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북쪽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진 바닷가에는 고개를 치켜들고 막 솟아오를 듯이 꿈틀대는 용 한 마리가 있다.
옥구슬을 훔쳐 달아나던 용이 한라산 신령이 쏜 화살에 쓰러졌다. 땅으로 떨어진 용은 몸만 바닷속에 잠긴 채 머리는 하늘을 향해 굳었다는데 그 용머리가 지금의 용두암(龍頭岩)이다.
용머리를 그대로 빼닮은 용두암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용두암이 만들어진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클링커’(clinker)를 알아야 한다. 땅 속의 마그마가 지표면 위로 흐르면 공기와 맞닿은 겉부터 식으면서 딱딱하게 굳는다.
하지만 표면 아래에는 계속 용암이 흐르고 있어 완전히 응고되지 않은 표면은 뒤틀리거나 금이 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크고 작은 돌 부스러기가 바로 클링커다.
엄청난 양의 용암이 서서히 흐르면서 식으면 두께가 20m나 되는 클링커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클링커층은 용암의 표면에서 아래쪽으로 두꺼워진다. 클링커층 안쪽에는 여전히 뜨거운 용암이 흐르고 있는데, 용암을 둘러싼 클링커층은 둑처럼 생겨 클링커벽이라고 한다.
시간이 흘러 액체 상태인 용암이 모두 빠져나가 버리면 클링커벽 아래에는 용암 통로(lava channel)가 물길처럼 남는다.
용두암의 경우는 이 용암 통로에 새 용암이 불도저처럼 밀려들었다. 많은 용암이 좁은 통로를 한꺼번에 지나다 보면 클링커벽을 밀고 올라오는 부분관입이 일어나기도 하고, 압력이 커지면서 클링커벽을 뚫고 용암이 솟기도 하는 스퀴즈업(squeeze up) 현상이 일어난다.
용두암은 스퀴즈업 현상으로 클링커벽을 파고든 새 용암이 굳으면서 만들어졌다.
용두암을 가까이서 보면 표면에 주먹 크기의 둥근 돌들이 수없이 박혀 있는데 이것은 새 용암이 용암통로를 지날 때 클링커벽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이다.
그렇다면 클링커벽은 어디로 갔을까. 용두암을 만든 두 번째 용암은 첫 번째 용암보다 더 단단한 암석이 됐다. 클링커벽이 단열막 역할을 해 천천히 식었기 때문이다. 해수와 해풍에 의한 오랜 침식 끝에 상대적으로 무른 클링커벽은 사라지고 용머리 모양의 단단한 바위만 남았다.
용두암을 이루는 현무암은 연대 측정이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분출시기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용두암 부근의 도남동 조면 현무암은 한라산 산록의 거문오름, 민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주도 오름은 대략 3만년 전에 있었던 마지막 화산 활동 때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용두암도 3만년 전 이후에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