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대부분의 여론은 복제동물과 복제인간의 안전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돌리의 죽음은 한국 생명공학계에 또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바로 인간배아복제를 시도하는 일이다.
인간배아복제는 인간복제와 실험 방법 면에서 동일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분명히 구분된다. 둘 다 복제기술을 이용하고 있지만, 인간배아복제는 복제인간을 탄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확보가 목적이다.
난치병 치유하는 꿈의 세포
줄기세포(stem cell)란 인간의 모든 장기로 분화될 수 있는 만능세포다. 예를 들어 치매에 걸린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손상된 뇌부위에서 건강한 세포가 자란다. 같은 원리를 이용해 당뇨병, 파킨슨씨병, 간질환, 심장병 등 각종 난치병 치료는 물론 손상된 망막 재생까지 가능하다고 알려진 ‘꿈의 세포’다.
문제는 줄기세포를 어디서 얻느냐에 따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과학자들이 줄기세포를 얻으려는 대상은 크게 두가지, 즉 배아와 성체다. 인간배아복제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으려는 시도다.
2000년 8월 9일 국내에서 최초로 인간배아복제 실험이 완수됐음을 알리는 발표가 있었다.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복제 실험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고 전한 것이다. 황 교수에 따르면 36세 한국인 남성의 귀에서 떼어낸 세포를 미리 핵이 제거된 여성의 난자에 융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수정란’을 만들었다. 이 수정란이 4-5일 지나 배반포기 상태로 자라면 안쪽의 세포덩어리를 떼어내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2002년 3월 8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은 30대 여성의 귀 세포에서 핵을 추출한 뒤 핵이 제거된 소의 난자에 이식해 99% 이상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복제 배아를 만드는데 여러번 성공했다고 밝혔다.
노화된 줄기세포일 가능성
과학자들이 평범한 배아가 아닌 복제된 배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포치료에 치명적 난관인 면역거부반응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간질환 환자의 경우 자신의 귀 세포를 이용해 복제를 거쳐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적절한 배양액으로 처리해 ‘건강한’ 간세포로 분화시킨 후 자신의 손상된 간에 이식하면 면역거부반응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배아복제는 커다란 윤리적 논란을 일으켜 왔다. 배아 역시 생명체이기 때문에 실험용으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또 복제 수정란을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 복제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그런데 이번 돌리의 사망 소식은 인간배아복제의 윤리적 측면 외에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인간배아복제는 모든 난치병에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선천적으로 유전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 신체의 모든 세포는 유전적 결함을 안고 있다. 즉 환자 자신의 세포를 떼어내 복제할 경우 배아로부터 얻은 줄기세포 역시 동일한 유전적 결함을 갖게 된다. 이런 세포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인간배아복제는 후천적인 난치병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돌리의 죽음으로 인해 이 부분에 대한 가능성 역시 도전을 받고 있다.
돌리에게 핵을 제공한 엄마의 나이는 6살. 즉 6년 동안 분화된 세포를 떼어내 복제를 수행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돌리의 탄생 초기인 수정란 상태는 정상적인 수정란에 비해 노화된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이 수정란을 배반포기까지 분화시킨 후 줄기세포를 추출할 경우, 그 줄기세포 역시 노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이 아닐까.
2001년 과학기술부가 설립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권혁찬 원장(봄여성병원)은 복제 수정란에서 메틸기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발견되는 점, 그리고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가 정상인 경우에 비해 잘 발현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런 사실들은 복제된 수정란이 이미 어느 정도 노화가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이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 역시 분화가 진행됐을 것이므로 만능세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한다.
“확대해석은 곤란” 지적도
예를 들어 노인성 치매에 걸린 환자의 경우 몸의 세포는 상당 부분 노화됐을 것이다. 이 세포로 복제배아를 만들어 줄기세포로 치료하는 일이 과연 적합한 일일까. 더욱이 수정란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메틸기가 몸에서 암세포를 억제하는 유전자 부위에 붙는다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메틸기의 특성 때문에 뜻하지 않게 암에 쉽게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가톨릭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오일환 소장은 안전성 문제 외에도 인간배아복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인간배아복제 실험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5백개의 난자가 필요하다”며 “여성 1명이 일생 동안 자연적으로 배란하는 난자의 수가 3백여개에 불과한데, 그 많은 실험용 난자를 어디서 얻을 생각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복제 배아로부터 얻는 줄기세포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공식적인 연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세필 소장은 “최근의 우려는 돌리 하나의 사례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돌리가 탄생한지 이미 6년이 지났으며, 그 사이에 세계적으로 복제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돌리의 결함을 복제기술 자체의 결함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한 예로 미국의 어드벤스드 셀 테크놀로지(ACT)사는 2000년 4월 28일자 ‘사이언스’에서 연구팀이 복제한 소 6마리의 경우 텔로미어가 오히려 길어졌으며, 겉으로 보기에도 더 젊어보인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또 당시 연구를 주도한 로버트 란자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결과는 수정란 단계에서 젊고 건강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주장하며 인간배아복제의 가능성에 낙관적인 입장을 표했다.
국내 생명윤리법 제정에 던지는 의미
생명공학연구원 한용만 박사는 “인간배아복제가 현 단계에서 불완전할 수 있지만, 앞으로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해 많은 한계들이 극복될 수 있지 않겠냐”며 조심스럽게 미래를 점쳤다. 예를 들어 2002년 4월 5일자 ‘셀’에 메사추세츠 공과대(MIT)의 루돌프 재니시 박사가 발표한 내용이 주목할 만하다. 재니시 연구팀은 미리 면역성을 상실하도록 유전자 조작을 가한 생쥐를 대상으로 배아복제 실험을 수행해 줄기세포를 추출했다. 이 줄기세포는 당연히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다. 그런데 연구팀은 이 줄기세포에 정상적인 면역 기능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삽입하고, 이를 애초의 면역성 결핍 생쥐에 이식했다. 흥미롭게도 이 생쥐는 면역력을 갖추게 됐다.
한용만 박사는 “만일 이 실험이 인간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선천적인 유전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 인간배아복제를 통해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론적으로는 유전병 환자로부터 얻은 줄기세포에 유전자 치료를 가함으로써 결국 유전병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인간배아복제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한국의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싸고 가열차게 지속되고 있다. 최근까지 정부의 입장은 ‘난치병 치료용 연구’에 한해서 인간배아복제를 허용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돌리의 사망을 바라보면서 과연 인간배아복제가 안전한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권혁찬 원장은“인간배아복제를 서둘러 허용할 것이 아니라, 동물 실험을 거쳐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한다. 당장 난치병 극복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떠들썩 하지만 기초 연구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아직도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돌리의‘부고’는 우리에게 탄생 때 못지 않은 충격과 파장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