장은 앞으로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읍니다.
정-많은 기성세대가 "기초과학을 하다가는 밥굶는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그런면도 없지 않았읍니다. 기초과학중에서도 물리학, 화학, 수학 그리고 최근에는 생물학이 부각되고 있지만 다른 분야는 아직도 큰 전망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있읍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교사들도 학생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확실한 장래를 에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점수를 바탕으로 진로지도를 하는 것이겠지요. 그 방법이 그래도 편리하고 무난한 방법일테니까 말입니다.
기초과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들 모두가 성공 할 수는 없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가운데 일부만이 성공하기 따련이지요. 따라서 어떻게 본다면 자신의 능력에 비추어 쉽게 포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하겠읍니다.
쓸데없는 자존심 버려라
박-올해부터는 입시제도가 또 바뀌어 학력고사를 보기 전에 지원을 하게 되어 어떨지 모르겠읍니다만, 작년까지만 해도 좋지 못한 풍조가 있었지요. 자존심과의 싸움이 그것이었지요. "이 점수라면 이 학과에 갈만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점수는 낮아도 저 학과로 가는 게 좋을 듯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남들이 그 정도의 점수밖에 안되는 걸로 볼테니 곤란하다" 는 식입니다. 3백점을 맞았는데 2백50점짜리가 들어가는 학과를 지원할 수 있겠는냐는 거였죠. 이런 자존심을 극복 못해 가지곤 진로지도는 무용지물 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사실 얼마전에 물리학과 3학년에서 지구과학자로 전과한 학생이 있었는데 주위에서는 '좋은 과'에서 '나쁜 과'로 가는 것을 만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은 취미가 있어 지구과학과로 온 것이고, 거기서 지구물리학을 전공해 지금은 미국에 유학중입니다.
한-진로를 정하는데는 학무모의 권유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어느 학생은 고등학교때 성적이 매우 뛰어났는데, 히 수학과 컴퓨터에 상당한 자질이 있었읍니다. 그런데 진학은 경영학을 택했거든요. 그래서 알아보니 아버지가 모회사의 사장이었고, 어머니도 못지않게 아버지의 후계를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여학생의 과학계 진출 밝은 전망
현-요즘 이공계 지망생 가운데는 여학생도 상당수됩니다.
이들은 앞서 과학계에 진출한 선배도 별로 없고, 사회와 가정의 몰이해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고 듣고 있읍니다.
제가 알기로는 미국이 남녀 문제에서는 비교적 공정한 편이지만 아직도 여성들에게는 여러가지로 제약이 많다고 합니다. 취업기회도 좁고 설사 들어가서도 여러가지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전에 KIST의 경우는 아예 규정으로 여성 연구원을 쓰지 않도록 못박아 놓았읍니다. 그러나 요즘엔 여성과학자와 연구원이 꽤 많이 활양하고 있지요. 이처럼 과학계의 여성진출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여성들도 동등하게 대우못받을 각오는 하고 헤쳐나가야 할 겁니다.
한-주변에서 보면 여성들이 특히 화학분야에 진출하는 예를 많이 볼 수 있읍니다. 취직의 문도 꽤 넓게 열려 있는 것같습니다.
현-컴퓨터쪽도 여성에 대한 수요가 커 전망이 밝다고 봅니다. 프로그래밍, 시스팀 어낼리시스트 등에서 여성들이 남성이 못따라가는 재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종종 발견할 수 있지요. 이것은 외국에서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보입니다.
박-어느면에서는 과학계가 여성이 진출하기엔 더 낫지 않는냐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회적 차별이 오히려 문과쪽 보다는 덜한 편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여성들이 대개 문과공부를 선호했지만 실상 직장을 얻고 활동하는데는 과학계가 더 유리한 것 같습니다.
한-학생들의 진로와 관련해서 제가 몇가지 조사해 본 것이 있읍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의 국민성을 비교해 보았더니 우리에게 결정적인 결점이 하나 발견되더군요. 손재주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등의 행동에 대한 의식이 사농공상의 뿌리 때문인지 아직도 부족합니다. 이것이 가정에 반영돼, 제가 중고등학생중 집에서 망치로 못을 박아보지 못한 사람을 조사해 보니 90%가 넘었읍니다. 이론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가 있는 것같습니다. 산업발전의 승부가 이론도 중요하지만 창의력이 발휘되는 이런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된다고 볼 때, 이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손재주와 노동의식에서 우리보다 높고, 미국은 그보다도 월등한 편입니다.
또 다른 조사로 집에 형광등이 고장 났을 때 누가 고치는지를 조사해 보았더니 7할이 여자가 고친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읍니다. 이것은 손재주와 노동에 대한 의식구조가 여성쪽이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런 조사결과들은 진로결정에도 큰 의미를 갖고 있읍니다. 공대에 간 학생들 중 상당수가 이처럼 손으로 만지작 거리길 싫어서 실패한다는 것이죠. 기름때 묻히기 싫어하고 넥타이만 매려 하니까요. 제 친구중 옛날 조선항공 공학과에서 10년간 조교노릇하다가 그만둔 사람이 있는데, 머리는 바상하지만 자전거가 고장나면 길거리에 버리고 십리를 걸어올 정도로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걸 싫어했읍니다. 따라서 적성을 판단할 때는 손으로 뚝딱거리며 만들고 고치는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꼭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대학에 우수 교수 몰린다.
정-학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학교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요즈음 대학의 순위가 일렬로 정해져 있고, 여기에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대응 시키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것은 큰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명문대학을 만드는 것은 훌륭한 교수아닙니까? 이런 면에서 최근 고무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읍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실력있는 학자들이 소위 일류대학에 자리가 없어 다른 대학으로 가고 있지요.
현-대학도 평준화돼 가는 추세에 있는듯합니다. 과학재단의 지난해 자료를 훑어본 적이 있읍니다. 원래 과학재단은 교수의 탁월성을 기준으로 연구비를 주는데, 전에는 KIST와 서울대가 독차지 했었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지방대 교수들도 많이 타고 있읍니다. 이것은 정교수님 말씀대로 서울대는 물론이고 서울에 위치한 대학에 자리가 없기 때문에 훌륭한 교수들이 지방으로 내려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방의 우수한 학생들이 굳이 서울로 올라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박-"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의식이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수는 어느 정도 평준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사실 입니다. 학생들은 그 반대 방향이라 하겠는데, 아마 학력고사 때문이겠지요. 후년부터는 학력고사의 실시여부가 대학의 재량권에 맡겨진다니 그때부터는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그런데 학교 선택과 관련해 학생들이 모르는 중요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명문대에 입학한다고 반드시 성공이 보장된다는 법은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두고 볼 때 비슷한 실력이라면 명문대에서 목표를 이루기가 더 힘든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니겠읍니까? 몇점의 점수차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안되겠다"는 옛말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만하겠지요.
한편 전통이 있는 대학과 신설대학의 비교에서는 아무래도 실력 뿐 아니라 동창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는 후자가 어느 면에서는 조금 불리하리라고 추측할 수 있겠읍니다.
한-직장 동료 한분이 아들을 서울의 한 명문대와 지방의 유력한 신설대중 어느 쪽으로 보낼 지 고심하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저는 신설대학쪽이 마치 첫아들을 정성껏 키우듯 학생들의 진로를 보살펴 줄 것이고 또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면에서 신설대를 추천했지요. 결국 그 학생은 신설대로 진학해 지금 2학년인데 그 때의 결정이 옳았다고 만족해 하더군요.
외국의 경우 대학을 지망할 때는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이, 그 학이 1류인가 2류인가가 아니라 대학의 교수진, 분위기 등입니다. 미국에서 본 일인데 대학진학을 목전에 둔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가 염두해 둔 대학을 5군데나 둘러보고 있었지요. 각 대학에는 이러한 방문자를 안내하는 곳이 있는데, 이를 통해 기숙사 등의 시설을 살펴보고 또 졸업생도 만나 만족스럽게 공부할 수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진로를 택할 때는 꼭 지망하는 대학이나 교수를 찾아보라고 일러주지요. 특히 새로 생긴 대학의 경우에는 이런 방법이 좋을 겁니다.
장래를 섣불리 결정하지 말아야
현-어느 노벨상 수상자가 회고록에서 이렇게 쓴 것을 보았읍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입학을 거절당해, 할 수 없이 인디아나대로 갔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 노벨상을 받은 훌륭한 교수 밑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는 거예요. 나중에 그는 "하버드에 갔더라면 노벨상을 못탔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일류대학이나 인기학과에 집착하지 않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점을 가르쳐 주지요. 또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스승을 찾아나서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봅니다.
박-오늘 이자리에 오기 전에 다원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는데, 고등학생의 진로결정과 관련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읍니다. 전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위대한 찰스 다윈이 처음 들어간 대학은 에딘버러대학으로 대대로 의학자인 집안의 권유로 의학공부를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의학에 취미를 못느낀 다윈은 여기서 도중 하차했고 목사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러나 여기서도 흥미를 못느낀 그는 '헨슬로'라는 박물학자(오늘날의 생물학자)와 친교를 맺어 같이 채집도 하며 놀러다니며 지냈읍니다. 그의 취미가 여기에 쏠린 것이지요.
그런데 헨슬로는 다윈이 지질학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 3년 이내로 예상했지만 결국 5년이 걸린 '비글'호의 세계일주 항해에 다윈을 지질학자로 추천했읍니다. 다윈은 이 항해를 마친 후 결과적으로는 체계적으로 공부도 안한 생물학자가 된 셈입니다.
당시의 과학은 아직 세분화되지 않아 지금과 다르지만, 다윈이 대학을 졸업한 후 자기의 적성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므로 장래를 너무 섣불리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지요. 꼴찌로라도 합격하고 보자는 생각은 아주 위험합니다. 우선 들어가서 기펴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좋으리라고 봅니다.
한-먼 장래를 볼 때 자존심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해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스스로 능력도 발휘마며, 또 인생을 만족하게 보내는 첩경이 되겠지요. 그런데 종종 교사들이 학교의 명예를 앞세워 학생에게 특정한 학교로의 지원을 강요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회가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기도 하지요.
박-특히 첫 졸업생을 내는 학교에서는 그런 식의 지원이 심하더군요. 한편 어느 고교가 어느 대학에 몇명 보냈다는 식의 언론의 보도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적성보다 학교의 이름이 진로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끝으로 이번에 서울대에서 정년 퇴직하신 어느 교수님의 예를 들지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이 교수는 부모로 부터 '환쟁이'가 되려 한다고 야단을 맞고 다른 분야를 택했읍니다만, 결국은 은퇴 후 다시 붓을 잡았읍니다. 이 경우를 두고 나중에서나마 적성를 찾았다고 할까요, 아니면 아까운 재능을 썩였다고 하겠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