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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중소기업 연구의 해결사 슈퍼컴, 최적의 설계를 부탁해!

KISTI 연구실 탐방 6 가상설계센터



한국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환경이 열악하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인력과 기술, 자본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가상설계센터는 고군분투하는 중소기업을 위해 ‘특급 도우미’가 돼 주고 있다.

“드론의 날개(블레이드)를 새로 설계하려면 수많은 풍동실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문제였어요.” 이진규 코리아드론콥터 대표는 중국산이 대부분인 드론 시장에서 국내 기술로 만든 입문자용 드론을 선보이고 싶었다. 특히 대다수의 입문자용 드론은 배터리 문제로 비행시간이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날개의 양력을 극대화시켜 비행시간을 늘려 줄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었다. 날개를 새로 개발하려면 풍동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최적의 모양을 찾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게 1년 정도 걸린다. 수차례 날개를 새로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신생기업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다.

고민하던 이 대표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KISTI 가상설계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가상설계센터는 슈퍼컴퓨터를 비롯한 KISTI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해 제품 개발에 필요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Modeling & Simulation·M&S)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미 2004년부터 국내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제품 개발을 돕고있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김치냉장고가 슈퍼컴퓨터의 도움으로 탄생한 대표적인 제품이다.

M&S는 쉽게 말해 가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표의 경우처럼 컴퓨터를 이용해 개발 중인 제품을 원하는 환경 조건에서 실험해 보고, 그 결과를 예측해 보는 기술이다. M&S를 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컴퓨터와 전문 소프트웨어, 그리고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갖추기가 쉽지 않다.

이 대표의 의뢰를 받은 가상설계센터 M&S 기술지원팀은 본격적으로 날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작업에 돌입했다. 날개의 모양을 바꿔가면서 가상의 환경에서 풍동실험을 했고, 드론을 공중에 띄우는 힘을 극대화시키면서 배터리 소모를 최소화하는 디자인을 찾았다. 시뮬레이션 결과 최종 후보를 몇 개로 좁힐 수 있었고, 실제 풍동실험을 거쳐 비행시간을 20% 늘려 주는 날개를 만들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지 3개월 만이었다. 코리아드론콥터는 새로 개발한 드론에 ‘크론(KRONE) S1’이라는 이름을 붙여 8월부터 시장에 출시했다. 3개월 만에 6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날개뿐만 아니라 드론의 기체 디자인을 새롭게 하기 위한 거동 해석도 M&S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위한 ‘특급 도우미’

가상설계센터의 M&S 기술 지원을 받는 기업은 1년에 약 40곳이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M&S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품질 좋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김재성 가상설계센터장(책임연구원)은 “2016년 1년 동안 지원받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발 비용을 평균 78% 절감할 수 있었고, 개발 기간도 45.6% 단축했다”고 말했다. 올 한 해 동안 지원 사업을 펼친 결과로 기업들은 총 14건의 특허를 출원했고, 전체 기업의 매출도 약 257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지난 12년 동안의 지원 사업 결과를 분석했을 때도 개발 기간과 비용 면에서 모두 50% 이상 절감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학계에 보고된 일반적인 M&S 활용 효과(30% 수준)를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M&S 기술이 가장 앞서 있는 나라는 미국이지만,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제품 개발에 M&S 기술을지원하는 시스템은 한국이 세계적인 모범 사례다. 그 결과 2015년에는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국제데이터기업(IDC)이 ‘HPC 이노베이션 엑설런스 어워드’를 KISTI에 수여했다. 기존 수상자인 페이스북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같은 첨단기업 및 연구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김호윤 M&S 기술지원팀장(선임 연구원)은 “향후 중소기업에 대한 M&S 지원뿐만 아니라 M&S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ISTI에서 운영 중인 슈퍼컴퓨터 4호기 타키온(Tachyon)Ⅱ의 모습.]
 
누구나 쓸 수 있는 클라우드 M&S 시스템 개발

M&S의 효과를 체험한 기업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KISTI의 M&S 지원을 받고자 하는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을 지원할 수는 없다. 그래서 KISTI 가상설계센터는 원하는 기업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M&S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M&S 소프트웨어는 가격이 1억 원에 달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사용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가격이 높은 원인 중 하나는 기능이 많기 때문인데, 국내 중소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은 극히 일부다. 가상설계센터 연구팀은 지난 12년 동안 기업체를 지원하면서 주로 사용한 기능을 중심으로 기능은 줄이고 활용성은 높인 M&S 소프트웨어 ‘헤모스(HEMOS)’를 개발하고 있다.

헤모스는 범용과 맞춤형 두 가지 형태로 개발 중이다. 범용은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구축되기 때문에 기업체 담당자가 온라인으로 접속해서 쉽게 작업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를 가동하는 고성능 컴퓨터를 별도로 구입할 필요 없이 KISTI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맞춤형은 공기청정기에 의한 실내 공기 유동을 분석하거나 자동차용 튜브의 굽힘 공정을 분석하는 등 개발하려는 제품의 특성에 맞게 최적화시킨 형태다.

소프트웨어 작동 방식도 복잡하지 않다. 개발을 총괄하는 김명일 M&S 기술개발팀장(선임연구원)은 현재 개발을 완료하고 테스트 중인 헤모스 클라우드를 시연해 보였다. 먼저 제품을 설계한 도면을 입력한다. 김 선임연구원은 굴곡이 많은 자동차 휠의 입체 도면을 넣었다. 그러자 자동으로 각 부분을 격자 형태로 세분화시켜 줬다. 특히 굴곡이 많은 부분은 더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 격자를 세밀하게 나눴다. 김 선임연구원은 “각각의 격자마다 방정식을 적용해 계산을 한 뒤 종합적으로 합친 결과를 그래픽으로 나타내 준다”고 설명했다.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면서 구동축이 휠을 아래로 누르는 실험 조건, 즉 물질의 종류와 힘의 방향, 크기 등을 입력하자 잠시 후 시뮬레이션이 시작됐다. 휠이 힘을 받으면서 변형되는 모습이 나타났고, 어느 부분이 가장 큰 힘을 받으면서 변형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김 선임연구원은 “과거 M&S 지원을 받았던 기업체들을 대상으로 현재 헤모스의 성능과 안정성 등을 시험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에는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쟁력을 비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유무다. 일본은 ‘강소기업’이 많은 반면 한국은 손에 꼽는다. 그런 점에서 KISTI가 지원하는 M&S 기술은 자본과 인력이 모두 열악한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 기타

    [공동기획]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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