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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개발과 자연보존이 조화이루어야

자연보존협회장 김창환

자연보존협회장 김창환


"눈앞의 전시효과만을 노릴 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개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첨단의 과학기술이 강조되고, 당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학문이 돋보이는 게 요즘의 세태이고 보면, 가령 나비의 아래입술수염 끝에 있는 후각기가 왜 애벌레 때는 없다가 나비가 되면서 생기는가를 연구하는 일은 부질없는 노력의 낭비나 시간허비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이른바 기초과학, 그중에서도 연구자가 드문 곤충생리학을 전공한 김창환 박사(66·한국자연보존협회장)는 이처럼 자칫 소홀히 다루기 쉬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생물학계의 원로다.

 

순수기초과학의 세계
 

과연 순수과학·기초과학의 세계는 어떤 것이며, 오늘날의 산업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아울러 그가 맡고 있는 자연보호운동은 현재 어디까지 와있는지도 알아보자.
 

-김박사께서는 생물학중에서도 곤충을 전공하셨고, 또 그중에서도 곤충생리학을 수십년간 연구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도대체 곤충생리학은 어떤 학문입니까?
 

"예를 들어 쉽게 말한다면 제가 처음으로 연구에 착수한 내용이 이런 겁니다. 배추애벌레가 배추흰나비로 변해가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었는데요, 특히 애벌레의 다리가 어떻게 나비의 다리로 되는가, 애벌레때 없던 날개가 어떻게 생겨나는가, 애벌레때의 조그마한 4개의 홑눈이 어떻게 해서 커다란 나비의 눈으로 변하는가를 연구했읍니다. 곤충의 변태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인데, 발생학과도 관련이 깊지요.
 

-그렇다면 곤충의 생리학이나 발생학 연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유용한 결과가 무엇일까요. 물론 학문을 위한 학문도 필요하겠읍니다만, 아무래도 실용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발전된 것은 선진국의 기술을 도입하고, 그곳에서 교육받은 고급두뇌를 유치하여 과학기술을 선진국형으로 바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방에 불과한 것이지요. 새로운 것을 창조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얘깁니다. 모방아닌 창조를 우리손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연관되는 모든 과학과 기술분야가 보조를 맞추어 발전해야 하는데, 특히 그런 잠재력은 순수기초과학에서 함양되는 것이에요.
 

요즘 유행되고 있는 유전공학이니 시험관아기니 하는 것도 학문의 근원을 따지고 보면 생물학의 한 분야인 발생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미 40년 내지 50년 전부터 발생학에서는 수정란의 핵을 뽑아내 이식을 하고 이것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연구했거든요. 그렇다면 이같은 생물학적인 기초연구가 잘 돼있는 상태와 그렇지못한 상태에서 각각 유전공학을 발전시켜 나간다고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겠읍니까."
 

이야기가 발생학에 이르자 김창환박사는 기다렸다는듯이 말을 쏟아놓는다. 일본의 동물학회발표대회에 가보면 논문의 30%는 발생문제를 다루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는 겨우 1,2편에 불과하다는 불만도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됐을 무렵 생물학계는 발생학 연구를 할 시설이 없어 자연히 분류학쪽으로 치우쳤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땅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1만여종의 곤충, 얼마나 조사됐나
 

-분류학 얘기가 나왔읍니다만, 우리나라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곤충의 종류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종류들이 모두 파악되고 또 연구되고 있읍니까.
 

"지금은 이 분야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읍니다만, 해방직후 제가 벌을 조사·연구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비를 연구한 석주명씨라든가 딱정벌레중에서 하늘소를 연구한 조복성씨 정도를 빼곤 거의 연구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뭏든 이때부터 지금까지 조사된 곤충은 대략 6천종쯤 됩니다만, 미세곤충까지 합치면 우리나라에 모두 1만종은 살고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미세곤충은 육안으로는 보일듯 말듯한 작은 것들인데, 다른 곤충의 알속에 기생하는 벌도 미세곤충의 하나지요.
 

현재 나비류는 조사가 잘 돼있읍니다만, 딱정벌레는 하늘소 이외에는 조사 안된 게 태반입니다. 요즘에야 무당벌레나 똥풍뎅이를 취급하고 있읍니다. 벌은 맵시벌·꽃벌 등은 연구되고 있지만 그밖의 구멍벌이니 말벌 잎벌 등은 손을 못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잠자리도 일본인이 손을 댔지 우리는 별로 한 것이 없고 파리류도 쉬파리 등 몇종류를 제외하곤 방치상태이며, 노린재 매미 진딧물은 많이 밝혀진 셈이지요. 요즘에도 미기록종이나 신종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곤충분류학은 한참 연구중인 단계로 보아야겠읍니다."
 

-김박사께서 펴내신 곤충도감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이와 관련해서 우리의 생물학 특히 곤충연구가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곤충의 종류에 따라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게 많습니다. 곤충분류에 50명 미만, 발생학에 20여 명 정도이고 생태학은 농림파트에서 해충구제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곤충도감을 말씀하셨는데, 정확한 책이름은 '한국산곤충분포도감' 입니다. 문교부에서 펴낸 동식물도감은 있읍니다만, 분포도감으론 처음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이 일본에서만 4~5백부나 나갔어요. 그만큼 그쪽에는 연구기관이나 학자가 많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와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이 대목에서 김박사는 일본인들의 수집열을 예로 든다. 즉, 일본인들 중에는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흥청망청 써버리는게 아니라 이것 저것 사모으는 수집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나비를 수집해 집안을 표본으로 장식해놓는 사람도 있는 등 아마추어 곤충수집가가 꽤 많다고 한다. 물론 그 방면의 책도 빠짐없이 구한다는 것. 일본서 고등학교와 대학(동경제대)을 다니면서 인상깊게 느꼈던 일중의 하나라는 얘기였다.

 

곤충채집에 얽힌 비화들
 

곤충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곤충을 채집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의 곤충채집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곤충채집은 주로 방학때 학생들과 함께 나가고, 일요일을 이용해 근교를 다녀오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자연보존협회 같은 단체의 조사단으로 참가하기도 합니다. 장비는 보통 포충망 독병 표본상자 자외선등을 갖추면 됩니다. 자외선등은 밤중에 나방 같은 것을 잡는데 쓰이는 것이지요."
 

-거의 전국을 답사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 동안 잡은 곤충이 몇마리나 될까요.

"해방후부터 본격적으로 다녔으니까 약 40년된 셈입니다. 주로 산을 찾아다녔으므로 아마추어 등산가라고나 할까요. 64년부터 3년간은 비무장지대를 샅샅이 훑기도 했읍니다. 40여년간 채집한 것들은 모두 제가 몸담았던 고려대에 표본 처리돼 보관돼 있는데 아마 10만점은 족히 될 것입니다. 물론 저 혼자서 채집했다기 보다는 학생들과 함께 한 것이지요."
 

-곤충채집을 다니다보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요.
 

"1956년에 학생 4~5명, 동료교수 등과 어울려 속리산에 간 적이 있읍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불편했고 산중에는 식량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대전에서 드리쿼터를 빌려 쌀 1가마니를 싣고 갔읍니다. 그런데 속리산에 다 와서 집중호우를 만났어요. 아마 요즘 정이품송이 있는 부근 개울이었을 겁니다. 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자 차가 멈춰버리고 쌀가마니가 침수돼버리는 것이에요. 결국 인근마을에서 로프를 빌려다가 끌어내 이것으로 떡을 만들어 마을잔치를 벌였읍니다.
 

이 속리산채집여행때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잠자리를 잡은 것도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마침 장마비가 그쳐 혼자서 개울가의 잡목 우거진 곳을 살피고있다가 우연히 조그마한 잠자리를 잡게된 것인데요. 길이가 16mm밖에 안돼 처음에는 영양부족때문인줄 알았읍니다. 나중에 숙소에서 도감과 대조해보니 동남아산의 남방계 잠자리로서 세계최소의 잠자리였어요. 따라서 속리산이 남방계 잠자리의 분포북한계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알고는 다시 잠자리를 잡았던 개울가로 가 한참을 찾았지만 더 이상 잡지를 못했을 뿐 아니라 그 후 지금까지도 잡지를 못하고 있읍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40여년간 채집작업을 해오시면서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나 생태계가 변화해 온 과정을 누구보다도 생생히 목격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정말 많이 변했읍니다. 곤충만 해도 멸종돼버린 게 많습니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반딧불이가 사라졌고, 커다란 풍뎅이라 할 사슴벌레며, 금빛나는 비단벌레도 요즘은 볼 수 없어요. 잠자리도 그 종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요. 옛날엔 여름방학숙제로 곤충채집이 단골메뉴였지 않습니까. 그때 학생들 중에는 직접 채집하지 않고 가게에서 사다가 숙제로 제출할 정도로 곤충 자체가 흔했읍니다만, 요즘은 희귀해진 곤충을 보호한다고 해서 아예 곤충채집이 금지돼있는 형편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에 가보면 1년생 야생화가 현저히 줄어든 것을 실감할 수 있읍니다. 또 산의 나무에는 꽃이 피지만 꽃피는 풀은 많이 줄었지요. 이것은 꽃가루를 매개해주어야 할 벌같은 곤충이 산에다 마구 뿌려대는 농약에 죽어가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해충을 구제한다고 해서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약을 뿌린 결과 자연생태계가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대책
 

이제 얘기는 자연히 자연보호문제로 넘어가야 할 듯하다. 여기서 잠깐 자연보존협회장직을 맡기까지의 김창환박사 약력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 김박사의 약력이라야 간단하다. 동경제대 농학부 졸업후(1945) 경기중학 수산대학 등에서의 강단생활과 영국의 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에서의 1년간 연구생활을 거친 뒤부터는 줄곧 고려대교수(1954~86)으로 일관해왔기 때문. 금년에 정년퇴임, 대학강단을 떠난 이후로는 자연보존협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연구실에서 쌓은 지식을 자연보존사업이라는 구체적인 활동에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자연보존협회는 어떤 일을 주로 하는 곳입니까.
 

"저희가 하는 일은 자연 및 자연자원 보존을 위한 학술연구사업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자연보존' 이라는 계간지발간이라든가 매스컴 등을 통해 자연보존사상을 국민들에게 널리 고취시키는 일도 많이 하고 있읍니다. 자연환경이나 동식물에 대한 실태조사도 역시 중요한 사업이 되겠읍니다. 회원은 대부분 생물학 지질학계통의 학자들과 자연보존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이 참여하고 있읍니다.
 

-자연보호 혹은 자연보존 하면 먼저 산이나 물가에서 쓰레기줍는 일을 연상하게 되는데요. 자연보호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요.
 

"물론 쓰레기나 줍는게 자연보호의 전부가 돼서는 곤란하겠지요. 1979년의 세계 자연보전전략에 의하면 자연보존 또는 자연보전이란 미래의 인간 즉, 우리의 후손에게 최대의 혜택을 가져다주도록 생존권을 적절하게 이용 관리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즉 자연상태 그대로 손도 대지 말아야 한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연환경의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보존,유지,지속적인 이용,복원 등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 최근 지리산에 도로확장공사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눈앞의 전시효과만을 노릴 게 아니라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북한산의 케이블카 설치계획도 그렇고 지리산의 도로 확장도 역시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이런 개발사업을 하기 전에 연구단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쳤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형편입니다. 4대강유역개발만 해도 금강 영산강 등을 공사해나가는 도중에 조사를 의뢰해 왔어요. 공사착수전에 미리 조사의뢰가 됐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어떤 지역이 특히 조사연구대상 혹은 보호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 민족의 문화는 우리의 자연이 바탕이 돼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국토의 어느 한구석인들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만, 특히 늪지대라든가 해안의 특수지역이 시급히 보존돼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곳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무조건 메워버려서는 안됩니다. 문화재보호에는 관심들이 많은데 왜 자연문화재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건지 안타깝습니다."
 

생물학과 자연보존사업에 일생을 바친 노학자의 모습은 자연을 상대해온 탓인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만 느껴진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저희 협회에서 20여년간 조사해온 각종 자료와 생물의 분류·생태 등에 관한 논문들을 모두 모아 데이타뱅크를 만들 작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구학자나 일반인들의 정보 요구에 크게 도움될 것입니다. 어쨌든 자연보존이라는 것이 일개 민간단체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정부의 정책당국이나 국민들의 의식구조가 달라져야만 우리의 자연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게 될 수 있을 겁니다."

198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윤기은 기자
  • 황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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