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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메타게놈이 가져온 DNA 연구 혁명

99%의 난배양 미생물은 황금알 낳는 유전자

지구 생물체의 약 60%를 차지하는 미생물은 자연계 곳곳에 존재하면서 그 종과 기능의 다양성으로 인해 지구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생물체는 DNA와 RNA, 단백질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은 모두 질소(N)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식물과 동물의 체내에는 원래 질소가 없다. 공기중의 질소가 ‘생물학적 질소고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되며, 동물은 이런 식물을 통해 질소를 섭취한다. 그런데 지구에서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미생물뿐이다. 특히 뿌리혹박테리아라는 미생물은 콩과식물과 공생하며 공기중의 질소를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콩과식물이 다른 식물보다 더 잘 자랄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결국 미생물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요소비료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응용하는 일은 우리 생활을 좀더 윤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콩과식물은 생장에 꼭 필요한 성 분인 질소(N)를 뿌리혹박테리아 미생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미 생물의 이같은‘생물학적 질소 고정’은 지구 생태계에 매우 중 요한 역할을 한다


1%만 실험실에서 키울 수 있어

1683년 네덜란드의 박물학자 레벤후크가 처음으로 현미경을 이용해 세균의 모습을 눈으로 관찰하고, 1875년에 독일의 미생물학자인 슈레터가 미생물의 순수배양에 성공한 이후로 인류는 미생물을 실험실 내에서 인공적으로 배양할 수 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미생물 유전자를 연구하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생물을 순수 분리한 후 이를 대량으로 배양하거나, 배양된 균체로부터 DNA를 추출해 유전공학적인 방법으로 변형시킨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방법이 극히 제한된 미생물에게만 적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1984년 미국의 미생물학자인 콜웰은 콜레라균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일부만이 실험실의 인공적인 조건에서 배양이 가능하며, 나머지 대다수의 많은 미생물은 실험실에서 배양되지 않는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채집한 표본을 형광으로 염색해보면, 실제로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 수를 직접 세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표본에서 미생물만 분리하면 그 안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1% 정도만 인공적으로 배양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콜웰의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약품의 상당수는 미생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최초로 개발된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비롯해 대다수 항생제의 약 80%가 이와 같이 배양가능한 미생물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 중 배양가능한 1% 정도를 이용해 유용한 의약품을 만들어 왔다는 얘기다. 이를 바꿔 말하면 나머지 99%의 새로운 생물자원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생명공학적 노다지’가 우리 앞에 놓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배양불가능한 미생물 유전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까? 현재 과학자들은 ‘메타게놈’(metagenome) 이라는 접근을 통해 새로운 질적 도약을 꿈꾸고 있다.

게놈과 메타게놈

현대는 생명공학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생물체 게놈 분석방법의 눈부신 발전에 따른 것이다. 게놈은 DNA로 구성돼 있는 한 생물체의 ‘유전자 총합’을 말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생물 중 게놈 크기가 가장 작은 미생물인 마이코플라즈마(Mycoplasma)의 경우 약 5백개의 유전자를, 사람의 경우는 3만-4만개 정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대장균을 비롯한 약 3백종 이상의 미생물 게놈이 분석됐고, 지금 현재에도 산업적 이용가치가 높은 미생물의 게놈이 세계 곳곳에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배양가능한’ 미생물이다. 과학자들은 이제 ‘배양불가능한’ 미생물의 연구에도 게놈분석 방법을 이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자연계에 혼재하는 미생물을 인공적인 배양법으로 하나씩 순수하게 분리해낼 수 없다면, 그들의 DNA 만을 통째로 분리해내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메타게놈은 이와 같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의 게놈이 서로 섞여 있는 형태를 뜻한다. 토양과 해수, 갯벌, 하천, 대기, 가축의 대장 등 다양한 자연 환경으로부터 채취한 미생물의 DNA가 그 종에 따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혼재돼 섞여 있는 형태가 메타게놈이다.

메타게놈은 여러 생물체의 게놈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이를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대장균에서 발견된 기생DNA(플라스미드,plasmid)로부터 만들어진 ‘세균 인공 염색체’(BAC, Bacterial Artificial Chromosome) 벡터가 이용된다. 이 벡터는 1992년 김웅진 박사가 개발한 것으로 크기가 큰 DNA를 분석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BAC 벡터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도 30억 염기쌍에 이르는 인간 DNA 염기서열을 분석할 때 이용됐을 뿐 아니라 쥐와 벼의 게놈 분석도 이 방법을 통해 이뤄졌다.

배양하지 않고도 유전자 분석 가능

일반적인 미생물의 게놈 크기는 2백만-4백만 염기쌍이다. 메타게놈의 경우는 이런 미생물 게놈이 1백억-10억개 정도 섞여 있으므로 2×${10}^{12}$ - 4×${10}^{15}$ 염기쌍 정도의 크기가 된다. 이런 크기의 DNA를 한꺼번에 분석할 수는 없으므로 BAC 벡터를 이용한다. 이를 이용하면 메타게놈으로부터 10만에서 30만 염기쌍 정도 크기의 DNA를 대장균의 플라스미드에 옮겨 대량 생산 할 수 있다. 즉 메타게놈을 일정 정도의 짧은 크기로 자른 다음 이를 BAC 벡터에 삽입한 뒤, 대장균을 배양해 분석하면 삽입된 메타게놈의 DNA가 어떤 기능을 갖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메타게놈 클로닝’(metagenome cloning)이라 한다.(그림)


메타게놈 클로닝을 이용하면 토양 속의 무궁무진한 미생물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


메타게놈의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자. 만약 토양에서 분리한 메타게놈 속에 새로운 효소나 항생제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를 BAC 벡터를 이용해 대장균에 성공적으로 옮겨 스크리닝하면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미생물을 직접 분리 배양하지 않고도 새로운 효소나 항생제를 찾을 수 있다.

메타게놈 스크리닝을 통해 항생물질을 찾아낸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의 다이버사(Diversa), 큐비스트(Cubist) 등의 벤처회사에서는 토양에서 배양불가능한 미생물의 DNA를 추출한 후 유전정보를 빼내어 대장균 등의 숙주에 주입하는 방법을 통해 배양불가능한 미생물의 유전자 신물질을 만들었다. 이렇게 찾아낸 새로운 항생물질이 인디루빈(indirubin), 테라진 A와 B(terragiene A와 B)이다.

또한 메타게놈 DNA 연구를 통하면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서해안 갯벌의 미생물 분포를 연구할 때, 미생물을 인공배지에서 직접 분리배양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일부 미생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있으나, 전체 미생물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때 메타게놈 분석 방법을 이용하면 전체 미생물 종류와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기능의 DNA를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의 미생물 분포를 조사한 결과,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바 없는 고유의 미생물 종이 대거 발견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보자. 인간의 눈에는 빛이 들어오면 자신의 모양을 바꿔 몸의 다른 부위로 광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인 로돕신(rhodopsin)이 있다.

이와 비슷한 구조의 단백질은 염전과 같이 염분이 많은 곳에 서식하는 단세포 미생물인 고세균(Archaea)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를 박테리오로돕신(bacteriorhodopsin)이라 한다. 인간과 달리 눈이 있을 리 없는 고세균에서 박테리오로돕신은 사람과 달리 빛을 받으면 모양이 변하면서 양성자(H+)를 세포 밖으로 퍼내는 펌프 역할을 한다. 고세균은 이때 생긴 세포 내부와 외부의 양성자 농도차를 이용해 ATP를 만들어 에너지를 생산한다. 일종의 간단한 광합성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미지의 유전자 찾는 새로운 안경

한편 미국의 몬트레이 해양연구소의 드롱 박사팀은 버뮤다 해역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메타게놈 DNA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프로테오로돕신’(proteorhodopsin)이라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은 인간의 로돕신과 고세균의 박테리오로돕신과는 사촌뻘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드롱 박사팀은 프로테오로돕신이 박테리오로돕신과 같이 광합성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비록 프로테오로돕신을 가진 미생물을 직접 분리하지는 못했지만, 메타게놈 DNA 연구 방법을 통해 프로테오로돕신의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프로테오로돕신 유전자와 같은 메타게놈 DNA 상에 존재하는 리보솜(ribosomal)RNA를 분석한 결과, 이 미생물이 대장균의 친척뻘인 사실도 밝혀졌다.

드롱 박사팀의 연구 결과는 그동안 고세균에서만 발견되던 광합성로돕신이 세균(bacteria)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박테리오로돕신을 가진 고세균은 지구에 널리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존재 자체가 자연계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하지만 조사 결과 프로테오로돕신을 갖는 세균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양한 지역의 여러 환경에서 분리된 메타게놈 DNA를 분석한 결과 프로테오로돕신 유전자가 널리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세계 각처에 존재하는 미생물 중 상당수가 광합성 작용을 하는 프로테오로돕신을 갖고 있다면, 그동안 우리가 지구 생태계라는 바퀴를 돌리는 힘으로 알고있던 식물의 광합성 이외에 새로운 메커니즘이 발견된 것이다. 이에 따라 프로테오로돕신의 발견은 지구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얼마되지 않는 연구역사에도 불구하고 메타게놈 DNA연구는 자연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인류 복지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전세계 미생물학자들은 이제‘배양’이라는 안경과 함께‘메타게놈’이라는 좀더 강력한 안경을 통해 자연 상태 그대로의 사냥터에서 ‘황금알을 낳는 미생물 유전자’ 사냥을 위해 지금 이순간도 저 깊은 바다 속과 뜨거운 용암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창진 책임연구원
  • 천종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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