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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소 원자핵을 빛의 속도로

미시세계 조작하는 인류 최초의 연금술 장치

수소의 원자핵, 질량 ${1.67×10}_{-27}$kg, 전하량은 ${1.6021×10}_{-19C}$, 수소원자 10만분의 1 크기로 ${10}_{-15}$ m. 이것이 바로 양성자의 신상명세다. 지난 세기 과학자들은 이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양성자를 이용해 원자 세계를 밝혀왔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1911년 러더포드(1887-1937)는 얇은 금박 조각에 방사성 동위원소로부터 방출되는 알파 입자(나중에 헬륨의 원자핵으로 밝혀짐)를 쪼이는 실험을 구상했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원자란 음(-)의 전기를 가진 전자(electron)라는 건포도가 양(+)의 전기를 띤 찐빵 속에 박혀있는 구조다. 따라서 알파 입자는 원자를 통과하면서 골고루 퍼져있는 양 전기 때문에 조금씩 방향을 바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험결과, 대부분의 알파 입자는 그냥 통과하고, 아주 적은 수지만 몇개는 심하게 되튕겨나왔다. 러더퍼드는 이 실험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이는 지름이 40cm인 포탄을 얇은 종이에 쐈을 때 포탄이 되튕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금 원자를 야구장이라고 하면 금의 원자핵은 야구공 크기도 되지 않는데, 금의 모든 무게는 이처럼 작은 원자핵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원자핵 발견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작은 원자핵 주위에 전자가 돌고 있는 원자의 기본 모형이 이때 생겼다.

이 실험과정에서 알파 입자가 질소로 채워진 통안을 통과할 때 여기서 새로운 입자가 생성됐는데, 이를 ‘proton’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중에 이를 조사한 결과 수소의 원자핵, 즉 양성자로 밝혀졌다. 이 양성자는 알파선이 질소 원자핵과 반응해 발생된 것이었다. 러더퍼드는 이 결과를 통해 빠른 속도의 입자를 가지면 원자핵과 같은 아주 작은 세계를 들여다볼 수도 있고, 또한 한 원자를 다른 원자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림1) 양성자의 크기


원자핵 보려면 1V 건전지 1만개 필요

이후 1930년대까지 방사성원소들이나 우주선(대부분 양성자)과 같이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빠른 입자를 이용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소로부터 직접 양성자를 꺼내 높은 속도로 가속하기 위한 장치를 개발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우리는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로 이뤄진 공기중에 살고 있다. 이들 기체는 상온에서 초당 4백60m 정도의 속도로 운동한다. 이 기체 분자의 운동에너지는 25meV(밀리전자볼트, 1meV=10-3eV) 정도다. 그런데 온도를 올리면 입자의 운동에너지를 높일 수 있다. 1만℃면 1eV 정도의 운동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온도를 올려 양성자의 운동에너지를 높이려면 수만℃의 온도를 올릴 수 있는 플라스마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 높은 운동에너지를 갖는 양성자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바로 전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두 금속 평판에 건전지를 연결하고 여기에 양성자를 두면, 같은 전기끼리는 밀고 다른 전기끼리는 끌어당기는 전기력 때문에 정지해있던 양성자가 음극으로 이동하면서 속도를 얻게 된다. 만약 평판에 1V의 전압을 가했을 때 양성자가 다른 한쪽 평판에 도달하면 1eV의 운동에너지를 갖고 이때 속도가 초당 14km나 된다. 1V 건전지 1천개를 직렬로 연결하면, 1천eV 에너지를 갖는 양성자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원자핵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1백만(106)eV의 운동에너지를 갖는 양성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1V 건전지 1백만개를 연결하면 되지만 1개에 1백원이라 해도 건전지 값만 1억원이고, 건전지 1개의 길이가 1cm라 해도 그 길이가 10km나 된다. 과학자들은 이보다 쉽게 높은 전압을 얻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가속기다.

어머니의 암치료 위한 사이클로트론


자기장을 통해 양성자가 원형궤도를 돌면서 가속 되는 사이클로트론


최초로 높은 전압을 얻은 가속기로는 밴더그래프(Van de Graaff)와 코크로프트-월턴(Cockcroft-Walton)이라는 장치가 있다. 1931년경 발명된 밴더그래프는 마찰전기를 이용해 고전압을 만들어 양성자를 가속하는 장치다. 구름에 높은 전압이 발생해 번개가 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1932년에는 고전압 전기회로를 이용한 양성자 가속기가 코크로프트와 월턴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 장치를 이용해 가속된 7백50keV의 양성자를 리튬에 쪼였을 때 2개의 헬륨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는 최초로 인간이 만든 장치를 이용해 한 원자를 다른 원자로 바꿀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인류는 값싼 물질을 이용해 금 등 비싼 물질로 바꾸는, 즉 원자를 바꾸고자 하는 연금술을 개발했는데, 이 양성자 가속기가 인류 최초의 연금술 장치가 된 것이다. 이 공로로 코크로프트와 월턴은 195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과학자들은 이들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해 원자와 원자핵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들 장치로는 고전압을 발생시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코크로프트-월턴의 경우 1백만eV, 밴더그래프의 경우 수천만eV 정도의 에너지를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원자의 세계를 더 자세히 보기를 원하는 과학자들은 더 높은 에너지의 양성자를 얻을 수 있는 가속기의 개발에 몰두했다.

한꺼번에 높은 직류 전압을 얻는 것이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과학자들은 낮은 전압을 반복해서 여러번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즉 가속된 양성자를 같은 곳을 계속 통과하기 위해 자기장을 이용해 원형궤도로 돌게 하고, 고주파를 이용해 교류 전압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최초의 가속기가 1932년 로렌스가 만들어낸 사이클로트론이다.

사이클로트론에 의해 1천만eV 이상의 에너지를 갖는 양성자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 후 이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해 원자핵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역시 로렌스도 이 가속기를 발명한 공로로 1939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특히 로렌스는 이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해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어 암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치료하려고 했다. 양성자 가속기가 의료에 사용된 최초의 예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 사이클로트론은 의료용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지구 한바퀴 도는 최대 가속기의 꿈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해 과학자들은 점차 더 작은 세계를 탐구해갔다. 더 작은 세계를 보려면 양성자의 에너지는 점점 커져야만 했다. 그러나 사이클로트론을 더욱 크게 만들어도 20MeV(2천만전자볼트) 이상이 되면 가속이 어려워짐을 알게 됐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상대론적 효과에 의해 양성자의 속도가 증가할수록 질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주파수의 고주파를 사용하는 사이클로트론의 원리로는 더이상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기는 불가능했다.

만일 고주파의 주파수를 가속되는 양성자의 회전 주파수에 맞춰 계속 조절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고 더욱 높은 에너지의 양성자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높은 에너지의 가속기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큰 원형 궤도를 만들기 위한 거대한 전자석이 필요하나, 이 대신 가속되는 양성자가 항상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이 원형 궤도상에 조그만 전자석을 나열하면 값싸게 가속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서 개발된 양성자 가속기가 싱크로트론이다.

싱크로트론의 원리가 1945년경에 발견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에너지를 높이는 기술 개발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1억eV에서 시작해, 1960년대 10억eV(1GeV), 1970년대 1백억eV(10GeV), 1980년대 1천억eV(1백GeV), 1990년대에는 1조eV(1TeV)까지 증가했다. 이 사이 가속기의 크기는 지름 수m에서 수km로 증가했다. 과학자들은 원자핵보다 더 작은 세계를 볼 수 있었고, 작은 입자들을 무수히 발견했다. 그 결과 많은 노벨 물리학상이 그들에게 수여됐다. 가속기는 노벨 물리학상의 산실이었던 셈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건설할 수 있는 최대의 가속기를 구상한 사람은 페르미다. 그의 꿈은 지구를 한바퀴 도는 싱크로트론을 만드는 것으로 당시 가능한 자장인 1테슬러로 계산해보면, 12경eV(12×${10}^{16}$eV)의 가속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속기는 실제 제작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이 꿈이 실현되면 아마 지구상의 마지막 가속기가 될 것이다.

같은 전기를 띤 양성자들이 같은 길을 갈 때는 서로 밀치는 쿨롱 힘이 생겨 가속되는 양성자들끼리 서로 멀어지려고 한다. 따라서 많은 양성자를 동시에 가속하는 것은 에너지를 올리는 일보다는 훨씬 어렵다.

그런데 실험을 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전쟁터에서 병사가 많은 탄약을 원하듯 많은 개수의 가속된 양성자를 얻기를 원한다. 그들은 1초에 1경(${10}^{16}$)개 이상의 가속된 양성자를 요구했다.

그런데 원형 가속기는 양성자가 같은 궤도를 여러번 돌아야 하므로 한꺼번에 많은 양을 가속하기가 어려워 이런 과학자의 요구에 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많은 양의 양성자를 동시에 가속하려면 직선으로 한번만 통과해 가속하는 선형 가속기가 필요하다.


양성자의 운동에너지를 높이기가 쉽다.


많은 양 동시 가속 위한 선형

1947년 알바레는 2백MHz(1MHz=${10}^{6}$Hz) 고주파를 이용해 3천만eV의 선형 가속기를 처음 만들어냈다. 사이클로트론 등 원형 가속기에서 사용되는 고주파원은 라디오에서 사용하는 주파수대인 수십MHz 정도를 사용하므로 비교적 쉽게 개발이 진행됐다. 대신 선형 가속기의 경우 TV에서 사용되는 수백MHz 정도의 고주파를 사용하므로 그 개발이 비교적 늦었다. 이런 주파수 영역의 고주파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큰 발전이 이뤄져, 이후 선형 가속기 개발에 많은 도움을 줬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의 선형 가속기는 8억eV(8백MeV) 가속기이며, 길이는 1km 정도다.

20세기까지 과학자들은 남들보다 더 작은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더 높은 에너지의 가속기 개발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가장 손쉽게 높은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 원형 가속기의 일종인 싱크로트론 가속기였으므로, 이 종류는 미국, 유럽, 일본, 러시아 등 과학 선진국에서 건설됐다. 그러나 가속기는 더이상 한 나라의 국력만으로 건설하기 힘든 크기까지 발전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세계가 하나가 돼 건설하는 고에너지 물리 연구용 가속기의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탐구한 결과를 생활에 활용해보는 측면으로 가속기가 발전할 전망이다. 즉 가속된 양성자를 다량으로 필요로 하는 많은 분야에 값싸게 제공하자는 맥락이다.

인간은 유전자 정보를 상당히 많이 알게 됐다. 이제 생물학자는 이 유전자 정보를 통해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알고 싶어한다. 기계공학자의 관심은 거대한 건물이나 다리가 아닌 몸 안에 주입해 움직일 수 있는 로봇 등 나노기술에 있다. 이러한 작은 단백질을 관측하고, 나노 기계를 비롯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속된 많은 양성자가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가속기의 중요성을 인식해 10억eV(1GeV)의 에너지를 갖는 양성자를 초당 1경개 이상 만들 수 있는 선형 가속기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1초당 만들어지는 1경개의 양성자는 0.2μg(1μg=${10}^{-6}$g)에 불과하나, 이것이 갖는 에너지는 1MJ(1MJ=${10}^{6}$J)로 2백g의 화약이 갖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특히 산업적으로 사용되는 양성자 가속기는 이제 그 화력이 소총의 시대를 벗어나 대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초부터 가속기의 개발 역사는 시작됐지만 아직 시작 단계이다. 하지만 이제 1백MeV의 양성자 가속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는 달리 보다 많은 양의 가속된 양성자 생산(초당 10경개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어, 앞으로 많은 응용 분야에의 활용이 예상되고 있다.

200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조용섭 선임연구원
  • 이용영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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