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③ 배아복제 금지법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복제 규제 범위 두고 국제적 논란 가열

2002년 말 태어난 복제아기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복제아기를 실제로 본 일이 없고, 그 아기가 정말 체세포복제로 태어난 것인지 알 수 있는 DNA검사 자료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더 이상의 인간복제를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 핵심은 인간복제금지 법률안의 제정이다. 언론도 복제아기 출산 소식을 전하면서 각국의 복제 관련 법률 제정 현황을 빼놓지 않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러한 법률안을 두고 ‘금지’ 쪽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 있고, ‘제한적인 허용’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과학계 출산용과 치료용 구별 요구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인간개체복제 금지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통일된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률 제정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2001년 1월 치료와 연구목적의 배아복제를 세계 최초로 허용했던 영국은 그 해 12월 복제배아를 만들어 여성의 자궁에 이식할 경우 10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인간복제금지 법률을 제정했다. 프랑스 하원은 2002년 초 출산용 배아복제 행위를 범죄로 규정, 최고 2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인간복제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2000년 11월 인간복제 행위에 대해 징역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했다.

또 러시아 하원도 2002년 4월 앞으로 5년 간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호주 하원도 2002년 8월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는 인간개체 및 배아복제 모두를 금지하는 법안이 2001년 7월 하원을 통과했으며 상원에서 올해 초 통과되면서부터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듯 인간복제금지법이 대세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논란은 또다른 복제, 즉 배아복제에 집중돼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복제아기가 태어난다면 해당 과학자는 어떤 처벌을 받을지를 살펴보자. 간단하게 말하면 국내에서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관련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2002년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는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을 두고 양측의 의견을 조율했으나 체세포 복제연구의 허용 범위를 놓고 마지막 절충에 실패, 연내 입법이 무산된 바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체세포 핵치환법에 의한 배아복제. 복제 수정란이 5-6일 정도 지나면 1백40개 이상의 세포로 구성된 배반포 단계의 배아로 성장한다. 이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키면 복제아기로 자라나지만, 그 전에 내부 세포덩어리를 분리해내 배양하면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치료용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과학계는 생명의 시작을 배아에 원시선(原始線)이 나타나는 수정 14일째부터로 본다. 이때부터 신체기관이 형성되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의 배아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기보다는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므로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치료목적의 복제는 인간개체복제와 달리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아복제 금지는 보기 나름
 

그런데 치료용 배아복제 관련 법률에 대해서는 보는 이의 생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소지가 있다. 시민단체들은 배아복제를 법률로 허용한 나라는 영국뿐이며 금지가 대세라고 항상 말하지만, 과학자들은 반대로 배아복제를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한 나라는 독일뿐이라고 받아친다.

국내 동물복제의 권위자인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일본에는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률은 있지만, 치료용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내각 지침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내각 지침에 따라 특별한 별도 사항이 있을 때까지는 배아복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행정지침일 뿐이므로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호주 역시 배아복제를 금지하는 법률안이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 박병상 사무국장은 “일부 과학자들이 말하듯 배아복제 금지를 명시적으로 법률에 규정한 국가는 사실상 없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도 “대신 이미 다른 관련법에 의해 배아복제가 실질적으로 금지돼 있는 상황이므로 아무런 법적 제재장치가 없는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반박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이라는 것.

한림대 법학부 이인영 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독일은 199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배아보호법’에서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진 배아를 만드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임신이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체외에서 배양시킬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배아복제는 물론 줄기세포연구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경우에도 ‘공중보건법’에서 대가를 받고 배아를 취득하거나, 배아를 체외에서 조작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인영 교수는 “치료용 배아복제라는 것이 워낙 새로운 개념이라서 예전에 만들어진 법에는 뚜렷하게 표현돼 있지 않다는 주장은 사실”이라면서도 “포괄적으로 체외에서 배아를 생산하거나 조작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사실상 배아복제를 금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2002년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의 법률안 조정 과정에서도 같은 형태의 논란이 벌어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각국의 복제관련 법률안에 대해 문의하자 “해석상의 차이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각국의 법률 원본을 직접 대조하기로 하고 현재 외무부의 협조를 받아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률 해석에 있어 차이를 보일 수 있는 또다른 요인은 ‘모라토리엄’이다.

생명과학 특성 반영한 모라토리엄


인간복제금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지 만, 치료용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환자가족과 종 교계의 입장은 정반대다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일몰(日沒)규정으로 부르기도 하고 경과규정이나 유예규정이라고도 하는 모라토리엄은 최근 여러나라에서 배아복제와 관련해 법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 예로 호주 하원 위원회는 2001년 배아복제에 대해 3년 간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것을 제안했다. 러시아의 인간복제금지법률도 5년 간의 모라토리엄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미국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자문회의에서도 치료용 배아복제에 대해 4년 간의 모라토리엄을 선포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참고로 당시 자문위원 18명 중 10명이 모라토리엄을 선호했으며, 7명이 치료용 배아복제를 허용하자는 의견이었다. 한명은 의사표현을 유보했다.

모라토리엄은 일반적으로 법률안의 시행 부칙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해당 법이 시행되고 나서 일정 기간 뒤에 개정을 논의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현재로선 금지하지만 일정 기간 뒤 개정될 가능성은 열어둔 것이다. 이를 두고 배아복제를 금지하는 것이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점점 허용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생명과학 관련 법률에는 학문의 속성상 모라토리엄 규정이 많은 편이란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생명과학의 발전속도가 워낙 빠르고 현재로는 안전성의 문제와 의학적 유용성의 문제가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상의 발전추이를 지켜보자는 의미에서다.

유엔 복제 금지협약 난항

복제아기 탄생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은 인간복제를 금지할 국제협약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협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복제금지법률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유엔은 2002년부터 국제 공통의 복제금지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법 문제를 담당하는 유엔 총회 제6위원회에서는 인간복제 및 치료용 배아복제를 한번의 협약으로 금지하자는 미국과, 1단계로 인간복제 금지 협약을 만들고 배아복제에 대한 금지여부는 그 다음 단계에서 논의하자는 독일, 프랑스의 주장이 엇갈렸다. 결국 유엔은 이 문제를 올해 9월 회기로 넘겼다.

오는 2004년 시행을 목표로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 제안한 국제협약안 초안은 아기를 출산하기 위한 인간복제만을 금지하고 있다. 반면 남미의 카톨릭 국가 등 36개국의 지원을 받은 미국의 제안은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한 인간복제뿐만 아니라 의학연구 및 질병치료용 배아복제까지 모두 금지해야 한다는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이제까지 복제문제에 대해 가장 엄격한 입장을 취하던 독일이 인간복제와 치료용 배아복제를 나눠 논의하자고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는 “최근 개최된 배아연구관련 국제학회에서는 독일이 향후 2-3년 이내에 배아복제를 금지한 기존의 배아보호법을 수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독일은 배아연구에 대한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약간 누그러뜨리고 있다. 독일 의회는 2002년 1월 장시간의 토론 끝에 인간배아 줄기세포에 대한 전면적인 수입금지 조치 대신에 의학적·유전공학적 연구 목적의 제한적 수입안을 6백18명의 의원 중 3백40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황우석 교수에 따르면 독일 과학자들은 그때부터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에 가서 배아복제를 수행한 다음 여기서 얻은 줄기세포를 다시 독일 국내로 들여가 연구하고 있다.

유엔에서 독일과 보조를 같이한 프랑스도 인간복제금지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를 얻는 배아복제를 허용하는 수정법안도 심의했다. 현재 배아복제에 대한 법안은 표결에 부쳐지지는 않고 있다. 최근 내한한 필립 쿠릴스키 파스퇴르 연구소장은 “프랑스는 인간복제는 금지했지만 줄기세포 연구는 허용하고 있고 동 연구소에도 줄기세포 연구팀이 5개 있다. 줄기세포 연구도 막으려는 미국보다 프랑스가 너그러운 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 박병상 사무국장은 “심정적으로는 미국의 포괄적 복제금지안이 통과되기를 바라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2단계론이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선 합의가 되는 인간복제금지 국제협약을 제정하는 것이 민감한 생명윤리 문제를 다루는 합의과정에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권위적 태도를 보여 아무리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의견이라도 합의과정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 사무국장은 “그렇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주장을 배아복제 허용으로 해석하는 일부 국내 과학자들의 생각 역시 일방적”라며 “우리나라도 유엔 국제협약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이런 일방적 의견에 치우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현재로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배아복제 문제에서 입장을 크게 바꿨다고 단정짓기엔 무리다. 유엔에서 독일 대표는 “독일은 이미 모든 복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안에 반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제한된 복제금지 협약만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즉각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2단계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프랑스 역시 복제아기 탄생 소식이 전해지자 시라크 대통령이 나서 강한 어조로 인간복제를 비난하며 인간복제금지국제협약이 시급함을 역설, 독일과 행보를 같이 했다.

자국 이해 고려한 미국의 일괄금지안

한편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것은 자국의 이익을 고려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배아복제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복제를 금지하자고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배아복제연구의 실속은 다 챙겨뒀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1년 8월 이미 만들어진 64개의 줄기세포주로 한정해 배아줄기세포연구에 정부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뜻 보기에 배아줄기세포연구를 제한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이미 연구할 재료는 확보됐으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배아복제는 더이상 하지 않고 이후의 연구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 차원의 배아복제연구는 여전히 가능하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주는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

2002년 유엔 인간복제 금지 국제협약 관련 회의에 다녀온 정부 관계자도 미국은 자신들은 배아복제를 금지하는데 다른 나라는 관련 연구를 허용, 지원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렇게 되면 이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가 위협받거나 자국 과학자들이 연구가 자유로운 국가로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아줄기세포연구에서 앞서 있는 몇몇 나라들이 배아복제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은 올해 인간복제 및 배아복제를 금지하는 법률안을 상원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 상원의원들은 이와 별도로 의학연구를 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는 법 제정을 추진중이다. 또 2002년 9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배아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생산을 허용하는 주법이 발효되기도 했다.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 좀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① 일란성 쌍둥이와 복제인간 같은가 다른가
② 복제는 불임의 유일한 대안인가
③ 배아복제 금지법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200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법학
    • 철학·윤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