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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로장생 꿈꾸는 첨단 생약

인삼에서 추출한 비만치료제

인간은 오래 전부터 병이 생기면 약초를 달여 먹었다. 식물에 질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현대 생명과학이 경험적으로 내려오던 약초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 첨단 신약을 어떻게 만드는지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이 물, 불, 흙, 공기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찬성한 4원소설이다. 만약 지구에 식물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이 4원소설은 어쩌면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식물은 단순한 물, 불(정확히 말하면 빛에너지), 흙, 공기를 갖고 엄청나게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물질을 만들어내는 자가영양을 하는 생물체로, 다른 생물을 잡아먹어 살아가는 동물에 물질을 공급한다. 즉 식물의 광합성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기반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식물은 흔히 자연의 어머니로 비유된다.


유용한 물질의 보고 식물

생물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과 다양성의 근간을 식물이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철학적인 면뿐 아니라 과학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식물이 갖고 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 근원 물질은 단 한종류인데, 바로 광합성의 결과 생성되는 포도당이다.

모든 생물들은 포도당을 분해해 궁극적으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자원으로 사용한다. 또한 포도당은 다양한 식물 자체를 구성하는 건축재료로도 이용된다. 포도당을 분해하는 경로를 해당과정이라고 하는데, 그 결과 피루브산이 생성된다. 이 피루브산을 특정 효소(pyruvate dehydrogenase)가 분해하면서 다양한 물질대사과정이 수행된다. 식물의 1차대사산물은 단백질, DNA와 같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에 한정된다. 그런데 식물은 2차대사산물로 필수적이는 않지만 엄청나게 다양한 유기물질을 만들어낸다.

스위스의 루지치카라는 천연물화학자는 식물이 가진 유기물질 중 테르페노이드 계열의 화합물을 연구했다. 그는 이 물질들의 규칙성을 깨달아 학계에 보고했는데, 바로 이소프렌 법칙이다. 즉 테르페노이드 계열의 화합물은 5의 배수인 탄소로 기본골격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10개인 것이 모노테르펜, 15개인 것이 세스퀴테르펜, 20개인 것이 디테르펜, 30개인 것이 트리테르펜, 40개인 것이 카로티노이드다.

루지치카의 연구는 천연에서 수백만개의 유기물질이 알려져 있다고 해도 규칙성이나 아무런 근거없이 생성된 물질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규칙성은 식물에 함유된 천연물질을 이해하는 시작이다. 루지치카는 이소프렌 규칙을 해명한 공로로 193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식물은 엄청나게 다양한 유기물 질을 갖고 있다. 이 물질 중에는 신약의 소재로 사용하기에 적절 한 것들이 많다.



자연을 본받는 과정

식물이 가진 성분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인간이 이를 복용할 때 어떤 생리적인 작용을 나타내리라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실제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던 인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이 일을 실천해 왔다. 식물의 각 부위를 가공해 질병에 적용해보면서, 오랜 기간 경험을 축적해 동양의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과 한국의 동양의학에서 사용되는 전통적 약물들은 모두 자생식물들을 오랜 기간 동안 임상적으로 적용해본 결과 얻어진 자료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한 현재 더 이상 경험적 자료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현대의학에 접목해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서양에서도 동양에서와 같이 경험적인 전통약물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동양의학만큼 광범위하게 발달되지는 못한 형편이었다. 그런데 18세기 이후 근대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물질관의 혁명적 변화가 생기면서 서양에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1803년 양귀비에서 얻어지는 아편의 환각성 진통물질인 모르핀이 발견되면서 식물의 함유물질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 무렵 다양한 식물에서 여러 유기화합물들이 분리됐는데, 호미카에서 중추신경흥분제로 쓰이는 스트리크닌, 키나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 벨라돈나에서 내장의 통증을 억제하는 약물인 히오시아민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당시로서는 기적적인 효능을 갖는 물질이었기 때문에 서양의 과학 선진국들은 식물에서 유용한 물질을 찾는 연구에 더욱 매달렸다. 이와 같은 연구 속에서 현대에도 의약품의 기능을 갖는 물질들이 여럿 개발돼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울인 노력에 비한다면, 다소 실망스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신약 중 상당부분은 합성 의약품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궁극적으로 천연물을 모체로 해 개발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분명 자연을 본받는 과정에서 신약이 창출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전통적인 약용물질을 자생식물에 서 얻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임상적으로 얻어진 결과가 훨씬 풍부하다.



노화 지연하는 약물 개발 가능

미국 국립암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소들은 마치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계획을 추진하듯이 항암제와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 대규모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국력이 투입된 국가적 사업에서 여러 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수많은 학술적 성과가 얻어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이 목표로 했던 꿈의 항암제가 개발되지는 못했고,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 택솔, 캄포테신과 같은 항암제 몇개가 나왔을 뿐이다. 택솔은 주목나무에서, 캄포테신은 희수나무에서 분리해낸 것이다.

필자 역시 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상당히 안타깝고 실망스런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의 연구만으로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에서 꿈의 항암제를 개발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생식물에서 항암제를 찾아 개발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연구 중 필자가 진행하는 한방의 소갈약 연구 사례를 통해 한국 전통약물의 우수성과 개발방향을 타진해보자.

한방에서 소갈이란 갈증을 없앤다는 의미다. 오늘날 관점에서 새로이 해석하면 대부분이 항당뇨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당뇨란 정상적인 소변에는 극히 미량밖에 포함되지 않는 당이 다량 포함된 소변을 보는 증상이다. 정상인보다 훨씬 높은 혈당이 유지되면서 동맥경화증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는 현대인의 대표적인 성인질환이다. 그러나 뚜렷한 치료법 없어 식이요법만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나이가 들면 생체 내의 활성산소를 없애는 메커니즘이 퇴화되면서 활성산소가 과다하게 생성된다. 유해산소라고도 불리는 이 활성산소는 노화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면역계가 활성산소의 양에 영향을 미친다. 면역 자극을 받으면 이와 관계돼 외래 물질을 먹어치우는 마크로파지에서 생화학적 매개체가 과다하게 생성된다(그림). 산화질소(NO), 혈압에 영향을 미치는 생리활성물질 프로스타글란딘 E2, 종양억제인자인 TNF(Tumor Necrosis Factor)-α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확립된 견해에 따르면 당뇨병을 비롯해 염증, 간장해, 동맥경화, 암, 관절염 등은 활성산소를 비롯해 생화학적 매개체가 과다하게 생성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방 소갈약에는 백삼, 길경, 오미자, 맥문동, 지모, 산약, 괄루근, 오가피, 갈근, 갈화, 해동피, 지부자 등 다양하다. 최근 연구를 수행한 결과 이들이 갖고 있는 유효성분들이 NO, 프로스타글란딘 E2, TNF-α의 과다생성을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방약물인 소갈약은 갈증을 억제한다는 전통적인 의미뿐 아니라, 당뇨병에도 유효하며, 노화의 지연을 가져오는 약물로 오늘날 되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소갈약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자생식물에서 추출되는 약물들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여러 증세를 완화하는데 유용할 전망이다.
 

한방의 여러 물질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 세를 완화하는데 유용하다. 사진은 치매 증상을 치료하 는 물질을 천연물에서 찾는 연구소 모습이다.



환자에게 신뢰감 줘야

소갈약을 한방에서는 찬약으로 분류하는데 생체의 부글부글 끓는 상태를 차게 해준다는 의미다. 소갈약이 정상적인 면역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갖기 때문에 이런 해석을 내리지 않았을까. 최근 연구결과들은 면역관계를 조절하는 약물의 경우 전통 한방약물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면역능력의 체내 발현은 분자생물학적으로 유전자의 발현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결국 자생식물에서 추출한 생약 물질이 유전자의 잘못된 발현까지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토종식물에서 추출한 전통약물의 개발은 이제 시작 단계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약용식물인 인삼에서 추출한 파낙시논 A라는 화합물이 비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만치료제로의 개발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

또한 식물에서 항암제 개발이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해서 생약의 과학화가 무용지물인 것은 결코 아니다. 전통약물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기존 약물이 갖는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유용한 길을 제시해준다. 생명현상에 직접 개입하면서도 부작용이 없는 근원적인 대처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해결돼야 할 당면과제도 있다. 우선 전통약물은 그 극적인 효과가 모든 환자에게서 항상 재현성있게 관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임상적인 측면에서 환자가 질병에서 상당부분 해방됐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현대 의학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체에 관한 병리적, 생리적 분야의 각종 생명과학분야가 협동해야 천연물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리고 국가 경쟁력의 향상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사고 방식으로 천연약물의 산업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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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박희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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