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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암 발생시키는 표적을 탐지한다

2002 노벨화학상 수상으로 이끈 질량분석기


생명체라는‘오케스트라 ’의‘악 보’는 DNA이고‘악기’는 단백질이다.


생명체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악보는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에 해당되고 이를 연주하는 악기는 단백질에 해당된다. 즉 실제 다양한 소리를 내는 것은 단백질들이다.

1980년대 이후 20년 동안 유전자 조작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DNA, RNA를 포함한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고효율 유전자 분석기술이 크게 발달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됐고, 그 결과 인간은 약 3만여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인간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악보가 전부 밝혀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악보만 있으면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감동을 느낄 수 없는 법. 실제 악기인 단백질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기능을 밝혀야만 인간 게놈의 정보가 유용성을 갖게 된다.

1년 연구 기간이 1주일로

단백질은 암과 심장병, 치매, 알레르기 등 다양한 질병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정상 단백질은 세포 내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구조나 형태에 이상이 생기면 이는 곧 질병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질병의 원인이 되는 질환 단백질을 대량으로 탐색하면 다양한 질병의 표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질환 단백질은 정상 단백질과 매우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정상 단백질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거나 외부의 미세한 물질이 추가돼 질환 단백질이 되는 것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는 기존의 생화학적 방법으로 규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에는 질량분석기(spectrometry)가 개발됨에 따라 단백질의 미량의 질량 차이도 밝혀내고 있다.

세포 내에는 수만종의 단백질이 섞여 있다. 이 단백질은 구조가 다른, 다시 말해 분자량이 다양한 20개의 아미노산(분자량은 57.05-1백86.21Da)이 1백-1천여개(분자량 1만-3만Da) 모여 일렬로 연결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단백질 연구는 아미노산의 종류와 그 배열순서를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는 단백질마다 고유하므로 이를 알아내면 단백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는 아미노산의 화학적 특성을 이용한 ‘아미노산 순서 결정기’(amino acid sequencer)라는 장치를 사용해 알아냈다. 하지만 아미노산 순서 결정기는 10개 이상의 단백질을 동시에 분석하기가 어렵고, 분석할 단백질의 양이 매우 많이 필요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1990년대 말부터는 단백질을 확인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질량분석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질량분석기는 단백질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장치인데, 단백질의 질량을 측정하면 신속하고 손쉽게 단백질의 종류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질량분석기는 대량의 단백질을 고효율로 동시에 분석할 수 있으며, 눈에는 보이질 않을 정도의 아주 미세한 양만 있어도 분석이 가능하다. 현재의 첨단 질량분석기를 이용하면 10펨토몰(femto mole, 10-15mole) 양의 수백개 단백질을 1주일 내에 분석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 같은 양을 분석하려면 적어도 1년 정도가 걸렸다. 이처럼 질량분석기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프로테오믹스 연구의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ALDI-TOF질량분석기의 원리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가 고안한 질량분석기. 코발 트와 글리세린의 혼합액(매트릭스)에 단백질을 섞어 레이저를 쏘면 단백 질 구조가 손상되지 않고 표면에 전하가 생긴다. 이를 전기장이 걸린 진 공실에 넣으면 분자량에 따라 가벼운 것부터 반대편 벽에 도착한다. 이때 의 비행시간을 측정하면 분자량을 알 수 있다.


무게 따라 진공을 나는 시간 달라져

질량분석 기술은 1910년경에 등장해 1960년대까지 분자량 10kDa(1만Da) 이하 물질의 분자량을 측정해 물질의 구조를 확인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됐다. 질량분석기의 원리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이었다. 그는 1912년 물질을 가스상태에서 이온화시키면 표면에 전하를 띠게 되고, 이를 이용하면 분자 크기에 따라 물질을 구분할 수 있다는 원리를 발표했다. 이 때부터 분자량과 전하의 비율에 따라 물질을 구분하는 질량분석의 기본 원리가 도입됐다. 이 원리에 따라 개발된 질량분석기는 크게 두 과정으로 나뉜다. 분석할 물질을 이온화시켜 전하를 띠게 하는 과정과 질량에 따라 물질을 실제로 분리하는 질량분석 과정(mass analyzer)이다.

질량분석기는 그동안 향료나 석유제품, 약물과 같은 분자량이 작은 물질(10kDa 이하)의 질량분석에 널리 쓰였다. 하지만 기존의 질량분석기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다. 10kDa이 넘는 물질에 대해서는 질량분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0kDa이 넘는 고분자 물질은 단백질이나 DNA, RNA 등의 생체분자가 대표적인데, 이런 중요한 물질에 대해서는 기존의 질량 분석기로 분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1950년대에 새로운 방법이 개발됐다. 예전의 방법은 진공의 공간에 전기장이 걸린 4개의 막대(quadrupole)를 설치해 이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이온화된 물질의 질량을 측정했다. 하지만 새롭게 개발된 방법은 이 4개의 막대를 없애고 이온화된 분자를 강력한 전기장이 걸린 진공실에 넣었다. 진공 중에서 분자를 날아가게 하면 분자량이 작은 것은 빨리 가고, 큰 것은 늦게 날아오므로 오래 기다리기만 하면 분자량이 무한히 크더라도 분석할 수 있다는 원리다. 예전의 방법이 전기장이 걸린 막대가 움직인 것이라면 새로운 방법은 전기장은 가만히 있고 분자가 움직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분자가 진공실 내부를 나는 시간을 측정하므로 ‘비행시간’(TOF, Time of Flight) 방법이라 부른다.


무게 따라 진공을 나는 시간 달라져


레이저 에너지를 낮춰 형태를 보존하라

하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비행시간 측정법으로 한계 질량은 극복했지만 이번에는 생체고분자를 이온화시키는 방법이 문제였다.

분자를 이온화시키기 위해서는 고체나 액체상태의 물질을 가스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질량분석에 사용한 물질은 대부분 휘발성 성질을 갖고 있어 이 과정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지만 단백질 등의 고분자물질은 대부분 비휘발성 물질이라 이를 가스형태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한 방법이 바로 ‘흡착 기술’(desorption technology)이다. 쉽게 말해 흡착 기술은 레이저를 단백질에 쏘아 표면에 전하를 띠게 하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흡착 기술은 비행시간 측정법과 결합하면서 고분자물질의 질량 분석에 획기적 전환점을 가져 왔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단백질의 분자량을 정확하게, 즉 단백질 배열순서에 따른 정확한 값을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레이저를 이용해 흡착/이온화시킨다는 발상은 좋았으나 그 효율이 매우 낮았다. 단백질의 측정 감도가 낮아 정확한 분자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분석할 단백질의 양이 많이 필요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레이저의 에너지를 높이면 단백질 표면의 구조가 망가지거나 형태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므로 효율을 높이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게 됐다.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기존의 이런 질량분석기를 개선해 2002년 노벨 화학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단백질에 레이저를 쏘일 때 지금까지는 글리세린이나 코발트를 첨가해 왔다. 레이저의 높은 에너지를 흡수하고 이온화된 단백질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다나카는 실수로 코발트 위에 글리세린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다. 하지만 이때 그의 머리 속에는 ‘함께 혼합해 쓰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이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단백질 시료에 두 물질을 섞어 레이저에 노출시켰더니 기존의 방법보다 효율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다나카가 개발한 방법은 ‘MALDI-TOF MS’(Matrix Assisted Laser Desorption Ionization- Time Of Flight Mass Spectrometry)로 불린다. 이 방법은 단백질에 매트릭스(코발트와 글리세린의 혼합액)를 섞어준다는 개념이다. 다나카는 이 원리를 1990년대 초에 발표했으나 한동안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프로테오믹스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의 MALDI-TOF MS가 재주목 받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단백질의 질량을 고효율로 분석할 수 있게 만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고, 특히 MALDI-TOF 질량 분석방법에 의해 프로테오믹스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MALDI-TOF로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다나카 고 이치(사진 오른쪽).


현재의 질량 분석기는 다나까의 방법을 개선시켜 더욱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뤄진 개선 연구를 거쳐 현재는 10펨토몰까지 검출할 수 있는 질량 분석기가 약 2억여원의 가격으로 시판되고 있다. 또한 질량 분석 과정(mass analyzer)을 2개 나란히 붙여 만든 탠덤 MS(tandem Mass Spectrometry)도 개발돼 있어 프로테오믹스 연구에 널리 쓰이고 있다. 탠덤 MS는 TOF 과정을 2개 붙인 것으로 검출 감도가 더욱 좋고, 구조분석이 가능하다.

기존 생화학 방법의 한계 극복

프로테오믹스는 단백질을 고효율로 분석할 수 있는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생명현상에서 변형된 단백질을 확인하는데 널리 쓰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프로테오믹스 연구 관련 웹사이트는 3천여개에 이르고, 본격적으로 프로테오믹스를 연구하는 실험실은 1백여개나 된다. 특히 제약산업의 연구·개발 파트에서 새로운 약물 도출에 이용하기 위한 단백질 분석방법으로 질량분석기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화이자 등 세계적 제약회사들은 질병에서 변화되는 단백질을 탐색해 이를 조절하는 새로운 화합물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질량분석기를 급속도로 채택하고 있다.

국내의 현실을 보면, 질량분석기 자체에 대한 기술 개발과 연구는 전혀 없는 상태다. 대신 프로테오믹스에 이용하기 위한 단백질 질량분석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단백질 연구에 응용하고자 하는 연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화여대에서는 암과 심혈관계 질환의 신호전달 관련 연구에 MALDI-TOF MS와 탠덤 MS 등의 프로테오믹스를 이용해 새로운 단백질의 발현과 변형, 단백질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있다. 이 같은 접근은 기존의 생화학적 방법으로 분석이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단백질에는 인산이나 아세틸 등 매우 작은 분자량의 물질이 붙어 단백질의 기능을 켜고 끄는 역할을 한다. 이런 미세한 화학적 변화는 기존의 생화학적 방법으로는 알아내기 매우 어렵다. 이를 밝히는데는 새로운 프로테오믹스 방법이 매우 유용하다. 특히 MALDI-TOF MS를 이용하면 인산이 붙은 단백질과 그렇지 않은 단백질의 질량 차이를 확인해 그 변화를 쉽게 밝힐 수 있다. 필자의 연구실은 MALDI-TOF MS를 이용, 암전이 억제 단백질인 ‘Nm23’은 인체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에 의해 일부가 산화되며 이에 따라 암 억제 기능을 잃고 암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밝혔다. 산화된다는 말은 단백질 일부의 수소 원자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런 미세한 질량 차이를 밝히는 것이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산화돼 활성화되는 단백질 90여종도 밝혔다.

또한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서울대 약대의 김규원 교수팀과 함께 산소농도에 의해 조절되는 ‘HIF-1’ 단백질이 아세틸화되면 새로운 혈관 생성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결과는 2002년 11월 27일 세계적 생명과학전문지 ‘셀’에 게재됐다. 지금까지 단백질에 인산이 붙어 그 기능을 조절하는 예는 많이 밝혀져 있었으나, 아세틸이 단백질 기능을 끄고 켠다는 사실을 규명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쾌거는 MALDI-TOF MS 등 첨단 프로테오믹스가 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 연구 결과는 산소농도에 따라 혈관이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단백질 구조 변형 차원에서 밝힌 것이다. 아세틸화된 HIF-1을 이용하면 새로운 혈관 생성을 억제해 암세포가 더 이상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즉 악성암이나 류마티스성 관절염, 건선조직의 세포성장을 억제시킬 수 있으며, 새로운 혈관이 생성돼 또는 신생 혈관이 없어서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 개발에 획기적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시너지 효과는 신약 개발로


질량분석기로 단백질을 분석하면 모니터 위에 질량에 따른 피크 모양이 나온다.


국내의 프로테오믹스 연구는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했다. 제약산업의 기반이 부족한 국내의 경우 과학기술부가 프로테오믹스 연구를 지원해 새로운 약물의 표적 단백질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간암과 위암의 표적 발굴은 경상대와 연세대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암과 심혈관계 질환은 이화여대, 단백질 상호작용 연구는 포항공대, 질량분석 기술개발은 기초과학지원센터 등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이 개별적으로 이뤄져서는 신약 개발등에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프로테오믹스 연구의 인프라를 확보한 뒤 여러 기관으로 나눠 진행되고 있는 연구 결과를 한곳에 모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프로테오믹스 연구는 예전처럼 단백질을 한개씩 연구하는 때와는 달리 관련 있는 단백질을 대량으로 발굴하므로 이를 정리해 유용한 정보를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실에서는 연구결과를 쉽게 정리하고 정보를 추출할 수 있도록 모든 연구 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프로테오믹스 연구는 기초생물학에서 질병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이 가능하고, 세계적으로도 초기 단계이므로 이를 적극 활용하면 국내에서도 독창적인 신약 개발이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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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공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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