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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 감성 충족시키는 생각하는 기계

컴퓨터와 함께 디자인하는 나만의 패션

인공적인 지능을 갖는 기계가 사람이 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알아서 해결해주고 인간수준의 감성을 보유한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이 정도의 능력은 아니더라도 이미 지능적으로 밥을 지어주는 인공지능 밥솥이나, 빨래의 양이나 더러워진 정도를 스스로 알아내 효과적으로 빨아주는 퍼지 세탁기를 통해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이런 기계들이 과연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의사가 가리키는 지점을 따라 인공지능기계가 환자의 뇌 를 스캔하는 모습.


수많은 임상경험 갖춘 사이버 전문의

인간의 사고를 기계화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는 이미 17세기부터 기호논리학 분야에서 연구돼 왔다. 이후 1900년대에 들면서 이런 논리학을 한층 발전시켜 형식언어나 오토메타 등과 같은 계산이론의 연구가 진행돼 오늘날의 컴퓨터를 만드는 토대를 이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독립적인 연구분야로 빛을 본 것은 1956년 매카시(J. McCarthy)와 민스키(M. Minsky), 사이먼(H. Simon), 뉴엘(A. Newell) 등의 학자들이 미국의 다트머스대에서 가진 모임에서부터다. 이들은 인간처럼 지능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했다.

이 모임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사용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단순히 계산을 빨리 하는 기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컴퓨터를 모든 종류의 기호를 처리할 수 있는 기계로 생각했다.

이들 중 사이먼과 뉴엘은 10여년 간의 연구를 진행한 끝에 ‘일반문제 해결자’를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문제해결 과정을 기호체계로 모델화한 것인데,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 마음의 작용과 컴퓨터가 기호조작에 의해 프로그램을 처리하는 과정이 유사하다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지능을 프로그래밍하는 작업은 상식을 추론하는 일이나 언어이해 능력과 같은 지능의 보편적인 기능을 실현할 수 없었다. 이후 프로그램에 의한 지능의 실현은 결국 프로그램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양에 좌우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지식을 좀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이로부터 얻어진 대표적인 인공지능 결과물이 바로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다.

전문가 시스템은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해당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험적 지식을 모아놓은 지식베이스와 이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소프트웨어다. 예를 들면 ‘마이신’(MYCIN)이라는 전문가 시스템은 의사를 대신해 환자에게 처방을 내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수많은 환자의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의사의 풍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적절한 처방을 내린다. 매우 뛰어난 성능을 가진 마이신은 아직까지도 인공지능의 성공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도 사람의 시각기능을 모방한 컴퓨터 시각이나 자연언어처리, 음성이해, 로보틱스 등에서 수많은 인공지능 시스템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지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하기보다는 컴퓨터로 대표되는 기계가 지능적인 일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어 뇌와 감각 뇌 모방하는 연구


최근 인공지능 기술은 생물의 신경계를 모방해 스스로 진화하는 하드웨어칩을 개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정을 보면, 폐쇄된 좁은 범위에서 연구실 수준의 지능에 대한 탐구로부터 좀더 큰 규모의 지식을 중요시하는 전문가 시스템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게임 등을 해결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서부터 실용적인 시스템의 전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구의 핵심도 추론에서부터 지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전문가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개발됐고, 인공지능은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분위기가 다소 진정되면서 인공지능 기술은 또다른 도전을 받고 있다.

이렇게 된 중요한 원인은 페이겐바움(E. Feigenbaum)이 지적했던 지식습득의 곤란성 때문이다. 지식의 습득은 전문가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지식을 습득하면 한시간에 한개 정도의 규칙을 얻을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돼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연결주의’라 불리는 방식이다. 이전까지의 기술을 기호로써 지식을 표현했다는 의미로 ‘기호주의’라 불렀다면, 연결주의는 신경망(neural networks)에 의한 인공지능의 실현이 목표다. 신경망의 역사는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생명체의 신경망을 흉내내 시스템 자체가 학습이 가능하도록 만든 알고리즘이 개발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신경망을 다층화시킴으로써 응용범위가 넓어졌고, 흥미로운 인공지능 시스템이 개발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신경망 칩이라는 하드웨어까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기술적으로 보면 기호주의와 연결주의는 각각 다른 장·단점을 갖는 패러다임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방식과 요구되는 기술 차이로 연구자 간의 철학적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호주의적 접근방식은 지식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고 시스템을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지식이 기호수준, 즉 구조화된 언어로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연결주의에서 지식은 신경망의 연결강도(weight)에 의해 분산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오류에 강하고 하드웨어의 국소적 오류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좀더 생물에 가까운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연결주의에서 학습은 적절한 예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의해 자연스럽게 행해진다.

그렇다면 기호주의와 연결주의의 장점만을 갖는 통합 시스템은 불가능한 것일까. 실제로 인간은 기호처리를 담당하는 언어 뇌와 패턴처리를 담당하는 감각 뇌를 따로 갖고 있으며, 이 둘을 적절히 사용하고 협조시켜 고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적당히 통합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깊은 수준의 밀접한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 현재 인공지능 연구에서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 중 하나다.

인간 감성에 도전하는 진화알고리즘

복잡한 인간의 지능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고, 이로부터 수많은 방법이 고안됐지만 여전히 인간 수준의 지능이나 감성을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결국 인공적으로 만든 지능시스템의 성능을 인간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 내에 사람을 자연스럽게 참여시킬 수 있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이를 위한 한가지 가능성이 대화형 유전알고리즘이다.

유전알고리즘은 1970년대 초에 존 홀랜드에 의해 제안됐다. 이는 교차나 돌연변이, 적자생존과 같은 자연계의 진화 메커니즘을 기계에 적용한 것이다. 유전알고리즘은 집단 단위에서 매우 효율적인 탐색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최적화 문제 등에 적용돼 왔다.

유전알고리즘에서는 각 문제를 0과 1로 구성되는 염색체로 표현한다. 또한 교차 연산을 통해 두 염색체의 일부를 상호 교체한다. 이는 실제 생물의 유전자가 교차를 통해 후손의 염색체가 부모 양쪽의 특성을 모두 물려받는 과정을 모방한 것이다. 또한 돌연변이 연산을 통해 염색체의 일부분을 아주 낮은 확률로 0은 1로, 1은 0으로 바꾼다. 이는 생물체에서 낮은 확률로 부모의 특징과 전혀 다른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과정을 모방한 것이다. 집단내의 각 개체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 높은 적합도(원하는 해답)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간다(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3년 7월호부터 연재된 유전알고리즘 기사 참조).

대화형 유전알고리즘은 유전알고리즘의 기본 원리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이다. 일반 유전알고리즘에서는 원하는 수준의 해답이 나올 때까지 시스템을 계속해서 ‘진화’시킨다. 이 과정에 적합도 함수라는 것을 도입해 원하는 수준의 해답이 나왔는지 점검한다.

대화형 유전알고리즘에서는 적합도 함수 대신 사용자가 각 개체에 대한 적합도를 평가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사용자와 시스템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사용자의 취향이나 감성 등을 진화 과정에 적용시킬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화형 유전알고리즘은 디자인이나 예술과 같이 일반적인 유전알고리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적용되곤 한다.

패션 디자인 설계도 가능


패션은 인간의 감성이 표현되는 대표적 분야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이를 모방하기는 쉽지 않다.


대화형 유전알고리즘을 예를 통해 알아보자. 만약 자신이 패션 디자이너가 돼 자신만을 위한 옷을 멋지게 디자인해 입는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에서 필자는 지난 2001년 ‘패션 디자인 지원 시스템’을 개발했다.

나만의 옷을 만든다는 발상은 좋지만,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의상을 디자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일반인이 의류 생산자에게 원하는 디자인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비전문가를 위한 디자인 지원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상적인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패션 디자인은 사용자의 ‘감성’부분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공지능 시스템으로는 무리가 있다.

필자는 인간의 감성까지 표현하는 패션디자인 시스템을 실현하기 위해 대화형 유전알고리즘을 이용했다. 우선 패션 디자이너의 지식에 기반한 세부 모델을 유전자형으로 인코딩했다. 일반적인 여성복의 세부 요소를 목과 몸통, 팔과 소매, 스커트와 허리선의 3부분으로 재분류하고 각 부분별로 취할 수 있는 8가지 색상을 포함시켜 염색체를 구성한다. 결국 하나의 디자인 개체는 3개의 디자인 부분과 각 색상들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이 개체들 중 사용자가 선호하는 디자인이 선택되고, 선택된 개체의 특성이 다음 세대에 나타날 확률을 높임으로써 좀더 현실적이고 그럴듯한 의상 디자인을 생성해낼 수 있다.

3개의 부분으로 재구성된 여성복 디자인은 기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각각 독립된 3차원 모델로 만들고, 이들의 조합에서 개체가 만들어지도록 한다.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은 결국 의상의 기본 요소로 구성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조합 중에서 최상의 것을 탐색하는 것과 같은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이 시스템은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방대한 디자인 탐색 공간에서 사용자의 감성에 맞는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이다.

대화형 유전 알고리즘에 기반한 의상 디자인 지원 시스템은 이전에 개발된 시스템과는 달리 사용자의 감성과 취향에 따라 디자인 개체들을 ‘진화’시키므로 비전문가도 어렵지 않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의상 디자인 분야의 전문 지식에 기반한 세부 모델을 유전자형으로 인코딩하고, 이를 컴퓨터 화면상에 3차원 그래픽 모델로 보여줌으로써 좀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원하는 디자인들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대화형 유전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감성과 선호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거대한 탐색 공간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찾아내도록 한다.

인간과 상호작용 하는 시스템

지금까지 공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인간의 지능과 감성을 실현하려는 시도는 무수히 많이 시도돼 왔다. 이런 노력 중 하나는 인간의 청각이나 시각을 흉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인간이 어떻게 듣고 보는가를 모방하는 문제는 여전히 공학적 한계에 부딪혀 있다. 최근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학뿐 아니라 심리학과 분자생물학, 신경생물학 등 여러 분야가 포함된 학제적 접근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부의 지원 하에 진행되고 있는 ‘뇌과학연구사업’에서 학제적 연구를 통해 인간의 시각과 청각, 인지추론 및 행동기능을 공학적으로 구현하려는 연구를 수행중이다.

인간의 지능과 감성을 실현하기 위해 인공지능 분야에서 시도된 다양한 방법과 이 방법을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인간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물체의 진화과정을 모방한 유전알고리즘, 그리고 인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감성까지 표현하려는 대화형 유전알고리즘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노력은, 여전히 좀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지만,현재까지 개발된 방법만으로도 인간의 지능이나 감성에 필적하는 영상이나 음악, 비디오 등의 검색에 훌륭히 적용되고 있다. 결국인간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능기술을통합하고 이를 인간과 매끄럽게 상호작용 시키는 기술이 유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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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조성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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