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항공모빌리티(UAM) 1인용 기체에 앉아 봤다. 기체의 고도와 비행 방향을 바꾸는 스틱인 인셉터도 조작해 봤다. 하지만 기체는 하늘을 날지 않았고, 고도 500m 상공은 모니터 속 화면에서만 펼쳐졌다. 아직은 한국에서 사람이 UAM을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차세대 교통 시스템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우선 오른 다리를 먼저 넣고요, 그다음 상체를 구부려 몸을 안으로 넣으세요. 마지막으로 왼 다리를 끌어오면 됩니다.”
5월 27일, 경기 화성에 위치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기체 개발사 볼트라인의 앞마당에서 김도원 대표와 김민호 이사의 도움을 받아 ‘스카일라’에 직접 탑승했다. 1인용 기체인 스카일라는 한국 1세대 UAM이라 불린다. 철제 프레임에 총 8개의 로터와 프로펠러가 앞뒤 좌우, 그리고 위아래로 부착된 ‘멀티로터’형이다.
스카일라는 로터와 프로펠러를 조립하기 전엔 승합차에 넣어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담했다. 설계를 단순화한 디자인의 기체에 별도의 문은 없었다. 안내받은 대로 철제 프레임 사이 한 발을 먼저 넣고 허리를 숙여 엉덩이로 의자를 찾았다. 좌석은 다소 좁게 느껴졌다. 목과 머리를 완전히 감싸는 도톰한 시트가 제법 부피가 있었다. 풍채가 좋은 성인 남성이라면 어깨를 말고 다소곳해질 수밖에 없을 좌석이었다. 하지만 다리를 두는 공간은 일반 여객기 이코노미 좌석보다 넓었다. 무릎이 다 펴지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꽤 뻗을 수 있었다. 탑재 가능 최대 중량인 페이로드는 약 120kg. 짐을 얼마나 싣느냐에 따라 탑승자의 체중 제한이 있을 수 있다.
의자의 양옆에는 손바닥으로 감아쥘 수 있는 두 개의 조이스틱이 부착돼 있었다. “오른쪽은 방향 전환용이고요, 왼쪽은 비행 고도 조절용입니다.” 단순해서 누구나 비행할 수 있게 설계된 운전대였다.
정면에는 계기판을 띄울 모니터가 설치된다. 스카일라의 최대 비행 거리는 25km로, 서울 김포공항에서 잠실 야구장까지의 거리를 날 수 있다. 최대 운행 가능 시간이 40분이지만 개발사는 20분 정도를 적정 비행시간으로 본다.
그렇게 헬멧까지 건네받아 써봤지만, 그다음은 없었다. 여전히 하늘은 높고 중력은 강했다. 스카일라는 사람을 태우고는 비행할 수 없다.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준비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STEP 1. 기술
고흥서 실증사업 진행 중, 기체 개발엔 끝이 없어
2020년은 한국 UAM의 원년이다. 그해 6월에 ‘UAM 팀코리아’ 발족식이 열렸다. UAM 팀코리아는 한국 UAM 시장의 발전을 목표로 모인 민관협의체다. 발족식이 열리기 한 달 전인 2020년 5월, 국토교통부(국토부)는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5년에 UAM을 최초로 상용화하겠다는 로드맵 안에는 UAM을 새로운 교통혁신 아이템으로 명명하고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이끌겠다는 내용이 적혔다. 발족식에서도 이랑 국토부 당시 미래드론교통담당관은 “한국은 UAM 선도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UAM 팀코리아에는 국토부의 총괄 아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부국방부 등의 중앙 부처와 각 지자체, 그리고 산업계와 학계, 공공 연구기관 등이 속해 있다. 2020년엔 37개 기관으로 시작했지만, 2024년 6월 현재는 167개 기관이 UAM 팀코리아에 참여하고 있다.
K-UAM 로드맵은 2020년부터 2035년까지 16년을 총 4단계로 구분 짓는다. 첫 번째는 준비기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UAM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이슈와 과제를 발굴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시기다. 두 번째 2025~2029년은 초기다. 도심 내외 거점 버티포트를 설치하고, 일부 노선을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그다음 2030~2034년은 성장기로 보고 있다. 비행 노선을 확대해 UAM 사업이 흑자 전환을 할 시기로 목표를 삼고 있다. 마지막, 2035년부터는 성숙기다. UAM 이용이 보편화되고, 파일럿이 없는 자율비행으로 ‘에어 택시’가 운행되는 시기다.
준비기는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다. 한국형도심항공교통 실증사업(K-UAM 그랜드챌린지)에 참여하는 총 5개 컨소시엄이, 2023년 8월부터 고흥 UAM 실증단지에서 1단계 실증을 진행 중이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각 기관과 기업들은 기체, 운항, 교통관리, 통합 운용 시스템 영역에서 개발한 기술을 검증하고 있다.
2024년 2월에는 고흥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개발한 UAM 기체, ‘오파브(OPPAV)’의 시연 비행이 있었다. 이날 오파브가 130m 상공에서 시속 160km로 주행하며 발생한 소음은 61.5가중데시벨(dBA귀로 들을 수 있는 음의 크기를 주파수에 대한 가중치를 적용해 상대적 단위로 나타낸 값)로, 도시의 일반적인 소음 수준인 65dBA보다 작았다.
“오파브가 시속 200km로 순항한다고 했을 때 인천공항에서 정부 과천청사까지 약 16분 정도 걸립니다.” 5월 28일, 대전에서 만난 최성욱 항우연 UAM 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오파브의 성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파브는 현재 K-UAM 그랜드챌린지 실증에 쓰이는 기체 중 유일하게 한국이 독자 개발한 기체다. 대한항공, KT 등이 참여하는 ‘K-UAM원팀’ 컨소시엄에서 사용하고 있다. 오파브는 2019년부터 2023년 말까지 약 57개월간 개발이 이뤄졌다.
오파브가 사용하는 전력은 한 시간에 32kW다. 최 책임연구원은 “일반 가정집에 있는 대형 냉장고가 한 달 동안 쓰는 전기의 양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만한 전력을 기체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배터리의 무게도 220kg에 달한다. 오파브의 최대 중량이 650kg이니, 전체 무게의 30% 이상이 배터리 무게인 것이다. “오파브를 4인승 기체로 개발했다면 전체 중량의 절반을 배터리가 차지했을 겁니다.” 최 책임연구원은 “UAM이 상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배터리 무게를 줄여야 한다”며 “더 효율적인 배터리 기술과 고온저온 환경에서의 배터리 열관리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STEP 2 법
‘UAM법’ 2023년 제정, 시뮬레이터로 과학적 근거 쌓아
“시스템 시간을 3분으로 바꿔보세요. 기체가 이륙할 겁니다.”
6월 10일, 항우연이 개발한 ‘UAM 가상통합운용 및 검증(VIPP톅irtual Integrated oPeration Platform) 시뮬레이터’에서 UAM의 이착륙을 책임지는 버티포트 오퍼레이터가 돼봤다. VIPP 시뮬레이터는 버티포트 운영시스템, UAM 항공교통관리(ATM) 시스템, 그리고 UAM 기체 및 비행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관리하고 또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시뮬레이터다. 장재원 항우연 무인이동체사업단 책임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마우스를 눌러 시스템 시간을 바꾸니, 모니터 속 가상의 기체가 가상의 버티포트에서 날아올랐다.
시뮬레이터는 6개의 날씨 조건도 따로 설정할 수 있도록 돼있었다. 맑은 날, 구름, 안개, 태풍, 비, 눈으로 나눠진 조건을 하나씩 클릭해 봤다. 안개를 누르자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버티포트가 안개에 가려 사라졌다. 가시거리가 매우 짧은 상황을 설정한 것이다. ‘콰과광’ 태풍으로 날씨 조건을 설정하니 스피커를 통해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와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시뮬레이터 속 UAM 기체는 끊임없이 이착륙을 반복했다.
VIPP 시뮬레이터는 2022년, UAM 통합 운용 시스템으로 처음 개발됐다. 모니터 속 UAM 기체는 ‘무엇이 최적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 이착륙을 반복했다. 시뮬레이터 속 가상의 버티포트는 서울 도심 내외 총 6군데에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경기 고양 킨텍스, 계양 신도시, 김포국제공항 두 곳, 그리고 여의도다.
“여기가 고흥 UAM 실증단지 상공입니다. 고흥 앞바다에 빠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한 번 UAM을 운전해보세요.”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항공기 시뮬레이터에 올라탔다. 정면에 3대, 좌우 발치에 2대의 하부 카메라 모니터가가 설치돼 있었다. 의자도 항공기 조종석을 옮겨왔다. 좌석 오른쪽에는 인셉터가, 왼쪽에는 스로틀이 있었다. 인셉터는 항공기를 제어하는 사이드 스틱 시스템이다. 고도와 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스로틀은 앞뒤로 밀어 조종하는데, 항공기의 출력을 조절한다.
과학동아 김태희 기자가 6월 10일 대전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플라이트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UAM 기체 조종을 체험하고 있다.
항공기 시뮬레이터에 앉았을 때, 이미 기체는 고흥 상공에 있었다. UAM의 순항 고도는 약 300~600m. UAM을 탔을 때 내려다보는 땅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인셉터 안쪽에 부착된 고도 조절기를 위로 올렸다. 1000, 1050, 1100. 정면 모니터 속 계기판에 고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올라갔다. 1600피트(약 487m)에 다다랐을 때 장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이 정도가 UAM의 순항 고도입니다.”
UAM은 고흥 실증단지 주변의 산 정상보다 높이 올랐다. 인셉터를 좌우로 밀어 항공기 방향을 바꿔도 눈에 걸리는 게 없었다. 땅 아래를 내려다보니 실증단지 건물이 점처럼 작게 보였다.
항우연은 VIPP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버티포트 설치 장소로 어디가 최적일지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지역별 수요 값을 입력하고, 기체의 운행 상태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 외에도 UAM 기체의 출발 지연, 비행경로 이탈, 기체 간 안전거리 미확보 상황을 설정한 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지금은 VIPP가 하나의 부스 안에 만들어져 있지만 2025년 말까지는 항우연 내 약 625m2의 전체 공간이 VIPP 시뮬레이션 장소가 된다. 그때는 총 4대의 기체 일부를 설치해 조종성(조종 반응 정도)과 탑승감을 확인할 예정이다.
2023년 10월 6일, ‘UAM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식 명칭은 도심항공교통 활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로,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2024년 4월 25일부터 시행됐다. UAM법은 항공안전법, 항공사업법 등 기존의 항공 관련 법령을 UAM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감한 규제 특례로 신기술의 자유로운 개발과 검증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다음 법과 제도 정비는 2028년쯤이 될 겁니다.” 전용민 항우연 UAM연구부 책임연구원은 “K-UAM이 초기를 넘어 성장기로 가기 전에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VIPP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테스트해 보고, 그 결과들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STEP 3 표준
조종사 자격 등 표준 없어, 한국이 새로운 기준 만들까
K-UAM 그랜드챌린지 2단계는 수도권 도심을 무대로 한다. 계획대로라면 2024년 8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총 3단계의 수도권 실증 비행이 진행된다. 2025년 3월까지 진행되는 1단계 실증 비행 노선은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잇는 수로인 아라뱃길이다. 준도심에서의 UAM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이 목표다. 인천국제공항 드론시험인증센터와 계양신도시에는 버티포트 건설이 시작됐다. 1단계 실증에 참여하는 기체는 총 3개. 아처 에비에이션과 조비 에비에이션 그리고 오토플라이트의 기체가 8월 중순, 각각 한 대씩 한국으로 들어온다.
2025년 봄에는 경기 고양 킨텍스와 김포공항 그리고 여의도 공원을 비행하는 한강 노선에서 2단계 실증 비행이 이뤄진다. 공항 지역과 한강 회랑에서의 비행을 테스트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잠실 헬기장과 수서역을 잇는 탄천에서 3단계 실증이 진행된다. 본격적인 도심 상공 비행을 위한 준비다. 수도권 실증 노선은 모두 안전을 고려해 강과 하천 위에 그려졌다.
실증 단계에서 UAM은 누가 조종할까. 기자의 질문에 전 책임연구원은 “UAM 기체 제작사에서 파일럿이 파견된다”고 설명했다. 헬리콥터 조종 자격증을 가진 제작사 소속 파일럿이 UAM 비행 훈련을 받고 투입된다. 수도권 실증 비행을 앞두고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누구에게 비행 자격을 부여해야 하는지 등의 법제가 마련되지 않았다. “UAM 조종 자격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논의가 뜨겁습니다. 당연히 국가에서 자격을 줘야 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으로는 정부조차도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를 모르니까요. 모든 국가에서 제도를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가 UAM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다. 미국과 독일, 중국의 개발사들이 UAM 기체 개발을 이끌고 있지만, 각 나라별로 체계적인 실증 사업이 이뤄지고 있진 않다. 비유하자면 땅을 파진 않았지만, 우선 지하철부터 만들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은 지금 지하철 노선과 지하철을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전 책임연구원은 K-UAM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의 그랜드챌린지에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에, K-UAM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민관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했을 때 화이트보드와 엑셀을 사용했어요.” 전 책임연구원이 웃으며 말했다. 기존의 항공 시스템은 미국과 유럽 등이 앞서 만든 기준과 제도를 참고하면 됐지만 UAM은 달랐다. 모두가 엇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었다. 참고할 것이 없다 보니 자료와 논의가 밑바닥부터 이뤄졌던 것이다. 옆에 서 있던 장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표준이 아직 없다는 얘기는, UAM 표준화에 ‘K-’가 붙을 수 있단 거예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