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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 해양학자들이 동해를 찾아올까

미래 지구환경 보여주는 미니대양

애국가 첫머리를 장식하는 동해.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로 꼽히는 동해. 최근 이곳에 외국인 해양학자들이 상당한 예산을 들여가며 찾아온다. 왜일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지난 6월 2002 월드컵의 열기 속 ‘대∼한민국’의 구호가 메아리 치는 가운데 우리나라 경기 때마다 전세계 방방곡곡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애국가 첫머리를 장식하듯 동해는 우리 민족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해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동해가 멀어야 울릉도, 독도를 포함한 남한에 연한 바다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동해는 훨씬 큰 바다다. 그 면적이 남북을 합친 한반도의 5배와 맞먹으며, 평균 수심은 약 1천5백50m 정도이며 동해 북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분지의 경우 최대 수심은 4천m에 이른다.
 

애국가 첫머리를 장식하는 동해는 우 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 씬 큰 바다다. 그 면적이 한반도의 5 배 정도이며 수심이 4천m에 이른다.



미국 동해연구에 1백억원 투자

그런데 4년 전 미국 해군연구국이 1백억여원에 이르는 엄청난 연구비를 마련해, 동해를 조사하는 연구계획서를 공모에 부쳤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크림스 II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해양조사선이 1년 간 동해에 머무르면서 그 나라 해양학자들이 구석구석 조사해 갔다. 왜 이들은 동해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 우선 동해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역사를 알아보자. 동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는 70여년 전 일본인 우다 교수가 수행했다. 1년여에 걸쳐 60여척의 배를 동원해 동해를 조사한 우다 교수는 수심 수백m 아래로 내려가면 동해가 어디에서나 0℃ 정도로 매우 차며, 산소를 풍부하게 함유하는 바닷물로 가득 차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동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바닷물에 ‘고유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우리나라가 한창 6.25 전쟁에 휘말려 고통받고 있던 1950년대 초 옛소련의 학자들이 북서태평양 연구의 일부로 동해를 조사했다. 그 뒤 동해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실시되지 못했다.

본격적인 동해 탐사가 재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1993년 일본, 한국, 그리고 러시아 해양학자들이 ‘크림스’(CREAMS, Circulation Research of East Asian Marginal Seas)라는 동해 탐사를 진행했다. 실로 오랜만에 모든 정치적 장애를 극복하고 각국의 연구자들이 동해 전체에 대해 체계적인 해양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크림스를 통해 우다 교수 연구 이후 무려 60여년만에 처음으로 동해에 대한 대대적인 종합조사가 수행됐다.

일본 큐슈대 다케마쯔 교수와 윤종환 교수, 우리나라 서울대 김구 교수와 필자, 그리고 러시아 극동수리기상연구소 볼코프 박사가 주축이 돼 진행한 크림스 탐사는 동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드러냈다. 이는 우다 교수가 봤던 동해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해양학자들이 바다를 조사할 때 기본적으로 측정하는 값은 바닷물의 온도, 짠 정도를 나타내는 염분, 그리고 녹아있는 용존산소량이다. 오늘날 해양학자들은 1970년대에 개발된 CTD(Conductivity, Temperature, Depth)라는 해양조사용 첨단장비를 이용해 온도, 염분, 용존산소량을 수심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측할 수 있다.


대양 순환보다 10배 빨라

온도, 염분, 용존산소의 값으로 본 동해는 어떤 모습일까.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온도는 감소하고, 염분은 줄어들다가 다시 늘어나 염분의 최소층이 존재하며, 용존산소 역시 수심에 따라 많은 농도변화가 있다. 이런 모습은 태평양와 같은 대양의 전형적인 점이다. 이는 동해가 하나의 동일한 성질을 갖는 고유수로 채워져 있다는 우다 교수의 생각이 더이상 적절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크림스에 참여한 연구자들을 흥분시킨 점은 동해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동해에서 관찰되는 온도나 용존산소의 분포 모습을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동해가 계속 더워지고 있고 깊은 바닷물에서 용존산소 농도가 급격히 줄어들며 저층수가 나타나는 수심이 자꾸 깊어지고 있었다. 동해 내부의 무엇인가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림스 연구자들은 직감적으로 이 변화가 바로 동해 내 바닷물의 순환 형태가 달라지면서 나타난 것임을 알아차렸다.

깊은 바닷물은 느리지만 끊임없이 흐른다. 해양학자들은 최근에 이같은 바닷물의 순환을 컨베이어벨트에 비유한다. 북대서양의 표층에서 가라앉은 바닷물은 깊은 바다를 따라 태평양까지 이동한 후 서서히 표층으로 올라와 대서양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와 같은 바닷물의 흐름은 약 1천년이 걸리는 컨베이어벨트와 비슷하다. 컨베이어벨트가 시작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는, 표층수가 가라앉은 곳은 대기로부터 공급받은 산소가 풍부하다. 그러나 일단 심해로 들어가 대기에서 산소 공급이 차단되면 더이상 공급이 없고 바다 속 생물들에 의한 소비작용만이 계속돼 그 농도가 차츰 줄어든다.

동해에도 규모는 작지만 이런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있다. 우다 교수의 연구에서 동해 고유수의 산소가 풍부했다는 점은 깊은 곳으로 산소가 풍부한 표층수가 활발하게 공급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동해의 컨베이어벨트가 빨리 돌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근 연구결과, 동해 컨베이어벨트의 속도가 약 1백년으로 대양에 비해 10배나 빠르다.

그런데 최근 동해의 컨베이어벨트가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수십년 전까지도 컨베이어벨트가 동해의 깊숙한 곳까지 돌아가면서 저층수가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서히 가라앉는 깊이가 얕아져서 오늘날에는 얕은 깊이의 중앙수밖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구 냉각시킨 바다속 컨베이어벨트

지구 기후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최근의 많은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해양의 컨베이어벨트가 기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의 한 부분인 걸프류를 따라 북대서양으로 이동한 따뜻하고 짠 바닷물이 북위 50도 정도의 고위도 지방에 위치한 영국에 따뜻한 겨울을 선사하는 것은 해양의 컨베이어벨트가 기후에 미치는 좋은 예가 된다.

과학자들은 컨베이어벨트가 기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또하나의 중요한 예를 지구의 과거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지구는 지난 수십만년에 걸쳐 격렬한 기후변동을 겪었다. 바로 빙하기가 약 13만년 정도를 주기로 지구를 찾아오면서 지구를 몹시 춥게 만들었던 것이다(2001년 8월호 ‘왜 과학자는 과거 기후를 들춰내려 할까’ 참조). 지난번 빙하기가 절정을 이뤘던 약 1만2천년 전을 고비로 지구는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해 오늘날의 따뜻한 기후로 변화했다. 우리들은 지금 간빙기에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1만1천여년 전 따뜻해지던 지구가 약 1천년 동안 갑자기 다시 추워졌던 것을 과학자들이 알게 됐다. 이때 고산 식물인 담자리꽃의 분포가 다시 널리 확장됐는데, 이 시기를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기’라고 부른다.

무엇이 더운 기후로 향한 지구의 행진을 잠시 멈추게 한 것이었을까. 과학자들은 바로 바다의 컨베이어벨트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빙하기 시절 두껍게 쌓여있던 얼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하면서 캐나다 서부에 거대한 호수(빙하기의 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애거시 교수의 이름을 따 이를 애거시 호수라고 부른다)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호수물이 넘치는 것을 막고 있던 천연제방이 더이상 불어나는 물의 양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물이 대서양으로 흘러나갔다. 갑작스런 담수의 유입은 북대서양의 염분을 희석시켜 바닷물의 밀도를 낮췄으며 이로 인해 무거운 물이 가라앉으면서 시작되는 컨베이어벨트가 중단됐다. 과학자들은 바로 이런 교란이 지구를 갑작스럽게 다시 냉각시켰던 것으로 믿고 있다.
 

동해에는 대양처럼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간다. 그 순환의 속도는 1백년으로 대양보다 10 배 빠르다.



지구 미래 점치는 자연학습장

지구 기후를 이해하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는데 깊은 바다에서 해수의 흐름을 이해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깨닫게 된 해양학자들은 대대적인 탐사 계획 아르고(Argo)를 진행중이다. 이는 전 대양에 3천개의 탐사장비를 띄어놓고 약 3천m 깊이에서 해류를 동시에 측정하겠다는 야심 찬 국제공동연구다.

아르고 탐사계획에서 중심이 되는 장비는 하나에 약 1만 달러에 이르는 팔라스(PALACE)라는 장비다. 팔라스는 인공위성으로 그 위치를 계속 추적할 수 있는 표류병과 같다. 표류병과 다른 점이라면 표류병은 표층의 해수가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는데 반해 팔라스는 일정한 깊이까지 잠수해 그곳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심해용 표류기라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아르고 계획이 마무리되면 해양학자들은 바다의 흐름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간에 의해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증거도 쌓여가고 있다. 지구과학자들은 상업화로 인해 유발된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지구기후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양의 컨베이어벨트 자체가 변화할지 모른다고 매우 염려하고 있다. 이미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컴퓨터모형은 지구가 계속 더워지면 금세기 후반에 컨베이어벨트가 더이상 오늘날의 모습이 아닐지 모른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예측에 따르면 지금 대서양의 바다 깊숙한 곳까지 가라앉아 이동하던 컨베이어벨트가 중간 정도의 깊이밖에 가라앉지 않을지도 모른다. 즉 깊은 깊이로의 심층수의 형성이 중단되고 얕은 깊이의 중층수 형성으로 대체되면서 컨베이어벨트 모양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우리 동해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이와 꼭 닮은 사건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동해는 앞으로 대양이 겪게 될 운명을 미리 예고하고 있었다고 할까.

크림스 연구결과는 ‘동해의 변화 : 미래 바다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서인가?’라는 제목으로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다. 그러면서 동해가 대양 변화를 미리 공부해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자연학습장, 즉 미니대양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미국 과학자들이 동해로 연구의 눈길을 돌리며 크림스 II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던 연유다.
 

동해가 진정 우리의 바다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잃었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다.



연구 활발해지면서 이름 되찾아

이런 과학적 중요성 외에도 동해는 우리 대한민국에게 아주 중요한 바다다. 동해는 이미 시작된 여름철 우리 국민들에게 휴식을 주는 안식처다. 또한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와 건강을 지켜주는 연간 수십만t에 이르는 수산물의 공급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으로 지켜주는 해군이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7월 초 캐나다의 한 지도회사가 동해바다를 동해로만 기재한 지도를 제작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잃어버렸던 이름을 되찾으려는 정부의 노력이 조금씩 열매를 거두는 예로 보여 기쁘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연 우리 동해를 알려고 하는 노력을 정부가 그동안 얼마나 도와줬는지를 생각해볼 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제 동해에 관심을 가진 미국과 유럽 과학자들은 동해를 부를 때 반드시 동해(East Sea)라는 이름을 일본해와 함께 사용한다. 또한 동해는 JES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Japan/East Sea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제 일본의 학술지에도 동해/일본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채 알아내지 못한 우리 동해의 모습을 알아내고 이를 세계에 알릴 때 우리 동해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됨을 크림스 연구가 잘 보여줬다.

지난 달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통해 우리나라가 지난 20-30년 간의 고도 성장의 흥분 속에서 자칫 잊고, 소홀히 했던,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외면하려고까지 했던, 기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엄청난 일을 해줬다. 모든 일을 만들어가는 바른 길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내의 동해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장기적인 동해관측으로는 수산과학원이 영해에 대해 2달마다 실시하는 정기관측이 있고, 서울대 해양연구소, 전국대학 해양과학공동연구소, 정부가 지원하는 해양연구원이 추진했던 부정기적 동해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아직껏 미 해군이 크림스 II에서 보여준 것 같은 대규모 동해연구 지원체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크림스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서울대 해양순환계연구실(김경렬, 김구 교수)이 5년 지원의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됐다. 여기에서는 헬륨, SF6 등의 새로운 추적자를 응용하는 동해순환연구와 함께 최초의 실시간 해양관측부이를 오트로닉스와의 산학협동으로 가동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차세대기후감시연구의 일환으로 지구 기후의 중요 열쇠를 쥔 탄소순환계를 미니대양 동해를 조사하는 연구가 부산대(이동섭 교수)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인공위성으로 동해전체를 감시하는 체계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머지않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동해감시 체계가 세워져 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다.

동해가 진정 우리의 바다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히 알아야 한다. 그런 동해가 더욱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젊은 해양학자들에게 할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200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경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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