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반도의 끝자락 킹조지섬에 있는 세종기지. 비행기를 타도 서울에서 닷새나 걸리는 곳. 5-8월 겨울에는 뱃길이 끊어지는 것은 물론 비행기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최저기온은 영하 25℃. 때로는 초속 40m에 이르는 눈보라로 인해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고 걷기조차 힘들다.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이곳에서 연구를 한 과학자들 덕택에 우리는 남극조약 협의당사국 자격을 얻어 근처 바다에서 잡은 메로 같은 수산물을 먹고 크릴도 수출한다.
남극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장순근 박사. 1988년 2월-1989년 2월 1차 월동대장을 시작으로 1년 동안 남극에 파견되는 월동대의 대장을 4번이나 맡았다. 2000-2001년에도 세종기지에서 월동대를 이끌었다.
“겨울 눈보라가 끝난 다음 찬란한 태양이 비칠 때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남극의 여명과 황혼도 일품이죠. 어떤 사람은 사람과 만날 때 기쁨을 느끼지만 저는 대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호기심이 있고 자연을 사랑한다면 과학자가 되는 것만큼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가 남극기지에서 물개나 펭귄 그리고 화석을 관찰하면서 보낸 시간은 1천8백일. 남들은 한번 갔다오면 더이상 가기 싫어하는 게 보통인 남극을 4번이나 월동한 것은 장 박사가 대자연의 품속에 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장영실의 후예인 지질학자
아산 장(蔣)씨인 그에게는 조선 최고의 과학기술자인 장영실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아산 장씨는 고려 때 중국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조상의 후예로, 세종 때 자동물시계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도 포함돼 있다.
장순근 박사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지금은 북한 땅인 함경남도 안변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그는 4살 때 부모와 함께 38선을 넘어 부산으로 내려와 여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어려서부터 자연을 관찰하고 산과 바다를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서울대에 진학해 ‘땅의 과학’인 지질학을 공부했다. 그 뒤 프랑스정부의 장학생으로 보르도대에서 미고생물학(微古生物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가 미고생물학을 전공한 것은 정부가 석유 탐사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에 부흥하기 위해서였다. 미고생물학은 석유 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5년 한국해양연구원에 연구원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인생 항로가 달라졌다. 그해 말 한국남극관측탐험대에 지질학자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남극기지 건설과 연구에 뛰어들게 된 것.
무너져내리는 빙벽 안타까워
장 박사가 기지에 있을 때 그의 하루는 오전 5시 30분쯤에 일어나 간밤에 도착한 e메일을 체크하면서 시작된다. 하루의 공식적인 일과는 아침식사 후 오전 8시에 시작돼 오후 5시에 끝난다. 15명으로 구성된 월동대의 주업무는 기상 관측이나 오존층 연구 같은 대기연구와, 지진을 관측하는 지구물리연구, 그리고 기지 주변의 생물생태와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과정을 다루는 생물학연구의 세 분야로 나뉜다.
휴일에는 날씨가 좋으면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등산도 하고 가끔은 이웃 기지를 찾아간다. 현재 킹조지섬에는 우리나라 외에도 7개국의 상주기지가 있다. 육상에서나 고무보트를 타고 나가 기지 주변 환경의 변화를 관찰하거나 코끼리해표나 표범해표, 남극물개, 펭귄의 숫자를 세며 자연을 구경하기도 한다. 또 기지주변의 동물이 변하는 것을 관찰한다. 장 박사가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그는 과거 항공사진들과 실측자료를 비교해 세종기지 앞바다인 마리안소만의 빙벽이 지난 40년 동안 1km나 깎여나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세종기지의 평균 기온은 10년 동안 0.6℃나 상승했다.
“남극은 육지의 9.2%를 차지합니다. 이 육지의 98%가 평균 2천1백60m의 얼음으로 덮여있습니다. 이 얼음이 녹으면 해면이 60m 올라갑니다. 인도양의 몰디브섬은 벌써부터 주민이 대피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장 박사는 얼음이 무너져 내리는 남극에서 연구를 하면서 지구온난화현상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비글해협에 매료돼 ‘비글호 항해기’ 번역
단순하고 건조한 남극생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남극의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외부세계에 대한 소식을 접하기 위해서 스페인어로 방송되는 칠레 TV를 보거나 1-2개월 전에 발간된 신문이나 잡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신문이나 잡지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도 없어졌죠. 1999년에 인터넷이 가능해지면서 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가족들에게는 인터넷폰으로 연락합니다. 가끔은 화상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연구하고 남은 시간에는 주로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장 박사가 청소년과 대중을 위해 쓴 책은 무려 15권이나 된다. ‘야! 가자 남극으로’ ‘남극의 영웅들’ ‘바다는 왜?’ ‘신나는 자연탐험’ ‘한 손에 잡히는 과학상식’ ‘망치를 든 지질학자’ 등 최근 3년 동안 낸 책만 해도 6권이나 된다. 장 박사는 저술활동을 하면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아 최근 5년 간 2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장 박사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은 어릴 때 가장 크며 그때 한번 뇌리에 각인되면 일생동안 거의 잊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장 박사가 쓴 책들 가운데 유독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야! 가자 남극으로’는 마치 아빠가 자녀에게 얘기하듯, 자상하게 남극에 대한 궁금증을 이렇게 풀어주고 있다.
“남극과 북극은 어떻게 다를까.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남극은 얼음으로 덮인 거대한 땅이고 북극은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라는 사실이야. 남극이 북극보다 기온이 더 낮단다. 남극에는 원주민과 북극곰이 없고 펭귄이 있는 반면, 북극에는 에스키모 같은 원주민과 북극곰이 있고 펭귄이 없어. 남극의 빙산은 윗면이 평평한 탁자형인 반면, 북극의 빙산은 그린란드 해안부근이나 바다 위에서 얼어붙은 얼음이 떨어져 나온 것이어서 모양이 불규칙하고 가지가지야.”
장 박사가 저술과 번역에 몰두하게 된 것은 1989년 세종기지로 두번째 가는 길에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지나갔던 비글해협의 경치에 매료되면서였다. 폭이 1km도 되지 않는 긴 해협 양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절벽, 빙하, 폭포, 험준한 산과 숲에 그는 온통 마음을 빼앗겨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1991년 1년 동안 꼬박 번역했다.
“물론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게 가장 힘들죠.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오히려 일에 몰두할 수가 있어 좋아요. 공기가 좋고 조용하고 전화가 오지 않아 시간이 끊기지 않는 남극의 1년은 문명세계의 3년과 똑같습니다.”
안산의 연구실에는 그가 남극에서 쓴 일기장 14권이 꽂혀있다. “1988년 11월 12일 토요일 5시 반 기상, 아침식사, 장조림, 묵은 김치, 마늘장아찌, 냉동시금치, 육개장….”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차곡차곡 기록이 쌓여서 훌륭한 책이 되는 것이다.
대륙기지 진출 위한 쇄빙선
장 박사는 “이제는 세종기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남극 본연의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남극 반도의 끝에 있는 킹조지섬의 세종기지는 ‘남극의 열대지방’입니다.” 세종기지의 생물·지질·기상학자들은 그간 기지주변의 일반 해양, 육상 및 대기 환경 변화를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빙하나 고층대기 같은 남극 본연의 연구를 하려면 영하 89.6℃까지 내려가는 남극대륙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극대륙의 얼음 밑에는 경기도 크기의 호수도 있다. 또 얼음을 분석하면 수십만년 전의 기후도 알아낼 수 있다. 남극은 밝혀내야 할 비밀이 무한한 ‘과학실험실’인 셈이다.
이런 비밀을 밝혀내려면 우리나라도 남극본토에 제2기지를 짓고 쇄빙선을 건조하고 비행기, 헬리콥터, 설상차 같은 운송수단을 대폭 보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극지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는 최근 남극기지의 대륙 진출을 위해 2008년까지 쇄빙선을 건조키로 결정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남극대륙에 진출할 아주 큰 한걸음을 옮긴 것과 같다.
남극은 지난 1998년 남극환경보호의정서를 통해 향후 50년 간 자원개발은 보류된 채 과학활동만 허용돼 있다. 남극조약에 가입한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18개국의 36개 연구기지들이 남극대륙과 섬에서 월동한다. 1988년 세계 18번째로 킹조지섬에 세종기지를 세워 남극대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한국은 1989년 남극조약 당사국이 되면서 남극에 관한 결정권을 가진 나라로 남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남극은 심해저와 달리 인류공동의 유산이 아니므로 남극조약 협의당사국이 남극에 관한 결정을 한다. 반면 남극조약에 가입한 것만으로는 아무런 발언권도 없다.
“대륙에 기지를 세우면 다시 월동대장으로 나가는 게 꿈이지만….” 하지만 그때는 정년 퇴임 후가 될지 몰라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장순근 박사가 걸어온 길
1946년 함남 안변 출생
1969년 서울대 지질학과 졸업
1975년 서울대 지질학과 석사
1980년 프랑스 보르도1대학 지질학 박사
1984년-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수
1980년-현재 한국해양연구원 근무(현재 책임연구원)
1988년-1989년 남극 세종기지 1차 월동대장
1990년-1992년 남극 세종기지 4차 월동대장
1994년-1995년 남극 세종기기 8차 월동대장
2000년-2001년 남극 세종기지 14차 월동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