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ROM에 대한 관심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본격 멀티미디어를 구현시킬 이 기억장치는 종이의 시대를 거치고 자기의 시대를 뛰어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똑똑한 기억장치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소위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 인식능력의 고도화는 인간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시키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만부씩 발행되는 신문과 대형 서점의 엄청난 서적 더미에서 우리는 정보의 홍수를 체감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정보를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관리를 원하고 있다. 이는 역사시대의 주역이었던 종이의 운명이 다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새로운 시대는 바로 CD-ROM이라 불리는 작은 원반속에 담겨지고 있다.
CD-ROM이란 Compact Disc Read Only Memory의 약자로서 제작과정에서 기록된 내용이 영구적으로 지워지지 않게 처리된 디스크를 의미한다. 띠라서 이 디스크에 들어있는 내용을 지우고 다른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으며 단지 입력돼 있는 내용을 읽어볼 수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읽기와 쓰기가 모두 가능한 녹음 태이프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CD-ROM은 녹음테이프만도 못한 저장장치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선 CD-ROM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오디오용 CD와 똑같은 크기(직경 12mm, 두께 1.2mm)임에도 불구하고 CD-ROM에는 보통 6백MB가 넘는 양을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6백MB는 문서로 따질 때 한글 3억글자가 들어가는 크기이며 2백자 원고지로 따지면 1백50만장의 분량이다. 게다가 CD-ROM에는 문자정보뿐만 아니라 음성과 음향, 영상정보들도 동시에 저장된다. CD-ROM에 들어있는 정보는 단순히 문자로만 출력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음향과 음상이 결합돼 출력되므로 영화를 통한 교육현장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여기에 수록된 정보들은 종이에 기록된 내용을 단순히 옮겨놓은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수백만권의 서적이 꽂힌 도서관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야 할 때를 생각해보라. 아마 며칠씩 복사기앞에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할 것이며 또 가장 필요한 정보를 찾았는지 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들이 CD-ROM에 수록되어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CD-ROM에 기록되는 정보들은 데이터베이스화 돼 있으므로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내용들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다. 조선왕조의 실록들이 CD-ROM에 담겨져 있다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와 대화하는 매력적 기계
CD-ROM은 또한 사용자와 상호작용한다는데 매력이 있다. 텔레비전이나 서적 등은 방송사는 필자의 의도가 거의 일방적으로 관철되지만 CD-ROM은 사용자와 대화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주체적인 교육도구가 된다.
다음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영구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귀중한 정보를 저장하려고 할 때 CD-ROM만큼 안전한 장소는 없다는 것이다. 즉 법률판례나 의학지식, 성경이나 불경, 자연계의 신비,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 등 변화가 거의 없는 정보들은 CD-ROM에 가장 적합한 정보들이다 이들에게 읽기전용의 디스크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컴퓨터바이러스 때문에 하루 아침에 하드디스크의 중요한 데이터들을 날려버린 경험이 있다면 정보의 안전한 보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을 것이다.
CD-ROM과는 약간 다른 저장장치이지만 이같은 목적에 이용할 수 있는 대용량 저장장치가 또 있다. WOPM(Write Once Read Many)이 그것인데 개인적으로 영원히 보존하고 싶은 중요한 데이타를 한번에 한해서 기록해놓을 수 있다. 일단 기록되면 CD-ROM과 마찬가지로 지울 수도 수정할 수도 없지만 자신만을 위하 절대적으로 중요한 정보들을 보관할 수 있다는데 그 이점이 있다. 회사의 회계자료 등을 WORM에 저장한다면 가장 확실한 보관이 될 것이다.
CD-ROM과 컴퓨터의 하모니
원래 CD-ROM은 소리정보만을 기록했던 오디오용CD로부터 발전돼 나온 것이다. 1982년 필립스사와 소니사에 의해 공동개발 된 오디오용 CD는 당시까지의 LP디스크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고 나타났다. 즉 LP나 녹음테이프 등이 소리의 파형을 직접 기록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취한 반면에 CD는 이 신호를 샘플링해 아주 짧은 간격의 시간마다 그 신호값들을 수치값(0과 1)으로 변환, 저장하는 디지털방식을 채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LP나 녹음테이프가 가진 열화(劣化)현상(오래 반복해서 들을 때 거의 원음을 들을 수 없게 되는 현상)을 거의 완벽하게 극복해낼 수 있었으며 소리를 재생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긁힐 염려가 있는 바늘 대신 레이저빔을 이용함으로써 CD의 품질과 수명을 영구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같은 디지탈방식이야말로 컴퓨터가 가장 좋아하는 신호체계로, 이는 그대로 컴퓨터와 결합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CD-ROM에 들어있는 정보들을 검색하는 CD-ROM드라이브는 컴퓨터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와 같은 형태로 장착된다. 또 컴푸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가 이 드라이브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CD-ROM드라이브와 중앙처리장치를 연결해주는 매개장치(interface)가 메인보드상의 확장슬롯에 꽂혀져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이 인터페이스와 CD-ROM드라이브를 케이블로 연결한다. 이것으로 CD-ROM드라이브의 설치는 끝난 셈이다.
이제 CD-ROM을 이 드라이브에 삽입하고 구동프로그램을 하드디스크로 인스톨(install)하면 컴퓨터는 이 드라이브를 마치 하드디스크와 같이 취급한다. 실제의 하드디스크그 C: 이면 CD-ROM드라이브는 D: 가 되는 식이다.
그러나 모든 CD-ROM이 컴퓨터에 장착되어야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CD-I(Compact Disk Interactive)는 컴퓨터 없이 작동하는 CD-ROM드라이브다. 냉장고나 텔레비전처럼 전용기로 개발돼 나온 셈인데 컴퓨터가 없는 사람들에게 CD-ROM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CD-I 전용플레이어만 구입하면 텔레비전과 연결해 영상과 음성 및 음향 등을 출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CD-I는 오락, 교육, 정보, 검색, 홍보 등 넓은 분야에 걸쳐 활용되고 있다.
인간을 만족시킨 저장장치
CD-ROM에 정보를 저장하는 원리는 디스크, 테이프와 마찬가지로 디지털의 원리에 기초해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현상과 0과 1이라는 두가지 상태만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을 극도로 단순화해 하늘과 땅만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하늘을 0이라고 하고 땅을 1이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히 0과 1의 조합으로 모두 표현된다. 0과 1로 조합할 수 있는 자리수가 3자리이면 8가지의 현상을 대응시킬 수 있으면 32자리이면 놀랍게도 약 43억개에 이르른다. 물론 64자리이면 '43억×43억'의 경우의 수가 나올 것이다.
이같은 2진법의 놀라운 세계가 기계에 접목되면서 컴퓨터는 태어났다. 전압의 높고 낮은 상태나 전자적 스위치의 개폐는 0과 1의 두가지 상태를 확실하게 표현한다. 또 이같은 기계의 동작은 전기가 끊어져 있을 때에도 저장돼 있어야 한다. 이는 디스크에 의해 가능해졌다. 자기 디스크가 나타나기 전에 쓰인 저장장치는 종이테이프였다. 이는 종이테이프에 구멍을 뚫어 어떤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구멍이 뚫리면 0, 아니면 1과 같은 것으로 대응시켰던 것이다. 컴퓨터에서는 8자리의 2진수 조합을 바이트(BYTE)라고 부르는데, 01000001은 영문자 A, 01000010은 영문자 B 등과 같이 약속했던 것이다. 이 구멍뚫린 종이테이프(천공카드)가 컴퓨터의 판독장치속으로 들어가면 판독장치는 빛을 투사해 빛이 통과하느냐 반사하느냐에 따라 그 메시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설계돼 결국 2진수의 조합을 사람의 언어로 번역했던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기계에서 이해시키기 위한 이같은 수공업적 노력은 마그네틱 테이프의 형태로 발전된다.
마그네틱테이프란 우리가 사용하는 녹음테이프와 똑같은 것이다. 진한 갈색의 긴 띠를 말아놓은 이 테이프의 표면에는 산화철(자석)입자가 코팅돼 있다. 산화철이란 막대자석과 같은 것으로 N극과 S극을 가지고 있으며 녹음기의 헤드가 발생시키는 전기신호에 따라 자기의 방향이 결정된다. 따라서 N극이 윗쪽으로 향하면 0, S극이 윗쪽으로 향하면 1과 같은 식으로 연속적으로 메시지가 기록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이테이프나 마그네틱테이프는 똑같은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즉 테이프의 중간쪽에 있는 정보가 필요할 때 이 테이프는 처음부터 정보가 있는 그 지점까지 연속적으로(sequential) 감기면서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불가피하게 소요되는 시간은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컴퓨터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디스크다.
디스크는 자기의 성질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테이프와 동일하지만 그 검색속도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차이를 갖는다. 이는 녹음테이프와 레코드판을 비교해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레코드판은 원하는 정보가 디스크의 어느 지점에 있든지 획기적으로 빠른 속도로 그 지점을 찾아갈 수 있다.
테이프의 검색이 순차적(sequential)이라면 디스크의 검색은 의식적(random)인 것이다. 이같은 원리가 컴퓨터에 구현된 것이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나 하드디스크드라이브다. 그러나 디스크도 인간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문자와 소리, 영상 등의 미디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가는 멀티미디어시대가 하드디스크의 운명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하드디스크는 소리와 영상 등을 결합시키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지 못하다. 설령 기가바이트급의 하드디스크가 선보인다 하더라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며 또 가격이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다른 기술에 기초한 더욱 편리한 저장장치들에 그 자리를 내어줄게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입축력속도에 있어서도 회전하는 디스크 위의 마그네틱헤드가 기계적으로 움직여 데이터를 기록하거나 판독하는 데는 속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자기력의 약화 등으로 인한 수명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하드디스크의 또다른 문제점은 이동성이 없다는 것이다. 휴대용 하드디스크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력소모도 많고 외부의 충격에 약하며 주위의 영향에 따라 데이터의 손실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새로운 저장장치를 낳는 객관적인 요인을 이루고 있다.
나선형으로 뻗은 한개의 트랙
CD-ROM도 그 저장방식에 있어서 디지털의 원리에 충실하며 그 외형도 디스크와 유사하다. 다만 산화철과 같은 자기의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폴리카보네이트라는 플라스틱기판에 일련의 홈을 만듦으로서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다. 즉 CD-ROM디스크의 기록면에 레이저빔을 이용하여 홈을 만드는데 파여진 부분을 pit라고 하고 pit와 pit 사이를 land라고 표현한다. 이것도 결국 0과 1을 상징하는 체계에 다름아닌 것이다.
1.2mm의 얇은 CD-ROM디스크는 세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저층에는 플라스틱기판이 있고 그 위에 pit와 land를 기록해나가는 반사층이 있으며 그리고 제일 윗쪽에는 데이터의 안전과 지속성을 높이기 위한 투명한 보호층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중간에 위치한 반사층에 실제 데이터가 기록되며 제일 윗쪽의 보호층은 레이저빔을 그대로 하층까지 통과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다.
CD-ROM디스크상에 어떤 정보가 기록되기 위해서는 플로피디스크와 마찬가지로 먼저 초기화(포맷)가 되어야만 한다. 즉 트랙과 섹터를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디스크와 CD-ROM의 트랙과 섹터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디스크에서 트랙은 디스크의 원형과 같은 다양한 크기의 동심원이 그려지고 가운데의 원점에서 매 각도마다 섹터가 나누어지므로 동심원의 안쪽일수록 섹터의 길이가 짧아지게 된다. 이에 반해 CD-ROM은 크기가 다른 여러개의 중첩된 동심원이 아니라 소라의 껍질처럼 원점에서부터 나선형으로 뻗어나가므로 결국 한개의 트랙이 있는 것이며 긴 트랙상에 같은 길이의 섹터가 만들어진다.
CD-ROM에 있어 이 한개 섹터의 길이는 2천3백52바이트이다. 매 섹터에는 블럭의 시작을 알리는 동기정보(SYNC)가 12바이트, 그 섹터에 들어있는 실제 데이터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는 헤더가 4바이트, 그리고 데이터가 기록되는 데이터영역이 2천48바이트이며 마지막의 2백88바이트에는 에러검출과 수정을 위한 ECC/EDC코드가 기록된다.
데이터의 검색에서도 CD-ROM은 디스크와는 차이를 보인다. 즉 디스크가 회전하는 표면의 자기장의 방향을 검사해 정보를 읽어내는 것과는 달리 CD-ROM은 데이터를 읽기 위해 회전하는 트랙상에 레이저빔을 투사하며 그 빛이 pit와 land에 반사돼 나오는 각도와 반사량에 따라 0과 1을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레이저빔이 닿은 곳이 pit인데 다음에 닿은 곳도 pit이면 반사각도와 반사량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0으로 표현되고 pit 다음에 land가 있으면 당연히 빛의 반사각과 반사량이 달라지므로 이때에는 1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