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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 탄생 유력한 시나리오 대충돌설

화성 만한 천체 지구에 부딪쳐 태어났다

밤하늘의 여왕 달은 수수께끼 같은 대상이다. 사실 태양계에는 지구의 달과 같은 존재가 드물다. 모행성에 비해 매우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단 모행성 크기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명왕성의 위성인 샤론은 제외하고 말이다). 어떻게 지구는 이토록 덩치 큰 달을 갖게 됐을까. 달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현재 조용하게만 보이는 달은 격렬한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딸이나 남편, 또는 동생

1970년대 이전까지 달 탄생의 시나리오에는 세가지가 있었다. 행성이 형성되던 초기에 지구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가 달이 됐다는 분리설, 주변에서 떠돌던 작은 천체가 지구 중력에 잡혀서 달이 됐다는 포획설, 지구가 탄생하던 ‘반죽’에서 달이 함께 태어났다는 동시 탄생설이 그것이다.

지구와 달의 관계를 가족 관계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분리설의 관점에서 보면 달은 어머니인 지구가 배 아파서 낳은 딸이고, 포획설의 관점에서 달은 아내인 지구가 맞아들인 남편이며, 동시 탄생설의 관점에서는 지구와 달은 언니와 동생인 자매 관계가 된다.

이들 세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분리설이 영국의 천문학자 조지 다윈에 의해 가장 먼저 제기됐다. 1878년 조지 다윈은 ‘종의 기원’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찰스 다윈의 아들답게 ‘달의 기원’을 발표했다. 지구가 생성 초기에는 매우 빠르게 자전했기 때문에 적도쪽이 부풀어오르고 이 부분이 태양의 중력 때문에 분리돼 달이 됐다는 내용이다.

조지 다윈이 제기한 달의 기원은 4년 후 영국의 지질학자 오스먼드 피셔가 태평양 분지는 바로 달이 떨어져 나갔던 흔적이라고 주장하면서 흥미진진한 시나리오를 얻게 됐다. 덕분에 분리설은 20세기까지 널리 알려졌다.

다윈과 피셔의 분리설에게는 다른 두 경쟁자가 있었다. 1909년 미국의 천문학자 토마스 시가 제안했던 포획설과, 프랑스의 천문학자 에두아르 로슈가 신봉했던 동시 탄생설이다. 포획설은 거미줄에 파리가 잡히듯이 지구 주변에서 돌아다니던 작은 천체가 지구 중력에 잡혀 달이 됐다는 주장이고, 동시 탄생설은 태양계의 행성들이 형성되던 똑같은 물질에서 지구와 달이 나란히 독립적으로 태어났다는 가설이다.

월석 한방에 무너진 빅3

그렇다면 세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실제 모습에 가까운 것일까. 해답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진행된 미국의 아폴로 계획 덕분에 지구로 옮겨진 월석 3백85kg에서 나왔다. 월석을 분석한 결과 달은 지구와 매우 유사한 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난감할 정도로 너무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월석은 고온에서 끓기 쉬운 휘발성 물질이 거의 없고 한때 달의 많은 부분이 녹아 있었음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달의 밀도가 지구 전체(큰 철 핵 포함)의 밀도보다 작고 오히려 지구 맨틀(암석)의 밀도와 비슷한데, 달 과학자들은 이 차이를 달이 자그마한 철 핵을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998년 미항공우주국(NASA)의 루나 프로스펙터가 달의 핵이 전체 질량의 3% 이하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지구의 핵은 전체 질량의 30%를 차지한다).

반면 월석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연구하자 지구와 달이 대략 45억년의 나이를 가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산소 동위원소비의 경우 월석은 외계운석과 달리 지구 암석과 혈액형처럼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지구와 달은 태양으로부터 같은 거리에서 피를 나눈 사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달 탄생을 둘러싼 세 시나리오의 운명은? 분리설은 달의 핵이 아주 작고 산소 동위원소비가 비슷하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지만, 지구가 지금보다 번개처럼 빨리 자전해야 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태평양 분지의 경우도 지금으로부터 7천만년도 채 안되기 전에 형성됐기 때문에 달을 낳을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포획설은 지구와 달의 구성성분 차이를 설명할 수 있지만, 달의 핵이 작고 산소 동위원소비가 비슷하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결정적으로 지구 근처를 지나가던 물체가 지구에 부딪치거나 우주공간으로 질주하지 않고 지구의 품에 천천히 안길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동시 탄생설의 경우 지구와 달이 함께 성장하면서 지구가 철이 많은 큰 핵을 갖는 동시에 달은 철이 거의 없는 조그만 핵을 가진다는 점은 상상하기 힘들다. 또 이 가설은 지구와 달 시스템이 현재 가지는 엄청난 각운동량을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지구와 달 시스템이 동시 탄생설로 만들어졌다면 현재 각운동량보다 더 작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네이처’8월 16일자에 실린, 달 탄생과정을 보여주 는 가장 정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파란색 입자와 진한 초록 색 입자는 응축된 물질을 나타내고, 붉은색 입자는 팽창 단계 나 뜨겁고 고압으로 응축된 단계를 의미한다. 시뮬레이션 결 과 지구에 화성 크기의 천체가 충돌하자 충돌체의 핵 물질은 지구 핵으로 흡수되고 지구와 충돌체의 암석물질은 주변으로 흩어져 달을 형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지막 그림만 옆 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검증돼

이때 등장한 해결사가 대충돌설이다. 간단히 말해 대충돌설은 45억년 전 지구가 형성될 때 더 작은 천체가 지구에 충돌하면서 주변에 뿌려진 부스러기로부터 달이 탄생했다는 가설이다. 언뜻 황당해보이는 이 가설은 많은 강점을 가진다.

충돌체에서 지구로 철 핵이 흘러들고 주로 맨틀의 암석체로 구성된 주변 부스러기에서 달이 탄생하기 때문에 자그마한 달의 핵과, 지구 맨틀의 밀도와 비슷한 달의 밀도를 설명할 수 있다. 또 충돌체가 지구 주변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달과 지구의 산소 동위원소비가 일치한다는 점도 설명할 수 있다. 이같은 점은 2001년 미국의 ‘사이언스’ 10월 12일자에 실린, 달 토양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재차 확인됐다.

대충돌설은 1970년대 중반 두 그룹에 의해 각각 다른 관점에서 제기됐다. 미국 행성과학협회의 윌리엄 하트먼과 도널드 데이비스는 달에 있는 거대 크레이터를 만든 1백50km 크기의 투사체를 상상하다가 이보다 더 큰 물체가 지구에 부딪친다면 달이 형성되기에 충분한 물질이 주변 궤도에 뿌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알프레드 카메론과 윌리엄 워드는 지구와 달 시스템의 각운동량을 설명하는 연구를 하다가 충돌체가 화성 정도의 크기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충돌설은 1980년대 중반에야 학계에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충돌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 가운데 1990년대 대충돌로 주변 궤도에 흩어진 부스러기로부터 달 자체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던 로빈 캔업 박사의 시뮬레이션이 돋보였다. 하지만 미국 사우스웨스트 연구소의 캔업 박사가 수행한 초창기 시뮬레이션에는 문제가 있었다. 대충돌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부스러기가 지구에 떨어지거나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충돌체의 크기가 처음 예상(화성 크기)보다 2-3배는 커야 했는데, 이로 인해 지구의 자전 각운동량이 2-2.5배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첫 충돌이 있은 지 수백만년 후에 지구 자전을 느리게 하는 방향으로 또다른 충돌을 가정해야 했다.

그렇지만 2001년 영국의 ‘네이처’ 8월 16일자에 실린 캔업 박사의 업그레이드된 시뮬레이션 결과는 달랐다.

지구와 충돌체를 2만개 이상의 유닛으로 나눈 후 달 형성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45억년 전 거의 완성된 지구에 화성 크기 정도의 천체가 비스듬히 충돌했을 때 달이 탄생하기에 적당한 부스러기 물질이 주변 궤도에 뿌려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충돌체가 더 커야 하거나 또다른 충돌이 있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사라진 것이다.

충돌 후 10년도 안 걸려 탄생


운석에 대한 연구는 태양계 형성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태양계 생성 초기에는 먼지 알갱이들이 서로 들러붙 어 소행성 크기까지 커지다가 이후에는 좀더 큰 천체끼리 충돌해 행성 크기까지 성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대충돌은 자연스러운 과정일까. 태양계 생성 초기에 행성이 탄생하던 시기를 상상해보자. 가스와 먼지로 구성된 원시태양계 구름에서 중앙에 태양이 만들어지고 태양 주변에 행성들이 형성됐다. 안쪽에 위치한 암석질 행성(지구형 행성)은 먼지와 암석을 끌어들이면서 행성이 됐다. 행성 형성에 대한 물리를 연구하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행성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먼지 알갱이들이 서로 들러붙어 소행성 크기 정도까지 커진다. 이 정도 크기면 중력으로 주변 물질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소행성 크기의 천체들이 성장해서 달보다 훨씬 더 큰 천체가 수십여개 만들어진다. 이 단계는 1백만년만에 끝날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거대한 천체들이 충돌을 일으키며 더 큰 행성을 형성한다. 이 와중에 지구에 화성 크기의 천체가 충돌하며 달이 탄생할 수 있다. 대충돌설은 행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런 과정인 셈이다. 마지막 단계는 1-2억년 정도 걸려 진행된다.

반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대충돌로 인해 지구 주변 궤도에 흩어진 매우 뜨거운 부스러기가 달을 탄생시키는데 10년도 채 안 걸린다. 달이 매우 뜨겁고 전체가 거의 녹은 상태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암시한다. 또 달이 탄생할 때 마그마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기존의 아이디어와 모순이 없는 대목이다.

그리고 대충돌설은 확률론적으로 대변동의 사건이 9개의 행성 가운데 1-2개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점과 통한다. 동시 탄생설과 같이 진화적인 과정에서 달이 탄생했다면 다른 행성에서도 달과 비슷한 위성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 곤란할 것이다.

또한 2000년 영국의 ‘네이처’ 2월 17일자에 따르면 대충돌설은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궤도가 지구 궤도와 이루는 기울기도 설명할 수 있다. 태양계 행성의 위성 대부분이 가지는 궤도는 지구 궤도와 1-2°정도를 이루는 반면, 달 궤도의 기울기는 5°나 되기 때문에 문제였다. 연구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는 대충돌로 흩어진 부스러기에서 탄생한 달이 나머지 부스러기가 이루는 원반과의 상호작용으로 달 궤도의 기울기가 커진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처음 제기된 이래 25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달 기원을 설명하는 선두주자로 남아있는 대충돌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현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많은 사실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앞으로 컴퓨터의 능력이 향상되면 달 탄생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정교해질 것이다.

하지만 태양계 생성 과정은 카오스적 상황이었기 때문에 똑같은 결과를 얻어낸다는 것 자체가 원래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탄생의 흔적인 달 자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는 것이 중요하다. 2004년 말 달로 향하는 유럽우주기구(ESA)의 스마트 1호를 비롯한 차세대 달 탐사선에 기대를 걸어본다.


탐사선을 시험하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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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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