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거리
대학 4년 동안 키스 한번 못해본 순진남 구창(봉태규 분).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눈앞에 유치원생 같은 순진녀 아니(정려원 분)가 나타나고,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난생처음 해보는 데이트는 하루하루가 좌충우돌 사고의 연속이지만,구창은 이 모든 것이 꿈 같이 행복하기만 하다.그러나 아니의 내면에 감춰진, 폭력적인 성향의 하니가 등장하면서구창의 꿈은 여지없이 깨지고 마는데….
‘두 얼굴의 여친’은 다중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코믹·멜로 영화다. 다중인격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로도 불리며 의학적으로는 둘 이상의 인격을 갖고 각각의 인격에 따라 행동과 태도가 달라지는 증상을 일컫는다. 즉 다중인격이란 말 그대로 한 사람의 내면에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상태를 뜻한다.
대개는 한 번에 한 개의 인격이 그 사람을 지배하며, 변화된 인격에서 원래의 인격으로 돌아갔을 때 그 동안 생긴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평소에는 유순한 사람이 인격이 바뀌면서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기억조차 못할 수 있다. ‘해리성’이란 말도 정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벗어나 기억을 상실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의학적으로 다중인격장애는 존재하는 질환일까? 만약 있다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인격은 몇 가지나 될까? 치료법은 있을까?
다중인격, 몇 개까지 가능할까?
현재 의대에서 많이 쓰는 정신과 교과서인 ‘카플란’(Kaplan) 최신판에 따르면 모든 정신과 환자의 5% 또는 정신과에 입원한 환자의 0.5~3%가 다중인격장애를 보일 수 있다. 또 10대 후반~20대 여성에게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
다중인격장애 환자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물리적이거나 성적인 학대를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최면에 잘 걸리거나 간질병 경력이 있는 경우, 그리고 뇌측두엽의 혈류가 증가할 때도 다중인격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다중인격이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중인격장애가 왜 생기는지 아직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중인격장애가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계기는 1957년 출판된 ‘이브의 세 얼굴’(Three Faces of Eve)이라는 사례집이었다. 미국 조지아대 의대 정신과 의사였던 코르벳 틱펜과 허비 크렉클리는 이 책에서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던 크리스틴 비아참이라는 여성의 삶을 다뤘다.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의 크리스틴은 어느 날 갑자기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의 샐리로 돌변한다. 물론 크리스틴은 샐리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 그녀의 주치의는 ‘한사람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인 처녀’라는 제목의 논문을 학계에 보고했고, 이후 학계에서 다중인격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그 뒤 놀랍게도 크리스틴에게서 전혀 다른 성격의 세 번째 인격이 발견됐는데, 이 세 번째 인격은 스스로 이름을 밝히지 않아 ‘이브’라고 불렸다.
영화에서도 아니의 세 번째 인격인 ‘유리’가 등장한다. 유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애틋한 사연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3년 전 남극을 탐험하다 조난을 당한 유리는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남자친구 덕분에 구조될 수 있었던 것. 이를 알게 된 구창은 유리의 아픈 맘을 달래주려고 하지만 유리는 구창과의 관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다중인격장애를 앓는 환자는 평균 5~10개의 인격을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 진단할 때는 두드러진 인격 2~3개만 발견되고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인격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주인 인격은 우울하고 불안하며 피학대적인 특성을 띠거나 아예 지나치게 도덕적이다. 반면 가장 흔히 나타나는 하위 인격은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 얌전한 아니와 폭력적인 하니처럼 간혹 주인 인격과 정반대의 인격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책 ‘빌리 밀리건’을 보면 한 사람이 동시에 24개의 인격을 가질 수 있다. 실존 인물인 미국의 빌리 밀리건은 1977년 납치와 강간혐의로 기소됐다가 세계 최초로 다중인격장애를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빌리 역시 자신의 행위를 기억하지 못했고, 애초에는 10개의 인격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14개의 인격이 더 발견됐다.
맘만 먹으면 바뀐다?
영화에서는 아니가 하니로, 하니가 다시 아니로 그리고 유리로 바뀌는 과정이 어떨 때는 우연히, 어떨 때는 의도적으로 발생한다. 다중인격에서 의도적으로 인격을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
사실 다중인격장애 환자의 인격 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저절로 바뀌지만 최면이나 아미탈 면담(Amytal interview)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미탈 면담은 최면제를 투여해 환자를 무의식 상태로 유도하는 면담법으로 다중인격장애와 꾀병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화에서는 구창이 아니의 이름을 두 번 부르면 하니가 사라지고 아니가 나타나는 것으로 그렸는데, 이는 의학적 관점에서 오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다중인격장애가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다. 다만 미국에서는 대중 매체의 영향과 아동 학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면서 다중인격장애에 대한 사례 보고가 늘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 중에는 다중인격장애가 호사가들이 꾸며낸 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대인관계나 정체성의 혼란을 보이면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나 정신분열 증세를 다중인격장애로 오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반면 다중인격장애를 질환으로 인정하는 학자들은 대개 환자의 현실 인식이 정상이고 심리검사에서 최면에도 잘 걸리므로 정신분열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경계선 인격장애와 비교하면 증상은 비슷하지만 경계선 인격장애에는 해리 상태가 없다는 점을 들어 다중인격장애와 명백히 구분된다고도 주장한다.
기시감(데자부) 역시 어떤 사물을 보거나 들을 때 과거에 경험한 것처럼 친근함을 느끼지만 모든 일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다중인격장애와 구분된다.
지금까지 다중인격장애를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최면이나 약물, 인터뷰를 통한 정신분석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도 아니는 최면 치료를 통해 다중인격장애를 극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때 치료 첫 단계에는 각 인격체가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 환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게끔 도와줘야 한다. 특히 다중인격장애 환자의 80% 이상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아동기의 정신적인 외상을 기억하는 하위 인격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약물 치료는 대개 효과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