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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경고색은 ‘진화의 역설’이라고 불린다. 경험이 부족해 경고색의 의미를 모르는 천적에겐 오히려 쉽사리 잡아먹히기 좋기 때문이다. 피식자의 경고색은 진화생물학 분야의 오랜 수수께끼였다. 이 비밀이 최근 풀렸다.

초록빛으로 우거진 중앙아메리카의 열대우림에서 몸통은 빨갛고 다리는 파란 개구리가 폴짝 뛰어오른다. 딸기독화살개구리다(왼쪽 사진).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매우 작지만 색이 화려해 곧잘 눈에 띈다. 그 순간 뱀이 나타나 개구리를 한입에 삼킨다.

딸기독화살개구리는 공격을 당하면 피부의 분비샘에서 땀을 흘리듯 독을 내보낸다. 화려한 피부색은 이를 경고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경험이 부족한 어린 뱀은 화려한 색이 독의 표식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딸기독화살개구리를 입에 넣은 뱀은 독의 쓴맛을 맛보고 나서야 개구리를 뱉는다. 개구리는 뱀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재빠르게 달아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뱀에 물린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몇 분 뒤 목숨을 잃는다.

이처럼 피식자의 화려한 경고색은 그 뜻을 모르는 포식자에겐 오히려 찾기 좋은 사냥감일 뿐이다. 화려한 경고색이 ‘진화의 역설’로 불리는 이유다.

눈에 띄는 전신 경고색이 하나의 특성으로 자리 잡은 일은 진화생물학 분야의 오랜 수수께끼였다. 이러한 전신 경고색의 진화 과정을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밝혀냈다. 독을 품은 위장색 양서류들이 숨겨진 경고색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전신 경고색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강창구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교수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3월 16일자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de5156}

숨겨진 경고색을 가진 종은 위장색도 함께 가지고 있다. 위장색은 주변 환경과 비슷한 색으로, 포식자가 피식자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주변 환경과 완전히 대비되는 경고색과는 정반대 기능이다. 숨겨진 경고색을 가진 종은 보통 등 부분이 위장색으로 덮여있어 포식자의 눈을 피한다. 그러다 포식자에게 발각되면 배나 옆구리에 숨기고 있던 선명한 색감의 경고색을 내비쳐 포식자를 겁준다.

연구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전 세계의 양서류 8천 종을 사진으로 모두 분류했다. 강 교수는 “8000종 사진을 분류하는 작업이 가장 고되고 어려웠다”면서도 “양서류는 좋은 사진 정보들을 꽤 구할 수 있어서 색채 연구를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웃어 보였다. 다만, “겉모습만 찍은 사진이 대다수라 사진이 있어도 해당 종이 배나 숨겨진 부분에 경고색을 갖는지 확인이 어려운 종들도 많았다”며 “경고색의 유무를 확실하게 식별 가능한 종이 1106종이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들 1106종의 유전자 계통수(서로 다른 종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지도)를 만들었다. 분석 결과 전신 경고색을 가진 종의 조상에는 100%에 가까운 확률로 숨겨진 경고색을 가진 종이 있었다.

대부분의 전신 경고색은 우선 배 전체를 덮은 뒤 몸 전체로 퍼져나가며 발현된 것으로 확인됐다. 즉 위장색을 띤 공통 조상에서 일부가 숨겨진 경고색을 갖도록 진화했고, 배에서부터 등 위로 색이 퍼지며 전신 경고색을 가진 종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위장색이나 전신 경고색이, 숨겨진 경고색보다 피식자에게 안정적인 전략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강 교수는 “전신 경고색은 활동이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며 “전신 경고색을 가진 종이 숨겨진 경고색으로 역진화하지 않은 이유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계통수 분석 결과 전신 경고색에서 숨겨진 경고색으로 돌아간 종은 없었다.

강 교수는 “전신 경고색인 종은 90% 이상 독이 있는데, 위장색을 가진 종도 절반 정도는 독이 있다”며 “독이 먼저 생기고 경고색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밝혔다. 강 교수팀은 앞으로 양서류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몸 색깔 진화 과정도 연구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