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때로는 춥고 좁은 위장 텐트에서 미동도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고, 때로는 시동을 끈 차 안에서 추위와 싸워야 한다.
단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생태사진가가 감내해야 하는 시간은 그토록 길고 외롭고 험하다.
예민하고 날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맹금류이자, 신출귀몰할 매복과 기습의 명수 참매를 촬영하는 박웅 생태사진가의 삶 역시 그랬다.
천운이 따라야 볼 수 있는 참매의 사냥 장면
“윤 기자 운이 여기까지인가 봐.”
박웅 작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산 사진으로 10년, 새 사진으로 10년을 보낸 국내의 대표적인 생태사진가다. 2006년 국내 처음으로 겨울 철새이자 천연기념물인 참매가 숲에서 번식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낸 것으로 유명하다.
1월 3일 오후 1시. 서산 천수만의 작은 하천인 해미천이 갑자기 동요했다. 논 여기저기에 앉아 있던 기러기 떼가 푸드득 날아갔다. 밀렵감시초소에서 이 모습을 보던 박 작가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가 바로 앞에 세워둔 차로 뛰어갔다. “검독수리다!”라는 외침과 함께. 시동을 걸고 시속 20km로 천천히 논길로 차를 몰았지만, 검독수리는 높은 해미천 상공을 아주 천천히 비행하다 멀리 동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검독수리가 기러기를 사냥하는 장면을 찍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하필 저기 논둑길로 낯선 사람이 걸어왔어요. 사냥을 포기하고 날아갔죠. 윤 기자가 검독수리는 불러왔는데, 사진 찍을 기회까지는 못 불러왔네요.”
돌아온 박 작가는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하지만 밀렵감시초소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생태사진가 사이에서는 ‘송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밀렵감시원 송준철 씨는 싱글벙글이었다.
“귀한 손님이 왔네. 검독수리는 여기 근무 시작하고 이제 겨우 세 번째 보는 거라니깐. 마지막으로 본 게 한 7, 8년 전인가….”
약 15분 사이에 벌어진 이 일은 생태사진가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준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새의 출현을 기다리고, 사냥이나 부화 등의 ‘이벤트’를 그 새가 보여줄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졸인다. 이번처럼 천재일우의 기회가 와도, 낯선 사람의 등장으로 허사가 되기 일쑤다. 생태사진은, 강태공의 낚시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시간을 사냥하는 일이다. 참매를 찍는 일의 고단함 역시 마찬가지리라.
매복과 기다림이 사냥의 포인트
마침 어른 참매 한 마리가 하천 둑을 넘어갔다. 이제 곧 멋진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됐다. 하지만 박 작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개체예요. 습성이 조금 달라요. 그래서 지금 연구 중이에요.”
참매는 대단히 예민하고 섬세하다. 주변이 조금만 이상해도 사냥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호기로운 새도 아니다. 흔히 매(송골매)라고 하면 높은 하늘을 휘젓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사냥을 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하지만 참매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사냥 모습을 보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뭇가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먹이를 정하면 낮게 날아가 뒤쫓는다. 결정적인 사냥 순간을 잡기 전에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맹금류 특유의 제자리 비행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재빠르게 모습을 드러내고는 다시 사라진다. 이 때문에 박 작가는 촬영을 가면 참매 한 마리의 습성을 파악하는 데에만 한 달을 꼬박 들이곤 한다.
“어느 방향에서 날아와 무슨 나뭇가지에 앉는지, 언제 먹이를 먹는지 등을 살펴봐요.”
참매가 노리는 사냥감은 대개 오리다(아래 사진). 오리는 작고 날렵한 새다. 오리류를 사냥한다는 건 참매가 그만큼 재빠르다는 증거다. 반면 검독수리는 크기가 크고 느려서 오리 사냥을 못 한다. 이 날도 검독수리 한 마리에 온 들판의 기러기가 혼비백산했는데, 청둥오리들은 태연자약했다. 자신을 사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먹이 사슬이 다 정해져 있는 생태계의 섭리는 그렇게 오묘했다.
사람과 닮은 참매 가족의 한살이
박 작가는 국내 처음으로 참매가 국내에서 부화해 번식하는 장면을 촬영해 소개했다. 또 무려 8년 동안 숲을 드나든 끝에 짝짓기 장면도 찍는 데 성공했다. 새끼가 자라는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한 사진, 부모와 새끼(보라매)로 구성된 단란한 참매 가족이 사냥이나 먹이 교육을 시키는 사진 역시 참매의 습성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자료들이다. 사진을 한 장 찍기 위해 연구하고 지켜보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에, 이제는 참매 전문가가 다됐다.
이날, 박 작가는 송 씨로부터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한 촬영가가 참매가 꿩을 사냥한 듯한 사진을 찍었다는 소식이었다. 박 작가의 눈이 빛났다. 참매가 자연 상태의 꿩을 사냥하는 일은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참매는 저공비행과 기습을 즐기는데, 꿩은 갈대숲에 숨어 다니거든요. 기습하기가 불편하죠. 해미천에는 물 위에 오리가 널려 있는데, 굳이 꿩을 사냥한다니 이상해요. 한 번 확인하고 싶네요.”
생태계는 단 한 마디 말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적응력이 높다. 어제의 참매와 오늘의 참매가 습성이 달랐듯이, 사냥감 역시 예기치 않은 이유로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참매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