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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침팬지도 문장 만들 줄 안다

인간과 수화로 대화할 수도

“우후우후우후후∼” 제인 구달 박사는 강연을 시작할 때 언제나 청중들에게 이렇게 ‘팬트 후트’(pant hoot)로 첫인사를 한다. 팬트 후트는 침팬지들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로서 침팬지마다 음색과 강약이 제각각이다. 작년에 일본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팬트 후트의 실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옥내 실험실에 있던 침팬지 한마리가 팬트 후트를 시작하니 1백m 떨어져 있는 옥외 시설에 있던 침팬지들이 이내 팬트 후트로 화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침팬지들이 소리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 외에도 다양하다. 그 중 ‘팬트 그런트’(pant grunt)와 ‘푸드 그런트’(food grunt)가 대표적인데 팬트 그런트는 서열이 낮은 침팬지가 높은 침팬지에게 다가갈 때 내는 헐떡거리는 소리다. 푸드 그런트는 먹을 것이 있음을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알릴 때 내는 소리로 “으흐으흐”처럼 짧은 음이다. 그런데 야생 침팬지들이 먹이를 앞에 두고 푸드 그런트보다 훨씬 강하고 흥분된 소리를 내지를 때가 있다. 이때는 가젤 같은 동물을 사냥한 후에 동료들에게 알리는 경우다. 한편 침팬지가 크고 사나운 소리로 “와아”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영락없이 이상하거나 무서운 무언가를 만난 것이다.

해독 필요없는 단순한 ‘언어’?


서열이 낮은 침팬지가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서 음식을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제인 구달 박 사(왼쪽)가 최재천 교수에게 흉내내고 있다.


만일 어떤 침팬지가 이런 독특한 소리들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틀림없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버빗원숭이가 내는 경고음은 의사소통이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살고 있는 버빗원숭이는 흥미롭게도 어떤 종류의 천적이 나타났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경고음을 낸다. 예를 들어 독수리가 출현했을 때와 표범이 나타났을 때 경고음이 뚜렷이 구분된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소리만 듣고 동료 버빗원숭이들은 주저없이 덤불 속으로 숨거나 나무위로 재빨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동료 침팬지의 소리, 즉 ‘언어’를 잘 구분해 듣고 적절히 반응해야 하는 것은 침팬지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야생과 실험실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침팬지의 ‘언어’는 몇가지 뚜렷한 음을 제외하고는 정확히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언어’에 방언이 존재하고 개인마다 고유한 개성도 있기 때문에 해독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아무리 구달 박사가 내는 팬트 후트라도 그것이 낯선 소리라면 침팬지들도 반응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에버랜드 동물원의 침팬지들에게 팬트 후트로 인사를 했는데도 그들은 대꾸가 없었다. 구달 박사는 그 이유가 방언 때문일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침팬지의 ‘언어’를 우리가 해독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해독을 필요로 할만큼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침팬지의 ‘언어’가 복잡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 구조에 비해 너무 단순한 것은 아닐까.

1950-60년대에는 침팬지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는 실험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기 침팬지를 인간 가족의 일원으로 키우면서 같은 나이의 연구자 자녀들과 함께 성장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는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침팬지들이 배운 인간의 말이란 잘해봐야 고작 대여섯 단어 정도였고, 그것도 발음이 상당히 불완전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게다가 침팬지가 인간 아기의 행동을 배웠으면 하는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인간 아기가 침팬지의 나쁜 식사 습관을 그대로 따라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해부학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침팬지의 후두는 인간에 비해 목구멍의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침팬지는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범위의 자음과 모음을 도저히 소리낼 수 없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침팬지들이 대개 매우 흥분한 상태에서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인간처럼 대화를 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1백가지 수화 배운 워슈


침팬지가 수화로 의사를 표현한다는 연구결과에 대해 원하는 음식을 달 라고 요청하는 경우와 같이 자신의 필요에 따른 것뿐이라는 반박도 있다.


그렇다면 수화를 가르쳐보면 어떨까. 실제로 연구자들은 침팬지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자연스럽게 몸짓과 손짓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1966년 미국 영장류학자 가드너 부부는 암컷 아기 침팬지 워슈에게 수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워슈 앞에서는 거의 수화로만 이야기했다. 워슈는 보상을 받거나 모방하는 방법으로 수화를 배웠고 마침내 1백가지 수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해졌다. 심지어 짖는 소리만 듣고도 개를 지칭하는 손짓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연구자들은 아기 침팬지 루리스를 워슈에게 입양시킨 후 5년 동안 루리스 앞에서는 수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루리스는 워슈를 비롯해 수화를 사용하는 여러 침팬지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수화를 익혀 결국 대략 50개의 수화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침팬지의 언어 능력은 매 90분마다 한개의 새로운 단어를 학습할 수 있는 3-6세 인간 어린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워슈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제기돼 왔다. 예컨대 워슈가 그저 연구자들의 손짓을 따라했을 뿐이라고 반박한 과학자들도 있었고, 워슈가 수화로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이 원하는 음식이나 음료를 요청하는 정도로 지극히 제한돼 있다고 지적한 이들도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화 반응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모스크바 서커스단의 곰이 온갖 재주를 부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해능력 2살배기 아기와 동급


어떤 언어학자는 영장류의‘언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영 장류 연구자들은 영장류가 나름대로 훌륭한 언어를 갖고 있 다고 주장한다.


이런 비판들 뒤에는 침팬지가 인간처럼 문장들을 만들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미 펜실베이니아대 실험심리학자 데이비드 프리맥은 암컷 침팬지 새라에게 플라스틱 딱지를 사용해 기호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예컨대 ‘갈색을 띤 초콜릿’이라는 어구의 단어들을 각각 딱지로 만들어 순서대로 수직으로 나열해놓고 실제 갈색 초콜렛을 보여줬다. 이를 치우고 ‘갈색을 가져와라’라는 문장의 단어들을 역시 각각 딱지로 만들어 수직으로 나열했더니, 새라는 그것을 보고 갈색을 띠는 물건을 가져왔다. 또한 새라는 진짜 사과와 그 사과를 지칭하기 위해 임의로 지정해놓은 하늘색 삼각형 모양의 딱지를 연결시켰다. 프리맥은 이런 결과들을 놓고 새라가 단어와 문장을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미 조지아주립대 언어연구소의 럼버 교수 부부는 플라스틱 딱지 대신 컴퓨터 화면을 사용해 이런 시도를 한단계 발전시켰다. 예컨대 ‘무엇’‘어디’와 같은 질문 단어들, ‘빨간’ ‘둥근’과 같은 형용사, ‘…보다 큰’과 같은 개념어, ‘사과’ ‘쥬스’와 같은 대상어, 그리고 ‘오스틴’과 같은 이름 등이 특정한 기호의 형태로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면 유인원은 해당화면을 순서대로 눌러 문장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그동안 여러마리의 침팬지와 보노보가 참여했는데 지금까지 칸지라고 불리는 1980년생 수컷 보노보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칸지는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쇼에 나가 시연을 할 때도 있다. 칸지가 특별한 보노보인 까닭은 기호 문자들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양엄마 보노보 마타타가 연구자들에게 훈련받는 것을 어깨너머로 본 후 자연스럽게 그 기호들을 습득했다. 칸지는 숲의 특정한 곳에 가거나 게임을 하거나 다른 보노보들을 만나고 싶을 때 기호 문자들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금새 익혔다. 심지어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스파게티를 요리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런 의미에서 칸지가 인간의 언어를 단어 수준이 아니라 문장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칸지의 언어 이해 능력은 만 2.5세 아기와 유사하다. 2년 반 된 인간 아기 앨리아와 칸지에게, “침실에 곰인형을 갖다 놓아라” “고무밴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아라” “야외에 있는 전화기를 가져와라”와 같은 4백15가지 요구 사항들을 매번 새롭게 제시했을 때 둘 모두 70% 정도의 수행 능력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지가 인간과 유사한 언어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새로운 문장까지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이긴 했지만, 그때 사용한 문장들이란 고작 두세 단어들로만 이뤄진 것들이며 대부분이 그의 즉각적인 필요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칸지 프로젝트를 통해 유인원은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보다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칸지가 촘스키를 만난다면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만이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3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인간의 독특성을 언어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인간은 30피트 가량을 날아갈 수 있다. 물론 올림픽 경기에서 말이다. 만일 이것을 놓고 인간이 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다면 그것만큼 의미없는 질문은 없을 것이다.” 유인원 언어 프로젝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언어학자 촘스키의 풍자적 비판이다. 그는 인간을 연구하려면 인간만이 갖고 있는 언어를 연구해야 하고 비둘기를 연구하려면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연구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영장류 연구자들은 이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침팬지가 언어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 대신에 “침팬지들이 어떤 측면의 언어를 갖고 있으며 어떤 조건에서 습득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들의 생각대로 언어를 의사소통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는 각자의 환경에서 훌륭한 언어들을 갖고 있는 셈이다. 칸지가 촘스키를 만나면 맨 처음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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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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