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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와 관련된 기술력은 국내에서 제일 강하다고 자부합니다.​

"하드웨어와 관련된 기술력은 국내에서 제일 강하다고 자부합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자리잡은 건인시스템 변대규(卞大圭, 30) 사장이 자기회사에 대한 평가다.

이 회사를 대표하는 변사장은 전형적인 공학도. 79년에 대구 영남고를 졸업한 직후 그는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 그때는 대학1학년을 마치고 난 뒤에 전공학과를 정하는 계열별 모집이었으므로 전공선정을 놓고 그는 한동안 크게 흔들렸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제어계측학과로 마음을 굳힌 것은 설치된지 2년밖에 안되는 신설학과라는 '신선함'과 미사일 로보틱스 계장처리시스템 영상제어시스템 등 멋있어 보이는 과목들이 유혹했기 때문이었다.
 

(주)건인 시스템 변태규 사장


3중고에 시달리고

정상대로 83년에 대학을 졸업한 변사장은 그 해에 모교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때 그가 지도교수로 모신 분은 제어이론 전문가인 권욱현교수였다.

"대개 과학원은 과제(project) 중심이고, 서울대 대학원은 이론을 주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권교수는 과제를 중시했어요. 엔진니어는 그 나라에서 필요한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분의 지론이었지요. 우리나라도 10년쯤 후에는 이론이 중시돼야 하겠지만 지금은 기업이 목말라하는 기술을 제공해 주어야 할 시점이라는 겁니다."

이런 철학을 가진 교수밑에서 공부한 덕분에 현장에서 요구되는 기술을 많이 익힐 수 있었던 변사장은 컨베이어시스템을 제어하는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와도 석사과정 재학중에 만나게 된다. 이 기기는 현재 '건인'이 개발하고 있는 품목의 하나로 로봇 수치제어기기와 함께 대표적인 공장자동화기기로 꼽히고 있다.

"권교수방의 대학원생들은 기술과 이론을 동시에 해야 했으므로 다른 방 대학원생들 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의 고생이 지금 큰 힘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SLC에 사용되는 제어언어'를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석사장교 시험을 통과, 6개월간 군복무를 하게 된다.

"PLC SLC는 모두 권교수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것들입니다. 그중 SLC는 화공 제어 공정제어용 기기로 온도 압력 유량 등을 제어해 줍니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신호제어기기요."

군대를 마치고 다시 대학(박사과정)으로 돌아 온 장사장은 여러 산업체에서 의뢰해온 과제들을 수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산업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는데, 창업후 이들로부터 적지않은 도움을 받았다.

"박사논문 주제는 공정제어이론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건데 서울대 제어계측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자신의 논문이 외국의 유명학술지에 실려야 해요. 저는 논문을 영국의 '국제제어지'(International Journal of Control)에 보내 게재해줄 것을 신청했어요. 운 좋게도 88년 11월에 잡지에 싣기로 결정됐다는 전갈이 왔어요."

그는 산업체에서 받은 과제가 학위논문으로 연결되지 않아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논문과 무관하게 과제를 해야 했으므로 '2중고'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내의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과제수준은 논문감이 되지 못합니다. 논문으로 대체할 만큼 고급기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론이 현실보다는 다소 앞서가기 때문이죠."

사실 그는 1988년 무렵에 '3중고'를 겪어야 했다. 그해 11월부터는 과제와 논문에다 회사설립준비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부터 꿈꿔 온 회사설립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경영대에서 회계이론을 들었어요. 약간의 갈등도 물론 있었지요. 특히 대학교수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죠. 하지만 개인적인 성향을 살리기로 곧 결정했어요. 또 공학은 현장이 주무대라고 느껴졌습니다."

제자의 포부를 전해 들은 권교수는 미국의 휴렛팩커드사의 역사와 중소기업에 관한 정보를 들려주는 등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휴렛팩커드사'가 되라는 주문도 했다.

마침내 '건인시스템'호는 지난해 2월 출범의 고동소리를 울렸다. 제어계측학과의 영어 명칭(Control and Instrumentation)의 앞자만 따서 상호를 정한 뒤 본격적으로 전자산업계에 뛰어든 것이다.

각자가 조금씩 모은 5천만원을 자본금으로 출발한 작은 회사였지만 학력과 기술력만은 자신이 있었다. 대학 동기생인 변사장과 김종일연구실장(30), 두사람이 박사학위 소지자였고, 나머지 인원들도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더욱이 7명중 6명이 권욱현교수방 출신이라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적어도 팀웍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용역 반, 개발 반의 비율로 사업을 했어요. 용역분야에서는 제어컴퓨터 주변장치를 국산화해 주었고 컴퓨터비전시스템(컴퓨터가 카메라로부터 받은 영상신호를 처리하는 것)을 설치해 주었어요. 개발분야에서 작년에 이룬 최대 성과로는 MDS(Microprocessor Development System)의 국산화를 꼽을 수 있어요. 금년 여름에 시장에 내 놓을 예정인 이 기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많은 도움을 장비입니다."

사실 전자장비의 개발현장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매우 작아서 오히려 개발을 지연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를 일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커다란' 장비가 바로 MDS다.

변사장은 남들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고급 하드웨어라는 점을 높이 사 MDS의 개발에 착수했다.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그는 '젖줄'을 찾아 나섰다.

"상공부의 공업기반기술과제 지원자금 7천5백만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해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 돈은 국내의 지원자금중 가장 조건이 좋은 것 같아요. 개발에 성공하면 5년 이내에 정부에 원금을 갚게 돼 있으나 기술소유권은 개발회사가 갖게 됩니다. 실패하면 원금도 갚을 필요가 없구요.

기업이 제안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자금지원여부를 결정하지요. 이 제안서가 잘 작성돼야 자금을 얻을 수 있음을 물론이지요. 특히 진짜로 연구투자를 위해서만 돈을 쓸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해요."
 

MDS는 앞으로 전자장비의 개발현장에서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개발에 승부수를

그는 '건인'을 개방중심의 회사로 이끌어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용역은 점차 줄여가고 '연구개발'로 승부수를 던져 볼 작정이라는 것이다.
"대개의 모험기업은 처음부터 개발만 합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모험'을 좀 줄여보기 위해 용역도 함께 시작했어요. 하지만 용역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금년 6월에 자본금을 1억원으로 증자할 계획인데, 그 시점을 기해 개발에 치중할 계획이에요. 우리 7명이 모두 달려들어 개발하면 뭔가 작품이 나오지 않겠어요?"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30분에 퇴근하는 '빈틈없는'일과 때문인지 변사장은 아직 미혼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동기가 확실히 주어지면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경쟁도 치열해질 것입니다. 결국 똑똑한 사람이 성공하겠지요. 이처럼 모험기업의 창업러시는 기술혁신을 유도할 게 분명한데 많은 사람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들의 결심을 유도하려면 모험기업의 스타가 나와야 해요. 정부의 과기처나 상공부에서 의도적으로 키워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어요. 스타의 등장은 기술혁신을 우회적으로 부추길 가능성이 큽니다."

2, 3년 후를 목표로 계측장비 컴퓨터비전 공장자동화용LAN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변사장은 "10억원어치 팔아 2억 남기는 사업보다는, 3억 팔아 2억 남기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청사진을 폈다.

199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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