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10월 14일, 인간이 처음으로 소리를 따라잡았다. 미국의 척 예거는 이날 벨사가 제작한 X-1 로켓비행기를 타고 모하브사막에 있는 에드워드공군기지를 이륙해 음속의 1.05배, 즉 마하 1.05를 기록했다. X-1은 B-29 폭격기에 매달려 지상 약 3.7km 상공에서 떨어진 뒤, 로켓을 점화해 13km 상공까지 올라가서 이 기록을 달성했다.
그런데 최초의 음속 돌파에 환호하던 지상의 엔지니어들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이상한 폭발음을 들은 것이다.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하는 충격파에 의한 소음, 즉 소닉붐(sonic boom) 역시 이날 처음 데뷔했다. 이때부터 소닉붐은 초음속 비행기의 상징이 됐다. 한 예로 1952년 영국에서 열린 한 에어쇼에서는 초음속 비행기가 관중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부러 소닉붐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급격한 압력변화가 폭음 불러
지난 8월 27일, 예거가 초음속으로 날아갔던 길을 똑같이 날아간 비행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날 비행은 예거 때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미 해군의 F-5E기는 마하 1.36에서도 소닉붐을 발생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날 비행을 준비한 미항공우주국(NASA)과 노드롭 그루먼사의 관계자들은 “처음으로 소닉붐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56년 만에 초음속 비행의 상징이자 에어쇼의 묘기에서 기필코 없애야 하는 애물단지로 변해버린 소닉붐. 도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소닉붐은 비행기가 발생시키는 음파가 축적되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충격파’(shock wave)다. 수면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의 파장이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배가 물 위를 갈 때도 물결파가 발생한다. 그런데 만약 배가 이 물결파보다 빨리 가게 되면 배 머리부분과 꼬리부분에 V자 모양의 물결이 발생한다. 이는 배가 물결파보다 빨리 가면서 주위의 물결파가 서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비행기가 날아갈 때는 주변 공기가 밀려나면서 압력을 전달하는 파동이 소리의 속도로 퍼진다. 그런데 비행기가 음속 이상으로 날아가면 기체 앞쪽으로 퍼지는 파동을 따라잡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비행기 주변으로 퍼지는 파동이 서로 뭉쳐져 V자형의 강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그 결과 비행기 앞부분에서 압력이 급격히 상승했다가 반대로 다시 급격히 감소한 다음 정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이 충격파는 배의 경우에서처럼 뾰족한 비행기 앞부분과 뒷날개 부분에 형성된다. 비행기 주변의 압력변화를 그래프로 그리면 마치 N자와 같은 모양이 되므로 N파(N wave)라고도 한다.
소닉붐은 이 충격파가 지상에 도달할 때 우리 귀에 느껴지는 폭발음이다. 보통 초음속 비행기가 지나갈 때 두번의 소닉붐을 듣게 되는 것은 이처럼 앞부분과 꼬리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압력 변화 때문이다.
비둘기 길 잃게 만든 폭음
소닉붐은 초음속 여객기에게는 원죄와 같은 존재였다. 1969년 10월 1일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공동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기가 처음으로 음속을 돌파했다. 마하 2.2의 콩코드기는 7시간 걸리던 파리-뉴욕간 비행시간을 3시간대로 앞당겨 반나절 지구여행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콩코드기가 비행하면 소닉붐 때문에 창문이 모두 깨지는 등 피해가 발생하자 거주지 상공에서는 초음속 비행이 금지됐다. 대서양 상공에서나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지난 2000년 4월에는 3년 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날려 보낸 비둘기 3만마리가 사라진 것이 콩코드기의 소닉붐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다시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비둘기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를 탐지해 길을 찾는데, 콩코드기의 폭발음이 이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사는 이처럼 소닉붐에 대한 원성이 끊이지 않자 1999년 보잉사와 함께 20억달러 규모로 추진하던 3백석 규모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계획을 취소했다. 초음속 여객기에 대한 반감이 어찌나 심했던지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의 기술책임자인 라인하트 아브라함은 “성 니콜라스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콩코드기를 두고 가더라도 절대 운항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세계적인 갑부나 기업가들을 고객으로 호화 제트여객기 운항사업을 하고 있는 걸프스트림사는 얼마 전부터 2009년까지 상업용 소형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러시아의 수호이사도 2010년에 자사의 초음속 여객기를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용 제트기 임대·판매업체인 넷제트사의 경영자는 2001년 ‘와이어드’와 ‘뉴욕타임즈’를 통해 “저소음 초음속 제트기가 상용화되는 대로 즉시 구입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나사 역시 미국방첨단연구기획청(DARPA)과 함께 콩코드기와 같은 대형 여객기가 아니라 전투기에서 소형 여객기 정도의 ‘무소음 초음속 비행기 개발계획’(QSP)을 마련,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번 8월의 시험 역시 QSP 산하 ‘성형소닉붐시범프로그램’(SSBD)의 하나로 이뤄진 것이다.
뭉툭한 코에서 뾰족한 꼬리까지
이번 시험에 사용된 F-5E 전투기는 모양이 같은 기종과 차이를 보였다. 우선 비행기의 코라고 할 수 있는 앞부분이 뾰족하지 않고 마치 펠리컨 부리를 연상시킬 만큼 아래 부분이 뭉툭했다. 또 동체와 날개부분에는 같은 기종의 전투기에는 없는 알루미늄 구조물이 장착돼 있었다.
나사와 노드롭 그루먼사의 기술진들은 공중의 F-15B기에 장착된 기기들과 지상의 관측장비로 소닉붐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앞서 비행한 정상적인 F-5E기는 소닉붐을 발생시켰지만, 모양을 바꾼 전투기에서 나온 소음은 그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뭉툭한 코의 F-5E기는 38파스칼(Pa, 1Pa=1N/m2)의 소음을 발생시켰다. 나사와 국방첨단연구기획청은 앞으로 소닉붐을 4분의 1로 감소시킨다는 목표다.
소닉붐의 발생에는 비행고도, 비행경로, 기상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여기에 비행기의 형태와 성능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1970년대부터 비행기를 개조해 소닉붐을 줄이려는 연구가 진행됐다.
한 예로 1970년대 미국 코넬대의 리처드 시바스 교수는 비행기의 앞부분을 뭉툭하게 하면 소닉붐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처음 주장했다. 시바스 교수에 따르면 비행기 앞머리, 즉 뾰족한 코를 뭉툭하게 만들면 공기와의 저항에 의해 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열이 공기의 밀도를 낮춰 충격파를 소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의 항공우주공학과에서 퇴임한 쳉 박사는 아예 비행기 앞머리에서 레이저를 발사해 같은 효과를 거두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국방첨단연구기획청의 지원을 받은 록히드 마틴사는 뭉툭한 코에다가 작은 날개를 달아 충격파 소산 효과를 배가시키는 디자인을 만들었다. 작은 앞머리 날개는 비행기의 양력을 높여 연료절감의 효과까지 더했다. 이글 에어로스페이스사는 아예 예전의 쌍날개 비행기를 부활시켰다. 날개가 추가되면 양력이 더 많이 발생해 소닉붐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에어로스페이스사는 똑같은 면적의 위아래 날개가 나란히 달린 전통적인 쌍날개 대신 꼬리에 거꾸로 된 V자 모양의 날개를 덧댐으로써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리 죽인 알루미늄 ‘코 장갑’
지난 8월 시험에서 노드롭 그루먼사는 미 해군이 제공한 F-5E기 앞머리에 ‘코 장갑’(nose glove)이란 이름이 붙은 구조물을 장착해 펠리컨 부리 모양을 만들었다. 또 날개와 동체가 만나는 부분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구조물을 덧대 날개와 동체 사이의 각도를 줄였다. 충격파는 비행기 앞, 조종석, 공기 흡입구, 날개, 기체 후방 등 튀어나온 부분에서 주로 생성되는데 이러한 구조물들이 동체와 날개 사이, 비행기 앞머리 아래의 각도를 줄여 충격파가 잘 생성되지 못하게 한다.
나사와 국방첨단연구기획청의 SSBD 프로그램에는 노드롭 그루먼사 외에도 여러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사는 소닉붐 지상 관측 장비를 제공했으며, 보잉사는 변형 F-5E기 추적에 처음 이용된 T-38기를 제공했다. GE사는 엔진 기술을 담당했다.
나사의 운반시스템 프로그램 책임자는 이번 시험 성공에 대해 “지난 40년 간 비전을 가져온 엔지니어들의 연구가 정점에 달하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노드롭 그루먼사의 책임자인 찰스 보카도로는 “이 기술은 초음속 여객기가 거주지 위를 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사와 노드롭 그루먼사는 다양한 기상상태에서 시험비행을 계속해 비행기 형태 변화가 소닉붐을 감소시키는 것을 확증할 것이다. 또 특수 촬영장비로 비행기 주변에 형성되는 충격파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다.
역사속으로사라진콩코드기의한을 ‘조용히’ 풀어줄 새로운 초음속 여객기가 지금 한창 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