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평범해지고 싶어하는 수재들

-한국과학기술대학을 찾아-

한국과학기술대학이 개교한지 2달이 지났다. 영재들로 뽑힌 이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하며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영재교육기관으로 알려진 한국과학기술대학(KIT : Korea Institute of Technology)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크다.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교육받는 대학이라는 일반적인 호기심에서부터 대학에 진학할 자녀를 가진 부모의 관심, 또한 과학기술자의 꿈을 키우는 중·고등학생들의 궁금증에 이르기까지 한국과학기술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뜨겁기만 한다.

습관부터 바꾼다

무학년무학과제도, 능력에 따른 조기졸업, 최신의 실험실습교재, 양과 질에 있어서 최고의 교수교수진, 전원 기숙사생활, 완전국비운영 등으로 설립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던 한국과학기술대학은 이제 정식으로 개교, 그 실체를 드러냈다.

학생들은 두달남짓의 짧은 기간이나마 직접 수업을 받아보고 기숙사(이 대학에서 생활관이라 부른다)생활을 하면서 머리속에 그렸던 자신들의 대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느끼기 시작했다. 젊은 패기에 찬 교수들은 직접 미래의 과학자들과 접해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문제점을 파악, 수업과 학교생활을 통해 시정해 나가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안에 자리잡은 과학기술대학을 들어서면서 느끼는 감정은 '대학'을 찾았다기 보다는 '연구소'를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정문에서 본부건물까지 학생이나 교수는 찾아볼 수가 없고 몇개의 나즈막한 건물만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개교한지 얼마되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학교라는 것과 11만6천평의 넓은 대지위에 학생수가 5백9명에 불과하다는 인구밀도에 이유가 있겠지만정문에서부터 떠들썩한 일반대학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긴장감마저 들게한다.

일반사회와는 어느 정도 격리된 우리나라 초유의 과학기술 도시(Technopolise)인 대덕연구단지 안에 대학이 있다는 것부터가 이 대학의 성격을 규정지어주는 것은 아닐까?

강의실을 기웃거리다 처음 만난 사람은 금속재료를 전공하고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연구 및 강의생활을 하다 귀국한 권혁상교수(34세). 학생들의 생활을 물었다. "보통 1~2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공부를 한다. 초기의 긴장감도 작용하겠지만 학습에 대한 열의는 대단한 것 같다. 선배들이 없어 대학생활을 교수들을 통해 익히고 있지만 보통 10명 남짓한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하려 노력한다."

개강한지 한달밖에 안됐는데도 전공을 바꾸겠다는 학생들이 쇄도하고 있다. 그만큼 고등학교 때의 생각이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무학년무학과 제도의 우수성이 당장 들어났다고나 할까.

미국 이공계학생들과는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들은 질문을 많이 한다. 우리 학생들은 질문하는 습관이 아직 배어있질 못한 것 같다. 이런 습관이 고쳐지질 않으면 과학기술대학의 특성을 살릴수 없다. 교수와 학생 비율이 10대1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교수들은 이런 점에 유의해 학생들을 지도하려 한다."
 

전산학개론 실습과정
 

테크닉의 습득보다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4개학부 15개전공분야로 구성된 학사운영을 살펴보면 일반대학 이공계와 다른점이 드러난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자연과학부는 별 다를 것이 없지만 회로 및 시스템, 정보통신 등의 전공분야로 구성된 전자·전산학부, Mechatronics와 CAD/CAM 분야가 있는 기계·재료공학부 등은 이른바 첨단분야로 일반대학 학사과정에서는 아직 강의조차 개설되지 않은 것이 많다. 3, 4학년에서 수강할 교과과정도 내용은 어떨지 몰라도 석사과정코스가 일부 포함돼있다.

과학기술대학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공계에 적용해본 산업디자인학과는 유일하게 학과별 모집을 했다. 과의 성격상 여학생들이 비교적 많은(39명 중 14명)이 곳은 과학기술대학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 첨단산업제품의 디자인에 적성과 관심을 보이는 재원을 뽑아, 창조성과 탁월한 미적조형력을 갖춘 디자이너를 양성한다는 이 학과에서 강의를 맡고있는 김명석교수는 "일반미술대학에서 강의해본 경험과 비교해 볼 때 우리학교 학생들의 특징은, 독자적으로 단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테크닉에 만족하지 않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려는 태도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시립교향악단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개최하고 무용발표회를 갖는 등 문화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이는 고도산업사회를 이끌어 갈 첨단기술공학자를 조기육성한다는 학교설립의 목적과 사회와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자칫 경화되기 쉬운 분위기를 해소하고자 교수들이 의견을 모아 시행한 것.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도서관의 열기는 대단하다
 

도서관의 과열된(?) 분위기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도서관. 현재 6만여권의 장서와 5백여종의 학술잡지, 1여종의 교양잡지가 비치되어 있는 이곳은 24시간 완전개방제로 운영되는 과학기술대학의 심장부라 할수 있다. 현재 1학년 학생만으로 꽉 들어차 무척 비좁다는 느낌이 든다.

88년까지 10만권의 도서를 확보하고 외부 자료 활용을 위해 DNS(공중정보통신망)의 KIT터미널, CAI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완전한 전산화 시스템을 구성할 계획이다.

전공서적외에도 상당수의 일반교양도서와 과학교양도서가 눈에 띄었으나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책상에는 학과 전공도서 일색이다. 가끔 쉬는 동안에 잡지류를 뒤적이는 학생 외에는 한사람의 예외없이 학과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시험기간도 아닌데 이런 분위기는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도서관 휴게실에서 만난 김명준군(기술공학부)과 송정현군(전자·전산학부)에게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자 다른 대학이야기 좀 해달라고 되려 묻는다. 타대학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고립된 상황에서 선배도 없는 이들은 당연한 것을 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이런 것이냐'. '좀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라는 표현은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한눈팔지 말고 전공분야에 몰입해 '20대 박사'가 되는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될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 스스로도 빠른 시일안에 첨단기술 공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다만 대학1학년이 가질 수 있는 여유있는 분위기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음 좋겠다. 어느 누구도 경직된 분위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석구석에 숨막힘이 존재한다. 서로 의견을 모아 극복해야할 것 같다"

창조적 과학기술문화 탄생을 바라며

기숙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연구소를  방문하는듯한 긴장감이 풀리는 것 같았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기숙사입구의 게시판에 있는 서클모집공고 등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창문회(문화서클), 기독교학생회 등은 학생들 스스로가 조직한 서클. 학습의 연장인 세미나와 리서치 그룹이 너무 기술적인 면에 치우쳐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 한다.

"대학이란 무엇입니까 지성과 민주적 소양의 터전이 아닙니까? -중략- 전체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의견을 수렴해 진정한 학생의 대변자가 될 학생회를 만들어갑시다."라는 대자보(?)도 학생들의 관심을 많이 끌고 있었다.

4명이 방 하나를 쓰는 기숙사(3, 4학년이 되면 2인 1실)는 조금 비좁은 감이 있지만 필요에 따라 방배치를 바꾸어 놓아 각각 다른 방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특히 공부하는 학생이 잠자는 학생을 방해하지 않게 만들어논 방배치는 서로의 생활을 지켜주려는 노력.

식사시간 후 320호에서 학생들 6명과 자리를 같이 했다. 자연스런 분위기에서 맨먼저 나온 이야기는 선배가 없어 고민이라는 것. 다른 대학과 교류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되고 교수들과의 대화도 전공이나 진로문제에 국한돼 있어 소위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습득할 기회가 적다고 한다. 교수와의 대화도, 고등학교 때까지 가졌던 습관을 바꿀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피상적으로 겉돌기 만다는 지적.

특히 조기졸업과 관련된 계절학기 운영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방학동안만이라도 학교를 떠나 타학생들과 교류도 하며 부족한 전공외 분야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으련만 학점이수에 몰입하라면 어떡하냐고 향변한다.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이들이 갖는 학교에 대한 긍지는 대단함을 느껐다. 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느냐는 것이다. 학교의 주인은 자신이며 과학기술대학이 갖고 있는 훌륭한 시설과 좋은 여건을 활용해 한번 세계의 최고대학으로 웅비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학교측은 어서 빨리 이 학생들을 전문 과학자들로 육성하고 싶어 하고 학생들은 일면 수긍을 하면서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외적인 조건마련을 기대하고 있다.

중학교부터 영국에서 공부하고 이번에 과학기술대학으로 온 문희정(33세·화학)교수는 "한5~6년 지켜봐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사회속의 대학이 강조되는 상황에서는 기숙사와 강의실을 오가는 대학생활이 이상스럽게 생각되지만 오히려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마음껏 학문에 전념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이들이 디디고 있는 문화적 대상과 공간이 조금 황폐한 것만은 사실이나 학생들이 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대덕연구단지 내의 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한다고 가정할 때 새로운 선후배관계가 형성되고 대덕은 전형적인 테크노폴리스로서 새로운 과학기술문화를 꽃피울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한다.

상보성원리를 발표하여 양자물리학에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덴마크 천재 물리학자 '닐스 보아'는 그 사고의 유연함과 연구 분위기의 자유로움으로 유명했다. 그가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세운 연구소에서는 풋나기 연구원로부터 세계적인 학자에 이르기 까지 맥주잔을 앞에 두고 몇시간씩이고 격의 없는 토론을 벌이곤 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현재의 과학기술에 접목되지 못하면 20대 박사는 양산할지언정 세계적인 석학은 탄생되기 어렵지 않을까

대덕을 떠나 유성으로 나오면서 만난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나름대로 과기대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석사과정 정도에서 그런 조건을 마련해준다면 아주 바람직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조기졸업제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대학 1~2학년 정도를 좀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하든지"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8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용해 기자
  • 김두희 기자

🎓️ 진로 추천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 산업경영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