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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 현상 조절의 실체 단백질

인간 질병 95%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

'ㅈㅓㅇㄴㅏㅁㅂㅏㅇㅎㅑㅇㅇㅡㄹㅗㅊㅏㅇㅁㅜㄴㄷㅜㄱㅐㅇㅣㅊㅡㅇㅂㅕㄱㄷㅗㄹ….’

노미산씨(가명)가 얼마 전 설계사로부터 자신의 집이라며 건네 받은 ‘청사진’의 일부다. 석달 전, 노씨는 자신의 노후를 보낼 아늑한 전원 주택을 지을 계획으로 시내의 잘 나간다는 ‘DNA’ 건축사무소를 찾아 설계를 부탁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설계도를 펼친 노씨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햇살이 잘 드는 넓은 마루에 아늑한 벽돌집은 어딜 둘러봐도 보이지 않고 이상한 암호같은 말만 설계도를 가득 메우고 있지 않은가.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일 뿐
 

인체 내 모든 단백질을 통합적 으로 연구하는 프로테오믹스는 최근 발달한 컴퓨터학의 도움 으로 관련 연구정보를 체계적 으로 관리한다.


요즘 생명과학자들 중에는 노씨와 같은 심정을 표현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지난 2001년, 해독이 ‘완전히’ 끝났다는 인간게놈의 염기서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염기서열은 흔히 인간이라는 건축물의 ‘청사진’으로 불린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의 네염기가 단순히 단복돼 있는 일종의 ‘암호문’같아 보인다. ‘AGTACGTCGGATT….’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디가 창문인지, 마루는 어디에 있으며 방은 몇개인지 알 수 없다.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세계 생명과학계의 핵심 멤버 중 한명인 데이비드 콕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게놈 지도가 처음 공개됐을 때 상당수 학자들이 실망감을 표시했다. 게놈 지도가 나오면 생명체의 비밀이 드러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앞으로 연구해야 할 더 많은 숙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결은 이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숙제’는 바로 포스트(post) 게놈 연구. 유전자의 실체를 파악하더라도 실제 ‘건축물’의 생김새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창문’과 ‘벽돌’ ‘마루’ 등은 유전자가 아닌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세포 내에서 어떤 단백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뿐 세포의 기능을 실제로 좌우하는 것은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이다.

이에 따라 포스트 게놈 연구의 주역으로 인체 내 모든 단백질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려는 ‘프로테오믹스’(proteomics)가 주목받고 있다. ‘프로테옴’(proteome)이란 인체 내에 존재하는 모든 단백질을 뜻하는 ‘단백질체’(protein-some)를 뜻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게놈(genome)의 상대어로 ‘게놈에서 발현된 프로테인’(PROTEin expressed by a genOME)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1995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2차원 전기영동 학회’에서 마크 윌킨스 박사가 처음 쓰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프로테옴을 연구하는 학문(-ics)이 바로 프로테오믹스다.

생명공학의 떠오르는 노다지

프로테오믹스가 주목받는 또다른 이유는 단백질이 신약 개발의 실질적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벤처기업 마크로젠의 서정선 서울의대 교수는 “우리 몸의 질병을 유발하는 직접적 원인은 단백질이다.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은 전체 질병 중 5% 내외이며 나머지 95%는 모두 단백질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단백질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 실질적인 신약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신약 개발에 대한 프로테오믹스의 이점은 미 생명공학 벤처기업 셀레라 지노믹스의 연구 방향에서도 잘 나타난다. 셀레라는 미 국립보건원(NIH) 등이 주축이 돼 구성된 인간게놈프로젝트 컨소시엄을 물리치고 한발 먼저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완료한 기업이다. 30억달러나 투자된 다국적 사업단보다 8년이나 늦게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먼저 끝낼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벤처회사다. 이런 셀레라가 돌연 2002년 1월 연구 방향을 유전체학(genomics)에서 프로테오믹스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게놈에 대한 연구보다 질병과 연관된 단백질의 정체를 규명하는 편이 신약 개발 등에서 경제적 이득이 훨씬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많은 다국적 제약회사는 생명공학의 또다른 노다지를 찾아 프로테오믹스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전체학보다 프로테오믹스가 주목받는 사례 하나. 2002년 6월 연세대 프로테옴연구센터의 백융기 박사팀은 간암의 유무는 물론 진행 상태까지도 알 수 있는 표지 단백질을 밝히는데 성공, 이 결과를 세계적 간 학회지 ‘헤파톨로지’에 발표했다. 그 동안 대부분의 간암 환자는 이를 진단할 수 있는 특별한 지표가 없어 암이 많이 진행된 말기상태에서 병의 존재를 알았다.

백 박사팀은 한국인 간암 환자 19명의 조직을 대상으로 프로테옴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 환자 모두가 우리 몸의 철분을 담는 그릇인 ‘페라틴’이 깨져 있음을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 간암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 시약은 물론, 간암의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를 만들 수 있다.

백 박사는 “이번 연구는 유전체학으로는 결코 밝힐 수 없는 결과다. 페라틴의 생성이 억제된 이유는 유전자 이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이 만들어진 후 성숙과정이나 변모과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전자 변이 분석으로는 단백질의 이상 유무를 밝힐 수 없다는 말이다.


프로테오믹스는 유전체학으 로는 밝힐 수 없는 질병의 실 질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많 은 제약회사들이 단백질 연구 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학술과 응용의 두가지 관심

단백질 연구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생화학자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단백질 생화학은 한때 매우 느리고 어려운 일로 여겨져왔다. 단백질은 DNA처럼 대량증폭이 불가능하고 용액 내에서 비교적 불안정해 기능을 쉽게 잃는데다 조직에서 특정 단백질을 분리·정제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게다가 단백질은 합성 후 여러 단계의 변형과정을 거쳐 기능을 갖기 때문에 일률적인 추출과 분리, 정제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 한 단백질의 정제에 보통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예사였다.

따라서 프로테옴 연구가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좀더 공통적인 기반 기술이 필요했다. 즉 유전체학에서 DNA 증폭기술(PCR)이 게놈구조 연구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단백질도 무엇인가 핵심적이고 기반적인 기술이 필요했다. 인간게놈 연구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갈 즈음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바로 2차원 전기영동과 질량분석기, 바이오인포매틱스의 발전(자세한 내용은 76쪽 참고)이다. 생명공학의 많은 전문가가 프로테오믹스의 핵심 기술로 꼽는 것들이다.

현재의 프로테오믹스는 크게 2분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단백질에 대한 총체적 연구를 집약하려는 노력이다. 단백질의 성숙과정이나 변형과정, 단백질 간의 상호관계, 세포에 따른 특정 단백질의 정량적 분포 등이 주된 관심사다. 또한 이어지는 관련 단백질의 연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전의 연구 결과를 데이터베이스(PDB, Protein Data Bank)로 정리한다. 프로테오믹스 발생 초기의 주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또하나의 흐름은 프로테오믹스의 첨단 분석기법을 이용, 그 결과를 신약 개발 등에 응용하려는 것이다. 여기서는 전체 단백질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도 관심이 있지만 응용 가능성이 있는 단백질에 관심이 더 크다. 이를 위해 프로테오믹스를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두분야가 철저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테오믹스는 시작된지 겨우 5년 남짓한 신생분야다. 두 분야의 연구 결과는 상호 교환되고 있다.

유전체학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인 프로테오믹스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나 큰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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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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