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서 가장 기묘한 행성 1순위는 단연 천왕성이다.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채 태양 둘레를 돌 뿐 아니라 나침반도 믿을 수 없는 행성이기 때문이다. 또 위성 미란다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많은 지각변화의 흔적도 있다. 보이저가 탐사한‘이상한 나라’로 가보자.
보이저 2호에게 천왕성 탐사의 명령이 떨어진 때는 토성에 접근하기 9개월 전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최대 위기는 토성에 가장 접근한 직후에 찾아왔다. 보이저에는 주요 탐사장비가 긴 막대 양끝의 구동장비(scan platform)에 설치돼 있고, 장비들은 구동장비 덕분에 탐사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구동장비가 마비돼 장비를 원하는 곳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칫 계획전체를 망칠 수도 있는 이 고장에 직면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기술자들은 먼저 지상의 복제품을 이용해 숱한 시도 끝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 결과 보이저의 장비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우주탐사 역사상 가장 어려운 ‘우주 수리’의 쾌거를 이뤄냈다.
천왕성 그 자체에도 탐사의 어려움이 있었다. 천왕성은 태양에서의 거리가 토성의 2배에 이르기 때문에 태양빛의 세기가 토성에서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카메라의 노출시간은 4배가 돼야 했다. 그러나 시속 7만2천km로 움직이는 보이저가 오래 노출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영상을 찍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경주용 자동차에서 머리를 내밀고 바깥풍경을 흔들림 없이 선명하게 찍는 일과 비슷한 상황. 촬영 중 탐사선을 조금이라도 흔들리게 하는 다른 기기들은 ‘동작 그만’해야 할 판이었다. 심지어 촬영된 영상을 기록하는 장치의 움직임도 문제가 될 정도였다. 결국 자세제어 로켓을 이용해 촬영에 방해가 되는 움직임에 반대로 움직이는 방법으로 놀랍도록 선명한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나침반 믿을 수 없는 ‘이상한 나라’
천왕성은 지금으로부터 2백20년 전인 1781년에 독일의 천문학자 허셜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물론 그 전에도 13번이나 관측됐지만, 그때마다 느린 움직임 때문에 행성이 아니라 항성(별)으로 간주됐다.
천왕성이 행성으로 밝혀진 후에 천왕성의 주변에서 5개 위성이 발견됐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붙여진 다른 천체와 달리 이들에게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밤의 꿈’,‘폭풍우’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붙여졌다. 위성의 운동을 바탕으로 천왕성이 매우 기묘하게 누워서 태양 둘레를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1829년에 밝혔다.
천왕성의 고리는 재미있게도 보이저가 지구를 떠나기 직전인 1977년에 우연히 발견됐다. 천왕성 뒤쪽을 지나는 별빛을 이용해 천왕성의 대기를 관측하던 중 별빛이 천왕성에 가까워질 때 갑자기 어두워지는 현상이 발견됐는데, 곧 이것이 매우 어두워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던 고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방법으로 지상에서는 9개의 고리가 발견됐다. 여기까지가 지상관측을 통해 밝혀낸 천왕성의 모습이다.
지구와 탐사선의 방대한 거리, 우주잡음보다 미약한 탐사선의 전파, 탐사선의 잦은 고장, 매우 희미한 태양빛, 서서히 줄어드는 전력 등 탐사선을 가로막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보이저 2호는 1986년 1월 24일 천왕성에 약 8만km까지 접근해 4천3백여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보이저의 사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천왕성은 줄무늬투성이 목성이나 토성과는 전혀 달랐다. 대기의 메탄에 의해 붉은색이 흡수된 탓에 천왕성은 푸른색의 공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대기가 모두 메탄은 아니다. 천왕성 역시 다른 거대행성처럼 대기의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져 있다. 천왕성의 자전주기는 겉모습으로 도저히 알 수 없어 내부에서 방출되는 전파를 통해 관측했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17시간 14분이었다. 또한 밋밋한 겉모습과는 달리 잘 보이지 않지만 천왕성의 구름들도 초속 2백m로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을 빠져 나오는 동안 지구로 향해 송신되는 전파를 고리와 대기에 투과시켜 대기의 온도와 조성, 고리를 구성하는 물질의 크기 등에 관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실험 결과, 고리를 구성하는 암석의 크기는 약 1m 이상이었으며, 얼음 덩어리가 대부분인 토성의 고리와는 달리 검은 탄소 덩어리인 것으로 보였다. 이와 함께 고리에서는 2개의 조그마한 ‘양치기 위성’이 발견됐다. 양치기 위성이란 고리입자를 ‘양’이라 볼 때 이들이 흩어지지 않고 일정한 궤도 안으로 몰고 다니는 양치기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양치기 위성은 토성에 이어 두번째로 발견됐다.
보이저 2호는 천왕성의 자기장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여럿 찾아냈다. 우선 어두운 지역에서 자기장의 존재를 실증하는 오로라를 발견했다. 특이한 것은 자기장의 축이 자전축에 비해 60°나 비틀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차이는 태양계의 행성 중에서 가장 크다. 또 자력의 근원이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행성의 핵에 위치하지 않고 핵에서 약 1만km나 떨어진 지점에 있다는 사실도 발견됐다. 그러므로 천왕성에서는 나침반만 믿고 항해했다간 길을 잃기 십상일 것이다.
한편 보이저 2호는 천왕성에 접근하는 동안 10개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했다. 대부분 평범한 모양이었으나, 가장 가까운 위성 미란다의 표면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포착됐다. 운석충돌구덩이와 골짜기, 도랑과 절벽 등 태양계의 딱딱한 천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모습이 이 작은 위성에 응축돼 있는 듯 했다. 과거 언젠가 부서졌다가 다시 뭉쳐진 것처럼 보이는 이런 모습은 천왕성에서 일어 났던 엄청난 사건의 단서일지도 모른다. 행성과 위성의 모습을 변화시킬만한 사건이란 인류가 1994년 직접 목격한 목성과 혜성의 충돌 같은‘우주충돌’을 말한다. 과학자들은 태양계 초기에 천왕성이 지구 만한 크기의 천체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