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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범인임을 드러내는 거짓말 행동

송강호가 사용한 유일한 수사심리학 기법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큰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의자와 형사가 마주 앉아 있다. 범죄영화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다. 특히 영화 ‘투캅스’ 시리즈는 바로 이 ‘취조실 신’이 명장면으로 통한다. 어두운 취조실에서 용의자와 마주 앉은 형사가 타자기를 두드리며 혐의사실을 추궁하려 하자, 용의자는 갑자기 테이블에 머리를 들이받으며 자학하기 시작한다.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뒤집어 씌워 형사를 곤경에 빠뜨릴 속셈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취조실 벽면에 던지면서까지 자학하는 장면도 박장대소할 대목이지만, 고참 형사가 용의자보다 한술 더 떠 훨씬 강도 높게 자학하는 장면이나,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속편에선 형사가 오히려 용의자에게 ‘죽고 싶으면 죽여주지’하며 러시안 룰렛식으로 총을 겨누는 장면은 이 시리즈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투캅스2’의 취조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옥에 티가 하나 있다.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취조실 벽면 위쪽에 밖으로 통하는 창문이 하나 나있는 것이다. 사실 취조실에는 용의자가 시간의 흐름이나 외부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심문에만 집중하도록 ‘창문이 없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가끔 외국영화를 보다보면 외부에서 다른 형사나 검사가 용의자의 진술과정을 볼 수 있도록 외부에선 내부를 볼 수 있고 내부에선 외부를 볼 수 없는 유리창을 취조실에 설치해놓기도 한다. 이런 유리를 ‘한방향 거울’이라고 하는데, 한쪽면은 가시광선의 반사율이 매우 높은 반면, 반대면은 반사율이 낮은 유리를 사용한다). 특히 ‘투캅스2’처럼 창문이 밖으로 난 경우에는 도주의 위험까지 있기 때문에 실제 취조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강우석 감독도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던지, 그의 다음 작품 ‘공공의 적’에는 창문 없는 취조실이 등장한다.

의사소통에서 말의 비중은 19%


영화‘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취조실 장면. 거꾸로 매달 린 용의자는 전근대적 취조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과학수사의 현주소는 현장의 초동 수사와 취조실에서의 용의자 조사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1980년대만 해도 사건현장은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으며, 객관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인의 자백에만 의존해 사건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취조실은 폭력과 고문, 욕설이 난무하는 비인간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 개봉돼 화제가 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들의 용의자 심문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당시 형사들의 수사과정을 짐작하는데 도움을 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후 1991년 4월까지 5년 동안 10명이 비슷한 방법으로 살해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다. 피해자 10명이 모두 여성이고 여중생에서 70대 노파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며, 피해자가 대부분 성폭행을 당한 뒤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이나 스카프로 목 졸려 죽었고 시신의 일부는 잔인하게 훼손되기도 했다. 사건 당시 경찰은 연인원 1백80만명을 투입해 3천명의 용의자를 수사했고 4만여건의 지문과 유전자 감식을 의뢰해 여덟번째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아홉번째 사건(9차)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점과 9차와 10차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를 밝혀냈다. 특별한 단서가 없고 남아있는 증거자료도 부족해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궁에 빠진 사건이다.

영화에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상반된 캐릭터의 두 형사가 투입된다. 송강호가 맡은 박두만 형사는 주먹과 직관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막무가내형이고, 서태윤 형사(김상경 분)는 ‘서류는 거짓말을 안한다’는 신념으로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엘리트형이다. 사건이 터지자 박두만 형사는 피해자 주변의 남성들을 닥치는 대로 연행해 범행사실을 심문한다. 처음엔 어르고 달래다가 나중엔 윽박지르고, 그것도 안통하면 때리고 고문까지 해서 기어이 거짓 자백이라도 받아내고야 만다. 인권이나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먼, 회유와 협박의 전근대적 수사의 전형인 것이다.

그러나 21세기형 형사들은 수사관과 피의자가 적대적 관계에 서서는 결코 피의자로부터 진정한 자백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수사심리학자들은 취조실에서 조사 받는 용의자의 행동패턴을 잘 분석하면 용의자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가려낼 수 있다고 충고한다. 행동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놀랍게도 겨우 19%에 지나지 않으며, 몸짓이나 다른 비언어적인 행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말하는 사람의 몸짓이나 행동이 들려주는 메시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피노키오 코의 진실

범죄 심리학자들은 범인이 거짓말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나 행동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단서가 나온다고 주장한다.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거짓말이 계속되면서 뭔가 아귀가 맞지 않을 때의 당혹감 등이 겹쳐 자신도 모르게 진실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단서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용의자의 행동을 관찰할 때 질문 후 3-5초 간이 매우 중요하다. 내적인 심리상태가 무의식적으로 외부로 드러나는데 3-5초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이때가 아주 중요한 관찰 시기다. 실제로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할 때도 질문 후 3-5초만에 나타나는 호흡과 맥박의 변화를 분석한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행동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흔히 볼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는 입을 가리는 행동이다. 범인들은 거짓말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린다. 거짓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한다.

거짓말을 할 때 코를 만지거나 긁는 사람도 많다. 코에는 혈압이 상승할 때 충혈되면서 약간 부풀어오르는 조직이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코를 만지게 된다.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의 코가 커진다는 동화 속 설정이 전혀 엉뚱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에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청문회에 나왔을 때 코를 몇번이나 만졌는가를 센 수사심리학자도 있었다.

수사심리학하고는 담쌓은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가 용의자를 조사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봐.” 보통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 남을 제대로 쳐다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실을 말할 때 눈을 맞추고, 거짓말을 할 때 다른 곳을 본다. 범인 역시 거짓말을 할 때는 형사를 보지 않고 일부러 눈을 비비거나 눈꺼풀을 긁는다. 취조실에서 용의자의 눈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창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두만 형사가 영화에서 유일하게 써먹고 있는 수사심리학이다.

거짓말쟁이 자세, 전과자 자세


심문을 받는 용의자가 다리를 꼬는 행동도 마음 속의 불안을 노출하는 방식 중 하나다. 거짓말을 가려내는데 는 다리를 꼬는 시기가 중요하다. 진실한 용의자는 편안 해지면 다리를 꼬는 반면, 거짓말쟁이는 처음부터 다리 를 꼰 자세로 심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노련한 형사라면 범인이 중요한 문제를 조사 받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느낄 때 다리의 움직임이 무의식적으로 빨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리와 발은 머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범인 자신의 의식에서 벗어나 있기 쉽다. 따라서 발 동작은 범인의 스트레스 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좋은 척도로 활용될 수 있다.

영화 ‘공공의 적’을 보면 형사 강철중(설경구 분)이 부모를 살해한 아들 조규환(이성재 분)의 범행사실을 처음으로 의심하게 되는 첫번째 단서가 바로 조규환이 다리를 떠는 모습이었다. 노부모가 살해돼 경찰서에 진술하러 온 아들이 얼굴로는 울고 있으면서 책상 아래에서는 다리를 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본 형사 강철중은 아들이 범인임을 바로 직감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피의자의 앉는 자세 중에는 ‘거짓말쟁이 자세’라는 것이 있다. 피의자는 심문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위협적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무의식의 표현으로 문을 향해 기울어지는 포즈를 취하곤 한다. 또 ‘전과자 자세’라는 것도 있는데, 형사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가끔 전과자가 용의자로 불려온 경우 못마땅한 얼굴과 껄렁한 자세로 앉아 귀찮다는 듯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등을 의자 등받이로부터 뗀 채 다리를 무릎에서 꼬고 손으로 정강이를 잡고 앉는 자세다. 상체가 구부정해서 특히 ‘불량’(?)해 보이지만, 장시간 앉아있어도 척추의 피로를 줄여주기 때문에 교도소 내에서 기다리기를 생활화하다가 버릇처럼 굳어진 자세다.

하얘지거나 혹은 빨개지거나


거짓말을 하면 순간적으로 안색이 변하기도 한다. 사진은 고해상도 열영상 카메라로 거짓말을 탐지하는 모습. 거짓 말하기 전(위)보다 거짓말한 뒤에 눈 주위가 더 붉게 나 타난다.


얼굴 표정 또한 진실과 거짓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창구다. 놀란 얼굴은 눈이 커지고 턱이 내려가며 입을 벌린다. 간혹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표정의 범인도 있지만, 거짓말을 하면 대개 미소를 지으면서도 스트레스 때문에 긴장을 잃지 않는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불안하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형사의 질문에 용의자의 표정이나 안색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찰이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해서 자신의 범행사실이 갑자기 드러날 때 소위 하얗게 질리는 사람들이 있다. 피부에 있는 모세혈관에 공급되는 피가 갑자기 줄어들어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데, 몸 중심이나 근육에 피가 몰리고 피부에 있는 모세혈관이 수축하면서 혈액 공급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피의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범행사실이 드러날 때 피부 모세혈관으로 가는 혈액의 양이 증가해 얼굴이 빨개지는 경우도 있다.

말할 때 억양이나 속도도 거짓말을 가려내는데 매우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질문에 대해 평균 0.5초 정도 기다렸다가 대답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평균 1.5초 정도 걸린다고 한다. 거짓말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도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다. 형사의 추궁이 이어질 경우 거짓말을 하는 범인은 목소리가 잦아들거나 입에서 우물거리는 경우가 많다.

‘살인의 추억’ 후반부에 등장하는 공장노동자 박현규(박해일 분)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용의자로 떠오르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어 끝내 풀려나고 만다. 그러나 그가 취조과정에서 보인 행동은 거짓말을 하는 피의자의 모습과 닮은데가 있다. 우선 그는 석고상처럼 굳은 얼굴로 형사의 질문에 답하는데, 그것은 형사가 자신의 표정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해 범인이 자주 취하는 표정이다. 또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눈 깜박거림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모른다’라고만 답하는데, 눈을 갑자기 빠르게 깜박거리는 행동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전형적인 증거다.

‘모른다’ 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핑계는 괜히 거짓말로 둘러댔다가 탄로 나면 난처하기 때문에 범인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진실한 용의자는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할 뿐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는데 별로 걱정하지 않아 말을 길게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용의자는 단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말을 짧게 한다.

4개월 후 57%까지 떨어지는 기억

꼭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려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김종률 검사가 쓴 ‘수사심리학’에 따르면, 2시간 후의 기억을 100%라 가정할 때 4개월 후에는 57%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재판 실무상 4개월 정도 후에야 증언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춰볼 때 수사과정뿐 아니라 법정 증언의 신빙성 역시 의문의 소지가 있다. 또 핵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80% 가량 정확히 답하지만, 인상착의나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47%만이 정확히 상기된다고 한다. 따라서 용의자에게 수개월 전에 있었던 사건이나 그날의 알리바이를 묻는 경우 본의 아니게 긴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형사의 조사를 받으면 범죄사실이 없더라도 순진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 ‘거짓말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나 ‘프라이멀 피어’에서 이중인격자 연기로 형사와 관객을 모두 감쪽같이 속였던 애런 스탬플러처럼 용의주도한 범인은 거짓말 특징을 잘 숨기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의 행동만으로 거짓말 여부를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총체적인 행동패턴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특히 범인이 교묘한 지능범이고 연기에 능할수록 범인은 보지 못하는 평면유리를 통해 행동을 분석하거나 비디오 등으로 녹화해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용의자 행동분석의 정확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리드 테크닉(Reid technique)이나 키네식 테크닉(Kinesic technique) 같은 수사기법을 활용한다. 이들 기법은 용의자 수사과정에서 질문의 표현에서부터 질문자세, 용의자의 행동패턴을 관찰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심문의 세부사항들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증거는 거짓말을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객관적인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아무리 증거주의의원칙을 중시하면서 수사를 한다고 해도 어찌됐건 범행의 전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범인이다. 따라서 범인의 입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듣고 그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내용을 정확히 깨닫고 뉘우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박과 회유라는‘폭풍’보다는 예리한 관찰과 순발력 있는조사라는‘햇볕’으로 피의자의‘거짓말 외투’를 벗기는 수밖에 없다. 21세기형 형사들에게는 이제 그 누구보다도 인간 심리에 대한 좀더깊은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다.

200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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