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 태산과 함께 명산중의 명산이라는 황산은 72개의 수려한 봉우리와 60여 폭포, 그리고 당나라 시대 이래의 영천을 갖추고 있으며 아담한 소나무와 아름다운 구름바다에 싸인 환상과 꿈의 고향이다.
중국 명(明)나라 시대의 서하객(徐霞客)이라는 사람은 중국에서 가장 저명한 여행가이다. 그가 나라 안의 명산을 두루다녀 보면서 황산을 돌아 보고 난뒤 "황산이야 말로 둘도 없는 명산이다. 다음은 더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한다.
세계 제일이라는 찬탄 자아내
청조(淸朝)말기의 사상가인 강유위(康有爲)도 세계를 널리 다녀 본 사람으로 "황산은 세계에서 제일이다. 그 다음은 미국의 옐로스톤 공원 일것이다"라고 평했다.
황산이 이렇게 시인묵객들을 매료 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어째서 일까. 이에 대하여는 여러가지가 지적되고 있으나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때 다른 유명한 산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모두 갖추고 또 다른 유명한 모든 산의 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 있는 것같다.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 중에는 "다른산은 모두 황산의 그림자일 뿐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황산은 산허리가 검푸르다하여 원래는 이산(黟山 · 검은산이란 뜻)이라 불렀다한다.
그러나 한(漢)민족의 시조라는 전설의 황제 '황제'(黃帝)가 이곳에서 승천하였다는 신화가 있어 당(唐)의 현종(玄宗)이 황산이라고 고쳤다. 서기 747년의 일이다.
안휘성(安徽省) 남쪽에 펼쳐진 이 땅은 면적이 약 1천2백km². 동북에서 서남쪽으로 향하여 산과 산이 용틀임하듯이 이어져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1백54km²의 풍경속에 모여있다.
거기에는 많은 기괴한 산과 산이 우뚝우뚝 솟아 있으며 해발 1천5백m 이상인 큰 봉우리도 30여개나 된다. 황산은 36개의 큰 봉우리와 36개의 작은 봉우리로 모두 합쳐 봉우리가 72개나 된다. 그러고 보면 2km²마다 하나의 봉우리가 우뚝솟아 있는 셈이다.
특히 연화봉(連花峰) 광명정(光明頂) 천도봉(天都峰)은 황산의 삼대봉이라 하여 어느것이나 해발 1천8백m 이상이다. 삼존(三尊)처럼 우뚝 솟아 주위에 많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그것들은 크고 작고와 높고 낮음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시정(詩情)이 절로 우러나오는 풍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화강암의 파도 같은 봉우리
이 절묘한 경관을 자연이라는 위대한 장인(匠人)은 어떻게 하여 다듬어 낸 것일까.
이 산들은 마치 밀려오던 파도가 그대로 굳은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곳은 지질학적으로 보아도 작열하는 마그마가 긴 세월동안 걸쳐 굳으면서 겹쳐진 물마루(波頭 · Crest)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으로 부터 2억8백만년~1억4천만년전의 쥐라기(期)였다. 지각변동이 시작되자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는 그 고온 고압의 에너지를 지표로 방출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두꺼워져 있는 지각을 깨고 나올수가 없어 그대로 식어 굳어버려 광대한 화강암층을 형성했다. 그렇게 몇번인가 지각변동이 되풀이 되는 사이에 드디어 그 '지하황산'이 지표에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천하의 기괴한 산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36년 중국의 저명한 지질학자 이사광(李四光)이 두번째로 황산을 조사 할때 청란봉 중턱에서 5~6줄기의 마찰흔적을 발견했다. 크게 노출된 화강암의 표면에 새겨진 이 상처야말로 황산이 80만년전 이래의 제4기 빙하에 깎인 증거였던 것이다.
구름 밖으로 높이 우뚝 솟은 천도봉의 모가 난 봉우리, 그 깎아 벤것같은 험난한 능선, 그리고 몇 줄기의 계곡도 모두 빙하가 끌을 휘두른 흔적이다. 또 빙하는 깎아 떼어낸 바위를 운반하여 여기저기에 퇴적했다. 오늘날 '단정'(丹井)이나 '약구'(藥臼)라고 부르는 명물 기암도 대개 이 빙하가 운반하 퇴석인 것이다.
이렇게 빙하가 깎아 낸 황산에 풍화작용이 겹쳤다.
화강암에는 가로 세로로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이 진행되어 끝내는 산의 표면이 세로로 떨어져 나가 기둥같이 가늘게 깎아낸 봉우리나 수평으로 자연스런 돌계단을 이루는 곳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되었다. 게다가 이곳이 풍화되어 어떤 곳은 사람모양으로, 또 어떤 바위는 동물처럼 보여 그것이 지금바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같은 모양이 된것이다.
그래서 문인들은 그곳에 각각 알맞는 이름을 붙였다. '봉래삼도'(逢萊三島)라든가 '후자관해'(猴子觀海·바다를 바라보는 원숭이) 또는 '선인지로'(仙人指路) 등이 그것이다. 또 그중에는 비에 젖으면 배(舟)라는 문자처럼 보이는 모양이 떠오른다하여 '장주석'(蔵舟石)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암도 있다.
낭떠러지 위의 이상한 소나무
황산이 천하제일의 기이한 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런 기암 때문만이 아니다. 그곳에 뿌리내려 자라고 있는 소나무도 독특한 생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높이가 1m도 채 못되는 것이지만 휘어 구부러진 가지는 10m를 훨씬 넘는다. 또 뿌리는 흙이 없는 바위위의 갈라진 틈으로 파고들어 가면서 끊임없이 산성 수액을 분비하여 바위를 침식, 줄기의 몇배나 되는 길이로 뻗고 있다. 이렇게 하여 얼마 되지 않는 물이나 양분을 빨아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게 서 있는 것이다.
또 솔방울 속의 씨는 돛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얇은 막이 있어 바람을 타고 산봉우리 봉우리로 훨훨 날아 흩어진다. 그리고 적당한 습기가 있으면 거기서 발아한다. 이렇게 하여 오늘날에는 황산의 험한 낭떠러지 이르는 곳마다에서 그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영객송'(迎客松) '송객송'(送客松) '연리송'(連理松) 등으로 아담한 이름이 붙은 소나무도 많다.
이곳의 소나무는 원래 낮은지대 소나무의 씨가 새에 의해 운반되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동안 황산의 환경에 적응하여 고유종이 된것이다. 그때문에 1936년 식물학자 재서원(在西元)에 의해 '황산송'이라고 명명되었다.
황산의 산기슭은 아열대이지만 중턱은 온대이고 산꼭대기는 한대기후에 속한다. 그때문에 다양한 식물분포를 보이지만 거의 해발 8백m를 경계로 그위에는 황산송 외에는 약간의 침엽수 밖에 없다. 그리고 1천6백m 이상은 황산송과 몇가지의 고산식물만의 세계인 것이다.
기묘한 환상과 꿈의 고향
바위와 소나무 등의 지상의 정화(精華)만을 얘기해왔지만 변환(變幻)이 끝이없는 구름도 빼 놓을 수 없다. 황산은 '예로부터 구름바다를 이루는 곳'이라하여 다른 이름으로 '황해'(黃海) 라고도 한다. 1년의 3분의 2는 구름과 안개에 싸여 있는 곳인 것이다.
중국 수묵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미산(峨眉山) 태산(泰山) 노산(盧山)등의 명산은 모두 구름바다로 유명하다. 그러나 황산은 특히 구름바다가 생기가 쉬운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미산은 서남부에 있으나 그렇게 습윤한 곳은 아니다. 태산은 독립된 봉우리여서 가끔 바람에 구름이 날려가 버린다. 그리고 노산은 큰 강가에 있기 때문에 구름이나 안개가 그곳에 머물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황산의 구름바다는 1년 내내 볼 수 있으나 그중에서도 봄이 좋다. 동남쪽의 바다에서 불어온 따뜻하고 습한 바람과 서북쪽의 찬바람이 바로 이곳에서 섞이게 된다. 크고 작은 봉우리에 걸려 구름이 이곳에 머물고 거기다 봄바람이 규칙 바르게 불어와서는 새로운 구름을 만드는 것이다.
소나무 기암 흰구름 외에도 황산이 다른 명산보다 뛰어난것은 온천이다.
황산 입구에 있는 황산대문 가까이에는 섭씨 42도 정도의 뜨거운 물이 매시 48t씩 용솟음쳐 나오고 있다. 가뭄이 계속되어도 마르는 일이 없고 비가 온 뒤에도 늘어나지 않는다. 당나라 시대 부터 목욕하기에 좋고 마셔도 좋은 영천 으로 알려져 왔다.
폭포도 황산의 매력중 하나다. "맑으면 여러 기암 기봉을 바라보고 비 오면 날듯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본다"고 읊었듯이 황산의 폭포는 비오는 날에 절벽의 여기저기에 걸쳐지는 것이다. 늦은 봄 부터 이른 여름에 걸친 비가 많은 계절에는 격렬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뇌성처럼 울리고 가을 겨울의 갈수기에는 일전하여 비단을 가늘게 밑으로 내린것 같은 모양이 된다. 이런 폭포가 있는 황산의 험준한 산과 종횡으로 치닫는 계곡은 동물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어류 양서류는 1백종 가깝고 그 밖의 동물은 2백종을 넘으며 귀중한 종류로서 보호되고 있는것도 14종이있다. 특히 원숭이는 황산의 주인격으로 낭떠러지 위에서 노는 모양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보금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황산의 구름과 안개에 싸인 봉우리마다의 사이에는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가 남아있다. 그러나 중국인이 황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는 중국 산수의 모든것이 응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의 동양의 기묘한 환상과 꿈의 이미지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