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가 화석연료가 아닌 물로부터 만들어질 때 환경오염 걱정 없는 청정하고 지속가능한 연료로서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됨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물로부터 수소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태양에너지를 활용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무한에너지’를 확보하는 길일 것이다. 이렇게 태양광과 물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 바로 광화학적 수소 제조기술이다.
태양에너지 이용 물을 분해
광화학적 수소 제조기술은 생물학적, 열화학적 방법과 마찬가지로 화석연료의 도움 없이 물로부터 수소를 만든다. 물을 다른 에너지의 추가 공급 없이 수소와 산소로 분해한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세가지 방법 모두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는 조금씩 다르다. 생물학적 방법이 조류의 광합성 과정을, 열화학적 방법이 높은 온도에서 물을 분해하는 다단계 화학반응을 이용한다면, 광화학적 방법은 태양광을 직접 이용한다.
좀더 정확히 말해 물을 분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광으로부터 직접 얻는다는 것이다. 물은 산소와 수소로 이뤄져 있고, 이를 분리하면 이론적으로는 수소를 무한대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물은 매우 안정적인 화합물이고 이를 분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를 들여야한다. 이 에너지를 태양광으로부터 가져오겠다는 아이디어다.
표면온도가 약 6천℃인 태양으로부터 내리쬐는 에너지는 지표면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대기중의 산소와 질소, 오존 등의 기체에 흡수되면서 1m2당 약 1천W의 에너지밀도로 도달한다. 지구로 날아오는 햇빛을 1시간 동안 100% 모으면 인류가 1년간 쓰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하다.
일반적으로 태양광 속의 에너지는 파장이 7백-9백20nm(나노미터, 1nm=${10}^{-9}$m)인 적외선이 23.5%, 가시광선(4백-7백nm)이 44.4%, 자외선(3백15-4백nm)이 2.7%를 차지한다. 따라서 태양빛을 이용해 물을 분해하려면 가장 널리 분포하는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것이 이상적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태양광을 물에 쪼였다고 해서 산소와 수소를 얻을 수 없다. 물이 직접 흡수하는 태양광의 스펙트럼은 에너지가 높은 1백-2백10nm 영역이기 때문이다(파장이 짧을수록 에너지가 높다). 즉 태양광을 직접 이용해 물을 분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표에 도달하는 태양빛을 흡수해 물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다른 물질, 즉 광촉매가 반드시 필요하다. 광화학적 수소 제조기술이란 광촉매를 이용해 물에서 수소를 분리해내는 방법을 말한다.
광촉매란 용어는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만족스럽고 일치된 정의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광촉매 용어 자체는 빛이 촉매로 작용하는 것 같은 어감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광반응을 가속시키는 촉매’(catalyst of photoreactions)로 정의할 수 있다. 물론 광촉매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촉매가 갖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즉 광촉매는 반응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소모되지 않아야 하며 기존의 광반응 속도를 가속시켜야 한다.
에너지는 높으나 효율 낮은 자외선
광촉매 연구는 1970년대 초 일본의 두 연구자에 의해 시작됐다. 도쿄대의 혼다와 후지시마 박사는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 실험을 하던 중 놀라운 소재를 발견했다. 비커에 물을 가득 채우고 음극에는 백금을, 양극에는 이산화티타늄(TiO₂)란 물질을 설치한 다음, 자외선을 발생시키는 수은 램프를 비췄더니 물이 분해돼 수소와 산소가 발생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성과는 1972년 ‘네이처’에 발표됐으며 곧 전세계의 과학자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비록 혼다와 후지시마 박사의 실험에서 발생한 수소의 양은 매우 적었지만, 그동안 꿈으로만 여겨졌던 ‘물+햇빛+광촉매=에너지’를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논문이었기 때문이다. 각국의 많은 과학자는 이산화티타늄이란 물질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앞다퉈 광촉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광촉매는 말 그대로 빛에너지에 의해 촉매 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광촉매가 빛을 받으면 (-)전기를 띠는 전자와 (+)전기를 띠는 정공이 만들어진다. 광촉매의 핵심은 바로 이 전자와 정공의 강력한 산화환원력이다.
물 속의 광촉매가 빛을 받으면 (-)전기를 띠는 전자가 발생돼 물 분자의 산소와 수소 사이의 결합을 끊는다. 안정된 구조를 이루고 있던 물분자는 순식간에 결합이 깨져 불안정한 산소이온(O2-)과 수소이온(H+)으로 분리된다. 이때 정공은 불안정한 산소이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방황’하던 수소이온은 이웃의 수소이온과 만나 수소분자(H+ + H+ → H₂))를 이룬다.
광촉매로는 혼다와 후지시마 박사가 발견한 이산화티타늄이 가장 흔히 쓰인다. 이산화티타늄은 빛에 의해 분해되지 않고 활성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광촉매가 활성을 나타내려면 빛에너지를 받아 전자와 정공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산화티타늄은 이렇게 되기 위한 에너지가 너무 크다.
이산화티타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3.2eV(전자볼트)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기에 해당되는 태양빛의 파장은 자외선 영역인 3백-4백nm다. 따라서 이산화티타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외선 영역의 햇빛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표에 도달하는 자외선 영역은 최고의 일사 조건에서도 10%이며, 일반적으로 3% 내외라고 알려져 있다. 즉 자외선 영역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이산화티타늄 같은 광촉매로는 물 분해 효율이 너무 낮아 상용화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자연광만으로 수소 생산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은 가시광선 영역의 에너지를 흡수해 촉매 활성을 띠는 광촉매 개발에 몰두해왔다. 가시광선은 자외선보다 물 분해 능력은 떨어지지만 햇빛의 40-50%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다.
지난 2001년 12월 일본 쓰쿠바연구소(일본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아라카와 박사팀은 자연햇빛으로 물을 분해할 수 있는 광촉매를 개발했다고 ‘네이처’에 발표해 세계를 흥분시켰다. 종래의 광촉매는 주로 파장이 짧은 자외선만을 이용해 물을 분해할 수 있었으나, 연구팀이 개발한 것은 4백-5백nm의 가시광선으로 물을 분해할 수 있는 촉매다. 연구팀은 인듐탄탈레이트라는 물질의 일부를 니켈로 치환한 아주 작은 입자상태의 광촉매 0.5g을 2백50mL의 물에 넣어 가시광선을 쪼인 결과 1시간당 0.35mL의 수소를 얻어냈다.
가시광선을 쬔 물에서 이 정도의 수소를 얻은 것은 세계 최초의 성과로, 많은 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들이 개발한 광촉매는 빛에너지의 몇 %가 물 분해에 쓰이는가를 알아보는 광이용효율이 0.1% 수준으로, 아직 상용화하기에는 무리다. 전문가들은 광이용효율이 1%는 돼야 실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광촉매의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분야는 기존의 자외선 영역 광촉매다. 몇해 전에는 이산화티타늄과는 다른 성분의, 자외선을 이용하는 새로운 광촉매를 개발해 수소발생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받았다.
포항공대 화학공학과의 이재성 교수는 지난 1999년 페롭프스카이트(perovskite)라는 새로운 구조의 광촉매를 개발해 자외선을 쬔 결과 수소 발생량을 크게 증가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미국의 화학학술지인 ‘케미컬&엔지니어링 뉴스’에 게재됐다. 이 교수는 같은 빛에너지에서 수소의 발생효율을 기존 5%에서 23%로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우수한 효율에 비해 페롭프스카이드 광촉매는 제조가 어렵고 재현성에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태양광의 대부분인 가시광선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 1천억 집중 투자
현재 광촉매 연구를 가장 앞서서 이끌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미국, 스위스 등으로 이들은 광촉매를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개발 열기도 이들 나라에 못지 않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부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포항공대, 한국화학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광촉매 연구가 활발히 추진돼 그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다. 지난 2000년에는 향후 5년간 국책과제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이 공동으로 광촉매를 활용한 고효율수소제조 태양광 반응시스템 개발을 시작했다.
특히 2003년 7월에는 10년 동안 1천억원의 막대한 연구비를 쓸 수 있는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고효율 수소개발사업단이 선정됐다. 공식명칭은 ‘고효율 수소에너지 제조저장 이용기술개발사업단’이다. 이에 따라 국내의 광촉매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광촉매 연구 분야는 가시광선 영역을 활용하는 촉매 개발과 반응효율을 감소시키는 전자-정공의 재결합 방지 기술, 광촉매의 물에서의 안정성 확보 등이 주요 연구대상이다. 국내의 경우는 새로운 광촉매 제조와 수소생산의 기본적인 시스템 구성이 진행중에 있다. 아직까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지는 않으나 점점 높아지고 있는 관심으로 볼 때 빠른 시일 내에 독창적인 시스템이나 반응형태가 국내기술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우수한 자연광촉매가 개발되면 에너지체계는 수소 중심으로 완전히 바뀔 것이며 현 추세대로 연구가 진행된다면 머지 않아 승부가 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수한 광촉매 개발을 위해서는 분자와 원자 수준의 특성제어 기술과 나노기술 개발에 더욱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