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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현장취재] ‘찌릿찌릿’ 전기 자극으로 식욕을 없앤다?

▲Midjourney, 이한철
“전기 자극으로 식욕을 억제할 수 있대요!” 탄성과 같은 외침에 과학동아 기자들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들었습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신기영 한국전기연구원(전기연) 책임연구원에게 “혹시 기자들이 여러 명 가도 괜찮냐고” 물어봐야 했죠. “가능은 하지만, 한 번의 자극으로 식욕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조언에도, 두 명의 기자가 일부러 아침과 점심을 거르고 연구원으로 향했습니다.

 

 

▲김미래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뇌에 전기 자극을 줄 때의 최대 허용량은 2mA(밀리암페어)다. 한국전기연구원과 서울의대 공동연구팀은 경두개 불규칙 신호 자극(tRNS)을 2mA로 가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해 전기 자극이 식욕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mA의 전기 자극이 어떤 수준인지 9월 3일 김태희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9월 3일 오후 3시, 한국전기연구원(전기연) 안산 분원 1동의 신경전자공학 실험실. “지금부터 전기 자극이 들어갈 건데요, 전류량은 최대 2mA(밀리암페어)까지 올라갑니다. 혹시라도 많이 아프면 꼭 얘기하세요. 중간에 그만둘 수 있습니다.” 신기영 전기연 전기의료기기연구단 전기융합휴먼케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기자의 이마에 전기 신호를 뇌로 흘려보내는 패치를 붙여줬습니다. 2mA가 어느 수준의 자극인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였죠. 신 연구원이 이끈 전기연 연구팀은 두뇌 전기 자극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기술을 개발하며 최형진 서울의대 교수팀과 임상시험을 진행했는데, 이때 피실험자들에게 2mA의 전기 자극이 가해졌습니다. 이는 현재 비침습적으로 사람 머리에 전기 자극을 줄 때 허가되는 최대 전류량입니다.

 

“어! 느껴져요!” 자극은 전류의 양을 점점 높이며 이뤄졌습니다. 전류량이 2mA에 도달하자 이마가 저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 책상에서 팔을 베고 자다 보면, 일어날 때쯤 피가 통하지 않은 팔이 저릿한 적이 많은데, 그 저릿함이 이마에서 느껴졌죠. 저주파 치료를 받을 때나, 종아리에 쥐가 났을 때보다 훨씬 약했습니다. “이 정도면, 식욕 억제를 위해 전기 자극받을 만하네요!” 감탄하는 기자에게 신 연구원은 “처음 받은 자극이라 가장 크게 느낀 것”이라며 “반복해 자극을 받는다면 점점 감각이 무뎌진다”고 말했습니다.

 

전기 자극으로 뇌 ‘해킹’해 식욕을 없앤다

 

뇌는 몸을 조절하는 기관입니다. 배가 고프거나 혈당이 떨어지면 그렐린 등의 호르몬이 시상하부의 뉴런(신경세포)을 자극해 식욕을 높이는 신호를 보내죠. 포만감도 마찬가지입니다.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이나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 호르몬이 혈중에 많아지면 포만감을 유발하는 뉴런이 자극됩니다. 이때 뉴런은 뉴런과 뉴런 사이 작은 틈인 시냅스로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합니다. 신경전달물질은 뉴런의 수용체에 결합해 막 전위의 변화를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활동 전위(전기 신호)가 생성됩니다. 이 전기 신호가 뇌의 여러 뉴런에 전달돼 포만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며, 그 결과 식욕이 억제되죠. 즉 배고픔과 포만감을 느끼는 과정은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발생한 화학적 신호와 전기 신호의 상호작용입니다. 

 

전기 자극으로 식욕을 낮추는 것은 외부에서 유도된 가짜 신호를 통해 신경 회로를 조절하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뇌를 ‘해킹’하는 셈입니다. SF 영화 속에나 나올 것같던 뇌를 해킹하는 일은 이미 질환 치료에 쓰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뇌심부자극술입니다. 뇌의 깊은 곳에 위치한 시상하부에 전극을 삽입해 전기 자극을 주는 이 치료법은 파킨슨병 같은 이상운동질환이나 우울증의 증상을 호전시킵니다. 

 

연구팀이 전기로 자극할 부위는 ‘배외측전전두엽’의 피질입니다. 배외측전전두엽은 전전두엽의 가장 위쪽에 있는 부위로, 이마 바로 뒤에 있습니다. 배외측전전두엽은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에 관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최근 이곳을 자극하면 음식을 섭취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배외측전전두엽이 정서 조절과 결정을 담당하는 기능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지적 통제력이 향상되면 식욕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죠. doi: 10.1007/s00221-016-4580-1, doi: 10.3389/fnbeh.2022.893955 

 

연구팀은 이에 ‘경두개 불규칙 신호 자극 (tRNStrans- cranial Random Noise Stimulation)’으로 배외측전전두엽 피질을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습니다. tRNS는 두개골을 통해 뇌에 미세한 전류를 흐르게 해, 뇌의 특정 영역에 불규칙한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2008년 다니엘 터니 당시 독일 괴팅겐대 연구팀이 처음 개발했죠. doi: 10.1523/jneurosci.4248-08.2008 tRNS의 핵심은 ‘무작위성(random)’입니다. tRNS는 100~640Hz의 폭넓은 주파수의 전기 자극을 무작위로 사용하는데, 이런 특징이 주어진 전기 자극에 대한 뉴런의 적응을 방지하고 신경 흥분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신 연구원은 “특정 주파수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뉴런이 그 자극에 익숙해져 신경 가소성이 감소해 반응이 둔해질 수 있는데, tRNS는 뉴런의 반응성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배외측전전두엽 외에도 시상하부 등 식욕을 관리하는 뇌 부위는 많습니다. “왜 여러 부위 중 배외측전전두엽을 자극하느냐”는 질문을 안할 수 없었죠. 기자의 질문에 신 연구원은 “비침습적인 방식으로 전기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두개골과 가까운 뇌의 부위는 tRNS로 자극을 주는 것이 가능하지만, 뇌의 깊은 부위는 뇌 안에 전극을 삽입하는 시술을 거쳐야만 합니다. 연구팀은 식욕을 억제하려는 목적으로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식욕 억제, 뇌 어디를 자극할까?
▲GIB, 이한철
 
배외측전전두엽은 이마 바로 뒤의 부위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논리적인 단계를 거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유지하고 조작하는 역할을 한다. 배외측전전두엽이 손상되면 계획적인 행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배외측전전두엽을 자극해 인지적 통제력을 향상시키면 식욕을 줄일 수 있다.

 

식욕 억제, 뇌를 어떻게 자극할까?
▲GIB, 이한철
 
비침습적으로 뇌를 자극하는 수단으로는 전기와 자기장, 초음파, 적외선 등이 있다. 한국전기연구원 연구팀이 사용한 전기 자극은 뇌 신경세포를 자극한다. 신경세포는 세포 내부와 외부의 이온 농도 차이로 ‘막 전위’라는 전하 차를 유지하는데 전기 자극을 통해 미세한 전류가 전달되면 막 전위가 변해 세포의 흥분성이 달라진다.

 

단 한 번의 tRNS 정말 효과가 있을까?

 

“제가 다른 분들 머리카락을 넘겨본 적이 없어서 조심스럽네요.” 수돗물을 가득 묻힌 전극 패치를 손에 들고 난감해하는 신 연구원에게 “괜찮다”며 “그냥 막 다뤄달라”는 미래 기자의 표정은 비장했습니다. 미래 기자는 이번 취재에서 피실험자를 자청했습니다. 전기 자극으로 식욕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는 소리에 가장 크게 반응한 기자였죠.

 

2개의 전극 패치를 배외측전전두엽 근처의 두피에 올렸습니다. 정수리에서 이마 쪽으로 약 2~3cm 내려온 지점,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려 쓸 때의 위치입니다. 패치의 간격은 약 12cm였습니다. 패치에 수돗물을 가득 묻힌 것은 전류가 잘 흐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실제 임상 실험에서는 수돗물이 아닌 식염수를 묻혀 사용했습니다. 식염수는 이온 농도가 더 높아, 전류의 흐름이 더 원활하거든요.

 

패치 위치를 잡은 뒤 미래 기자가 얇은 모자를 뒤집어썼습니다. 두피를 통해 전기 자극 실험을 수행할 때 쓰는 의료용 모자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자극 지점에 패치 위치를 맞춘 뒤 구멍을 통해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때요? 배가 어느 정도 고픈가요?” 미래 기자는 이날 실험을 위해 기상 후 7시간 동안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실험을 위해 아침과 점심을 걸렀죠. “아무거나 먹고 싶을 정도로 정말 배가 고프다”는 미래 기자에게 tRNS 자극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극은 20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극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래 기자의 표정이 점점 편해졌습니다. 전기 자극이 10분 넘게 이어질 때쯤 그가 말했습니다. “저 확실히 배고픔이 줄어든 것 같아요. 아까는 취재 끝나자마자 뭐든 사 먹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이따가 집에 가서 밥을 먹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김태희
배외측전전두엽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선 뇌파 측정이나 비침습적 뇌 자극에서 두피 위치를 표준화한 10-20 시스템에 따라 F3, F4 부위를 자극한다. 알파벳은 영역을 의미한다. F는 전두엽이다. 숫자는 위치를 의미한다. 숫자가 작을수록 중앙선에 가까운 위치, 커질수록 두피 측면을 뜻한다.

 

전기 자극이 위약그룹보다 3배의 식욕 감소 효과

 

임상시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팀은 총 60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tRNS 임상을 진행했죠.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을 30명(tRNS 그룹), 30명(위약 그룹)씩 2개의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실험 그룹에는 2주에 걸쳐 총 6번, 한 번에 2mA의 tRNS를 20분 동안 흘려 보냈습니다. 비교군인 위약 그룹에는 신호를 주는 척만 했습니다. 20분 동안 처음, 그리고 마지막에만 잠깐 자극을 주고 나머지 시간 동안엔 아예 신호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2주가 지난 뒤, 연구팀은 위약 그룹에서는 식욕 점수가 평균 5.59점 감소했고, 실험 그룹에서는 평균 18.75점 감소해 실험 그룹에서 3배 이상 식욕 감소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수치는 실험자들의 응답 결과를 바탕으로 매겨졌습니다. 실험자들은 전기 자극을 받기 전, 그리고 받고 난 뒤 배고픔, 배부름, 포만감, 앞으로 더 먹을 수 있는 정도 등 식욕과 관련된 총 8개의 항목에 대한 자신의 상태를 수치로 응답했습니다. 단 것이 먹고 싶은 정도, 짭짤한 것이 먹고 싶은 정도, 기름진 것이 먹고 싶은 정도 등도 질문에 포함됐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이설하 서울의대 연구원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배고픔과 포만감, 배부름, 그리고 달고 짜고 기름진 것을 먹고 싶은 정도를 복합적으로 계산해 식욕을 파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험자들은 자신의 상태를 0부터 100 사이의 숫자로 선택해 응답했습니다. 그 결과 두 번째 전기 자극 실험에서부터 식욕, 배고픔, 배부름, 포만감 항목의 그래프에서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험 그룹의 피실험자들은 식욕과 배고픔이 줄었고 배부름과 포만감이 늘었습니다. 반면 위약 그룹에 속한 피실험자들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치를 보고했죠. 

 

그렇지만 신 연구원이 말한 대로 임상시험에서도 한 번의 자극으로 식욕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순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첫 번째 전기 자극이 있기 전후로는 실험 그룹과 위약 그룹 간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래 기자는 “식욕이 사라졌다”며 이날 저와 함께 밥을 먹지 않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였을까요? 어쨌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떤 방법이든 식욕을 억제했으니 좋은 거겠죠.

 

▲김태희
신기영 한국전기연구원 전기의료기기연구단 전기융합휴먼케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전기 자극으로 식욕을 저하하는 기술이 대사증후군 치료 및 관리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식욕 억제의 꿈은 이루어질까

 

연구팀은 이번 성과를 토대로 tRNS와 식욕 억제 사이의 더 깊은 관계성을 탐구할 계획입니다. 연구팀은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임상시험을 설계했는데, 전류의 양, 자극 주기 등을 최적화하기 위해 추가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뇌 활동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기능적근적외선분광법(fNIRS) 을 활용해 뇌의 활성도 변화를 직접 확인할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뇌는 열심히 활동할 때 산소와 영양분을 필요로 합니다. 즉 활발히 활동하는 부위에는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해 줄 피가 몰리죠. 때문에 특정 부위에 산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아지면 해당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fNIRS는 두피나 이마에 빛을 쏴 전두엽의 활성화 정도를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신 연구원은 “fNIRS를 이용한다면 뇌 활성화 정보를 기반으로 전기 자극의 세기나 자극 시간, 주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식욕 억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여러분은 저와 미래 기자의 머리를 감싼 연구용 두피 전기 자극 장비가 아닌, 패치형 전기 자극 장비를 이마에 붙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연구팀은 상용화를 목적으로, 집에서도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무선 패치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외측전전두엽 말고 식욕을 억제하는 다른 뇌의 부위를 동시에 자극하면 더 효과가 크지 않을까요?” “지금은 어렵더라도 두피를 통해 뇌의 깊은 곳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될 날이 올까요?” 이날 취재에선 사심을 담은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 자신과 싸우고, 실패하길 반복하는 ‘식욕 라운드’에서 과학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혹시, 운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뇌 부위는 없겠죠?”  

 

전기 자극 실험 그룹과 위약 그룹 식욕 변화
▲자료: 최형진 서울의대 교수팀
 
최형진 서울의대 교수팀은 임상시험에 참여한 피실험자들이 전기 자극 시행 전후에 응답한 배고픈 수준, 배부른 수준, 더 먹을 수 있는 정도, 포만감을 느끼는 수준을 활용해 식욕 수치를 계산했다. 2주 간 총 6번 진행된 자극 결과 tRNS 자극을 받은 실험 그룹은 위약 그룹에 비해 3배 이상 식욕이 감소했다.

 

▲한국전기연구원
신기영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팀은 스마트폰으로 제어 및 모니터링이 가능한 무선형 전기 자극 패치를 개발하고 있다. 가로 9~10cm, 세로 4~5cm의 패치는 이마에 붙이는 형태로 사용자의 편의를 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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