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순간의 역사를 담은 창 필름

권투 선수 사진이 거친 이유

완연한 봄기운이 감도는 4월. 야외로 카메라를 들고 나가 촬영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런데 어떤 필름을 고르는게 좋을까. 자동카메라일지라도 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필름을 적절하게 선택해야 한다.

“당신은 버튼을 누르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1888년 미국의 코닥사가 처음으로 대중용 카메라를 개발했을 때의 선전 문구다. 당시 코닥사는 한번 장착하면 1백여장을 찍을 수 있는 넙적한 두루마리 형태의 롤필름을 개발했다.

그로부터 1백년 이상 지난 현재의 필름은 훨씬 세련된 외모와 뛰어난 성능을 갖추고 있다. ‘순간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수천분의 1초 이내로 좁혀졌고, 해상도는 TV보다 수백만배나 뛰어나다. 불과 1mm도 되지 않는 두께에서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장착시키기 전 무심코 버리기 쉬운 종이상자부터 요모조모 살펴보면서 필름에 숨겨진 다양한 과학적 원리를 살펴보자.


촬영 조건에 따른 감도 선택^날씨가 맑으면 감도 일백과 이백, 흐리거나 실내에서는 일백, 이백 사백, 비오는 날에는 이백과 사백, 그리고 빨리 움직이는 대상은 사백을 사용하라고 표시돼 있다.


숫자의 의미

흔히 필름을 구입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내용은 ‘몇장이 들었나’이다. 필름 회사들은 자사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 경쟁적으로 필름 숫자를 늘리고 있다. 그래서 필름 종이상자에 기존의 기본 매수보다 몇장이 더 들었다는 글귀에만 현혹되기 쉽다.

하지만 필름을 살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은 다른데 있다. 바로 감도(감광도)다. 필름을 제외한 다른 사진 장비의 조건이 같다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적절한 감도를 갖춘 필름을 사용하는데 있다.

감도는 빛에 대해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를 상대적으로 나타내는 수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감도는 100과 200이다. 이보다 적은 숫자면 저감도, 높으면 고감도라 부른다.

이 값은 무엇을 뜻할까. 필름에는 할로겐 원소(주기율표의 7족에 속하는 플루오르(F), 염소(Cl), 브롬(Br), 요오드(I) 등)가 은(Ag)과 결합한 할로겐화은 결정이 수없이 흩어져 있다. 이 결정이 바로 빛을 흡수한 후 화학반응을 일으켜 필름에 상을 맺히게 하는 주인공이다.

필름의 감도를 나타내는 수치는 이 결정의 크기를 표현한다. 동일한 양의 빛에 노출됐을 때 수치가 클수록, 즉 고감도일수록 결정이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저감도에 비해 빛에 더욱 민감하다. 따라서 고감도 필름은 날씨가 흐리거나 주변이 어두울 때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카메라에서 빛의 양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장치는 조리개와 셔터 속도다(1996년 4월호 뜯어봅시다 카메라 참조). 조리개를 많이 열수록, 그리고 셔터 속도를 길게 할수록 필름은 빛에 많이 노출된다. 그렇다면 굳이 고감도 필름이 없어도 조리개와 셔터 속도만으로 빛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조리개와 셔터 속도는 또다른 고유의 기능을 가진다. 조리개를 많이 열수록 찍는 대상 주변의 배경은 흐릿하게 나온다. 그래서 꽃밭에서 사람을 찍을 때 주변의 꽃까지 사진에 담으려면 조리개를 좁혀야 한다. 한편 셔터 속도는 대상이 움직이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 대상이 빨리 움직일수록 셔터 속도는 더욱 빨라야 한다. 순간적인 동작을 정지된 화면으로 잡아내기 위해서다.

만일 흐린날 빨리 움직이는 오토바이를 찍는다고 가정해보자. 셔터 속도를 4배로 단축시키고 싶은데, 이 경우 빛의 양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조리개를 4배 넓히면 간단하다.

하지만 배경을 함께 표현하고 싶다면 어떨까. 이를 위해 조리개를 넓히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 필름에 닿는 빛은 줄어든다. 이때가 바로 고감도 필름이 역할을 발휘하는 시점이다. 예를 들어 셔터 속도를 1/125초에서 4배 단축시켜 1/500초로 조절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조리개는 그대로 유지한 채 감도가 일반용인 100이나 200에 비해 4배 높은 400이나 800짜리 필름을 사용하면 된다.

고감도일수록 좋다?

한편 ‘자동카메라에는 고감도 필름이 제격’이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자동카메라는 렌즈의 빛 투과율이 수동에 비해 떨어진다. 또 조리개나 셔터 속도가 미리 정해져 있다. 이때 모자란 빛의 양을 보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고감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감도일수록 ‘좋은’ 필름일까. 그렇지 않다. 감도가 높든 낮든 제각기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

고감도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저감도에 비해 거칠다. 할로겐화은 결정이 크기 때문에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마치 가는 붓으로 점을 찍어 색을 표현하는 경우보다 굵은 붓으로 점을 찍을 때 거칠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권투 선수의 경기 장면을 찍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실내이긴 하지만 선수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리지 못한다. 따라서 셔터 속도와 조리개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고감도 필름을 사용해야 한다. 그 결과 신문에 찍힌 권투 선수 사진의 질감은 거칠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반대로 저감도 필름으로 촬영한 경우 사진의 입자가 곱고 선명하다. 표현할 수 있는 색상도 매우 풍부하다. 따라서 얼굴 표정과 같은 세밀한 부분을 묘사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물론 저감도이기 때문에 많은 빛이 주어져야 한다.


(그림1) 필름의 구조^일반적인 네거티브 컬러 필름은 8개 층으로 구성된다. 가장 바깥에는 마모와 자외선으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는 2개의 층이 있다. 안쪽에 파란색, 녹색, 빨간색 빛에 민감한 3개의 유제층이 있다. 파란색에 민감한 유제층 아래 노란 필터는 남아있는 파란 빛을 제거한다. 녹색과 빨간색에 민감한 유제층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제층 아래 코팅층은 빛을 흡수해 반사되지 않도록 한다. 맨 아래의 지지대는 필름을 단단하고 유연하게 고정시킨다.


컬러필름에 숨겨진 3개의 감광층 - 빛의 3원색 흡수가 임무

필름의 종류는 크게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슬라이드)로 구분된다. 필름 표면에 맺힌 상이 실제 상에 비해 명암이나 색상이 반대인 경우를 네거티브라 하고, 실제 상과 같은 경우를 포지티브라 부른다.

흔히 사용하는 필름은 네거티브다. 사진현상소에서 컬러 사진을 찾을 때 필름을 들여다보면 밝은 곳은 어둡게, 파란 부위는 보색인 노란색으로 나타난다. 즉 명암과 색상이 반대다. 하지만 네거티브나 포지티브 모두 필름의 기본 구조는 유사하다.

필름은 속에 음식물을 여러겹 끼워넣은 샌드위치처럼 생겼다. 샌드위치의 주된 내용물은 빛에 민감한 유제(乳劑)다. 빛에 민감하고 규칙적 반응을 일으키는 할로겐화은(브롬화은(AgBr), 요오드화은(AgI), 염화은(AgCl), 플르오르화은(AgF). 보통 브롬화은이 많이 쓰인다)을 아교와 비슷한 젤라틴과 혼합해 만들었다. 한마디로 감광성을 지닌 액체 물질이 유제층의 정체다.

유제층의 성분은 흑백이냐 컬러냐에 따라 많이 다르다. 흑백은 빛에 민감한 유제층이 하나뿐이고 빛이 있는 곳과 없는 곳만을 기록한다. 현미경으로 보면 불규칙하게 생긴 수십억개의 결정들이 젤라틴 매트릭스(주형)에 담겨 있다. 결정의 지름은 수천분의 1mm에 불과하다. 이 결정들이 필름에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의 패턴을 정확히 기록한다.

브롬화은 결정은 크게 두부분으로 구성된다. 음으로 대전된 브롬 이온(Br-)과 양으로 대전된 은이온(Ag+)이다. 빛이 결정에 닿으면 브롬 이온의 전자가 떨어져나와 은이온과 결합함으로써 중성의 은원자가 형성된다.

빛을 오래 쪼일수록 은원자의 수는 많아지는데, 육안으로는 검은색 점으로 보인다. 이것이 필름에 이미지가 역상(네거티브)으로 새겨지는 과정이다.

컬러의 경우는 어떨까. 자연에는 수많은 색상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수에 맞춰 수많은 유제층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빛의 3원색인 빨간색, 녹색, 파란색이면 충분하다. 이들을 섞으면 자연계의 어떤 색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컬러 필름의 유제층은 3가지로 구성된다. 각 층은 고유의 파장을 가진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첫번째 층부터 파란색, 녹색, 빨간색을 흡수한다. 즉 촬영하려는 대상에서 반사된 빛이 필름에 닿을 때 파란색, 녹색, 빨간색에 해당하는 파장을 3개의 유제층에서 제각기 흡수하는 것이다.

다음은 현상 단계다. 흑백의 경우 필름에 새긴 이미지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려면 액채 현상액에 필름을 담가야 한다. 이때 은원자의 수가 대폭 증가한다. 현상액이 브롬화은 결정을 인식하고 여기에 전자들을 채워넣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필름에 새겨진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은원자 덩어리를 제외한 나머지 결정은 정착액(fixer)으로 없앤다. 이제 필름은 더이상 빛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화된 것이다. 이전까지의 작업은 빛이 차단된 암실에서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컬러의 경우 한단계가 추가된다. 필름에 존재하는 염료가 자기의 색상을 드러내도록 하는 일이다. 현상액은 검은색의 은원자를 인식한 후 주변의 염료 입자가 색상을 나타내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각 유제층에는 어떤 색으로 상이 맺힐까.

물체에 흡수되는 파장의 색과 반사되는 파장의 색은 반대, 즉 보색 관계를 가진다. 즉 필름이 파란색 파장을 흡수하면 그 보색인 노란색 파장이 반사된다. 따라서 파란색을 흡수한 유제층은 우리에게 노란색으로 보인다.

같은 원리로 녹색, 빨간색을 흡수하는 유제층에는 그 보색인 마젠타(magenta,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분홍색), 사이안(cyan,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파란색)의 상이 맺힌다. 이 3가지 층을 합해서 보면 실제의 상과 명암이나 색상 면에서 완전히 반대다. 이때 흑백의 경우와 달리 검은색의 은원자는 정착액의 작용으로 사라진다.

역상으로 정착된 필름에 빛을 쪼여 특수한 감광유제로 코팅한 종이에 투사시키면 제대로된 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종이 사진이 만들어지는 인화 과정이다.


컬러 네거티브 필름을 인화하는 장면


프로가 즐겨 쓰는 슬라이드 필름 노출 정확도가 생명

포지티브 필름의 기본 구조와 현상의 절차는 네거티브 필름의 경우와 비슷하다. 단지 현상하는 과정에서 역상을 반전시켜 본래의 상으로 바꾸는 일이 추가될 뿐이다. 그렇다면 일반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할 때 한번 반전시키면 포지티브 필름이 되는게 아닐까. 굳이 포지티브 필름을 별도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지티브 필름과 네거티브 필름의 큰 차이는 유제층의 성분에 있다. 즉 포지티브의 경우 염료의 종류와 할로겐화은의 양이 훨씬 많다. 네거티브에 비해 훨씬 실제와 가까운 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자연 풍경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경우 포지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 네거티브로 찍어 사진으로 보여주는 경우보다 훨씬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포지티브 필름을 슬라이드 필름이라고도 부른다. ‘과학동아’에 게재된 많은 사진 역시 생생함을 더욱 살리기 위해 포지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스캔받아 사용한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이왕이면 포지티브 필름을 사용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포지티브 필름은 아마추어가 사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포지티브 필름의 경우 빛의 관용도가 작다는 점이다. 즉 정확하게 빛의 양을 노출하지 않으면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이에 비해 네거티브는 빛의 관용도가 넓기 때문에 적당히 빛의 양을 노출해도 ‘알아서’ 상을 맺히게 해준다. 따라서 빛의 노출을 능숙하게 맞출 수 있는 전문가만이 포지티브 필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다. 빛의 관용도는 흑백 필름이 가장 넓고, 컬러 네거티브, 컬러 포지티브 순으로 줄어든다. 또 고감도가 저감도보다 관용도가 적다.


8시간 동안 노출해 얻은 창밖 풍경 사진


1888년 최초의 두루마리 필름 제작 - 합금판·종이·유리 필름 단계 거쳐

최초의 필름을 만들어 사진을 찍은 사람은 19세기 초 프랑스 아마추어 화학자 니에프스다. 주석과 납의 합금판 위에 감광성 용액을 입혀 필름으로 사용했다. 1827년 6월 경 작업장 창에서 밖의 경치를 촬영했는데, 노출시간이 약 8시간에 달했다. 여기에 적절한 용액을 처리하자 희미하게 경치가 찍혀나왔다.

당시의 촬영 도구를 카메라 옵스큐라라 부르는데, 벽면에 구멍(나중에 렌즈로 발전)이 있는 암실을 뜻한다. 이 구멍을 통해 방 바깥쪽 물체의 영상이 암실 안의 반대 벽에 투사됐다.

1829년 프랑스의 다게르는 현재처럼 은을 이용한 감광제를 사용했다. 동판에 요오드화은을 입히고 촬영했는데, 노출 시간은 30분으로 단축됐다. 여기에 수은증기를 쏘이고 소금용액에 담가두자 성공적으로 동판에 선명한 이미지가 새겨졌다. 이 방식은 그의 이름을 따 다게레오타입이라 불린다. 당시의 한 화가는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고 탄식하며 다게르의 사진술을 높이 평가했다.

1835년 영국의 톨벗은 동판 대신 종이를 소금 용액에 처리하고 여기에 질산은이 스며든 필름을 만들었다. 노출시간은 10초 내외로 단축시켰다. 이 방식은 캘러타입(calotype)이라 불리는데,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그림’이란 뜻이다.

1851년 영국의 아처는 유리판을 필름으로 사용했다. 유리에 요오드칼륨이 용해된 콜로디온을 부은 후 감광제인 질산은용액을 입힌 것이다. 이전의 필름에 비해 세부 묘사가 매우 뛰어났지만, 미끌거리는 유리판에 감광제가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현상에서 인화까지 모든 일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했다. 특히 한번 촬영하려면 암실용구 일체를 가지고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암실마차가 등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현대식 필름이 개발된 것은 미국의 이스트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1888년 코닥사와 함께 필름 여러장을 감은 롤형식의 필름을 개발했다. 필름은 종이에 젤라틴 감광제를 바른 건판이었다. 필름 한장의 길이는 6.35cm였는데, 자그마치 1백장을 찍을 수 있는 두루마리 형태였다. 이로써 사진 장비의 무게와 부피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사람들은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됐다.

199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해윤 기자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물리학
  • 미술·디자인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