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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양대 최고 인기강좌는 자연과학부 전임강사인 김종흡 교수의‘성의 이해’다. 강의 시간엔 콘돔 사용법을 비롯한 성(性)을 둘러싼‘낯 뜨거운’실질적인 얘기들이 오간다. 하지만 그 생생함 뒤에는 또다른 감동이 있다는데….


지난 5월 15일 한양대 자연과학관 219호 대형강의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의 눈은 모두 강단으로 쏠려있다. 강단 위에는 김종흡 교수(44세)가 연신 볼을 욱씬거리며 무언가에 바람을 넣고 있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콘돔.

“이것 보세요. 콘돔은 이렇게 바람이 새는지 안새는지 확인하고 써야합니다. 그래야 안전하죠.”

그는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콘돔을 공중으로 휘휘 돌리며 이렇게 말한다. 연이어 그는 또다른 콘돔을 커내 그 끝부분을 손으로 납작하게 비틀며 말한다.


“하지만 실제 콘돔은 이렇게들 많이 씁니다. 지금 당장 급한데 언제 바람까지 불며 새는지 안새는지 확인하겠어요? 이 부분을 손으로 비틀어 공기를 빼내면 그나마 안전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곁눈질로 힐끔힐끔 엿보고 있던 여학생들도 이 대목에선 눈을 동그랗게 뜬채 강단을 쳐다본다.

일반적으로 남녀사이에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피임도구는 콘돔이다. 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몰라 피임에 실패한 뒤, 인생의 황금기를 고민과 좌절로 보내기 일쑤. 그는 젊은이들의 이같은 ‘어리석음’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콘돔을 이용한 피임 성공률은 85% 내외입니다. 콘돔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사용 도중 찢어지기 때문인데, 이렇게 정자를 담는 앞부분을 눌러주면 덜 찢어집니다”라고 말하며 콘돔 사용의 노하우를 수강생에게 하나하나 정리해준다. 이 사이 학생들은 김교수가 나눠준 콘돔을 손으로 직접 만져본다.


성기 모양따라 달라지는 콘돔 사용법

김교수의 ‘성의 이해’는 한양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좌 중 하나다. 그는 같은 강의를 1주일에 9번, 모두 대형강의실에서 진행한다. 한양대 안산 캠퍼스와 행당 캠퍼스, 그리고 성균관대에서도 같은 내용의 강의를 맡고 있다. 한 학기에만 무려 1천4백-1천5백명의 학생이 그의 강의를 듣는 셈이다.

강의시간에 그는 콘돔 사용의 노하우와 질외사정법의 철칙, 여성용 콘돔인 ‘페미돔’의 사용법과 같은 실생활에 응용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을 가르친다. 오늘 강의 주제는 피임법. 물론 피임의 일반적인 원리와 남녀 생식기관의 차이에 대해서는 ‘대충’ 건너뛴다. 대학생 정도면 이 정도 지식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실제적인 강의도구를 이용해 생생한 강의를 펼친다.

‘성의 이해’ 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시각자료를 자주 활용하는데, 이 날 강의에서는 남녀의 성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남성 성기의 사진들을 꽃다발처럼 한데 모은 사진이 펼쳐지자 학생들의 ‘와’하는 환호가 터졌다. 그는 공이형, 송이버섯형, 오이형 등 다양한 모양의 남성 성기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성기 생김새에 따른 콘돔 사용법을 설명했다. 콘돔을 씌우는데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겠냐만은, 그에 따르면 송이버섯형은 성기의 바깥쪽부터, 오이형은 안쪽부터 씌우면 훨씬 쉽게 착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성의 과학’ 강의에는 여느 성 관련 강좌처럼 ‘고리타분한’ 지식은 나오지 않는다. 정자의 생성과정이 어떠니, 난자의 특징이 뭐니 이런 ‘학술적인’ 말은 들을 수 없다. 대신 실생활에 필요한 생생히 살아 꿈틀대는 실제적인 성지식이 전달된다.


솔직한 경험담에서 출발한 강의 포인트

지난 연말 한 여성 포털사이트가 미혼 여성회원을 대상으로 ‘새해 첫날 남자친구와 가장 하고 싶은 스킨십은 무엇인가’라는 이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대생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여성 응답자 4백33명 중 34%가 ‘섹스’를 1위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뒤이어 프렌치 키스, 가벼운 키스, 포옹 순이었다.

설문 결과가 발표되자 이 사이트의 30-40대 여성 회원을 중심으로 ‘놀랍다’ ‘충격적이다’는 반응이 쇄도했다. 자신을 어느 정도 유교적 사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온 미시족에게조차 결혼도 하지 않은 여대생이, 그것도 새해 첫날에 키스도 아닌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아직 낯선 대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생들의 성의식은 서구 못지 않게 개방돼 있지만, 이를 받쳐줄 실제적인 성교육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중·고교 시절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지금의 대학생들은 성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성지식 과잉세대다. 이것저것 주워들은 성지식은 많지만 ‘실전’에서는 거의 쓸모 없는, 대부분 죽은 지식이다.

‘성의 이해’는 바로 이런 대학생을 위해 개설된 맞춤 강의다. 지난 1995년 처음 강의가 개설됐을 때 김교수도 기존의 성 관련 책자를 이용, 교과서적인 강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강의가 진행될수록 학생들의 집중도는 떨어졌고, 가르치는 김교수 자신도 너무 재미없었다. ‘이게 아닌데’하고 생각하던 김교수는 어느날 교과서를 접고, 자신의 경험담을 담담히 그러나 통속적이지 않게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수강생의 관심은 자연히 김교수의 얘기로 쏠렸고, 강의신청은 늘 1순위 마감이었다.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은 김교수는 이때부터 강의자료를 찾아 도서관, 인터넷, 심지어 외국 성인사이트까지 뒤졌다. 김교수가 그동안 모은 희귀한 사진과 성 관련 자료들은 지금도 그만의 자랑. 올 초에는 지금까지 모아둔 강의자료를 정리해 ‘성과학의 이해’라는 자신만의 강의책자를 출간했다(2002년 월드사이언스 출판사).
 

김종흡 교수는 국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강의전담 강사다. 발생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수업에 충실하기 위해 강의에만 전념하고 있다.



고르디오스의 매듭

기원전 334년 정복전쟁을 시작하던 알렉산더 대왕이 푸뤼기아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 수도 고르디움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광장에는 이상한 전차가 한대 서있었다. 전차에는 산수유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밧줄이 매듭으로 무수히 감겨있었다. 고르디움 시민은 매듭을 푸는 자가 신들의 뜻에 따라 장차 세계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한 고르디오스의 예언을 믿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매듭 풀기에 도전했으나, 밧줄의 끝이라 생각되는 부분에 또다른 끝이 이어져 있어 모두 실패했다. 이를 본 알렉산더 장군은 잠시 생각하다 칼을 뽑아 밧줄을 잘라버리곤 매듭을 풀었다. 그 후 그는 세계적인 정복왕이 됐다.

반드시 끝을 찾아야 매듭을 풀 수 있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다. ‘성의 이해’가 추구하는 강의 목표도 이처럼 성에 대한 고정관념의 파괴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풀어 세계적 정복왕이 되었듯, 수강생 전원이 ‘성의 이해’를 듣고 자신의 육체에 대한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길 김교수는 바란다.

“우리 학생들은 대학에 오기까지 왜곡되고 굴절된 성의식을 주입받습니다. 제가 강의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놀라웠죠. 아직도 여학생은 성에 대해 수동적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학생은 남근중심사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학생이 드물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건강한 성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의 이해’ 강좌는 사실 입소문으로 퍼진 명강의다. 강의를 듣고 난 뒤 어느새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곤 서로서로 추천을 해 명성이 퍼졌다. 이미 한양대생 사이에서는 ‘졸업하기 전 반드시 들어야 할 강의’ 1순위에 꼽히며, 2번 이상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도 학기당 10여명이 넘는다. 심지어 어느 수강생은 전공과목을 포기하고 이 강좌를 신청하기도 했다.


강의만 전담하는 진정한 프로

그의 강의에 대해 흥미와 재미 위주로 수강생의 입맛을 맞추려는 강의라는 비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사실 그도 이론과 학문 중심의 교과서적인 강의를 진행할 수 있다. 발생학으로 박사 학위를 맞은 그가 마음만 고쳐먹으면 왜 그런 강의를 못하겠는가.

하지만 그런 강의는 죽은 지식을 전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텍스트를 주욱 읽어 내려가던 강의를 받았던 그는 자신만큼은 이런 강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재미없는 강의에 질려버린 그는 ‘정말 재밌는 강의를 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생물학과 재학시절 교직과목을 이수했다.

하지만 첫 교생실습에서 그의 꿈은 깨지고 말았다. “학생들 앞에 서니 다리는 후들후들, 말은 왜 그렇게 안나오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힙니다”라고 김교수는 첫 교생실습을 회상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법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했다. 가족을 앞에 두고 강의를 연습했으며, 명강의라고 알려진 강의를 녹화해 분석했다. 덕분에 지금 그는 3분에 한번은 수강생을 웃길 수 있는, 언변의 달인이 됐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명강사 반열에 올라선 데에는 그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보통의 강사처럼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지 않고 강의만 전담하는 전임강사다. ‘성의 이해’가 명강의로 꼽히는 또다른 까닭이다. 사실 한 사람이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자신의 연구분야를 진척시키고 이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강의 준비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대학 강의는 연구와 수업을 병행하는 강사나 교수에 의해 진행된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훌륭한 명강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연구분야를 포기했으니 그만큼 서운할 만도 하다. 이에 대해 그는 “사실 섭섭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그쪽은 마음을 정리했죠. 덕분에 수업준비에 충실할 수 있었고, 그만큼 보람도 큽니다”라고 말한다.

외국의 명문대를 보면 연구교수와 수업교수를 따로따로 선발해 강의의 질을 높인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실시하자는 목소리는 높지만 아직 그 실현여부는 요원해보인다.


몸과 마음이 합쳐진 완전한 성

“성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그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한다. 대신 “성은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입니다”라고 말한다. 성(性)이란 말을 풀이해 보면 마음(心)과 몸(生)이 결합돼 있는 형성문자다. 성을 표현하는 영어의 ‘sex’가 성행동이나 성적인 쾌락만을 의미하는데 반해, 우리의 ‘性’은 몸과 마음이 합쳐진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를 뜻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애인과 당당히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감동을 자아낸다. 두 사람은 보통 부부처럼 열정적인 육체적 관계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둘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보인다.

결혼식이 끝나고 누군가“야! 저 두 사람 너무 섹시해보인다”라고 중얼거린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진정한‘성의 이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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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 사진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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