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가운을 벗고 소프트웨어 벤처업계로 들어선 지 8년이 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의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41)이다. 안 사장에게 평생 동안 의사란 이름을 붙여주게 된 것은 바로 바이러스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9년 동안 의사로 있으면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꿈꾸던 안 사장에게 바이러스는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였다. 그후 소프트웨어업계로 진로를 바꾼 뒤에도 악연인지 행운인지 바이러스는 늘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컴퓨터 의사가 됐기 때문이다.
컴퓨터 세대인 청소년들은 누구나 한번쯤 안 사장의 덕을 봤을 것이다. 게다가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면서도 늘 기업을 발전시켜가고 있으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좋아하는 컴퓨터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부와 명예도 얻는다면 누가 마다할 것인가.
그런데 안 사장은 청소년들에게 이공계로 진학하라고 굳이 권하지 않는다.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면서 조언을 부탁하자 안 사장은 대뜸 미국 프로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이야기한다.
조던에게서 배우는 진로 선택의 비결
“마이클 조던이 야구선수로 활동하다가 다시 농구로 돌아온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조던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농구를 버리고 멋있어 보이는 야구로 돌아섰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다시 자신의 길인 농구 코트로 돌아오면서 지금도 나이를 잊은 듯 신들린 경기를 하고 있다.
안 사장이 보기에 우리 청소년들은 조던이 야구장을 기웃거린 것처럼 남들이 뭐라 한다고 해서, 미래 전망이 어떻다고 해서 자기 적성을 잊고 헤매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주위 사람들이 권유하는 길은 청소년들이 세상에 나갈 10-20년 뒤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미래 전망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것 세가지가 맞는 분야를 택하면 보람 있게 살 수 있다고 충고한다.
이공계가 좋다든지, 아니면 경영학이 비전이 있다든지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고 적성과 소질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모범생의 모습이다. 기자들의 취재 과정에서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결코 하지 않는 모습 또한 그렇다. 그런데 그런 모범생이 의학자에서 엔지니어와 벤처기업 경영자로 진로를 바꿨다. 그 역시 진로 선택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7년 동안 밤잠 잊고 백신 개발
안 사장은 초등학교 시절 과학책에 푹 빠져 과학자를 꿈꿨다고 한다. 당시 그렸던 모습은 아폴로 우주선을 만드는 우주과학자. 중학교에 올라가선 전자공학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책에서 읽은 라디오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안 사장은 부산 남포동의 부품상가를 들락거리며 처음엔 진공관 라디오, 다음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조립했다고 한다. 전자공학의 발전을 직접 머리와 손으로 느껴본 셈이다.
학창시절 삼중당문고 4백권을 다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안 사장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은 것은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과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다. 둘 다 과학자가 쓴 책이다.
그런데 대학은 의대로 진학했다. “의사 집안 장남이라 가업을 잇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다른 쪽이 더 재미있었으나 직업이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안 사장이 컴퓨터 바이러스를 접한 것은 1988년 의대 박사과정 시절이었다. 전공이 환자 진료보다는 실험, 연구방면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컴퓨터를 접하게 됐다고 한다. 한참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고 있을 때 마침 자신의 컴퓨터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브레인’에 감염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만든 것이 바이러스 퇴치프로그램 ‘백신’(Vaccine). 통신을 통해 무료로 배포했다. 그러자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될 때마다 안 사장에게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엄청난 보람과 사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7년 동안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6시까지 백신프로그램을 만들고 잠시 눈을 붙인 뒤 하루종일 의학을 공부하는 힘든 생활을 계속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V3’다. 안 사장의 이중생활은 1995년 서울 서초동 뒷골목에서 두명의 직원과 함께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막을 내렸다.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
안철수연구소는 V3를 개인 사용자에게는 무료로 제공하면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게는 돈을 받는 식으로 차츰 회사를 키워나갔다. 2001년 코스닥시장에 진출하면서 액면가 5백원짜리 주식을 2만3천원에 공모했다. 놀랍게도 당시 4백40억원 규모의 공모주 청약에 무려 1조5천억원이 몰려 ‘코스닥의 황제주’로 등극했다. 그런데도 안 사장은 자사의 주가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벤처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목표와 결과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는 열심히 일한 결과여야지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안 사장이 돈이나 명예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목표, 즉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익성이다. 이는 애초 안철수연구소를 비영리법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나 백신 프로그램을 개인에게 무상으로 배포한 일 등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을 지키기 위해 외국기업의 인수제의를 거절한 일은 업계에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안철수연구소가 출범한지 3년째 되던 1997년 세계적인 보안업체인 맥아피가 안철수연구소를 무려 1천만달러에 사겠다고 제의했다. 일말의 갈등도 없이 그 제의를 거절한 안 사장은 “그때 회사를 넘겼다면 국내 백신 가격이 턱없이 높아져 지금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사장은 “월트 디즈니가 없다면 어린이들의 꿈이 사라질 것이다. 그 점에서 월트 디즈니는 가치 있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안 사장이 미련 없이 의사 가운을 벗었던 것은 월트 디즈니처럼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치를 지닌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 때문이다.
“기업체 평균수명이 30년이라는데 안철수연구소는 1백년 이상 가는 기업이기를 바랍니다. 구성원들이 기업의 존재 의미에 대해 바람직한 가치관을 공유하면 가능합니다.”안 사장은 기업의 존재 의미를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모여서 해나가는 것’으로 본다. 이런 생각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존재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안전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했다.
세계 10대 보안업체 꿈꾼다
안철수연구소는 1999년 정보보안업체로는 최초로 매출 1백억원을 돌파했으며 2002년에는 2백54억원 매출과 3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안 사장은 정보통신분야 관련상이라면 거의 다 수상했을 정도이며 2002년 세계경제포럼의 ‘차세대 아시아의 리더’로 선정될 만큼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 사이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안 사장은 공부와 회사경영을 같이 하느라 이틀에 하루꼴로 밤을 새운 후유증으로 1997년 귀국 다음날 병원에 실려갔다. 이때 몸을 상한 탓인지 지난해 초에는 간염으로 회사일에서 잠시 물러나 있기도 했다. 안 사장은 “이때 컴퓨터는 부품을 교체할 수 있지만 사람 몸은 그럴 수 없으니 평소 혹사하지 말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경영일선에 돌아온 안 사장은 해외 진출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네트워크 보안, 전자인증, 바이러스 백신 등의 분야에서 활동중인 국내 보안업체의 수는 2백50여개. 전세계 6백50여개 보안업체의 40%를 차지한다. 안철수연구소는 국내에서야 단연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세계 시장엔 아직 명함을 내밀기 힘든 실정이다. 그래서 안 사장은 세계적 보안업체들이 할거하고 있는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함으로써 2005년께 안철수연구소가 세계 10대 컴퓨터 보안회사로 올라서는 목표를 세웠다.
안철수연구소는 최근 일본 시장에 바이러스 사전 예방서비스인 VBS를 출시해 호평을 받고 있다. VBS는 이메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이메일을 통한 확산을 막아주는 제품이다. ‘선택과 효율’이라는 평소 그의 지론대로 세계 보안업체들이 관심을 갖지 않던 VBS에 인력과 자금을 집중 투자해 틈새시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또 2002년 12월에는 중국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자바소프트웨어(朝華軟件)에 3년간 3백62만달러 규모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OEM(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공급하기로 계약을 했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
안 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전하고 있다. 세계 경쟁에 나서면서 보낸 메일에서 그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강조했다.
베트남전쟁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미군들은 통념과 달리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들은 크리스마스가 오면 수용소를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다가, 여의치 않게 되면 다음엔 부활절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마저 좌절되면 결국 실의에 빠져 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실주의자는 크리스마스엔 나가지 못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비를 해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당시 포로였던 스톡데일 장군의 이름을 딴 이러한 ‘스톡데일 패러독스’에서 안 사장은 성공하리라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안 사장은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을까.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고 위를 쳐다보면 봉우리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습니다. 현재의 성공은 결국 이 정도입니다. 그러니 멈추지 않고 계속 정상을 향해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